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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라의 커피, 너도바람의 향기

프리 김앤리 2011. 2. 15. 00:31

 

이 커피가 거의 동이 난 지금에서야 나는 감사의 편지를 보낸다.

지난해 12월의 마지막날,한아름의 커피가 집으로 배달되었다. 

'클라라의 커피'.

클라라?

나는 그가 누구인지 잘 모른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은 클라라씨는 경기도 양수리 어딘가에서 40년이 넘도록 떡집을 하고 있고,

그 떡집의 한 귀퉁이에는 직접 뽑아 내리는 커피집도 함께 하고 있다는 것,

그 커피의 맛이 기가차게 맛있다는 사실, 그 정도다.

그리고 그는 너도바람님의 지인이다.

 

너도바람?

나는 그를 한번도 본 적이 없다.

내가 알고 있는 사실은 오마이뉴스의 대단한 필력을 자랑하는 시민기자라는 사실,

학교 선생님, 서울시 강남특구에 살고 있지만 특구의 다른 시민들과는 달리 시대정신을 가지고 있다는 것,

여행을 사랑하는 따뜻한 사람일꺼라는 추측만 가지고 있을 뿐이다.

 

너도바람은 어느 순간부터 우리의 여행을 온전히 함께 한 사람이다.

아마 2009년 가을, 러시아의 모스크바 혹은 상트페테르스부르그를 여행할 때 쯤 부터 였던 것 같다.

그는  우리가 헬싱키를 여행하면 영화 카모메 식당을 알려 해주었고,

부다페스트의 이야기를 올려놓으면 자신이 그곳을 여행하면서 느꼈던 글루미 선데이의 빛깔을 전해주었다.

슬로베니아의 블레드 호수에서는 자신의 여행을 들려주며 같은 곳에서의 다른 감동을 말해주었다.

두브로브니크에서는 문화재가 아닌 사람을 지키는 예술가를 보고 싶어했던  우리의 마음에 동감해 주었고

발트해 연안의 국가들을 여행할 때도, 요르단 시리아, 터키를 여행할 때도...

그는 늘 우리와 함께 여행을 하는 듯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지난해 캐나다와 미국을 여행할 때도 그는 내내 살가운 댓글로 우리의 블로그 포스팅에 힘을 보탰다.

그는 우리가 여행을 하고 있던 동안 학교 방학을 이용하여 틈틈히 

아랍에밀레이트와 오만, 시베리아 횡단 열차와 바이칼호수 그리고 고비사막,

또 이번엔 남미를 38일동안이나 여행을 하며... 사람들을 여행이야기 속으로 푹 빠지게 만들었다. 

 

나는 그의 얼굴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

그의 블로그에 주옥같은 수많은 글이 올라와 있어도 자신의 얼굴은 한번도 제대로 비춰준 적이 없다.

몇년간 수백 편의 글을 올리면서도 얼굴 한번 드러내지 않던 그가

며칠전 자신의 블로그에 처음 자신의 사진이라고 올렸지만

그것도 멀찌감치 살짝이 보여줘서 감질만 날 뿐이다.

 

그런 그가 지난 년말 한아름의 커피를 내게 보내줬다.

우리 2년간의 여행, 그 무사귀환을 축하한다고.

클라라네 커피 자랑을 해놓은 그의 글 밑에 내가 달아놓은 댓글 '나도 커피 광신도'라는 한 줄 글귀를 보고

대뜸 산더미만큼의 커피를 선물로 보내온 것이다.

 

먹는 거라면  절대 빠지지 않고 누구보다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해온 나이지만

커피를 광적으로 좋아한다는 것도 맞지만

사실 커피 맛도 향기도 제대로 음미할 줄 모르는 나한테 말이다.  

나는 그가 매번 달아주는 댓글만 해도 이미 가슴이 벅찰 정도의 따뜻한 사랑을 받았는데

향기 가득한 커피까지...

한번도 만난적도 없는 그가...

 

혼자 먹기는 너무 아깝고,

또 다방커피나 일회용 자판기 커피나, 아니면 스타빡스 커피나

커피라면 무조건 좋아하고 마시고 보는 내 무식한 커피 취향으로는

이 향기를 다 감당하지 못할 것 같아 사무실로 왕창 다 가져갔다.

친한 후배들한테도 몇 봉지 나눠주고 나머지는 사무실에 몽땅 다 진열해놓고  

"이게 어디서 온 커피인줄 아느냐"고 자랑질 왕창,... 

받은 선물로 내가 선심 왕창 쓰며 으쓱했다.

 

그래서 1월부터 지금까지 우리 사무실의 아침에는 늘 클라라네 커피 향기가 가득하다.

엘살바도르, 코스타리카, 케냐... 마치 여행하듯이 전세계의 커피 향기가 가득하다.

어느 순간부터 내 친한 친구보다, 가족보다 내 근황과 생각을 더 잘 알고 있을 것 같은

그와 함께 ...너도바람의 향기를 마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