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지금은 여행중 /5월 실크로드

짙은 쌍꺼풀, 오똑한 코의 서양인 같은 중국인 - 5월 실크로드 4

프리 김앤리 2011. 6. 9. 10:34

여행을 많이 다니다보니 국가와 민족에 대한 개념이 제법 많이 변하였다. 

 

여행을 떠나기 전 내 머리속에 있는 민족과 국가에 대한 고정관념은 내가 처한 상황에 따라 정리하는 변변찮은 수준이었다.  

 

중고등학교 시절, 아니 대학교 시절까지만 해도 하나의 국가는 무조건 단일민족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여겨왔다.

어디를 둘러봐도 똑같은 유전자를 물려받아 비슷비슷하게 생긴 한민족 대한민국.

그래서 미군부대 바로 옆에 있었던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에 몇명 보이던 아이노꾸(우리는 혼혈인 그 친구들을 이렇게 불렀다)를

왕따시키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우리 민족이 아니므로,  그래서 당연히 우리 국민이 아니었으므로, 우리와 다른 사람이므로...

나와 다른 것을 인정할수도 없었고 인정할 필요도 없는 시간에 살았으므로...

 

대학을 다니면서 조금 더 넓은 세상을 접하면서 

동일한 국가라 하더라도 그 내부에는 다양한 민족이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각기 핍박받는 한 민족이 핍박하는 다른 민족에게 저항하고 독립을 위해 싸우고 있다는 사실을 배웠다.

현재의 시점에 동일한 국가안에 다양한 민족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도 알게되었고,

그것이 과거의 어느 시점에 침략 전쟁이라는 것이 있어서 생긴 결과일 수도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나는 그들의 역사를 배우고 그들의 저항을 지지했다.

 

여행을 떠나기 전까지는 관념속에서나마 그들을  지지했다.

딱 거기까지 였다.

지지만 하고 있었을 뿐, 그렇게 서로 다른 인종이 민족이 하나처럼 어울려 살고 있는 모습을 쉽게 떠올리지는 못했다.

하나의 민족이, 단 한종류의 인종이 하나의 국가를 형성하는 것이 아니라

이리저리 섞이고 섞여 다양한 속에서도 충분히 아름다운 사회를 만들어 가고 있다는 사실을

여행을 떠나오기 전에는 전혀 몰랐다.

 

또 한편으로는 겉으로 아주 평화롭게 보이는 한 사회라고 할지라도

과거의 참혹한 역사를  기억하는 자들, 그리고 현재의 권력을 탐하고 있는 자들에 의해

사실은 그 내부가 부글부글 끓고 있는 곳도 있다는 사실도 여행을 떠나와서 배운 사실이다. 

 

중국 우루무치 지역을 여행하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제일 먼저 떠올랐던 건 당연히

신장 지역, 위구르 자치구에 관한 호기심이었다.

중국이지만 중국 사람보다는 서양인과 더 닮아있다는 사람,

중국 본류인 한족의 종교와는 다르게 이슬람을 믿고 있다는 사람들.

그래서 거리에는 미나렛이 있는 있는 이슬람 교회가 보이고

돼지고기 냄새보다는 양고기 꼬치 냄새가 진동한다는 그곳,

이슬람 전통모자를 쓰고 있는 남자들,  차도르 히잡으로 자신을 꽁꽁 숨기고 있는 여인들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이 가장 큰 매력이었다.

 

중국을 여행하지만 지금까지의 중국과는 또 다른 민족 다른 인종들이 살아가는 곳,

남들보다 내가 더 우월하다는 것을 죽기 살기 경쟁을 해서라도 밝혀내야 하는 우리 나라에서의 속시끄러운 시간을 벗어나

서로 다르게 생긴 사람들이 하나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이 보고 싶었다.

그리고 참 아이러니 하게도 겉으로 보이는 평화속에 내재되어 있는

민족적 저항을 만날수 있는 행운이 있으면 또 좋겠다는 생각까지 하면서 말이다.


 

 

 

 

 

상해나 베이징에서 보던 중국인들과는 사뭇 다른 얼굴들이다.

짙은 쌍꺼풀과 오똑한 콧날.

인종으로 따지자면 서양인과 훨씬 더 가깝다.

그래도 서양과 다른 것은 이들이 입고 있는 옷의 색깔이 모두 무채색이라는 거다.

그것도 대부분 어두운 계통으로.

단지 여성들이 두르고 있는 스카프의 색깔만이 이 도시에 색을 입히고 있는 듯 하다.

 

한참 사진을 찍고 있는데 한명의 젊은 남자가 와서 우리를 제지한다.

중국말이다.

무슨 소리인지 통 알 수 없다.

단지 뭔가 불만이라는 거, 화를 내는 기세로 보아 우리의 카메라를 뺏을 거 같다는 거,

하여튼 우리가 굉장히 뭔가를 잘못했다는 거...

 

중국 한족에 대해 독립운동을 하고 있는 위구르 열혈청년인가?

우리가 자기들을 감시하느라 카메라를 들이대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인가?

이들의 보호를 위해 방금 찍은 사진을 다 지우는 걸 현장에서 확인시켜 주는 것이 옳은게 아닌가???

순간 벼라별 생각을 다했다.

우리는 이들을 지지하므로.

세상 어느 곳에 살든지 자신의 권리를 위해, 집단의 인권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을 지지하므로...

 

ㅋㅋ

그런데 그게 아니란 건 다음날 한번 더 그곳을 찾아갔을 때 알아차렸다.

그 사람은 그곳(버스 터미널)에서 불법적으로 일하고 있는 암표장사였던 것을... ㅋ

 

소수민족이면 핍박받는 민족이면 무조건 모두들이 민족 독립을 위해 일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보는

또 우리의 오류다.

민주주의도 제대로 없던 시절 대한민국을 살아왔던 사람들의 버릇같은 바램이

여행을 떠나와서도 주책스럽게 발동한거다.

 

마치 인형처럼 생긴 이 언니도 영어는 한마디 못하고 중국어만 유창하다.

물론 위구르어도 쓰겠지만 애시당초 위구르어는 내게 아무런 필요도 없고.

저 얼굴에 유창한 중국어. 참 낯선 조합이다.

 

이 어린 친구들도 역시.

중국에서 만나지 않았다면...

외모로 치자면 영락없이 투르크족의 후예들이다.

 

그 시작이 달라 다르게 생겼으나 이미 하나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신장 위구르 자치구였다.

그들이 지금도 여전히 민족 자치를 위해서 싸우고 있는 것은

단순히 하나의 민족이 하나의 국가만을 건설하기 위한 싸움만은 아닐 것이다.  

모든 인간은 다 평등하다는 사실에 기초해야 한다는 사실,

중국 정부의 차별 정책에 의해 한족은 지배계급(고위층, 부유층..), 원래 그 곳에 살고 있던 위구르 족은 피지배계급으로 있는

여전한 억압과 차별이 있는 사회에서 반드시 요구되는 '평등'이라는 단어가

신장위구르 자치구의 분쟁을 이해하는 키워드가 될 것이다.

 

 

   참고   ** 위구르족 **

 

위구르라는 이름은 8세기에 몽골리아에서 흑해까지 돌궐제국이 확장될 때 투르크계의 한 유목민족으로 역사상 등장한다.

현재는 중국의 한족 지배에 저항하는 민족이지만 8세기 까지의  위구르족 오히려 중국(당나라)과는 우호적이었고

오히려 상위계층으로 부터 받은 핍박때문에 돌궐과는으로 적대적인 민족이었다.

위구르족은 한때 돌궐제국에서 벗어나 오르혼 위구르 제국을 건설하여

동서양 문물 교류의 중심으로  실크로드의 한 역사를 담당할만큼 번성하지만

840년 또다른  터키계민족에게 침입을 받아 결국 멸망한다.

위구르 제국이 멸망하고 난 뒤  위구르족들은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중국 신장지방, 타림분지, 타클라마칸, 우즈베키스탄등

중앙아시아의 곳곳으로 이동하여 그들의 삶을 꾸려나갔다.

 

한편 1600년 중엽, 유목민족이었던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는 중국의 명나라를 무너뜨리고

몽골, 동투르키스탄, 티베트 등의 주변 민족들을 모두 제압하기 시작했다.

청나라는 일단 위구르 지역의 통치를 확립한 뒤에, 이 지역을 새로운 영토라는 뜻의 ' 신강(新疆)성'을 설치하고 이슬람 주민을 통제하는 한편,

독자적인 국가를 세우려고 저항하는 위구르 인들을 끝까지 추격하여  수많은 목숨까지 빼앗는다.

그러나 청의 지배 시기동안에도 위구르 인들은 수십차례 독립운동을 일으키고

1800년대 초반에는 결국 카슈가르, 옐켄, 호탄, 아커쑤, 쿠차, 쿠얼러, 투르판 등을 아우르는 위구르 통일국가를 건설하여

러시아제국이나 영국제국들로 부터 인정을 받는다.

이후에도 위그루와 중국 사이에는 재침략, 재지배, 독립국가 건설(예티사르, 동투르키스타 공화국..)을 반복하지만

1949년 이후 완전히  중국 공산당 지배하에 들어가게 된다.

이후 중국정부는 티벳에서와 마찬가지와 중국 한족을 신장지구에 대거 이주시키고

위구르족 전통과 종교 말살을 자행해왔다.

 

외모는 다양해서 중앙아시아의 투르크계 민족들과 유사한 경우도 있지만, 유럽인처럼 피부가 흰 위구르인들도 있다.

아시아 내륙에 주거하는 대부분의 투르크 제민족들과 마찬가지로 이들 역시 수니파(派) 이슬람교도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