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지금은 여행중 /5월 실크로드

중국 냄새, 서역 냄새 - 오월 실크로드 5

프리 김앤리 2011. 6. 13. 07:00

<투루판 첫번째 이야기>

 

우루무치에서 버스로 3시간, 투루판에 도착했다.

투루판은 위구르어로 '파인 땅'이라는 뜻이다.

주변보다 낮은 땅. 지구상에서는 사해 다음으로 가장 낮은 땅이란다.

그래서 투루판은 천산산맥의 만년설이 녹은 물이 모여드는 축복의 땅이다.

주변은 거친 황무지, 끝없는 사막이지만 물이 모여드는 투르판은 그래서 푸르름을 가진 행복한 오아시스다.

 

흠흠... 상쾌한 공기를 마신다.

푸르름을 만난다.

사람들의 표정도 밝은 것 같고 발걸음도 훨씬 더 가벼운 것 같다.

이란을 여행할 때의 행복한 느낌이 되살아난다.

푸른 가로수 길도 이란을 많이 닮았다.

기분이 좋아진다.

 

투루판에서 가장 유명한 건 포도다.

사막에서  사는 인간들의 가장 위대한 작품, 카레즈(지하수로)를 뚫어 끝없이 펼쳐지는 포도밭을 일구어낸 곳이 투루판이다.

햇살이 강한 사막 기후에서 만년설이 녹은 물을 먹은 투르판의 포도는 세상에서 가장 당도가 높게 열매를 맺었다.

그리고 그 포도는 사막의 사람들이 살아갈수 있도록 돈을 만들어주었다.

 

시장의 한 귀퉁이에서는 말린 포도도 팔고,

씨알 굵은 호두도 잔뜩 내놓았다.

 

이쪽 동네에서만 먹을 수 있다는 하미과도 보이고...

(맛은... 쩝 그랬다. 아직 철이 아니라서 그렇나?)

 

방금 구워낸 온갖 종류의 난들도 보인다.

 

할아버지! 세월의 주름이 얼굴에 고스란히 남아있어도

푸근한 미소덕분에 참 아릅답습니다.

이슬람의 냄새, 서역의 냄새가 참 향기롭습니다.

 

그랬다. 여기는 낯선 땅이었다. 

우리는 새로운 세상을 보러 나온 여행자였다.  

우루무치에서도 그 사실을 잊어버린 적은 없지만 아무 매력없는 대도시의 기운에 뭔가 불편했던 이번 여행이

투루판으로 오면서 행복한 기운으로 바뀌고 있었다.

그랬다.

느릿느릿 걸어가는 사람들의 발걸음, 설렁설렁 기웃거리는 여행자,

얼굴을 스쳐가는 낯설지만 익숙한 향기, 비로소 여행을 나온 느낌이다.

 

어두운 무채색으로 가득했던 우루무치의 분위기와 다르게 여기는 다양한 색깔도 있다.

흠~흠~흠~ 투루판의 자유로운 공기를 마시러 온 동네를 휘젓고 다닌다.

 

흠~흠~흠~

그래도 중국 서역의 진정한 냄새는 바로 이것.

독특한 향기의 양고기 구이 냄새다.

시장안을 가득 메웠다.

 

길거리로 나서도 마찬가지다.

넉넉한 아줌마의 손끝에서 빗어지는 만두, 칼국수.

모든 곳에서 내게는 아직 역한 양고기 냄새다.

 

과연 저 만두를 아무런 저항(?)없이 먹을 수 있을까?

세상 음식중에 못먹는 음식이 별로 없지만 아직 양고기만은 썩 내켜하지 않는다.

그런  내가 어느  음식에서나 거의 양고기가 들어가는 이 동네 음식을 견뎌낼 수 있을까?

 

ㅋㅋ 국수와 만두를 시켜먹었는데 ... 내게는 역시 별로다. 아니 역하다.

남편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한그릇을 후딱 비운다.

 

양고기를 얇게 저며 야채와 함께 속을 채운 만두나,

볶은 양고기를 고명으로 얹는 국수는 그래도 양반이다.

다음날 찾은 또 다른 광장 야시장에서는 양고기를 통째로 삶아 커다랗게 턱턱 잘라 소금에만 찍어 그대로 먹는다.

아무 다른 양념도 없이.

 

어두워질때까지 늦도록 선 야시장에는 온통 양고기냄새다.

굽고, 삶고, 볶고... 자욱한 안개처럼 양고기 냄새가 지독하다.

오늘도 국수를 시켜놓고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는데

남의 속도 모르는 옆자리의 청년들은 자꾸만 고기 덩어리를 통째로 내민다.

아주 맛있다며, 먹어보라며...

내젓는 우리 팔이 결코 내숭이나 체면이 아님에도 사양하지 말고 먹어보라고 자꾸 권한다.

손님을 극진히 대접하는 이슬람의 문화가 여기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양고기를 제법 잘 먹는 남편도 뭉덩뭉덩 잘라놓은 고기 덩어리를 덥썩 베어먹을 용기는 없는 모양이다.

결국 계속되는 우리의 손사래에 그들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고기를 자기들 앞으로 갖다 놓는다.

 

결국 우리가 선택한 건 양념을 듬뿍 바른 양꼬치.

적당히 숯불 냄새도 가미하고, 고춧가루에 소금 후추 독특한 그들의 향까지 와장창 가미한 양고기.

남편은 아주 흡족해하고, 나는 그나마 참을만 하고...

 

아~~~ 이제 진짜 여행온 것 같다.

 

그래도 두려웠다.

중국이라는 동네에서 기필고 만나고야 말 것 같은 배앓이, 그리고 지독한 설사.

인도, 네팔, 태국, 라오스는 말할 것도 없고 중국에서도 언제나 통과의례처럼 치루던 설사.

한번도 설사약을 놓친적이 없는데 이번 여행은 얼마나 준비가 부실했던지 그것조차 까먹고 나왔다.

중국 냄새, 서역 냄새, 양고기 냄새에 취하면서 이제야 비로소 진짜 여행을 떠나왔다는 행복함의 한켠에서는

동네 약방을 찾아 영어와 중국어를 섞어가며 손짓 몸짓으로 설사약을 살수 밖에 없는 두려움이 함께 스멀거리고 있었다. 

 

(그런데 저기서 산 중국 설사약이 이번엔 전혀 필요가 없었다는 것.

 난생처음 그 동네 여행을 하면서 설사라는 불행한 사태가 안 일어났다는 놀라운 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