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지금은 여행중 /5월 실크로드

사막과 흙빛. 오월 실크로드 7

프리 김앤리 2011. 6. 15. 07:00

 

<투루판 세번째 이야기>

 

여행을 떠나오기만 하면 내 머리속의 화두는 하나로  모여진다. 

'행복'.

일상에서는 화두라는 단어를 생각할 겨를도, 여유도 없지만 

시간이 남아 돈다고 하더라도 늘 다른 것들이 생활속으로 비집고 들어왔다.

무슨 일을 언제까지 처리해야 하며,

누구 누구를 언제 만나야 하며,

만족감을 주지도 않으면서 자질구레하기까지 한 집안일들이며 주변 대소사까지...

통큰 척, 대범한 척, 쉽게 잊어버리고 쉽게 웃어넘기는 척 하지만

실상은 사소한 일 하나하나에 얼마나 용을 쓰고 살고 있는지는

다른 사람은 다 몰라도 나 스스로만은 안다.

저 혼자의 성질도 제대로 다 못 다스리면서

일상이라는 곳은 다른 사람의 성격이나 상대의 상태까지 일일이 신경써야 하는 번거로움까지 더해지니.

누구의 아내, 누구의 며느리, 딸, 누구의 언니 동생 선배 후배 친구 동료 선생님 실장님 아줌마...

갖가지 이름으로 불리어지는 관계에서 벗어나 오롯이 내 삶의 행복을 찾고 있는 것은 차라리 비현실적이기 때문이다. 

사람들끼리 얽히고 얽혀 무수한 관계가 만들어지는 이런 곳이 진짜 사람 사는 세상인데

그 모든  것을 다 내팽개치고 또 다른 어느 곳에서 '행복찾기 ' 운운하는 것이 생뚱맞기도 하고 말이다.

하여튼 일상이라는 곳에서는 '행복'이란 단어를 들먹일 여유도 없지만

새삼스럽게 '행복'이라는 단어를 떠올려야 하는 이유가 없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여행이라는 것을 떠나오면

무조건, 가장 먼저, 가장 절실하게 떠오르는 단어는 '행복'이며 '삶의 질'이다.

그간 일상의 삶이 눈물날만큼 불행했다거나

탈출하고 싶은 욕망을 몸서리치며 억눌러 왔던 것도 분명 아닌데

떠나오기만 하면 그간의 시간을 되돌아보게 만들고

'지금 우리가 행복하게 잘 살고 있는지'

'어떻게 하면 진짜 행복하게 살수 있는지'

'혹시 그간 다른 핑계를 대며 행복을 유보하고 있었던 건 아닌지' 고민하게 된다.

그래서 좋다.

여행이라는 게 좋다.

 

죽어서도 흙속으로 스며들지도 먼지로 날아가버리지 못하고  여전히 미이라로 살고 있는 이스타나 고분군을 나와

바짝 마른 산 구비를 지난다.

먼 옛날 어느 시점에는 분명이 바위였을, 하다 못해 작은 돌멩이 시절이라도 있었음직한

모래들이 산을 형성하고 있다.

아직까지 이 모래들은 완전히 낱알이 되지 않아 서로가 서로를 부둥켜 안고

단단한 산을 만들고 있지만 또 다시 아주 오랜 세월이 지나고 나면

바람만 불어도 먼곳까지 날아가버리는 모래산이 되어버릴테지...

 

미국 유타주의 '불의 계곡(Valley of Fire)'을 가지 않고 이 곳을 왔더라면

캘리포니아 주의 데스밸리(Death Valley)를 가보지 않고 이곳을 왔더라면

경이로운 모습에 완전히 넋을 잃었을지도 모르겠다.

 

이런 곳에서도 사람이 살았었단다.

태양빛만 가득하고 물 한점 없을 것 같은 바짝 마른 땅에 사람들이 집을 짓고 살았던 흔적이 있단다.

베제크리크를 찾아가던 도중에 이런 나무숲을 만나지 못했다면

짧은 상상력으로 한참동안이나 고심했을지도 모른다.

 

진짜 신기루같이 나타난 푸른 숲과 그 사이를 좔좔 흐르는 큰 냇물.

천산 산맥의 눈 녹은 물이 흘러내리는 길이다.

투르판의 사람들을 보듬었던 생명의 물이고, 천금같은 산소다.

 

베제크리크(Beizeklik), 일명 천불동이다. 

 

베제크리크는 위구르어로 '아름답게 꾸민 방' 이라는 뜻이란다.

사막의 오아시스, 계곡속의 절벽에 만들어놓은 방이 줄지어 있는 곳이 베제크리크다.

절벽, 강, 숲, 그리고 바위 절벽을 뚫어 만든 방.

옛날 사람들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기본이 다 갖추어졌다.

인도의 석굴도 그러하고 시리아의 마르무사 수도원이 그러하고 미국의 메사베르데 국립공원이 그러했다.

 

베제크리크를  천불동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원래 이곳에 있었던 수많은 불상 그림때문이다.

절벽을 뚫어 만든 방 하나하나에 보물같은 불교 그림들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 이 곳에는 그림들이 거의 남아있지 않다.

이 곳을 점령한 이슬람 세력이 인물상을 인정하지 않아 파괴하고 훼손하였다.

그나마 남아있는 그림들도 독일이 벽채로 뜯어 베를린으로 싣고가 버렸다.

베를린의 페르가몬 박물관에 모셔둔 수많은 그림이 이곳 출신이다.

 

터키의 베르가마(페르가몬) 아크로폴리스에서의 그 절망감, 이곳 베제크리크에서 느끼는 허무감 모두

원래 있어야 할 위치에서 들려져 나간 유적들의 슬픔에서 기인한다.

뚫어 놓은 구멍이 있어 이 곳이 석굴이었다고 인정하고

미처 뜯겨져 나가지 못한 희미한 그림 잔재가 있어 이 곳이 천불동이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을 뿐

아주 큰 석굴이었다는 그래서 아주 유명했다는 것에 그다지 흥분이 되지는 않는다.

다만 그 앞에 거짓말처럼 자라고 있는 푸른 나무들과

시원한 냇물이 만들어낸 자연이 훨씬 더 감동적이다.

어쩌면 이 곳도 고창고성처럼 허물어지면 허물어지는 대로 그대로  뒀더라면 감동을 더 자아냈을 지 모른다.

억지로 만들어 놓은 맨들한 질감의 벽과 지붕에서 풍기는 인위적인 맛이

세월을 묵묵히 받아들이고 있는 사막과는 도통 어울리지 않는다고 할까?

분명 똑같은 사막 흙빛이지만 흙의 따뜻함보다는 시멘트의 차가움, 건조함을 먼저 느끼게 하는 곳이었다.

 

이 할아버지라도 없었다면 어쩌면 베제크리크는 인위적인 건조함만으로 기억되었을런지도 모른다.

아니 아예 기억조차 하지 못하는 곳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할아버지.

불어오는 바람외에는 아무 움직임도 없는 듯한 따가운 햇살의 여름 한낮.

살아있는 것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듯한 무료한 공간을 채우고 있었던 음악소리,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선한 얼굴을 하고 있던 할아버지의 합죽한 미소.

 

물론 관광객을 겨낭한 연주임에는 틀림없으나

무심히 자기 발가락이나 만지작거리고 멍한 눈빛을 때리고 있던 이스타나 고분 앞의 아저씨와는 다르게

무엇인가 움직이고 있는 세상을 만들어 주고 있는 할아버지가 있어서 얼마나 고마웠던지...

 

이 할아버지에게 '행복'이란 무엇일까?

굳이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바로 이 자체인지 모른다.

 

여행을 떠나온 우리에게 있어 행복이란 무엇일까?

지금 이 순간 나는,  일상에서는 그냥 지나쳐 버릴 작은 울림조차 기쁨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 행복하다.

그리고 바로 이 순간, 행복하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어 참 행복하다.  

 

밖으로 나온다.

원래대로 한다면 날도 더운데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우리 차량에 금방 올라타서 에어컨 바람을 쐬어야 정상이다.

그런데 할아버지의 연주 덕분에 좀  느릿느릿 해졌다.

짧은 순간의 행복을 그냥 다시 놓치기 싫은 까닭이다.

눈을 들어보니 바로 앞 모래산 옆으로 손오공상이 보인다.

저팔계 사오정과 삼장법사까지.

멋적기는...

 

문득 저 앞산에 올라가고 싶어졌다.

땡볕 모래밭에서 무슨 만용?

그런데 하고 싶어졌다.

같이 왔던 일본인 친구, 카츠도 선뜻 따라 나선다.

 

저 멀리 다른 사람들도 올라온다.

저 모래산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과연 무엇이 있기는 한걸까?

그냥 마음 내키는대로 할 뿐이다.

뭔가 있어도 좋고... 아무것도 없어도 좋고...

 

단지 이 순간 내 마음이 가는대로 할 뿐이다.

우리는 여행을 떠나왔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