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터키, 투어야 단체배낭 터키 2기>
사진이 이렇게 심하게 흔들렸다는 것은 사진을 찍는 그 순간
어깨가 들썩이고 있었다는 증거다.
어깨가 들썩이는 이유는 심각하게 울고 있었거나 아니면 심하게 웃고 있었다는 것.
키 작은 가로수, 흰색 자동차로 가려진 길가 레스토랑.
자동차 너머로 긴머리 여인이 힐끗 보인다.
그리고 오른쪽 나뭇잎 사이로 보이는 넓직한 남성의 등판.
그들은 국적도 다르다.
그들은 서로가 정확하게 구사할 수 있는 언어의 종류도 다르다.
그들은 얼굴을 첫 대면한지 이제 겨우 만 하루를 넘겼을 뿐이다.
만 하루라 해도 서로가 같이 이야기 한 건 채 10분도 못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지금 데이트 중이다.
아니 데이트 중이라고 우리가 우기고 있다.
하여간 터키 남자는 긴머리 여자를 따라 왔고
우리 일행은 그녀를 그 남자한테 보내버렸다.
정확하게 표현하면 그 쪽으로 버렸다는 사실이 맞을지도 모른다.
그녀를 버린 우리들은 항아리까지 깨가며 히히덕거리는 저녁을 먹었다.
우리 입으로 들어가는 얼큰한 항아리 국물맛 보다는
과연 버려진 이들 남녀는 무엇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을지에 더 입맛을 다셨다.
과연 무엇을 주제로 이야기 하고 있을까?
주제라고 표현하면 너무 대단하다, 무엇을 소재로 이야기 하고 있을까?
과연 이야기를 하고나 있을까?
한다면 무슨 언어로 하고 있을까?
그렇지 않다면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을까?
괴레메의 밤거리.
파파라치가 된 우리가 드디어 그들을 발견했다.
" 찾았어요, 저기 있어요!!!"
수색작전의 승전보가 어두운 밤하늘을 새차게 갈랐다.
번개같은 속도로 차도를 건너고 도로 중간의 가로수 아래 몸을 바짝 엎드렸다.
뭣들 하고 있다냐?
웃고 있는 것 같은디?
참다 못한 언니는 흰 자가용 앞에까지 전진했다.
현장을 잡으리라, 증거물로 제시할 사진을 찍고야 말리라...
흐흐흐흐흐흐...
흐흐흐흐흐흐...
그런데 잘~ 안~된~다~
우스워서 도저히 사진을 찍을 수가 없다~~~
몰래 데이트 현장을 찍어내는 냉철함보다는
데굴데굴 구불면서 웃다가 빠져버린 우리 배꼽이 더 급하다~~~
파파라치, 항복이다~~~
<이건 팁! 그녀의 추억을 위하여
그 남자의 이름은 학칸이었다.
그로부터 며칠 뒤 이스탄불에서 만난 어느 가게 간판,
그리운(?) 이름, HAKCAN >
<팁 하나 더. 뒤에 확인한 바에 의하면
그들은 전혀 말이 통하지 않아도 잘 웃고 있더란다.
두 사람이야 '사랑(윽!)'에는 국경도 없다고 우겨보고 싶겠지만
우리의 판단은 사뭇 다르다.
요즘같은 첨단시대에 두 사람의 만남에 동일 언어가 무어그리 필수 조건이겠는가?
구글 번역기도 있을 것이고,
그게 안되면 만능 엔터테이너 기기 아이폰 이라는 놈이 있질 않는가?
그 속에 무진장 저장되어 있는 사진을 같이 꺼내보며 호호호,
다운받은 어플 속의 '말하는 고양이' 불러내 아무말이나 각자 지껄이며 따라쟁이하는 그 녀석 보며 또 호호호,
MP3 기능까지 하는 아이폰 속의 음악을 같이 들으며 호호호.
하여튼 그들은 우리의 우려와는 다르게 내내 호호 거리고 있더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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