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사는 이야기

빈둥거리며 지루하게 놀기

프리 김앤리 2011. 10. 18. 14:40

 

이번 주 일주일 사무실에서 연차를 받았다.

지난 여름부터 이리저리 쫓아다니느라 집은 폭탄을 맞은 듯 하고

냉장고는 먹어야 할 음식보다 정리해야 할 음식재료들이 더 많이 널부러져 있다.

치우기는 싫어해도 다른 사람들 불러들여 차려 먹이는 음식솜씨 하나만은 그래도 제법 뻐길만하다고 여기고 살고 있는데

폭탄맞은 집에 버림받은 음식재료들로는 집을 찾아온 손님들에게

음식 접대는 커녕 데숭받은 여편네로 보이지 않으면 그나마 천만다행이다.

헝클어져 있는 집안도 정리하고

그보다 더 헝클어져 있는 내 생각도 정리할 겸 일주일을 온전히 다 비웠다.

금요일 오후, 룰루랄라 사무실을 정리하고 나와서는

시아버님 제사를 지내는 걸로 내가 공식적으로 처리해야 할 일이 다 끝났다고 생각했다.

물론 토요일 일요일을 거치면서 대구 북 콘서트 가기, 아주 오랜만에 고등학교 친구와의 만남,

한무리의 사람들과 흥겨운 술자리, 누군가의 우리집 방문, 접대는 커녕 그냥 잠만 재워줌,

조카 생일파티.....

그 사이 틈틈이 산더미같이 밀린 여름 얇은 옷 빨래, 이불 빨래 다 해놓고

한동안 비워둔 내 쌀곳간을 지 집처럼 둥지를 틀고 활개를 치고 있던 쌀벌레와의 대전쟁,

층층이 겹으로 쌓여만 있던 냉장고 속 정리하기, 그리고 몇몇 가지의 반찬 만들기...

 

그래서 오늘 아침부터는 진짜 완전 휴가인걸로 생각했다.

빈둥거리며 지루하게 놀면서 헝클어져 있는 내 머리속만 정리하면 되는 걸로 생각했다.

그런데 아침부터 전화통이 날 가만두지 않는다.

선배 언니의 전화, 또 다른 선배 형의 전화...

문득 얼마전에 우연한 의료사고로 저 세상으로 가버린 대학 동기를 떠올렸다.

다른 동기 녀석에게 전화를 했다.

뭐하고 사느냐고... 잘 살고는 있냐고...

문득 전화를 걸어온 선배 형이

 "그냥 오랫동안 연락을 안해서 문득 잘 살고 있는지 궁금터라"며

무심하게 살아온 자기 생활을 급반성모드로 바꿔서 나도 그 잠시사이 물이 들었나 보다. 

한동안 연락을 하지 않던 이 친구를 떠올렸다.  

사업은 잘 되냐고, 나는 여전히 깔깔깔거리며 잘 살고있다는 말에

이 녀석, 그냥 지금 당장 부산으로 내려와서 낮술이라도 한잔 해야겠단다.

이거, 웬 바람?

너 미쳤냐? 마누라한테 두들겨 맞았냐? 왜 그러냐?

나는 그런 사람 아니다, 세상에서 우리 남편이 내 인생에서 가장 잘 한 선택이라고 생각하며 살고 있다....

그런데...니 진짜 무슨 일있냐????

하여튼 그는 지금 현재 기차를 타고 있다고 문자를 보내왔다.

학교를 졸업하고도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편히 만날 수 있는 친구.

나의 남편조차도 그의 부인조차도 아무런 의심을 하지 않는 진짜 밋밋한 친구.

어느날 문득 만나도 편안한  친구.

짜~식, 부산 출장길에 절묘하게 걸려온 나의 전화에  

그토록 민첩하게 대응한 거짓 감동쇼라면 주겄쓰...

ㅋㅋㅋ

 

오늘도 그 때문에 내 생활 정리는 완전 글렀다.

빈둥빈둥거리며 머리를 완전히 비울 생각이었는데 또 글러버렸다.

그러게

놀아보자고 마음먹었을때, 쉬어보자고 생각했을 때는

인터넷도 그만두고 전화도 완전 끊어 놓았어야 했다.

 

                                                                                                    <오늘자 동아일보에서...>

덧붙임; 참고로 나는 절대로 조중동 안보는데...

           잠깐 들른 병원 대기실에서 조동밖에 없어서 들척였다.

           그리고 찾아낸 딱 오늘의 나에게 하고 있는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