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사는 이야기

관용은 자기와 다른 것, 자기에게 없는 것에 대한 애정입니다

프리 김앤리 2011. 10. 22. 02:06

 

어제는 이스탄불에 관한 글 한편을 올렸다.

이스탄불을 내가 어떻게 바라보고 있었으며 같이 여행간 사람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하려고 시도했던가를 이야기했다.

이스탄불에 대한 내 의식의 기반은 신영복 선생님의 책 『더불어 숲』에서 시작되었음을 고백했다.

 

한참을 헤매다 책장에서 선생님의 책을 다시 찾아냈다.

이스탄불의 관한 이야기는 『더불어 숲』의 1권에 있었다.

비오는 오후, 밖으로 나가는 것도 포기하고 온종일 책상에 앉아 다시 이 책을 읽었다.

10년 전의 감동이 고스란히 다시 살아난다.

책의 제일 뒷장에서 삐뚤삐뚤한 내 글씨를 발견한다.

1권은 98년 7월 14일에 읽은 모양이고, 2권은 98년 8월 13일이었나 보다.

아주 까마득한 시간이다.

 

선생님의 글을 그대로 옮긴다.

 

 

<관용은 자기와 다른 것, 자기에게 없는 것에 대한 애정입니다>

 

이스탄불은 먼 곳에 있었습니다.

로마나 파리보다 가까운 곳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의식속에는 훨씬 더 먼 곳에 있었습니다.

이스탄불과 콘스탄티노플 그리고 비잔틴이 서로 구별되지 않은 채 흑해처럼 몽매하기만 하였습니다.

 

이 아득한 거리감과 무지가 어디에서 왔는지 내게도 의문입니다.

이곳에 와서 비로소 깨닫게 된 것이지만 그것은 나의 머리속에 완강하게 버티고 있는 2중의 장벽 때문이었습니다.

그 하나는 중국의 벽이고 또 하나는 유럽의 벽입니다.

그것은 한 마디로 우리 역사의 곳곳에 세워져 있는 벽이며 우리들의 의식속에 각인되어 있는 종속성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이스탄불로 오는 이번 여정도 이 2개의 장벽을 넘어온 셈입니다.

중국 대륙을 건너고 런던, 파리, 아테네를 거쳐서 이스탄불에 도착하였기 때문입니다.

돌궐과 흉노는 중화(中華)라는 벽을 넘지 않고는 결코 온당한 실상을 만날 수 없으며

서구라는 높은 벽을 넘지 않고는 이슬람과 비잔틴의 역사를 대면할 수 없습니다.

만리장성보다 완고하고 알프스 산보다 더 높은 장벽이 우리의 생각을 차단하고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는 항상 견고한 장벽의 반대쪽에 서 있었던 셈입니다.

 

오늘은 그 2개의 벽을 너머 이 곳 이스탄불의 소피아 성당과 블루 모스크 사이에 앉아 이 엽서를 띄웁니다.

소피아 성당은 로마로부터 세계의 중심(Omphalion)을 이 곳으로 옮겨온 비잔틴 문명의 절정을 보여주는 명소입니다.

지름 32m의 돔을 지상 56m의 높이에 그것을 받치는 단 1개의 기둥도 없이 올려놓은 불가사의의 건물입니다.

그보다 못한 유럽의 유적들이 예찬되고 있는 것과는 현격한 대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건물과 유적뿐만이 아닙니다.

이스탄불에는 유럽 중심의 역사에서 완벽하게 소외되어 온 수많은 사화(史話)들이 있습니다.

1453년 마호메트 2세가 콘스탄티노플을 함락시키던 당시의 이야기들도 그 중에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배가 산을 넘는 등 무수한 무용담은 그리스와 로마의 전사에서도 그에 필적할 사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장대한 규모의 드라마입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가장 충격적인 것은 이슬람에 대한 새로운 이해입니다.

1935년, 그 때까지 이슬람 사원으로 사용되던 소피아 성당을 박물관으로 개조하면서 드러난 사실입니다.

벽면의 칠을 벗겨내자 그 속에서 모자이크와 프레스코화로 된 예수상과 가브리엘 천사등

수많은 성화들이 조금도 손상되지 않은 채 고스란히 나타났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500년 동안 잠자던 비잔틴의 찬란한 문명이 되살아난 것입니다.

벽면에 칠이 되어 있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던 많은 사람들에게는 경악을 금치 못하게 한 일대 사건입니다.

비잔틴 문명의 찬란함이 경탄의 대상이 되었음은 물론이지만,

그보다는 비잔틴 문명에 대한 오스만 투르크의 관대함이 더 놀라웠던 것입니다.

이교도의 문화에 대한 관대함이었기에 더욱 돋보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슬람의 관례는 적군의 성을 함락시키면 통상적으로 3일간의 약탈이 허용되었습니다.

그러나 마호메트 2세는 콘스탄티노플을 함락하고 난 다음 바로 이 소피아 성당으로 말을 몰아 성당의 파괴를 금지시켰습니다.

다 같은 하나님을 섬기는 성소를 파괴하지 말라는 엄명을 내린 뒤

이제부터는 이 곳이 사원이 아니라 모스크라고 선언하고 일체의 약탈을 금지시켰습니다.

이것은 어쩌면 오스만 투르크가 그들보다 앞선 유럽 문명의 정화(精華)를 그대로 계승하겠다는 의지라 할 수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내게는 이슬람의 그러한 관용이 매우 감동적이었습니다.

 

이슬람의 이러한 전통이야말로 오늘의 이스탄불을 공존과 대화의 도시로 남겨 놓았습니다.

동(東)과 서(西), 고(古) 와 금(今) 이 동시에 공존하고 있습니다.

이스탄불은 보스포루스 해협을 사이에 두고 유럽 대륙과 아시아 대륙에 걸쳐 있는 실크로드의 종착지입니다.

터키는 스스로 아시라아, 그리스, 페르시아, 로마, 비잔틴, 오스만 투르크 등 역대의 장구한 문명을

계승하고 있는 나라로 자부합니다.

카파도키아, 에페소스, 트로이 등지에는 지금도 그리스 로마의 유적들이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터키를 모자이크의 나라로 부르기도 합니다.

소피아 성당도 이슬람 사원인 블루모스크와 마주 보고 서있습니다.

기독교와 이슬람교가 공존하는 모습입니다.

터키의 역사에서는 이단에 대한 가혹한 박해의 역사보다는 다른 종교에 보여준 관대한 사례들을 곳곳에서 발견하게 됩니다.

세계사 교과서에서 '한 손에 코란, 한 손에 칼'이라고 배웠던 서구적 사관이 부끄럽게 반성되는 곳입니다.

당신의 말처럼 '한 손에 코란, 한 손에 칼'이라는 구절은

'한 손에 코란, 한 손에 세금'으로 바뀌어야 할 것 같았습니다.

터키의 이러한 관용은 북만주에서부터 중국 대륙을 거쳐 중앙아시아, 중동, 아프리카에 걸치는 역사의 대장정 속에서 길러온 도량인지도 모릅니다.

대제국은 결코 칼이나 강제에 의하여 건설될 수도 없고 유지될 수도 없다는 것이 역사의 진리이기도 합니다.

 

우리들은 저마다 자기의 내면 깊숙한 곳에 자기에게 없는 것,

자기와 다른 것들에 대한 애정을 간직하고 있다는 것을 이 곳 이스탄불에서 다시 한 번 깨닫게 됩니다.

다만 이러한 내면의 애정이 관용과 화해로 개화될 수 없었던 까닭은

지금까지의 인류사가 달려온 험난한 도정(道程)때문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타인에 대한 이해는 물론 자기 자신에 대한 깊은 성찰도 없이 가파른 도정을 숨가쁘게 달려왔었기 때문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어떠한 목표였건 그것은 나중의 문제입니다.

 

블루 모스크에서 나는 우리들의 내면에 잠재되어 있는 관용을 웅장한 오케스트라로 만날 수 있었습니다.

288개의 창문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빛줄기가 99가지의 청색으로 장식된 공간속에서 현란한 빛의 향연을 연출합니다.

이것이 곧 이스탄불이 자부하는 과거와 현재, 동과 서의 거대한 합창이었습니다.

이 현란한 빛의 향연과 거대한 합창은 그 속에 서 있는 나 자신을 풍선처럼 커지게 하는 것 같았습니다.

자기와 정 반대편에 서 있었던 사람을 사랑하기로 결심한 한 유학생의 감동적인 변화도

바로 이스탄불이 품고 있는 관용이 피워낸 한 송이 꽃인지도 모릅니다.

 

당신이 이스탄불로 나를 부른 까닭을 이제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당신이 보여준 것은 이스탄불이 안고 있는 다양한 문화의 공존이었습니다.

그것은 세계화라는 강자의 논리를 역조명할 수 있는 귀중한 시각을 제공해 주고 있음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시종 내가 바라본 것은 나의 의식 속에 자리잡고 있는 거대한 2개의 장벽이었습니다.

장벽은 단지 장벽의 건너편을 바라보지 못하게 할 뿐 아니라

우리들 스스로를 한없이 왜소하게 만드는 굴레입니다.

우리는 우리들이 의식 속에 얼마나 많은 장벽을 샇아놓고 있는가를 먼저 반성하여야 하며

이러한 반성에서부터 스스로를 열어가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신영복 저, 『더불어 숲』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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