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사는 이야기

즐거운 묘지 , 루마니아의 사푼차 마을

프리 김앤리 2011. 11. 4. 11:00

 

전에 있던 학교의 교장선생님 모친이 돌아가셔서 장례식장엘 다녀왔다.  

어느 시점에서부턴가  자주 있는 일상의 한 모습이다.

한번도 뵌적 없는 돌아가신 분에 대한 예의는 그저 무심하게 지나가고

오히려 그런 자리의 의미는 살아있는 사람들을 오랜만에 만나게 해주는 것이 되버리기도 한다.  

이 교장선생님은 내가 가장 존경하는 선생님이다.

전교조 해직교사였고, 우리학교의 평교사였고, 내가 학교를 그만두는 그 해까지는 우리학교의 교감선생님이었다.

하필 아침 출근 차림이 빨간 쟈켓에 이집트 아스완시장에서 산 붉은 머플러다.

내 차림보다 상가 방문이 더 중요했고, 큰 일을 치르고 계시는 선생님을 찾아뵙는 게 더 소중했다.

집에까지 가서 검은 옷 정장으로 갈아입을 새도 없이 그냥 장례식장에 들어섰다.

사모님을 먼저 뵙는다.

오랫동안 앓아오신 시어머님이셨지만 눈은 이미 부어있었고  그위에 다시 눈물이 그렁그렁거린다. 

덥썩 안아버렸다.

그리고... 잠시의 침묵...

" 죄송합니다. 너무 급하게 오느라 이런 차림으로 왔습니다. 결례라는 걸 알면서도..."

" 괜찮아, 천국가는 일은 좋은 일이니 좋은 일에는 밝은 색깔의 옷도 좋은 거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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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마니아 서북부 마라무레쉬(Maramureş) 지방의 서픈짜(Săpânţa) 마을을 가면 즐거운 묘지(Merry cemetry)라는 게 있다.

이 곳 사람들은 죽음이 슬픈 끝이 아니라 신을 만나는 기회이며, 더 나은 삶으로 가는 길이며  영원한 휴식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죽음은 자연적인 현상이고 나이든 사람들은 죽음을 초연히 기다린다고 한다.

물론 이러한 사상적 배경에는 루마니아 사람들이 믿는 정교회와 관련이 깊다.

 

그래서 이들이 꾸며놓은 묘지는 화사하고 즐겁다.

“모두들 저를 봐 주세요. 저는 이 세상을 즐겁게 잘 살다 갑니다.

 왜냐하면 저는 저의 형제들과 놀기를 좋아했기 때문이죠.

 그들은 노래하고 나는 춤을 춥니다. 우리는 모두를 기쁘게 하였죠.

 내가 결혼을 하려고 할때 죽음이 나를 찾아왔고 나의 삶을 거두어갔죠.

 사랑하는 부모님. 저의 형제들로부터 위안을 받으세요.

 이제 작별을 고합니다.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동안 저를 잊지 말아주세요.”

묘지 한쪽에 자리잡은 한 청년의 묘비에 새겨진 글이다.

6백여개의 묘비가 있는 즐거운 묘지에는 각양각색의 무늬를 새겨넣고 

'죽은이의 말'로 자신의 삶을 1인칭 화법으로 새겨넣었다.


물론 마냥 즐거운 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불치병으로 사망한 한 가정주부의 비문은 가족들에 대한 걱정으로 가득하다.

 “ 내 이야기 좀 들어보시오.

   나는 나쁜 병이 들었는데 나를 돌보던 의사는 나를 치료할 수 없었다오.

   불쌍한 나의 삶은 얼음처럼 녹아만 갔소.
   불쌍한 내 딸은 엄마를 잃어버린 비탄에 쌓여 있고, 나의 사위도 슬픔에 젖어 있다오.

   나는 51세의 나이로 이 세상을 떠난다오. 1987년 사망하다.”

 

아주 슬픈 아기의 묘도 있다.

  “나는 시비우시에서 온 그 택시를 증오한다.

   이렇게 넓은 나라에 어디 차 세울 곳이 없어서 우리집 대문 앞에까지 와서 나를 차로 받다니.

   어린아이를 잃은 나의 부모의 슬픔은 비교할 것이 없을 정도로 크다.

   나의 가족들은 그들이 살아 있는 그날까지 나를 위해 애도할 것이다.

   1978년 두살의 나이로 죽다.”

 

즐거운 묘비에는 갖가지 그림들도 그려져 있다.

살아생전 이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그림 한장으로도 설명하는 것이다.

마차를 탄 모습, 다정한 여인의 모습 등 다양한 그림들은 죽은 이의 평생의 활동 또는 그의 사망 원인이다.

그림의 색깔도 중요하다.

녹색은 삶을, 노란묘색은 풍요로움을, 붉은색은 열정을, 검은색은 죽음을 각각 상징한다.

그림 위에 위치한 비둘기가 흰 색이면 정상적인 죽음을 검은색이면 비극적인 끝을 상징한다.

 

삶과 죽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들.

죽은 이들이 덤덤하게 풀어놓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즐거운 이야기로 만들어 놓은 곳.

죽은 이들에게는 영원한 휴식을 기도하고

살아있는 사람들에게는 죽은이들과 함께 한 추억을 새기게 만드는 곳.

루마니아 어느 먼 마을의 이야기가 종일 생각나는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