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지금은 여행중 /11월 일본

엄마 나라의 문화를 배워라 - 일본 여행 7

프리 김앤리 2011. 12. 1. 22:00

 

<일본 다문화공생센터를 찾아서>

어쩌면 이번 이야기는 재미없을지도 모른다. 딱딱할 수도 있다. 

사진조차 화려한 것도 없고, 하다못해 감성적인 장면도 없다.

그저 강의실 안에서 프로젝션 화면을 걸어놓고 통역 붙여 사무적인 이야기만 주고받은 밋밋한 시간들.

그러나 일본에서의 며칠동안 내게는 가장 의미있고 감동적인 시간이었다. 

 

하기야 나는 이번 여행을 중간에서 다리만 놓았을 뿐, 사실 여행자도 아니고 인솔자도 아니었다.

여행을 나온 구미 다문화가족센터의 사람들의 입장에서 나는 한낱 가이드이고

일본 다문화센터에서 본다면 나는 버스나 대여하고 길을 찾아주는 한낱 한국인 가이드여야 했다.

더구나 우리 사무실의 베테랑 대장의 입장에서 보면 나는 또 그저 시다바리 밖에 안되는 정말 어정쩡한 참가자였다.

그냥 괜찮은 여행이 어떤 것인가에 대한 입장을 가지고 있다지만, 그런 건 사람들이 별로 쳐주지 않는 거고 또 이해가 안되는 범주이기도 하다.

 

일반적인 상식으로 하자면 나는 이 사람들을 이 곳까지 소개시켜놓고 서로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러나 나는 한국내의 정치 사회 현실에도 무척 관심이 많은 사람이고

외국의 역사나 정치, 사회 그리고 사람사는 모습에 아주 관심이 많은 호기심 덩어리의 인간이다.

직분을 잊어먹은 건지, 아님 애초부터 내 삶의 직분은 이러한 것이었는지 나는 여행을 나와서도 결국 그 사회의 이방인들에 대해 관심이 갔다.

덕분에 강의(?) 시간 내내 노트에 필기까지 해가며 열심히 듣는 착한 학생이 바로 나였다.

 

우선 구미 다문화가족센터 소장님의 단체소개 시간.

일본 다문화 단체에서 일하시는 분, glocal net 관계자, 일본에서 이주 한국인으로 살고 계시는 목사님, 일본 다문화문제를 연구하는 교수님,

그리고 구미 센터 사람들이다.

 

우리나라에는 현재 21만명의 외국인들이 들어와서 일하고 있단다.

(정확한 수치는 틀릴 수 있다.

 무슨 통계를 물어도 컴퓨터처럼 척척 말하는 구미 센터 소장님의 대단한 실력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열심히 강의노트를 만들었는데 학생이 띠딤하여 다른 숫자를 적어 놓았을런지 모른다는 내 실력에 대한 불안감 때문이다. )

그 중에 4만명이 우리나라 국적을 취득하였다.

2010년부터는 우리나라에서도 이중 국적 취득을 인정하여 사회통합을 위한 인식 개선 사업을 벌이고 있다.

 

나는 우리나라에 들어와있는 외국인의 문제는 주로 외국인 노동자에 관한 것만 알고 있었다.

물론 각국 대사관 직원이나 그 자녀, 혹은 외국계 회사의 직원과 그 자녀들처럼 안정된 직장에 신분이 보장되어 있는

사람들은 애시당초 나의 관심거리가 아니었다.

'불법' '임금체불' '산업재해' ' 추방' ' 비인격적 대우' 따위의 단어가 항상  따라다니는 외국인 노동자만 알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구미 다문화가족센터의 주된 관심은 노동자의 문제보다는 한국인 남성과 결혼해서 한국으로 오게된  결혼 이주여성에 관한 것이었다.

 

구미다문화센터가 하고 있는 일은 엄청났다.

결혼 이주 여성을 위한 한국어 교육, 직업 교육, 다문화 자녀들을 위한 엄마나라 언어 교육, 남편들을 대상으로 하는 아내 나라 문화 이해하기 등등...

당신들이 한국으로 살러 왔으니 무조건 한국것을 배워야 한다는 오만하고 건방진 교육이 아니라

그들이 살아온 삶 자체를 이해하고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 잘 어울려 살아갈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는 것이 초점이었다.

센터에서 일을 하는 실무자도 있고 방문 지도사가 있어 각 가정으로 까지 찾아가서 한국어 교육도 하고 가족 상담도 한다.

그래도 한국인의 감성으로 상담하는데는 한계가 있어서 선배 이주여성을 통번역사로 고용하여 

후배 이주여성들을 상담하고 있는데 상당히 효과적이다. (이 정책은 우리나라  전체에서 시행하고 있는데 현재 200여명 정도가 활동중이다.)

 

그러나 여전히 한국인 남편이나 시어머니들이 가부장적인 경우가 많아  베트남이나 필리핀 등 엄마 나라 언어를 배우는데는 적극적이지 않다.

음식이나 그 나라에 대한 문화는 말할 것도 없고.

센터는 제법 많은 상금을 걸어놓고 다문화가족 자녀들에 대한 '이중언어 콘테스트' 같은 잔치를 벌여 자연스럽게 교육을 유도하고 있다.

세계가 하나로 되어 가는 시점, 어릴때부터 두가지 언어를 할 수 있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큰 장점이니 그걸 살리겠다는 것이다.

그 외에도 각 나라의 음식 자랑을 펼칠 수 있는 음식문화축제, 다문화축제등 다양한 행사를 통해

우리모두 같은 사회에 살고 있는 다양한 사람들이라는 인식을 키운다.

 

어찌나 달변인지, 아니 어찌나 많은 일을 하고 있는지

방문자는 우린데, 우리가 일본에 뭔가를 배우러 왔는데...일본 다문화 관계자들이 더 열심히 공부중이다.

완전 열공. 쉬지 않고 노트에 뭔가를 적고 있다.

하기야 이것 자체가 문화교류인 것을... 이게 여행인 것을...

 

일본내의 다문화 정책을 연구하고 있는 교수님의 설명 시간.

 

현재 일본 내의 다문화 가정 인구 수, 일본의 정책....

그런데 방금 구미 이야기를 들어서 그런지 아직 일본은 이 문제에 대해서 거의 걸음마 단계다.

( 결국 이 교류 이후, 교수님을 비롯해서 그 대학 총장 등 여러분들이 다음주에 구미 다문화센터를 방문하기로 했다.

  자기네들이 직접 구미를 방문해서 배워야 할 게 많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ㅋㅋ 일은 항상 이렇게 진행된다. 배우고 배우고 서로 배우고 그래서 만나고 만나고...)

 

전날 이미 우리는 일본내에서 한글 교육을 하고 있는 민족학교를 다녀온 터라

우리 민족의 말과 글을 지키면서 일본 내에서 조선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힘든 가를 알고 있었다.

거기서도 그랬다.

처음에는 모두들 조국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했었다고 했다.

그런데 3~40년이 지나면서 점점 더 일본에서 살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더많다고 했다.

그래서 그냥 고집스럽게 우리 말 교육만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일본 사회내에서 우리 민족의 자긍심을 지키면서 그 사회의 당당한 구성원이 되도록 하는 교육에 초점을 맞춘다고 했다.

물론 민족학교에 대한 일본 정부의 지원은 없다.

우리나라가 다문화 가족을 받아들이기 위해서 정부 차원에서 지원을 하고 있는 것과는 많이 다르다.

 

일본 분들의 강의에서도 마찬가지로 알 수 있었다.

일본 정부는 일본에 와서 살고 있는 다른 민족에 대해서 그저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어떠한 지원도 하지 않는단다.

그래서 외국인들은 일본인으로 동화되든지 아니면 자신들이 돈을 모아서라도 자기 나라의 말을 배우고 공부를 하고 있다고 했다.

 

예를 들면 일본에는 브라질, 페루 이민자들이 많은데

이들 중 90%는 다시 자기나라로 돌아간다고 생각하면서 살고 있단다.

그래서 200군데나 되는 브라질 학교에서는 일본말은 전혀 가르치지 않고 브라질 말만 배우고 있다.

물론 일본 정부에서 이민자 포용정책을 써서 도움을 준다면 상황이 달라질 수도 있다.

당신들이 어디 출신이건 마냥 일본 사람이 되라고 강요하지 않으면서 말이다.

불행하게도 일본 내의 브라질, 페루계 이민자들의 10%도 자기 나라로 되돌아 가지 않는다.

나머지 90%가 넘는 사람들은 대를 이어가며 여전히 일본에서 산다.

결국 일본말을 하지 못하고 일본 문화도 알지 못하는 브라질 학교 출신들은 일본 사회에 뿌리 내리지 못하고

더욱더 나락으로 빠져드는 하층민의 삶을 살아가고 있단다.

앞으로 몇십년이 더 지나면 사회적으로 어떤 문제점을 야기할런지는

인종차별 정책을 반대하던 아프리카 출신의  프랑스  파리  시위를 굳이 들먹이지 않아도 될 것이다.

 

중요한 말씀을 하신다.

아주 기억에 남는 한마디.

 '사회를 바꾸는 사람은 세 부류의 사람입니다. 젊은 사람, 바보같은 사람, 그리고 외부에서 온 사람."

 

구미 다문화센터에서 일하시는 분들도 돌아가며 인사를 한다.

이틀새에 정이 많이 들기도 들었지만 오늘 교류회를 가지면서 이분들이 얼마나 소중한 일들을 하고 있는지 새삼 깨달았다.

이주 여성이 있는 가정 상담 지도사, 한국어 교육, 센터 종사자 들이었다.

 

 

 

착한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 모두들 고운 얼굴이다.

...

 

 우리 시댁의 작은 아버지 집은 1970년대에 아르헨티나로 이민을 가셨다.

 작은 아버님은 이민가셔서 몇년 만에 돌아가시고 홀로 되신 작은 어머님이 딸 둘과 아들 하나를 이국땅에서 키우셨다.

 지구의 완전 반대편이어서 나는 이야기만 들었을 뿐, 결혼때도 보지 못했고  우리가 남미 여행을 떠났던 10년전에 한번 뵈었을 뿐이다.

 삼십년이 다 되어가는 세월동안 그 먼 타국땅으로 이민을 가서 아이들을 키우셨던 작은 어머님.

 심장이 좋지 않아 몇번의 수술도 받으셨다고 그랬고, 우리가 아르헨티나를 갔을 당시에는 한번 쓰러진 적이 있으셔서 말까지 어눌하셨다.

 다행이 건강상의 다른 문제는 없어  예전처럼 활발한 사회활동은 못하시지만  다른 일반 생활은 문제가 없어 보이셨다.

 십년도 더 지난 지금까지도 건강하시다는 소식이다.

 그런데 그 때 놀라웠던 사실 하나는 쓰러지고 나신 후 부터는 그토록 오랫동안 써왔던 스페인어를 거의 기억하지 못한다는 거였다. 

 까마득하게 잊어버렸다는 것이다.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는 언어는 머리의 가장 안쪽 구석을 차지하고 있던 우리말.  그것은 오롯이 기억하고 있었다.

 한국말만 할 수 있다고 했다. 스페인어를 썼다는 사실 조차도 가물가물하신단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다행한 것은 작은 어머님댁의 아들 딸 모두가 한국어에 아주 능숙하니 가족간의 대화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일본 다문화센터의 강의에서 가장 충격적인 말은 내 시댁의 작은 시어머님의 바로 그 이야기였다.

일본에서 살고 있는 이민 1세대들이 나이가 들면서 치매환자가 생기기 시작했는데

그들은 일본에 들어와서 배웠던 일본어는 그만 까마득하게 잊어버리고 우리 모국어로만 말을 하더란다.

자식들에게 한글을 가르친 사람은 그래도 자식과 대화가 가능했는데, 일본말만 알고 있는 자식들과는 말년에 대화도 안 통하더란다.

 

지금 베트남, 필리핀, 몽골등으로부터 이주해온 여성(혹은 남성)들의 자녀들에게 그들의 모국어를 가르치지 않는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미국으로 이민간 우리나라 동포들이 더이상 한국말을 쓰지 않고 영어만 쓴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