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지금은 여행중 /11월 일본

우리 말은 우리의 넋이다 - 일본 여행 4

프리 김앤리 2011. 11. 26. 06:00

 

1945년 일제 식민지였던 우리나라가 해방되었다.

당시 일본에서 살고 있던 조선인들을 앞다투어 고국으로 돌아가고 싶어했다.

일본 정부는 다음해 3월까지 기한을 정해놓고 이 기간동안 신청하는 자들에게만 한국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허락했다.

돌아간다고 해도 그동안 자신들의 재산을 다 가지고 가도록 허락하지 않았다.

일정 금액 이하로 제한했다. 주저앉은 사람도 많았다. 

강제 징용으로 끌려왔든, 공부를 하러 건너 왔든 아니면 다른 이유의 일본행이든  

이미 삶의 터전을 일본에서 꾸리고 있던 우리 동포들이었다.

일제의 수탈과 압박이 심했던 식민지 조선 땅에서 살지 못하고 만주로 일본으로 쫓겨가던 시절이었다.

삶의 터전을 한번 옮긴 사람들이 온갖 방해를 무릅쓰고 다시 집안을  통째로  고국 땅으로 옮기기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이내 조국에서는 남북간의 전쟁까지 터지고 불안한 정국의 연속이었다.

  

 "1945년 해방 후 한국으로 돌아가지 못한 재일 조선일들이 제일 처음 한 일은 우리말 교육이었다. 

  작은 국어강습소였지만  돈이 있는 사람은 돈을 보탰고 지식이 있는 사람은 지식을 보탰다."

 

우리 여행단을 마중 나온 동포 할아버지의 일성이었다.

이미 머리는 하얗게 샜고 건강은 좋아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목소리 만은 꼿꼿했고 눈빛은 형형했다.

재일동포 2세였지만 자신이 지금도 이렇게 한국말을 잘 할수 있는 것은 일본내 우리말을 가르치는 민족학교가 있었기 때문이라신다.  

  

학교를 방문했다.

유치원부터 초급학교, 중급학교, 고급학교까지 모든 학년이 다 있는 키타큐슈 지방에 유일하게 우리말 교육을 하는 학교다.

학교는 키타큐슈 오리온 구역에 있는데 옛날 이곳은 연못이었다고 한다. 

굳이 이 곳에 학교를 세운 것은 동서로 남북으로 연결되는 딱 중간 지점이었기 때문이란다.

식민지 피지배민족으로 억눌려 살았던 지난 시절, 돌아가고 싶어도 바다가 가로막혀 가지 못하던 이들이었기에

동서남북 어디로든 연결될 수 있는 지점을 선택했다는 사실이 더 절박하게 느껴진다.

학교가 설립될 당시에는 천정도 없고 유리도 없었다고, 초기에는 오전에는 공부 오후에는 학교를 만드는 노동이었단다.

 

구미 다문화가족센터의 센터장이 우리가 이 학교를 방문한 이유를 고급학교 교장선생님께 말하고 있다.

 

이곳에 다니는 아이들을 위해 구미다문화센터가 관리하는 빵공에서 종일 만든 쿠키 박스와 어린 아이들에게 전달해 줄 한글 동화책을 선물한다.

 

이 진지함.

 

교실을 둘러본다.

우리네 학교와 똑 같다.

다만 조는 아이들, 핸드폰을 가지고 노는 아이들이 보이지 않을 뿐...

게시판, 칠판, 모두 한글 뿐이다.

 

삼세대를 거쳐 오면서 이들의 기본 언어는 일본어다.

일본어가  훨씬 더 능숙하고 일본식 문화가 훨씬 더 익숙할 것이다.

해방이 되고 나서 금방은 해방된 조국에 돌아가지 못해도 곧 갈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단다.

그러나 내외 상황이 그렇지 못했다.

30년 40년 50년을 거치면서 동포 1세에서 2세, 3세로 거쳐가면서

이제는 한국으로 돌아간다는 생각보다는 '일본에서 살아간다'는 생각이 더 강해졌단다.

그러나 이들은 일본에서 살아도 민족교육을 받아서 떳떳한 한민족으로 살자라는 신념을 가진단다.

 

그래서 학교를 벗어나면 일본어를 쓰겠지만 학교 내에서는 우리말 쓰기를 철저하게 지킨다.

여기만이 오로지 여기서만이 우리말을 배우고 쓸 수 있으므로...

 

계단 하나하나에 붙여 놓았다.

우리말을 100% 쓰자.

가슴에 확! 꽂힌다.

" 우리 말은 우리 넋이다."

 

정말 묘한 기분이 든다.

우리나라에서는 영어 교육때문에 난린데...

어릴 때 부터 외국어 교육을 해야한다고 우리말도 제대로 모르는 애들을 영어 유치원에 보낸다, 영어 비디오를 본다, 집에서도 곳곳에 영어를 붙여놓고

영어를 일상화 한다고 난린데...

작년에 미국하고 캐나다를 여행하면서 만났던 몇몇 한국인 가정을 떠올린다.

미국에 와서 자꾸 한국말을 쓰면 영어가 안 는다고 말 잘 안되는 엄마 아빠까지 집에서조차도 다 영어를 쓰던 사람들,

중간에 잠깐 한국에 들어가서 몇달동안 있다가 올 동안 혹시 영어를 까먹을지 모른다고 불안해 하던 사람들,

결국에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은 유창한 영어로 말하고 엄마 아빠는 그 말을 못 알아듣고,

엄마 아빠가 말하는 한국말을 아이들은 무슨 말인지도 이해하지 못하는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상황을 내보이던 사람들...

영어가 무엇이길래 그들은 우리말을 쓰지도 못하게 하고 어물어물 거리고 있었으며

남의 땅에 이만큼 오랫동안 살고 있는 재일동포들은 이토록 눈물겹게 우리말을 지키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우리 말은 우리의 넋이다."

이게 답이겠지?

 

우리 말 속담이라고 써놓았는데 이를 문장 그대로는 바꿔 놓을 수는 있겠지만

여기에 함축되어 있는 그 알싸한 의미를 제대로 알 수 있을런지...

이런 건 생활 속에 은근히 녹아 있는 문화와 함께 그냥 느낄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럼에도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다.  멋진 사람들이다.  존경스러운 학교다.

 

중급학교 , 고급학교, 초급학교 다 돌아봤다.

세계 어느 곳에나 아이들은 참 밝다. 다들 예쁘다.

여긴 아주 꼬마야들이 있는 유치부...

 

아직 우리말에는 완전 서툴다.

우리 일행 중 일본말은 잘 하는 여선생님이 일본말로 물으니 재빨리 대답한다.

그래도 선생님은 계속 우리말을 쓰시고, 앙증맞은 도시락을 앞에 둔 점심시간에는 다같이 손을 모으고 노래를 부른다.

"맛있게 먹겠습니다. "

 

일본에서 나고 일본 문화가 더 익숙할지도 모르는 우리 아이들.

할머니 할아버지의 나라에서 온 우리말을 쓰는 방문객들에게 미소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