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지금은 여행중 /11월 일본

느끼 절정의 라멘, 재떨이에 부어주는 정종 -일본 여행 3

프리 김앤리 2011. 11. 25. 06:00

ㅋㅋㅋㅋ

우선 웃고 시작해야 한다.

 

스무명도 넘는 사람들을 인솔해야 하는 일본 여행이다.

아니다.  일반적으로 패키지 여행에 익숙한 사람들은 '인솔자'(우리 표현으로는 자칭 '대장'이다.)라고 하지 않는다.

대신 '가이드'라는 말을 쓴다.

적어도 외국여행의 가이드가 되려면 그 나라 언어 정도에는 능숙하고

먹거리, 쇼핑할 거리, 그 나라의 풍습 등을 빠삭하게 꾀고 있다고 믿는다.

그런데 '배낭여행' 인솔에 익숙한 대장은 외국어에도 어눌하고 쇼핑에는 완전 젬병이다.

(우리 사무실의 베테랑이 이번 여행의 인솔대장이었다. 나는 거기의 시다바리~~)

그나마 영어권이라면 어찌 스리슬쩍 씨부려 볼 수라도 있지만 일본어라고는 고작 '아리가도 고자이마스' 에서 멈추는 수준이다.

다행이 함께 여행온 분 중에 일본에서 몇년을 살았던 여선생님(성이 여씨였다.)이 계셔서 완전 "감사합니다 ~~♪♪"였다.

어느 곳을 여행할 건지, 어떤 마음으로 여행을 해야하는지, 무엇을 함께 느낄 것인지만 고심하고 있는 대장, 

지금까지와는 사뭇 다른 우리같은 어리버리한 대장을 따라 나선 저녁길.

딱히 정해져 있는 식당도 없으니 이건 다함께 기웃거리는 배낭여행이다.

남의 나라까지 왔는데 해가 저문 어두운 거리에 비가 실실 내린다.

국물이 있는 따뜻한 저녁을 먹고 싶다.

어디를 갈꺼이나???

 

  

오홋!!! 겉에서 보니 제법 깔삼하다.

뭔가 내공이 묻어나는 듯한 허름한 식당. 비오는 날의 대포집 같은 분위기 아주 그럴싸한 식당이다.

삐걱거리는 나무문을 옆으로 밀고  들어선다.

한국을 떠나올때 부터 일본 라멘 집은 잘못 들어가면 완전 느끼하다고  쪼다될지 모른다고 몇번씩이나 서로들 말했었는데...

뭔가 욱~ 하는 비릿함이 들어서면서부터 코를 찔렀는데...

무엇에 씌였는지 신발까지 벗고 구석  테이블에 올라앉았다.

헐!!!

메뉴판을 가지고 왔는데, 알수가 있어야지.

말이 통하기를 하나, 글자를 읽을 수 있기를 하나?

뭔 놈의 라멘 종류가 이리도 많은 것인지...

뭔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고 얼핏 생각은 했지만 이미 주저 앉아버린 무거운 엉덩이들.

까이꺼 한끼 정도 아무거나 먹는다고 우째되겠냐, 손짓 발짓도 안통하고 하여튼 위에서 두개, 손가락으로 쿡쿡 찍어 주문한다.

 

헐~~

냄새만으로도 벌써 느끼한 찐한 국물의 라멘이 들어온다.

이노무 자식들! 니끼하면 면발이라도 쫄깃할 것이지 삶다가 말은 것이여 뭐여?

수육 삶은 원액같은 찐한 국물에 기름이 덕지덕지 붙은 삼겹살은 왜 또 넣은 것이여?

기름이 둥둥 떠다닌다.

게다가 짜기는 왜이리 짠 것이여?

 

그래도 누구를 원망할 것인가?

그럴싸한 겉모습에 취해 그냥 우루루 들어온 것을.

괜시리 시켜놓은 라멘에 젓가락만 담그고 휘휘 젓고 입으로 한번 가져가고 슬쩍 국물 맛도 보고...

그래도 욱~~~ 느끼 절정이다.

테이블 위에 있는 생강, 마늘을 통째로 씹어 먹는다.

생마늘을 통째로 우걱우걱 씹으며 "아, 이렇게 먹으니까 좀 낫잖아요!! "  서로를 위로하며 우당탕 웃는다.

붉은 생강을 한웅큼씩 입에 넣으며 향긋한 생강 향기로 입을 헹군다.

 

음식 천국 일본에 와서 무신 고생이람, 누가 이 집에 내공이 보인다 그랬어? 들어올때 냄새로 이미 알아차려야 했어...

뭔가 들어가는 입이 아니라  말하니라고, 웃니라고 입이 더 바쁘다.

그런데 이건 또 웬일?

거리를 헤매던 다른 팀 너댓명 역시 삐걱거리는  나무문을 밀고 들어선다.

"오지마 !!! 오지마!!!"

"나가!!! 나가!!!"

이랏샤이마세! 주인은 넙죽 인사와 큰 소리로 손님을 맞는데 우리는 사래질을 친다.

"나가!! 나가!!!" 자리에도 못앉게하고 쫓아내버린다.

저치들도 분명, 겉 모습에 반했을것이야.

ㅋㅎㅎㅎㅎ

 

결국 몇 젓가락 못 먹고 손을 놓는데 그제서야 옆에 있던 마늘다지기를 발견한다.

오잉?

마늘을 통째로 씹어먹는게 아니었어?

이걸로 빻아 넣어야 하는 거였어?

있는 힘을 다해 마늘을 빻아넣고 다시금 국물 맛을 본다.

좀 낫다. 아니 훨 낫다.

그렇지만 이미 마음은 떠난 상태.

들어올때나 마찬가지로 주린 배를 안고 밖을 나선다. 입만 베린 채.

 

원쑤를 갚아야 하지 않겠어요?

이리 굶고 그냥 들어갈 수는 없잖아요?

이번엔 안전빵으로 진열되어 있는 음식을 검열하고 음식 그림까지 확인하고 다른 집으로 들어섰다.

 

우동, 모밀 정식, 튀김 정식...무난한 음식을 시킨다.

그림이 있으니까 적어도 실패는 없다. 아까처럼 배를 주리지는 않을거다.

ㅋㅋㅋㅋ

 

"그래도 일본에 왔는데 일본 정종이라도 한잔 해야 되지 않을까요?"

"사케 이찌 꼬뿌!! 아니 니 꼬뿌!!"

급하니까 일본어가 툭툭 튀어나온다.

생존 일본어다.

 

찬 정종이 사실은 더 좋은 거라고 우리 대장님이 한말씀 거드시길래 찰 한(寒)자만 보고 시켰는데

그런데 오잉?

주먹만한 유리잔까지는 좋았는데 재떨이도 두개 가지고 온다.

" 노 노! 담배 노! 노!"

이건 또 무슨  황당 시츄에이션?

재떨이 위에 유리잔을 놓고 넘치도록 술을 따라준다.

이거 위에 것만 먹어야 하는 것이여? 아니면 재떨이로 넘친 것까지 다 마셔야 하는 것이여?

이 동네 사람들은 찬 정종을 재떨이에 부어 마시는겨??

 

에라이 모르겄다.

따라 주는 술을 거부할 수는 없는 법. 재떨이를 덜렁 들어 쓰윽 마신다.

 

느끼 절정의 라멘도 모자라서 재떨이 정종까지...

찐한 국물로 껄껄해진 목을 타고 쌉싸름 시원한 술이 흘러 들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