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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마니아 불가리아 여행 후기 1> 여행 길에서 만난 우리 일곱

프리 김앤리 2014. 3. 13. 16:20

까마득하다.

중세마을 시기쇼아라를 갔다 온 지가 언제 였는지, 끝도 없이 펼쳐진 옥수수밭, 해바라기 밭의 불가리아를 여행했던 게 언제 였는지...

그 때 함께 여행했던 순냄 선생님이 우리 여행사 홈페이지에 올린 후기를 옮긴다.

그는 물론 작년 여름이 끝나는 어느 무렵에 여행후기를 올렸다. 다만 내가 늦었을 뿐이다.

순냄쌤은 같은 학교에 근무했던 동료교사다.

학교에 있을 때는 작은 일로 쿵닥거리기도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순전히 참교육에 대한 욕심 때문이었던 것 같다.

곧아서 너무 곧아서 때로는 부서질지 모른다는 생각까지 드는 선생님.

내 학교 생활을 돌아보면 결코 잊을 수 없는 선생님이다.

고맙게 함께 여행도 해주시고 이렇게 글도 남겨주셨다.

감사, 감사...

 

순냄쌤이 쓴  여행후기 바로 보러 가기  ☞ http://tourya.com/2013/bbs.html?mc=V05&bc_id=15542

 

 

 

                        비워질 때에만 나는 마주치는 타자를 내 마음 속에 담을 수 있는 법이다.

                         내 마음의 피리는 오직 그 경우에만 아름다운 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장자, 차이를 횡단하는 즐거운 모험242, 강신주

 

                                              부체지산 평원 

 

카르파티아 산맥의 절경, 루마니아 부체지산(Muntii Bucegi, 최고봉 2514M) 고원을 걷습니다.

사방을 둘러봐도 사람은 보이지 않고, 지나는 구름이 간간이 햇빛을 가려 시원함을 더해 줄 뿐입니다.

한 바탕 울어볼 만한, 혹은 모든 걸 내려놓을 만한 장소입니다.

내 주변을 둘러싼 복잡한 삶의 실타래, 내 이름 앞뒤에 붙었던 수많은 관형어, 가족과 직장과 또 다른 묶음 속에서 내가 짐 져야 했던

그 모든 것을 여기 내려놓으면 저 구름 따라 흩어져서 새파란 하늘만 남을 것 같습니다.

그리하여 나는 온전히 비워져서 새로운 소리로 노래할 수도 있을 것만 같습니다.

부체지는 그런 산입니다.

 함께 걷는 이들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노래를 흥얼거리고, 깔깔거리며, 껑충껑충 춤을 추기도 합니다.

나는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즐거움으로 피로를 잊습니다.

내리쬐는 햇볕의 따가움보다 지나는 바람과 구름이 만드는 그늘이 더 좋습니다.

풀 뜯는 양떼를 보면서 우리는 빵 한 조각과 물 한 모금으로 점심을 가름하고 바람을 마주하여 노래도 부릅니다.

그러는 동안 산정에 핀 꽃에서 벌이 꿀을 따고, 그 벌을 중매쟁이 삼아 풀꽃은 사랑을 이루었으리라 짐작하여 봅니다.

 

                                                                                      부다페스트를 흐르는 다뉴브



나와 함께 걷는 이들은 일곱 명입니다.

모두가 개성 가득한 이들로 이번 여행의 가장 값진 수확입니다.

이들에 대하여 사전에 알게 된 정보는 없습니다.

교사 4, 교수 1, 부동산 중개인 1, 여행사 직원 1, 이것이 내가 출발 전에 알게 된 모든 것이지요.

사전 모임도 없었고, 카톡으로 주고받는 메시지가 있었으나 나는 제대로 챙겨보질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참 좋습니다.

 나는 그 어떤 선입관도 없이 그들을 만날 수 있었으니까요.

그 어떤 기대치 없이 그들을 보게 되었으므로 보이는 대로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 중 어느 누구도 허투루 사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 교수는 여행 가방에 책을 10권이나 챙겨왔습니다.

 비행기를 타는 동안, 차를 기다리는 동안 그는 언제나 책을 봅니다. 그렇다고 대화 상황에서 벗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전체의 이야기 흐름을 놓치지 않으면서 틈새를 버리지 않습니다.

그가 읽은 책을 살펴보니 곳곳에 책 내용에 대한 평가와 의견을 메모한 흔적이 있습니다. 대충 읽지 않았다는 증거이지요.

그는 우리 사회의 병리적 현상을 정확히 꿰뚫고 있습니다. 그 해법도 명쾌하지요.

로스쿨에서 법학을 강의하는 그는 다른 학문 분야에도 관심이 많습니다. 그리고 그는 언제나 긍정적인 평가를 내립니다.

우리가 경험한 어떤 것에서도 그는 언제나 좋은데요, 오히려 잘 되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나는 그와 주로 문학 이야기를 많이 하였습니다. 아마도 그가 나의 전공을 배려한 탓이겠지요.

나는 아는 바가 깊지 않아 늘 미안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언제나 상대방의 입장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나보다 더 젊지만 세상과 사람을 보는 깊이와 따뜻함, 시간을 지배하는 능력은 배우고 싶습니다. 

 

                                                                                              시기쇼아라 마을 골목길
 

 ○○ 선생님을 보면 전봉건의 피아노란 시가 떠오릅니다.

 

    피아노에 앉은/ 여자의 두 손에서는

    끊임없이 / 열 마리씩

    스무 마리씩 / 신선한 물고기가

    튀는 빛의 꼬리를 물고 / 쏟아진다.

 

생기와 신선함이 묻어납니다. 언제나 정확한 판단과 정리로 우리를 이끕니다.

우리 대장은 언제나 박 선생하고만 얘기한다고 구성원의 장난기 있는 원성이 있기도 했습니다.

그의 말 속에는 학교 아이들에 대한 사랑도 묻어나고, 현실의 벽을 아는 선생이 가지는 안타까움도 있습니다.

국경을 넘을 때마다 달라지는 환율에도 그의 계산은 언제나 정확하고 신속합니다.

우리가 유로로 계산하고 다시 원화로 바꿔 이해하려고 애쓸 때 그는 얼마씩 내면 돼요.’ 하고 정리하곤 합니다.

길을 찾는 데도 뛰어나 언제나 우리를 압도지요. 나도 지도 보는 데 자신이 있었지만 다툴만한 재주는 아니었습니다.

신선, 발랄, 정확, 명랑, 이런 말 아닌 것으로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없습니다.

 

 


                                                                                                                                                                                                                                                                                             마을 어귀에서 본 시기쇼아라

○○ 선생님, 생각하니 웃음이 절로 납니다.

이번 여행 나서기 전에 어지간히도 바쁘셨는지, 여행 중에도 학교 일로 전화 주고받는 것이 보였습니다.

눈 맞아서 휘어질 뿐 푸르름을 잃지 않는 이라 하면 날 두고 욕하실까. 좌중을 웃게 하는 재주를 타고나셨습니다.

긴 비행시간 동안에 많은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학교에서 교사로 사는 일과 아내로서 혹은 며느리로서 삶에 대해서도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우리들은 대체로 누구의 아내로 남편으로 살지 않는가요? 살아온 경험을 바탕으로 내리는 결론에는 넘침이 없습니다.

연륜이 가져다 준 지혜가 아닐까요?

그런 진중함 뒤에 감춰진, 참지 못하는 쾌활함은 어떻게 가능할까요?

케이블카를 기다리는 긴 시간이 즐거웠던 것은 박 선생님 덕분입니다.

 

                                       시기쇼아라  마을  축제에서  만난  모녀 

 

안○○ 소장님, 내 사진기의 전속 모델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내가 찍은 5,000장의 20%는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따져보진 안 했지만 여행지 시작과 끝 부분의 사진은 안 소장님 사진이지 싶어요.

장난기 많고 언제나 활기 넘치지만 멀미엔 그저 다소곳한 소녀입니다.

그래도 크게 드러내지 않고 참으며 전체 분위기를 해치지 않으려는 배려 많은 사람입니다.

, 게다가 자신의 전공 분야가 나오면 무서워집니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닙니다.

언제나 타당한 근거와 사례가 제시되지요.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합니다. 안 소장님께 부동산을 추천받으면 망할 일은 없겠지 싶습니다.

인정이 넘쳐서 자신의 옷가지를 주면서 추위를 가리라 더위를 식히라 하십니다.

진영에 오면 소갈비를 사겠다고 하신 말씀을 여기에 명문화합니다.

굳이 지나는 길이 아니라도 일부러 찾아가는 것도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루마니아  인민 궁전에서 본  부쿠레스티  시가


 

 ○○ 선생님, 우리들 중 가장 어른다운 분이셨지 싶습니다.

우리들이 나이 잊고 까불며 노는 것도 웃으며 받으시고, 구성원 모두의 장점만 보시는 데는 많이 놀랐습니다.

그리고 전체 일정을 더디게 할세라 힘든 여정도 개의치 않으시고 함께 하셨지요.

부체지산을 내려오는 어려움에도 걱정할까 우리를 먼저 보내는 분이셨지요.

연륜만큼 지혜도 가득하여, 나는 대화중에 자주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김 선생님과 함께 한 것은 이번 여행에서 느끼는 보람중 하나입니다.

여행은 이렇게 나를 비우고 받아들이게 해 준 것인데, 김 선생님은 벌써 당신을 드러내지 않고 다른 사람의 얘기를 듣고 웃어주는,

그리고 북돋우기까지 하는 아량 넓은 분이시니.

그리고, 제가 김 선생님 사진을 많이 못 찍은 것은 연세 많으셔서가 아니랍니다.

사진을 찍을라치면 그래도 자세를 취해야 하는데 이래라 저래라 말하기 송구하여 그랬답니다.

그래도 찍을 때는 최선을 다했답니다.

 

 


                                                                                                                                                                        릴라 수도원 가는 길

 

그리고 우리 대장 김○○ 선생님,

유일하게 선경험이 있는 분이시지요.  여행 길나장이로서가 아니고 교사로서. 현직에 계실 때.

김 선생님이 일을 시작하면 언제나 성공이었고 화제가 되었지요.

학교 신문을 만드는 일, 수능 후 프로그램으로 학교가 텔레비전에 소개된 일, 생물을 잘 가르쳐서 인기 있었던 일 등등으로 말할 것이 매우 많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만두셨지요. 아마도 박수칠 때 떠나라.’를 실천하려 하신 것처럼.

내가 이 여행을 함께 한 것은 대장님 덕분입니다.

교직 생활 20년을 채우고 21년을 시작하는 해인데, 어느 해보다 심각하게 근본을 묻고 있었어요.

내가 하는 일이  바람직한  일인지혹은  나는  도대체 누구인지, 이리 저리 생각해 보아도 답이 나오지 않는 물음으로 가득했지요.

하여간 나는 그런  고민 속에  있을  때  대장님이  다른  일로  연락하셔서  이  여행이  시작되었습니다.

 

여행 시작을 함께하지 않은 대장은 밤이 깊은 부다페스트에 나타나셨습니다.

그 시간 이후로 그가 보여준 모습은 참으로 감동적이었지요.

그는 여행단을 이끄는 대장이라기보다 그저 일행 중 한 사람인 것처럼 행동하여 편안해서 좋습니다.

나에게는 소음처럼 들리는 영어를 어찌도 그리도 잘 알아듣는지(사실 듣는 것인지 그런 척 하는 것인지는 판단 불가함).

우리 여행은 차질 없이 진행되는 듯 했지요.

그런데 브라쇼브에 도착했을 때 예약한 숙소에서 방이 없다는 황당한 얘기를 듣게 됩니다.

우리는 멍했지만, 대장은 전혀 당황하지 않으셨지요.

그 호텔 직원에게 예약한 증명서를 보이며 으르고 달래며 다른 호텔을 알아보게 하는 데에서는 참 놀라웠습니다.

김 교수와 나는 다른 호텔을 묶게 되었지만 그래도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릴라 수도원으로 이동할 차량을 대절 비용을 절반으로 깎는 일도 있었습니다.

호텔에서 제공하는 차량을 이용하더라도 우리는 알 수도 없는 노릇인데 굳이 소피아 시내를 뒤져서 절반 값으로 갈 수 있는 교통편을 찾아내었지요.

그 덕분에 안 소장과 나와 김 교수는 한 시간 이상을 소피아 상 앞에서 기다렸지만, 돌아오는 대장님의 모습에서 믿음직스러움이 묻어났습니다.

누군가 농으로 그냥 그 값 받아서 좀 챙기시지.’ 했을 때, ‘그런 일을 하는 것이 우리 회사 해직 사유 1호입니다.’라고 단호하게 말씀하실 때는 감격스러웠습니다.

챙기지 않는 것은 마땅하다 하더라도 굳이 깎으려 애쓰지 않아도 될 것을 애써 깎는 모습은

여행 길잡이 역할을 일로 삼은 것이 아니라 그 자체를 즐거움으로 삼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벨리코 뚜르노브 근교 계곡에서 본 Academy Unity 소속 회원들

 

이렇게 해서 함께한 모두를 소개한 셈이네요. 개하고자 한 것이 아니라 나는 이번 여행 동안에 이런 사람을 만났다는 것이지요.

나는 이 사람들을 언제고 또 다른 여행 길에서 만나면 부둥켜 않을 수 있겠습니다. 나의 부족한 부분을 이들 모두가 채워 주어 즐거울 수 있었습니다.

선크림을 뿌려 주고, 손수건을 내어주고, 비타민을 권하고, 냉수를 건네고, 긴 옷을 넘겨주는 이들은 나의 화수분이었지요.

여행길이 아니어도 나는 이들을 나의 삶 어디에선가 만날 것이라 생각합니다.

나는 나의 삶의 한 부분을 이들과 함께 했습니다.

14일이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것은 14년 이상의 가치를 지니는 것입니다.

내가 그때처럼 마음을 열고 세상을 맞이한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내가 나를 내세우지 않았으므로 나는 내 눈에 보이고 들리는 모든 것들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짜레베츠 언덕 성에서 본 차르시

 

비행기에 오르면서 다시 읽기 시작한 강신주의 책은 참 좋은 책이었습니다.

그 책이 주는 가르침보다 그 책을 통해서 나를 보게 된 것이 커서 더욱 좋았습니다.

그리고 그 시간이 학교나 집이나 사무실이 아니라, 비행기 속이거나 낯선 이국땅 호텔이거나, 열차 안이었기 때문에 더 좋았습니다.

 

날이 좀 더 시원해지면 나는 이번 여행기를 제대로 적어볼 생각입니다.

열 두 시간을 달려도 끝나지 않는 루마니아의 옥수수와 해바라기, 시골 마을의 순박한 사람들, 브라쇼브의 아름다운 자연,

그 많던 수도원과 성당, 부다페스트의 비누와 길거리 카페에서 마시던 맥주, 그리고 함께한 분들의 웃음, 소피아 거리, 모스텔 호스텔 사람들의 친절함을 기억합니다.

스마트폰 메모지로 40쪽은 넉넉히 적었으니 나름대로 기억해내기는 어렵지 않을 듯합니다.

그리고 시기쇼아라 마을에서 만난 예쁜 소녀와 아름다운 부녀, 불가리아 벨리코 뚜르노브 근교 계곡에서 만난 그림 그리는 사람들의 사진도 전해야 합니다.

 

그리고 나는 더 신나게 살아가야 합니다.

다른 말들로 꾸민 사람이 아닌 그냥 나의 삶을 살아갈 것입니다.

가능한 내가 만나게 되는 사람들을 무엇을 하기 위한목적으로 좋고 나쁨을 가리지 않을 것입니다.

마땅히 나 스스로도 무엇인가를 하기 위한 욕심으로 마음을 채우지 않을 것입니다그래야 아름다운 소리를 낼 수 있으니까요.

다만, 나는 그 삶의 시간 속에 함께 하게 되는 사람들이 상처받지 않도록 하는 것은 내가 애써 지켜야 할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