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지금은 여행중 /6월 크로아티아

피지배와 전쟁의 그늘을 벗어나 이제야 비로소 - 크로아티아 역사

프리 김앤리 2014. 3. 18. 16:00

 

<2014 6월 투어야여행사 단체배낭 크로아티아 준비 1>

 

작년 어느 순간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크로아티아'라고 하면 체크 무늬의 축구 선수들을 떠올렸고, 고현정의 커피 광고를 떠올렸다.

크로아티아의 역사를 좀 안다고 하는 사람들은 유고내전을 이야기 했고, 불바다가 된 두브로브니크를 떠올렸다.

그런데 이제는 크로아티아라는 나라 앞 뒤로 '꽃보다 누나'가 꼭 따라다닌다.

섬섬옥수 꽃누나들이 다녔던 그 길을 알기 위해... 우리도 여기서 잠깐! 크로아티아의 역사를 살펴보자.

'남의 나라, 역사를 살펴본다'는 것이 역사책에 나와 있는 것 처럼 시대별로 혹은 왕조의 순으로 읽어내려가는 것 만큼 재미없는 일도 없다.

그래서 걍~ 내 식대로 한다.

앞뒤 양옆, 내가 관심 없는 부분은 다 자르고

여행 다니면서 필요했던 내용, 여행 다니면서 그곳의 어느 무엇과 관련이 있는 것 만으로 모아본다.

 

<크로아티아의 지정학적 위치>

지금의 크로아티아는 이탈리아와 아드리아해를 마주보고 있는 발칸 반도의

한 나라이다.  동쪽으로는 보스니아와 세르비아, 몬테네그로와 접해있고

북쪽으로는 슬로베니아, 헝가리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현재의 지도상으로 보면

슬로베니아의 윗쪽으로 그리 멀지 않은 위치에 오스트리아가 있다.

크로아티아라는 나라가 차지하고 있는 위치가 이 나라의 역사를 대강이라도

짐작하게 한다.

로마와 나란히 하고 있어 로마 번성시대에는 로마의 지배를 받았고,

어느 시점에는 훈족(헝가리), 또 어느 때는 슬라브 민족(러시아)의 침입을 받은

적도 있고 어느 시절에는 헝가리 왕국과 연합, 또 어느 시절에는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의 일부로 편입되기 했다.

오스만투르크(터키)의 번성시대에는 오스만의 침략도 받았으며

서양으로 진출하려는 오스만투르크에게 길을 내주기도 했다.

1차대전 이후에는 세르비아를 맹주로 하는 유고연방의 한 나라이기 한 이유가

모두 크로아티아라는 나라가 차지하고 있는 위치 때문인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걸 지정학적 위치라고들 하지... 우리나라도 그 지정학적 위치라는 것 때문에 대륙과 해양으로부터 침략을 많이 받은 나라라고들 하지 않는가?)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

크로아티아 지역이 로마의 침입을 받은 것은 BC 3세기 경이었고

이후 로마의 식민지가 되었다.

그 때는 물론 크로아티아라는 나라 이름도 없었다.

크로아티아가 로마의 식민지였다는 가장 중요한 유적이 스플릿에 있는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이다.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는 기독교를 박해한 황제로 유명했는데

AD 3세기 스플릿에 화려한 궁전을 짓고 나중에 은퇴하여 이 곳에서 그의 말년을

보냈다.  유럽 문명세계 전역을 지배하고 있던 로마의 황제가 은퇴 이후

여생을 보내는 곳으로 선택할 만큼 지금의 크로아티아 지역이 아름다운 곳이라는

이야기가 된다.

황제의 별장으로 지어진 스플릿의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은 중세를 지나면서

성당도 지어지고 도시의 형태를 갖추어서 지금은 크로아티아를 찾는 관광객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 곳이다.

스플릿 이외에도 풀라나 시베니크에서도 로마시대의 유적은 많이 발견된다.

 

 

 

<토미 슬라브 왕>

크로아티아라는 단어는 9세기쯤 등장한 것으로 보인다.

이전까지 프랑크 왕국과 동로마 제국의 지배를 받고 있는 이 지역은 크로아티아의

토미슬라브공이 흩어져 있던 주변을 통일시키고 크로아티아 왕국을 탄생시킨다.

910년~928년까지 왕위를 지켰는데 그의 시절 크로아티아가 기틀을 잡았고

그래서 이 나라 사람들은 토미슬라브를 크로아티아를 세운 왕으로 기리고 있다.

 

쟈그레브의 중앙역 앞으로 나 있는 너른 광장에는

말을 타고 있는 토미슬라브의 동상이 늠름하게 서있다.

 

 

 

 

 

 

 

<두브로브니크 공국>

13세기의 두브로브니크는 지중해와 발칸 지역을 잇는 무역의 중심지로 부상했다.

1205년에는인근 무역강국, 베네치아 공국의 지배하에 있었으나

1358년에 자치권을 회복하고 상업의 중심지로 부흥하며 한편으로는 예술과 과학,

문학이 번성하고, 작곡가, 시인, 철학자, 화가 들이 몰려들어 아드리아 해의

주요 문화의 중심지로 떠올랐다.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는 두브로브니크 시가지도 대부분 이 시기에 건설되었다고 보면 된다. 시가지가 설계되고 착공되었으며, 궁전을 짓고 성당을 지었으며

두브로브니크 공국 만의 독립과 자유를 위하여 성벽을 쌓아올렸다. 

아드리아해로부터 도시를 둘러싸고  있는 지금의 육중한 성벽은 15세기 동방으로부터 위협을 보이던 오스만투르크의 침략에 대비하여 증축한 것이다. 

아드리아 해 동쪽 해안 및 지중해 요충지로 항해 및 교역의 중심지가 된 두브르브니크는 15세기~16세기 전성기를 이루었다.

 

 

 1718년에 체결된 밧사로비츠 조약의 결과 달마티아의 거의 전역이 베네치아 공화국령이 되었지만, 베네치아 공화국과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보호국이었던 라구사(현재의 두브로브니크이며 당시에는 도시 국가 상태였음) 사이의 분쟁을 막기 위해, 네움은 영자간의 완충지대로서 오스만 투르크령이 되었다. 이때 확정된 국경선이 옛 유고슬라비아 연방 공화국의 복잡한 분쟁을 거치면서도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

 

 

 

 

<끊어진 국경>

스플릿에서 두브로브니크까지 아름다운 해안길, 아드리아해의 반짝거림으로 눈이 부시다. 그런데 꼬불꼬불한 해안길, 그곳에서 끊어진 국경을 만난다.

분명 크로아티아를 지나고 있는데 갑자기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땅을 한번 만난다.

네움(Neum)이라는 곳이다.

 

네움은 원래 라구사(두브로브니크 공국의 옛 이름) 공국의 땅이었는데 라구사는

1667년 베네치아 공국을 저지시키기 위해 보스니아(오스만투르크의 영역이었다)의 힘을 빌리면서 네움 지역을 넘겨주었다. 내륙을 통과하여 서방으로 진출하던 오스만 투르크에게 바닷길을 터 준 것이나 다름없었다. 대신에 라구사 공국(두브로브니크 공국)

은 베네치아를 견제하면서 자유무역을 할 수 있었던 것.

 

그 때 정해진 국경선은  이후 유고연방 시절을 거치면서도 그대로 인정되어

네움은 보스니아 땅. 지금처럼 웃긴 국경선이 되어버렸다.

 

 

 

 

 

 

 

 

<1차대전 그리고 유고연방>

1차대전 직전까지 오스트리아 - 헝가리 제국의 일부로 편입되었던 크로아티아는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이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하자 1918년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으로부터의 분리를 선언하고

세르비아 왕조를 중심으로 하는 '세르비아-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 왕국(Kingdom of Serbs, Croats and Slovenes)'을 결성했다.

남부 슬라브계 다민족국가인 세르비아-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 왕국은 1929년에는 유고슬라비아 왕국(Kingdom of Yugoslavia)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유고슬라비아 왕국은  티토 대통령을 중심으로 구 소련과는 다른 노선을 걷는 옛 유고슬라비아 연방을 결성하는데 크로아티아도 자치권을 가지는

유고 연방의 한 나라가 된다.

** 구 유고슬라비아 연방 :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세르비아, 코소보, 보스니아 & 헤르체고비나, 마케도니아, 몬테네그로

 

 

 

 

 

< 유고 내전>

동유럽의 가장 부유했던 유고슬라비아 연방은 유고연방은 1980년  티토대통령의 사망과 함께 분열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한다.

여러 나라의 강력한 결집처럼 보였지만 가톨릭, 무슬림, 유대교 등 여러 종교와 

수많은 민족들의 합의체였던 유고 연방은 언제든 다시 분열될 수 있는 화약고와

마찬가지였다.

 

결국 1980년대 말 사회주의 체제의 붕괴로 동유럽 공산정권이 차례로 몰락하자

유고연방도 해체 수순을 밟았다. 1991년, 크로아티아는 주민 투표를 통해 독립국라를 선언하였다. 그러나 연방을 유지하려던 세르비아(유고 연방의 맹주)는 강력하게

반대하였고 결국 연방 세력이 크로아티아에 폭탄을 퍼붓는 전쟁이 일어났다.

 

세르비아를 중심으로 한 연방군이 수개월 동안 두브로브니크에 폭격을 가해 도시가 불바다가 되자 프랑스 학술원장 장 도르메송이 "유럽 문명과 예술의 상징적 도시인 두브로브니크에 대한 폭격 하나 중지시키지 못한대서야 말이 되는가"라며

유럽의 지성들을 질타했고 이에 자극을 받은 전세계 지식인들이

두브로브니크 성벽 앞바다에 인간 사슬을 만들어서 도시의 많은 부분을

지켜냈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다.

 

 

 

 

 

 

 

 

 

 

 

 

 

 

 

 

 

 

<이제는 평화>

마침내 전쟁도 끝났다.

이웃 나라 보스니아의 내전에도 얽혀 수많은 희생을

냈던 크로아티아는 1995년 UN의 중재아래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전쟁을 종식시켰다.

마침내 독립국가, 크로아티아가 탄생한 것이다.

 

독립을 한지 단 몇년이 지난 1998년, 크로아티아는

단독 국가의 이름을 걸고 프랑스 월드컵에 참가,

3위라는 놀라운 성적을 내고 전 세계에 크로아티아를

알렸다.  

 

그리고 이제 크로아티아는  유럽 사람들이 가장 가고

싶어 하는 나라 1위,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천국으로 꼽히는 나라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