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지금은 여행중 /6월 크로아티아

콩닥콩닥... 기다리는 설레임, 두브로브니크

프리 김앤리 2014. 5. 12. 19:00

<2014 6월 투어야여행사 단체배낭 크로아티아 준비 9>

 

두브로브니크는 언제 생각해도 가슴이 떨린다.

두브로브니크라는 도시 이름을 처음 들어본 것은 책 이름을 통해서였다.

권삼윤씨의 책, 『두브로브니크는 그 날도 눈부셨다』.

벌써 몇 해전의 이야기다.

세계 여러 곳의 이야기로 '두브로브니크'는 그 책에서 한 꼭지 밖에 안됐지만

이미 '눈부시다'고 단정지어 놓은 제목 때문인지 두브로브니크는 생각만 해도 눈이 부시고 가슴이 설레었다.

그리고 떠난 크로아티아 여행.

과연 두브로브니크는 말 그대로 눈부셨다.

햇살도 찬란했고, 어두웠던 유고 내전의 아픔이 싹 씻어진 것 같아 더 환해 보였다.

만나기 전에도 눈부셨고, 정작 여행을 가서도 나는 내내 '눈부시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그리고 지난 2012년, 십여명과 같이 다시한번 찾아간 두브로브니크, 역시 아름다웠다.

'아드리아해의 보석'이니 '지상의 천국'이니 '유럽 사람들이 가장 여행하고 싶은 여행지 1위'라는 말이 그저 나온 말이 아니었다.

......

그리고 이번 유월, 다시 두브로브니크를 간다.

가슴이 콩닥콩닥거린다.

 

 

자~~~ 이제 우리가 갈 그 곳, 두브로브니크로 들어가자.  (클릭하면 사진이 커집니다.)

 

두브로브니크의 핵심은 아드리아 해를 맞대고 성벽으로 둘러싸인 올드타운이다.

붉은 지붕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는 오밀조밀한 지역, 올드타운.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는 이곳 올드타운은  높은 성벽으로 둘러 싸여 있다.

성벽의 밖은 바로 깊은 낭떠러지 절벽, 천혜의 요새다.

베네치아 공국과 해상무역으로 서로 경쟁했고

발칸 지역과 이탈리아 지역을 잇는 해상 중계무역으로 막대한 부를 형성하던 두브로브니크 공국이었다.

사실 올드타운은 성벽의 끝에서 끝까지,

구시가지를 직선 거리로 빠른 걸음으로 걷는다면 10분 정도 밖에 걸리지 않을 정도로 작다.

 

그러나 여행의 감동은 속도와 반비례하는 법.

'빨리 빨리'로 친다면 그저 지나쳐버릴 수 있는 것도

 천천히 느긋하게, 어느 장면에서 머무는 시간이 많으면 많을수록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지고 그 만큼 감동도 증가한다.

천천히 천천히 어슬렁 어슬렁 다녀보자.

 

 

 

                        

 

 

  

구시가지로 들어가는 서쪽 문은 필레 게이트(Pile Gate)이다. 동쪽 문은 플로체 게이트(Ploce Gate).

 

필레 게이트는 16세기에 지은 이중문으로 다리를 들어올려 외부의 침입을 차단할 수 있다.

문 위에는 두브로브니크의 수호 성인인 성 브라이세(St Braise)의 조각이 보인다.

블라호 성인이라고도 부른다.

전설에 따르면 972년 베네치아 군대가 두브로브니크를 정복하기 위해 그루즈와 로크룸에 닻을 내렸다.

성 스테판 성당의 스토이코 신부가 도시를 구원해 달라고 기도를 했고,

그때 블라호 성인이 무리를 이끌고 나타나 베네치아 군대의 전략을 알려주어 그들을 격퇴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조각의 한쪽 팔에는 지진이 일어나기 전의 두브로브니크 도시 모형을 들고 있다.

구시가지 안의 브라이세 성당에서도 이런 모습의 조각을 볼 수 있다. 

 

동문인 플로체 게이트에서는 두브로브니크 올드 타운의 항구를 바라볼 수 있다.

 

우리는 우선 필레게이트를 통과하여 구시가지로 들어가서~~~

(물론 스르지산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온다면 플로체 게이트로 들어오겠지... 그건 알 수 없는 일...

 여행의 일정이 다 짜여져 있다면 얼마나 재미가 없을까?)

 

제일 먼저 우리는 성벽위로 올라가 올드타운 한 바퀴를 돌아볼 예정이다.

반짝이는 아드리아해에서 불어오는 싱그런 바닷바람을 맞으면서

붉은 지붕 빽빽이 들어서있는 그림같은 장면을 만날 것이다.

그리고 두브로브니크 사람들의 살고 있는 모습까지 살짝 엿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한쪽으는 절벽의 해안을... 그리고 또 한 쪽으로는 두브로브니크 사람들의 삶을....

 

 

 

사진도 찍고, 눈부신 대리석 길도 만나고...  바다도 보는 성벽 걷기... 두어시간은 족히 걸릴 일이다.

 

성벽 돌기를 마치고 내려와서 구시가지에서 만날 수 있는 오노프리오 샘(Onofrio Fountain).

1438년 오노프리오 드 라 카바(Onofrio De La Cava)라는 사람이 만들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20Km나 떨어져 있는 스르지 산에서 물을 끌어와 이 곳의 사람들에게 식수를 공급해 주는 역할을 했다.

물이 솟아나는 구멍 하나하나마다 정교한 조각작품으로 되어 있는데

17세기의 큰 지진으로 일부는 파괴되었지만 기본은 끄떡하지 않고 여전히 이 광장을 지나는 사람들의 갈증을 풀어주고 있다.

 

   

샘의 수도꼭지에서는 지금도 마시는 물이 졸졸졸...

 

오노프리오스 분수 옆으로는 프란체스코 수도원이 있다.

입구의 문 위에는 죽은 그리스도를 안고 슬픔에 잠겨있는 성모 마리아의 조각, 피에타가 눈에 띈다.

사실 바티칸의 베드로 성당에서 만나는 피에타와 비교한다는 쨉도 안되는 허접한 조각상이기는 하지만...

 

이 수도원이 내게 의미를 준 것은 1391년 세계 최초로 일반인들에게 개방한 약국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옛날에는 수도원이 교육이나, 의료, 복지의 중심이었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나

14세기 당시의 일반인을 위한 약국이라... 혁명과도 같은 일이다.

이 약국은 지금도 여전히 영업을 하고 있다.

거기서도 피렌체의 오래된 약국에서처럼 고현정 수분크림을 살 수 있을까?

웬만한 크린싱 크림보다 더 좋다는 비누를 살 수 있을까?

같은 이탈리아 문화권이니까 가능할까???

ㅋㅋㅋ

지난 2012년 여행에서 이 약국의 저 수분 크림을 싹쓰리 했다는 전설~~~

선물을 받은 주변 친구들의 반응도 아주 좋았다는 사실~~~

저 때는 10유로를 조금 안했던 것 같은데... 지금은 모른다. 올랐을지.

요즘 한국 중년여인들이 크로아티아 여행으로 난리법석이라는데 물가가 당연히 올랐을테지???

 

프란체스코 수도원도 보고 오래된 약국까지 들렀다면 이제 그 유명한 플라차 대로로 나서게 된다.
고현정이 커피 광고를 찍은 바로 그 거리다.

 

오랜 세월 사람들의 발길에 닳아 대리석이 반짝거린다.

사실 이 거리는 성채를 쌓기 전에는 바닷물이 흐르는 운하였으나 성채 도시가 된 후에는 바다를 메워 만들어진 길이다.

두브로브니크는 두 차례의 강한 지진이 일어나고 나서 도시를 모두 대리석으로 지었다.

덕분에 후손들에게 이렇게 아름다운 길을 선물해 주고 있다.

그래서 두브로브니크의 또 다른 이름이 "돌이 마술을 부린 도시".

 

두브로브니크가 눈이 부신 이유는 아드리아해의 반짝거림도 있지만 플라차 대로의 반짝이는 대리석도 크게 한 몫을 한다.

다만 여행자들이 너무 많아 반짝거리는 대리석을 미처 볼 수가 없다는 것이 아쉬울 뿐.

그래서 지난 여행에서 우리는 새벽에 다시 한번 이 길을 왔다.

우리끼리 오롯이 대리석 길을 차지했던 그 가슴 벅참이란!!!

 

   

필레 게이트로 들어서 걸은 플라차 대로의 끝은 벨 타워다.

꼭대기에 종탑이 달려 있는 것을 보면 분명 어느 시간에는 종이 울릴 것인데... 나의 기억으로는 없다.

이번에는 들을 수 있을라나?

 

벨 타워 앞의 작은 광장, 루짜 광장 오른 쪽에서 작은 동상을 하나를 만난다. 

롤랑(Roland) 동상, 올란도 기사의 상이다.  롤랑의 이탈리아식 표기가 올란도.

 

롤랑은 8세기에 살았던 전설적인 기사다. 그는 샤르마뉴 대제 휘하의 군인으로 에스파냐를 정벌하고 돌아오는 길에 피레네 산맥에서 죽었는데

그의 이야기가 15세기 이곳 두브로브니크에 전해졌고, 그의 독립과 자유정신이 평가되어 1418년에 롤랑상이 세워지게 되었다.

그의 무용담은 영웅 서사시 <롤랑의 노래>에 잘 나타나 있다.


그는 왼손에 방패를 오른손에는 칼을 들고 있는데 이 칼이 바로 요정들이 만들었다는 명검 뒤랑달(Durendal)이다.

 

올란도 동상이 있는 돌기둥의 위에는 자유를 상징하는 축제 깃발이 걸려 있는데 1950년 7월 10일부터 매년 이곳에서 두브로브니크의 여름 축제의 시작을 알린다. 

자유를 향한 축제의 시작이라고 할까?

 

여기서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

칼을 들고 있는 롤랑의 오른쪽 팔꿈치는 두브로브니크의 팔꿈치라고 불리는데 51.1Cm의 길이로

두브로브니크 공화국 시절에는 이 것을 길이의 단위로 여겨 롤랑의 오른쪽 팔꿈치 길이를 1엘(ELL)이라고 했다나...

 

하여튼 유럽에서는 롤랑(올란도)가 영웅이긴 영웅인가 보다.

세계 여행중에 라트비아의 리가에서도 보았고, 독일의 브레멘에서도 보았던 동상이 이 곳 두브로브니크에도 있었다.

 

그리고 여기는 스폰자 궁전과 국립기록 보관소.

벨타워를 정면으로 바라보면 왼쪽에 있는 건물이다.

건축 당시에는 전세계 상인들이 드나들면서 물건을 거래하는 무역센터 기능을 했다.

이후에는 지식인들이 과학, 문화,예술을 논하는 문화센터로 이용되기도...

 

이 건물이 나의 관심을 끌었던 이유는 문화센터나 무역센터가 아니라 지금 현재의 기능인 국립 기록보관소라는 점이다.

그곳에는 얼마되지 않는 오늘날의 전쟁, 유고내전에 관한 사진전이 열리고 있었다.

불타는 두브로브니크

화염에 휩싸인 두브로브니크...부숴지고 폐허가 된 오늘날의 전쟁터.

20세기 말, 바로 우리의 시간과 겹쳐지는 시간대에 그곳에서는 전쟁이 일어나고 있었음을 알게 해주는 곳이었다.

 

루짜 광장의 또다른 한 편으로는 성 브라이세 성당이 보인다.

입구에는 필레 게이트와 마찬가지로 두브로브니크 시가의 모형을 들고 있는 브라이세 성인의 조각상이 있다.

두번에 걸친 지진과 화재에도 전혀 피해를 입지 않은 기적과 같은 건물이다.

 

그리고 여기는 렉터 궁전. 

스폰자 궁전이 두브로브니크 공국의 경제적 중심이었다면 렉터 궁전은 두브로브니크의 정치적 중심이었다.

궁전 안으로 물론 들어가 볼 수도 있다.

...

그런데 나의 두 번의 기억에 의하면 여기쯤 도착했을 때는 몹시 피곤했다는 사실,

그래서 궁전 안이 궁금하기 보다는 입구에 만들어진 그늘이 엄청나게 반가웠다는 사실,

게다가 신발까지 벗어던진 맨발로 전해져 오는 대리석 바닥의 차가움이 무척이나 고마웠다는 사실이다.

ㅋㅋ

 

 

처음 여행에서는 여기에서 한참을 쉬다가 길고양이와 한참을 놀았고

두번째 여행에서는 저녁에 이 곳에서 하는 클래식 음악연주회를 보러 들어갔었다.

물론 시차라는 얄미운 녀석때문에 '앞머리로 망치때리기'를 아주 부지런히 했다는 부끄러운 기억도 있지만...

 

그래도 시간이 남는다면...

올드타운 안의 광장에서 활기찬 두브로브니크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다.

그들이 펼쳐놓은 좌판에서 싱싱한 과일을 사먹으면서...

 

기다려~~~ 눈부신 두브로브니크~~~

콩닥콩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