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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벨리우스의 [핀란디아]

프리 김앤리 2018. 7. 12. 15:00


 

 

[핀란디아]는 핀란드의 작곡가 장 시벨리우스가 34세 때 작곡한 교향시이다.

시벨리우스의 모든 작품 중에서 [ 바이올린 협주곡], [교향곡 2번], [5번], [슬픈 왈츠], [카렐리아 모음곡] 과 더불어 가장 인기가 높은 작품 중 하나이다. 시벨리우스가 이 작품을 작곡하던 1899년 당시 핀란드는 니콜라이 2세가 다스리는 제정 러시아의 압제에 시달리는 속국이었다.

자치권과 언어의 자유를 억압당한 핀란드 민중들은 곳곳에서 러시아에 저항하는 독립 운동을 일으켰다.

러시아 이전에 핀란드는 스웨덴의 지배하에 있었고, 시벨리우스는 스웨덴어를 사용하는 의사 집안에서 태어났다.

모국어인 핀(Fin)어는 나중에 배웠다.

그는 유학을 하면서 핀란드인으로서 자신의 민족정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고 점차 깨달아 갔고, 이런 고민을 자신의 음악에 반영했다.

 

 

 

 

핀란드여 일어나라


시벨리우스가 [교향곡 1번]을 작곡한 해이기도 한 1899년 2월,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는 핀란드 공국의 자치권을 제한하는 ‘2월 선언’을 발표한다.

이는 핀란드 문화예술인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시벨리우스도 음악으로 항의 의사를 표시하고 싶었다. 이 해 11월에 언론 연금 기금을 마련하기 위한 행사가 기획됐다.

표면적으로는 핀란드 언론인들의 연금 기금 모금을 위한 것이었지만 사실은 압제에 저항할 자유 언론을 위한 기금을 마련하려는 행사였다.

여기에는 핀란드의 역사를 다룬 역사극의 공연이 포함돼 있었다.

7곡으로 구성된 애국극인 [역사적 정경]은 핀란드의 역사적인 장면을 묘사하는 작품이었다.

특히 이중 ‘거대한 증오(Great Hate)’는 러시아 정복자들이 저지른 파괴와 조국 핀란드가 추위에 떨고 있는 아이들과 함께

눈보라 속에서 전쟁, 추위, 기아, 죽음의 위협을 받고 있는 장면을 묘사한다.

여기에 이어지는 마지막 곡이 시벨리우스가 작곡한 ‘핀란드여 일어나라(Suomi herää)’였다.

‘수오미’는 핀란드의 별칭으로 호수와 늪의 나라라는 의미가 있다.

스웨덴에 이어 러시아의 지배를 받으며 독립된 국가를 갖지 못한 핀란드 사람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취시켰다.

이 ‘핀란드여 일어나라’가 현재 ‘핀란디아’의 초기 버전이었다.

 
이후 카야누스는 헬싱키 필하모닉을 지휘해 시벨리우스의 표제음악 중 좋은 곡들을 골라 핀란드에서 연주했다.

특히 이 모음곡의 피날레 부분을 유럽 순회공연에서 연주하기도 했다. 이 때부터 이 곡은 유럽 전역을 통해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시벨리우스는 1900년에 이 곡을 피아노 독주용으로 편곡했고 [핀란디아]라는 이름은 이 피날레의 피아노 편곡에 악셀 카펠랑이 붙이면서 유명해졌다.

 

이 해에 시벨리우스는 이 해에 작품을 손봐서 ‘핀란디아’란 명칭으로 정식 개정판을 냈고,

1900년 7월 카야누스가 지휘한 헬싱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파리에서 초연됐다.

시벨리우스는 헬싱키 필하모닉과 파리 대박람회에 참가해 직접 [핀란디아]를 지휘했다.

초연은 세계 각국의 관계자들로부터 호평을 받으며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러시아 정부는 당연히 이 작품의 연주를 금했다.

이러한 검열 때문에 작품은 한동안 ‘핀란디아’라는 이름 대신 ‘즉흥곡’ 등 다른 이름으로 속여서 공연되기도 했다.

제 1차 세계대전 이후 핀란드가 독립되고 나서야 떳떳하게 연주할 수 있었다.


 

핀란드 민중들의 정신, 애국심의 고취

 

핀란드의 자연을 연상시키고 핀란드 민중들의 투쟁 정신을 고취하는 휘몰아치는 북유럽의 바람같은 음악이다.

끝부분으로 가면서 고요한 가운데 장엄하게 핀란디아의 찬가가 들려온다.

이 부분은 민요가 아니라 시벨리우스 자신이 작곡한 곡이지만 핀란드의 특성을 고스란히 반영했다.

 

시벨리우스는 [핀란디아 찬가]를 독자적인 작품으로 손질했다.

이 찬가는 1941년 시인 베이코 안테로 코스켄니에미가 가사를 붙인 것을 시벨리우스가 합창용으로 편곡했다.

당시 스탈린 치하 소련의 침략 위협 하에 있던 핀란드 사람들을 분발시킨 곡으로, 핀란드 제2의 국가라고 할 정도로 널리 불려진 노래다.

나중에 핀란드 출신의 영화감독 레니 할렌의 액션영화 [다이하드 2]에 사용되기도 했다.

 

      숲과 호수의 나라 핀란드의 광활한 자연. <출처: Saajaja at en.wikipedia>

 

 

[핀란디아]는 서주로 시작된다.

첫 서주인 안단테 소스테누토에서 금관악기는 음울하게 울부짖으며 북유럽의 빙하를 연상시킨다.

 목관은 종교적인 분위기로 답하며 현은 인간적인 선율을 연주한다.

두 번째 서주에서 템포는 알레그로 모데라토로 바뀌며 팀파니의 트레몰로를 타고 금관 팡파르가 곡의 핵심적인 리듬을 예고하며 긴박감을 높여주고

심벌즈의 타격은 투쟁 정신을 고조시킨다. 템포는 다시 알레그로로 변하며 장조로 활발하게 진행되면서 승리의 자신감을 나타낸다.

힘찬 2개의 주제가 애국심을 고취시키며 클라이맥스에 이른다. 점차 발전하면서 금관악기와 팀파니의 연주로 모든 악기가 동원되어 이를 강조한다.

현악기와 목관악기가 여러 갈래로 진행하다가 슬픈 민요풍의 표정이 풍부한 노래가 나온다.

음악은 분위기가 고조되고 특징적인 리듬이 첨가되며 발전하다가 승리를 선언하듯 힘찬 기상으로 끝을 맺는다.

 

    - 네이버 캐스트 '명곡 명연주' 「시벨리우스, 핀란디아」에서 옮김 ☞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66&contents_id=7746

      글 쓴이 : 류태형 음악 칼럼니스트

 

 

 

시벨리우스 [ Jean Sibelius ] (1865~1957)

 

1865년 12월 8일에 필란드의 헤미린나에서 태어났다. 9세 때 피아노의 기초 교육을 받았고, 15세 때부터 군악대장에게 바이올린 주법을 배우기 시작하여 25세까지 계속했다.  독학으로 작곡법을 연구하는 한편, 헬싱키 대학에 들어가 법률을 배우는 동시에 헬싱키 음악원에도 입학했다. 2년 후에 장학금을 얻어 베를린에 가서 베커에게 사사하여 대위법을 전공했으며, 또 훅스에게 작곡법과 기악법을 배웠다.

다시 빈으로 옮겨 골드마르크의 문하생이 되기도 했다.

 

1892년에 학업을 마치고 고향에 돌아가서, 옛날 그의 모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애국심의 결정(結晶)이라고도 할만한 「핀란디아」(1899)는 국민 찬가로 선정되었으며, 핀란드 정부는 그 공을 기려서 평생 동안 연금을 주었다. 7개의 교향곡 외에, 몇 개의 교향시 · 기악곡 · 가곡 등 작품의 수는 적지 않으며, 어느 것이나 독특한 향기와 맛을 갖고 있다. 1957년 9월 20일 92세의 고령으로 세계의 사람들로부터 아낌을 받으며 세상을 떠났다. 핀란드는 국장(國葬)의 예의를 다해 이 위대한 대음악가를 장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