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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혁명, 발트의 길 위에 서다. 에스토니아에서 리투아니아까지

프리 김앤리 2018. 7. 14. 11:42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의 발트 3국을 이야기 할 때는 노래혁명과 발트의 길을 빼고는 이야기 할 수 없다.

  내 책, 『지구와 연애하는 법 1』에서 노래 혁명 이야기를 옮긴다.

 

 

발트의 길을 아는가?

독립의 노래, 자유의 노래를 다 함께 불렀던 '620Km 인간 사슬'에 관하여 들어본 적이 있는가?

 

                                         

 

1989년 8월 23일, 에스토니아 탈린에서부터 라트비아의 리가, 리투아니아 빌니우스까지 세 나라를 걸친 620Km 도로에는

20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여들어 인간 띠를 만들었다.

그들은 서로의 손과 손을 잡았다.

약속한 저녁 7시, 사람들은 다함께 소리치기 시작했다.

 

   "라이스베스!   브리비바!   바바두스! "

   "라이스베스!   브리비바!   바바두스! "

 

리투아니아 사람들은 라이스베스(laisves), 라트비아 사람들은 브리비바(briviba), 그리고 에스토니아 사람들은 바바두스(vadabus)를 외치고 있었다.

외치는 언어는 서로 달랐지만 그 뜻은 똑같은 하나였다.

 

    "자유! 자유!  자유! "

 

기적과도 같은 이렇게 긴 인간 띠를 만든 세 나라 사람들의 요구는 당시 발트해 국가들을 강제 점령하고 있는 소련 정부에게 세 나라의 독립을 보장하라는 것이었다.

620Km 도로를 꽉 채운 사람들은 서로의 손을 맞잡은 채 다함께 노래를 불렀다.

독립의 노래, 자유의 노래를.

 

 

 

이 날의 함성을 이해하려면 그 날로부터 정확하게 50년전인 1939년 8월 23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50년 전 그 날, 소비에트연방공화국과 독일은 발트해 국가들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몰도로프-리벤트로프 조약'이라는 상호불가침조약을 맺었다.

스탈린과 히틀러가 그들 사이에 끼어 있는 유럽을 나눠갖자는 비밀협약을 체결한 것이다.

조약에 따라 독일은 폴란드를, 소련은 발트해 3국을 자국의 영토에 포함시키기로 합의했다.

소련은 이듬해 이차대전의 와중에도 세 나라의 국경초소를 무력으로 침공하여 각각의 정부를 무너뜨렸다.

이차대전이 끝나면서 그나마 폴란드와 체코는 주권을 보장하는 독립국가로 인정되었지만

발트해 연안의 이들 세 국가는 아예 소련으로 편입시키고 세계 지도에서 나라 이름을 없애버렸다.

이후 세나라는 소련에 대해 독립을 위해 항거했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고 시베리아로 유형을 가는 등 고통의 세월을 보내야 했다.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사람들은 마침내 1989년 발트 3국을 점령당한 치욕의 50주년을 맞아 전 세계에 소련의 부당함을  알리기로 했다.

가장 수치스러운 날을 민족 독립을 위한 새로운 출발의 날로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

당시의 소련은 고르바초프 시대로 내부의 힘이 약해지기는 하였지만 그래도 현실에서는 엄연히 무력 침공의 위협도 있었다.

실제 행사가 있기 일주일 전만 해도 공산당 기관지 [프라우다]는 발트 3국이 계획하고 있는 대회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이를 금지한다는 기사를 내놓았고,

루마니아의 차우세스쿠도 소련에 병력을 지원하기로 했다는 이야기가 흘러 나오는 위험한 시기였다.

그러나 세 나라 사람들은 거리로 몰려나왔고 620Km의 긴 거리를 함성으로 메웠다.

한날 한시에 다 같이 모여 역사상 유래가 없는 긴 인간 사슬을  만들고 다함께 '자유의 노래'를 불렀다.

결국 1990년 리투아니아를 시작으로 이들 세 나라는 러시아로부터 독립을 쟁취했다. 

 

총칼을 든 무장투쟁이 아니라 가장 평화적인 방법으로의 '민족해방투쟁'.

훗날 사람들은 이를 두고 노래혁명(Singing Revolution)이라고 평했고  이 길을 '발트의 길'이라고 이름지었다.

 

우리는 지금 발트의 길을 따라 여행중이다.

에스토니아의 탈린에서 시작하여 라트비아의 리가를 거쳐 리투아니아의 빌니우스까지,  620Km  인간 사슬의 그  길을 여행하고 있다. 

 

여름을 막 끝낸 에스토니아의 탈린 광장은 조용했다.

그러나 광장의 한 귀퉁이에 있던 인포메이션 센터에는 노래하는 민족 '에스토니아'에 관한 이야기가 가득했다. 

19세기 말부터 시작되어온 에스토니아 대합창대회에는 수만명의 에스토니아 사람들이 한 곳에 모여 노래를 부른다고 했다.

지금도 에스토니아의 대합창대회에서는 민족시인의 시에 곡을 붙인 '나의 조국 나의 사랑'을 첫 곡으로 부른다.

 

   "나의 조국은 나의 사랑

    애정을 바쳤던 그대에게

    노래하네. 크나 큰 행운을

    생기발랄한 에스티여"

 

이 곡은 애국가를 강제로 빼앗긴 소련 치하에서 에스토니아 사람들이 자신들의 국가처럼 부르며 사랑했던 노래라고 한다.

무장투쟁과 같은 총칼의 힘이 아니라 함께 부르는 노래로 사람들을 단결할 수 있게 만들었던 에스토니아의 대합창대회는

옆 나라 라트비아와 리투아니아에도 영향을 미쳤다.

지금도 발트 3국은 4~5년마다 번갈아가며 국가적으로 성대한 합창제를 열고 있다.

라트비아의 수도 리가에서는 합창을 하고 있는 십여명의 젊은이들을 만나는 행운도 얻었다.

반주 악기는 하나도 없이 오로지 사람의 목소리만으로 어우러지는 노래 소리.

노래로 하나가 되었던 역사를 이미 알게 된 우리들에게 리가의 광장에서 울려나오는 합창은 감동, 그 이상이었다.

 

다시 버스를 타고 리투아니의 빌니우스를 향했다.

에스토니아 탈린에서 라트비아 리가, 그리고 이 곳 빌니우스까지 오는 우리의 여행은 벌써 며칠째다.

참으로 먼 길이다. 

이 기나긴 길을 어떻게 사람들의 물결로 가득 채웠을까?

도시들을 연결하는 도로는 마을과는 한참 떨어져 있었고 끝도 없는 숲길이었다.

어떻게 이 먼곳에 그 많은 사람들이 한날 한시에 모일수 있었을까?

버스를 타고 내려오면서 내내 풀리지 않는 의문이었다.

 

발트해는 인구밀도가 세계에서 가장 낮은 곳으로 유명하다.

1989년 8월 23일, 이날 대회를 기획한 본부는 620Km에 이르는 거리를 소련 침공 50주년을 상징하며

모두 50구획으로 나누어 한 구획 한 구획씩 책임지기로 했다고 한다.

각 나라의 교통부 관계자, 환경운동 관계자 그리고 지역 주민들과 함께 세부적인 것까지 계획은 했지만

실제로는 '바닷물을 숟가락으로 퍼내는 것 같았다'고 고백했다.

그러나 물방울 하나하나와 소금 알갱이 하나 하나가 모여 거대한 대양을 이루는 기적처럼 

세 나라 사람들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수많은 사람들이 대회에 참가하겠다고 나섰다.

고작 인구의 10% 정도만이 승용차를 가지고 있던 당시,  한 동네에서 몇대 안되는 차들은 사람들을 끊임없이 실어날랐고 버스 회사들은 노선을 바꿔가면서까지

사람들을 각자의 위치에 내려줬다. 사람들의 행렬 100m 마다 작은 무대가 세워졌고  록밴드, 곡예사들의 공연을 보면서 이들은 다같이 약속한 시간을 기다렸다. 

그리고 약속한 저녁 7시. 그 길에 늘어선 사람들은 다 같이 손을 잡았다. 그리고 15분동안 다 함께 외쳤다.

 

  "라이스베스!   브리비바!   바바두스! "

  "자유! 자유! 자유!" 

 

감동의 눈물을 흘리며 다 함께 노래를 불렀다.

 

  "자유! 자유! 자유!"

 

각 마을과 도시의 성당에는 그 시각에 맞춰 종소리가 울려퍼졌다. 

기적이었다. 혁명이라기보다는 축제 같았다.

 

 

우리가 리투아니아의 빌니우스에 도착한 날은 안개비가 내리고 있었다.

발트의 길, 그 시작이었고 또 한편의 끝이었던 리투아니아의 대성당 광장앞에 우리도 섰다.

대리석일 깔린 넓은 광장 바닥에는 여느 돌판과는 다른 눈에 띄는 조각이 하나 있다. 이름하여 매직타일(Magic Tile)이다.

거기에는 반짝이는 푸른 타일로 스테부클라스(Stebuklas)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스테부클라스는 리투아니아어로 '기적'이라는 뜻이다.

인간 사슬의 시작 지점, 그러니까 '기적의 출발점'이다.

사람들은 '독립'이라는 기적을 바라며 이 곳에서 행진을 시작한 것일까?  그래서 기적이 이루어진 것일까?

스테부클라스 타일 주위를 시계 방향으로 세번 돈 다음 그 자리에 서서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전설이 있다.

우리도 각자 세바퀴씩 돈다.  기적까지는 아니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사람들의 건강과 행복을 빈다.

발트의 길을 떠올리며 노래하는 혁명을 생각하며 20년전 그 날,

 이 사람들의 감동을 떠올리며 천천히 기적의 타일 주위를 돈다.

 

 

                  <에스토니아 탈린>                                                  <라트비아 리가>                                           <리투아니아 빌니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