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지금은 여행중 /6월 크로아티아

때로는 예정에 없던 곳을 가는 것도 여행이다

프리 김앤리 2014. 7. 18. 11:00

 

< 2014년 6월 투어야 여행사 단체배낭 크로아티아 이야기 4 >

 

#장면 1

 두브로브니크 성벽을 끼고 눈부신 바다가 보이는 BUZAR BAR를 갔다.

 여행을 가기 전에는 그 멋진 곳에 오래도록 앉아 해지는 바다의 노을을 바라보며 맥주를 한 잔 하고 싶었다.

 그런데 여름의 한낮은 너무 길었다.

 태양은 아직 머리 꼭대기에 있었고, 노을은 커녕 내리쬐는 햇살 덕분에 머리가 홀라당 다 타버릴지도 몰랐다.

 나와버렸다. 만나기로 약속한 시간은 제법 남았고... 뭘 한다?

 올드 타운 끝에 있는 항구에서 보트가 보였다.

   "저 배를 탈까? "

   "그러면 저 배에서 맥주를 마실까?" 

   "바다를 보면서 마시는 것 보다, 바다 위에서 마시는 게 더 좋지 않을까?"

 후다닥 둘러보니 일곱 여덟은 될 것 같다.

 오케이!!!

 여러명이 탄다니까 돈도 좀 깍아 준다.

 몇은 서둘러 맥주를 사러 가고 몇은 화장실을 갔다 오겠다며 후다닥 달려간다.

 가게에 가서 사면 싸게 살 수 있겠지만 시간이 없는 관계로 레스토랑 가격으로 후다닥 캔 맥주를 들고 달려오는데...

 어라? 화장실로 간 몇이 다른 사람 둘을 데리고 뛰어오는 중이다.

 화장실 줄을 기다리던 우리 일행 둘을 만나 데리고 오는 중이란다.

 화장실은 너무 비좁아서 그냥 생략?

   '지금까지 기다리던 줄은 아까워서 우짜지...ㅠㅠ' ㅋㅋㅋ

 졸지에 둘을 더 달고 우르르 조그만 보트에 올라탔다. 한 손에는 캔맥주들을 들고, 입가에는 미소를 가득 담은 채...

 그렇게 우리는 아드리아해로 나갔다.

 

 

 

 

#장면 2

 여행 계획표에는 없었지만 그래도 시간이 나면 카톨릭의 성지 '메주고리예'에 가볼까 했었다. 

 다행히 두브로브니크를 나오는 날 아침, 일찍 떠나도 될 것 같아  메주고리예를 가기로 했다.

 일행 중 기독교 신자들은 여럿 있었지만 카톨릭 신자는 냉담자들 밖에 없고 또 절반 정도는 무신론자들이었다.

 남들에게는 소중한 성지이지만 우리는 지나는 길에 들르는 정도로 의미가 축소될 수 밖에 없었다.

 '산 위에 커다란 십자가가 있으면 메주고리예'라는 나의 이야기에 모두들 창밖으로 나타날 거대한 십자가만 기대하고 있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이건 잘못된 정보였다. 메주고리예 성지의 십자가 산은 차를 타고 휙 지나가면서 보이는 정도로 그리 큰 십자가는 아니었다.

  그 십자가는 모스타르 가는 길의 다른 산...)

 두브로브니크를 떠나 몇시간을 가는 동안 화장실이 급했던 몇몇은 빨리 십자가만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내가 또, 살다가 이렇게 십자가를 기다리기는 처음이네"라는 오이씨의 말에 모두들 폭소를 터트리고...

 

그렇게 도착한 메주고리예.

전세계에서 수많은 순례자들이 모여든다는 메주고리예, 한여름 햇살이 따가웠다.

간단한 점심을 각자 먹은 뒤에 '치유의 예수님 상' 을 만나기 위해 천천히 걸어올라 갔다. 

올라가는 길에 만난 모자이크 성화들, 권사님 집사님 우리들 중에 독실한 기독교 신자들이 성화에 관한 설명을 곁들였다.

햇살은 여전히 따가웠다. 바람 한 점 불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 움직이고 있는 것은 오로지 우리들 뿐, 나머지는 다 정지된 것 같은 묘한 분위기였다.

'치유의 예수님 상 ' 앞.

몇몇의 외국인들이 줄을 서 있었고 한명 한명 예수님 상 앞으로 나가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약간 부산스럽게 등장한 우리와 다르게 그 곳의 분위기는 몹시 엄숙했다.

우리중 일부는 줄 뒤에 섰고, 일부는 주변의 의자에 빙 둘러 앉았다.

그리고 하나 둘, 예수님 상 앞으로 나섰고 동상의 무릎에서 흘러내린다는 '기적의 물'에 손을 갖다댔다.

한명, 두명, 세명, 네명...

한 점의 바람도 불지 않았고 오로지 햇살만 내리쬐는 순간이었다.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완벽한 정적이었다.

순간, 눈물이 흘렀다. 나는 예수님 상 앞에 서지도 않았는데, 단지 보고 있었을 뿐이었는데 눈물이 흘렀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뭔가 가슴 속이 꽉 차는 느낌이었다. 

 

덧붙임>

 . 그 순간에 눈물을 흘린 사람은 나 이외에도 여럿 있었다.

   안산에서 오신 선생님은 세월호 아이들이 생각난다며 아주 많은 눈물을 흘리셨다.

 . 치유의 예수님 상 앞에 섰던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종교가 전혀 없었다던 옥씨도 동상의 무릎에서 뭔가 축축한 물이 흘러 손에 닿이는 순간 가슴이 메어오며 눈물이 나더라고 했고

   오랫동안 냉담 중이라던 정현쌤도 뭔가 마음을 울리는 그런... 표현할 수 없는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 돌아와서 어떤 모임에서 아주 독실한 카톨릭 신자들을 만나 이때의 우리 이야기를 했었는데 하시는 말씀.

    " 우리는 평생을 두고 한번 가고 싶어하는 메주고리예 성지를 지나가다가 들렀단 말이지요?"

 

 

 

#장면 3

 프리모슈텐. 우연히 알게 된 섬 아닌 섬. 트로기르에서 자다르로 가는 길에 신기루 처럼 나타난다는 도시.

 버스 기사에게 물으니 잘 알고 있단다. 사진을 찍으면 아주 잘 나오는 포스트를 알고 있단다. 잠시 세워줄테니 사진을 찍고 가면 될거란다.

   "오케이!!! 그러면 거기 잠시만 세워 줘".

 버스가 선 곳에는 진짜 신기루 처럼 섬이 떠 있었다.  다투어 사진들을 찍고... 돌아서려는데...

 어라? 숲 길 아래 길이 보인다. 섬까지 가는 바닷가 길 같다.

   "우리, 이 길 걸을까요?"

   " Why not!"  "야호~~~" 

  버스 기사에게는 '우리는 걸어서 저 섬, 프리모슈텐까지 갈테니까 저쪽에서 우리를 기다려라'고 알려 놓은 뒤 아름다운 바닷가 길을 걷기 시작했다.

  달팽이가 가득 붙어 있는 나뭇가지도 보고, 아무렇게나 해삼이 널려 있는 아주 맑은 바다도 보고,

  달궈질대로 달궈진 자동차 본넷 위에서 모델처럼 사진을 찍기도 하고 , 문득 서서 바다를 바라보기도 하고....

  아무도 모르는 길, 한 번도 오지 않은 길을 그렇게 걸어가서 프리모슈텐의 예쁜 골목을 만났다.

 

  때로는 예정에 없던 길을 가는 것이 진짜 여행이다.  

 

 

 

#장면 4

예정에 없던 여행을 만나면 보통의 경우 즐겁다.

예정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게 진짜 여행이기 때문이다.

'다 짜져 있는 여행,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 여행이 가장 끔찍한 여행'이라는 것은 나의 오래된 지론.

그런데 그게 반드시 즐겁지만은 않다는 사실.

스플릿의 호텔에 도착했을 때는 12시를 채 넘기지 않은 시각이었다. 당연히 체크인이 안된단다. 계산을 잘못한 거다.

이럴 줄 알았으면 스플릿의 시내로 먼저 나갔어야 하는데... 왜 호텔부터 먼저 왔지???

그런데 호텔의 스텝이 여기 바로 앞에 쇼핑 몰이 있단다. 호텔 방을 정리하고 있을 동안만 몰에 갔다 오면 어떻겠냔다.

그래? 그럼 거기 한번 가볼까? 우리가 또 완전 아줌마들 아냐~~~ 쇼핑하면 또 다들 한끝 하는데??? 더구나 아울렛? 뭔가 득템할 수 있지 않을까???

온갖 즐거운 상상을 하며 들어간 아울렛~~~

헐~~~ 철지나고 잘 안팔리는 옷을 갖다놓은 느낌???

대충 둘러보고 그냥 하나 둘씩 그늘로 모여든다.

예정에 없던 여행을 간다고 해서 반드시 즐거운 것만은 아니다.

....

그런데 나중에 듣고보니 몇몇은 여기서 아주 좋은 걸 득템했다고 자랑하는 걸 보면

여행이라는 게 '동일한 상황이 모든 사람에게 항상 같은 느낌을 주는 것'은 또 아니라는 사실.

 

 

 

#장면 5

 여섯시간여를 트레킹한 플리트비체 호수.  나는 사실 그거면 됐다고 생각했다. 

 크로아티아에 오면 플리트비체 호수만 보면, 그것도 잠깐 들르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오랫동안 걸었으면 더이상은 없어도 된다고 생각했다.

 플리트비체 맑은 호수의 원류라는 '라스토케'라는 곳을 꼭 가야되는가 하는 약간의 회의(?)

 그래도 꽃보다 누나에서 워낙 예쁘게 비쳐지기도 했고, 또 우리의 왕언니들이 아주 강력하게 원했던 라스토케. 

 그렇다면 또 가야지... 단체 배낭이 뭐냐? 원하면 원하는 대로 해결하는게 단체 배낭 아니냐~~~

 예쁜 마을, 라스토케는 그렇게 갑자기 들렀다.

 

 때로는 예정에 없던 일이 일어날 때 우리는 진짜 '여행'을 하고 있다는 느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