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지금은 여행중 /10월 대만

넓은 광장이 불편하다 - 타이페이 첫날

프리 김앤리 2014. 10. 5. 19:28


여행을 너무 많이 다녔나 보다. 

이제는 어지간해서는 감동을 못받는다. 

우리는 이걸 '세계여행 후유증'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지금 대만 여행중.

오늘의 이야기는 대만 여행의 첫날, 10월 1일의 이야기다. 

한국을 떠난지 두시간만에 도착한 대만의 수도, 타이베이. 

게스트하우스에 가방을 던져놓고 제일 먼저 찾은 곳이 얼얼바(228) 기념 공원.

숙소 바로 옆이기도 했지만 타이페이에서 가보고 싶은 곳 중의 하나였다. 

  228 기념공원은 1947년 2월 28일 부패한 국민당 정부를 항의하는 시위에 군대를 동원한 정부군대가 시위 진압을 명분으로 

  무고한 시민들을 무차별적으로 학살한 사건을 기록하고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만든 공원이다. 

  이 때의 시위로 많은 지식인들과 인사들이 투옥되었고 희생자만 1만8천~2만8천(정확하게 파악안되고 있음)이라는데 

  아직까지도 진상규명이 정확하게 안되고 있단다. 대만의 역사상 잠시 정권이 교체되어 천슈이벤 정부가 들어섰지만 

  여전히 과거 국민당의 뿌리를 그대로 안고 있는 국민당 정부가 현재 정권을 잡고 있어 진상규명에 여전히 미온적,  228사건에 대해서는 

  당시의 장제스에게만 책임을 떠넘기고 있는 형국이란다. 


그래서일까?

부패한 권력에 항의한 시민들 수만명이 숨졌다는데 기념관도 공원도 관료적이다. 

분노도 없고, 관심도 없고 감동도 없다. 

물론 잘 알지 못하는 남의 나라 역사이기는 하지만 정의에 대한 갈망, 부패에 대한 분노, 그리고 거기에 항의하는 

민주시민에 관한 이야기는 국경을 초월하여 한쪽 가슴이 쓰리고 뭔가 뭉클한 심정은 인류공통이 아닐까?



그냥 공원이다. 

228이라는 이름을 붙여놓지 않아도 전혀 문제가 없을 것 같은 그냥 공원. 

40위안을 주고 들어간 228기념관도 형식적인 동영상과 사진 몇 점, 그것도 228 사진은 별로 없고 일제치하의 대만 사진들이 더 많다. 

국민당 정부로서는 외면하고 싶은 역사이겠지...

그렇다고 역사를 묻어버리자니 그럴수는 없고, 의미를 살리자니 현재 자신들의 정통성을 부인할 수 밖에 없는 상황. 

누가 권력을 잡느냐에 따라 역사적인 사건도 이런 취급을 받고 있는 모습이 우리나라와 겹쳐지면서 불편할 뿐이다. 


추모의 벽이라고 만들어놓은 곳의 몇 안되는 희생자 사진과 나풀거리는 추모리본. 

형식적이고 관료적, 심지어 허접하기까지 한 228공원. 대만 도착후 일등으로 달려간 그곳에서 실망만 안고서 돌아선다. 


덥기는 하다. 

이제 막 가을로 접어드는 한국을 떠났는데 대만은 아직 여름. 

땀범벅까지는 아니지만 습도가 높은 오늘은 도시의 거리를 걷는다는게 상쾌하지는 않다. 

228공원과 가까운 국림중정기념당까지 걸어간다. 


국립중정기념당(궈리 중정지넨탕)

국민당 장제스 총통의 업적을 기리기 위한 기념당이다. 

1949년 중국 본토에서 쫓겨나다시피 도망나온 장제스총통은 1975년 서거하기 전까지 대만을 통치, 

대만 국민들로부터는 대만을 건국하고 발전시킨 위대한 지도자로 칭송을 받기도 하고 독재통치자라는 비난을 받기도 한다. 

그가 서거하자 세계각지에 흩어져 있던 화교들이 자발적으로 기부금을 모아 정부에 기념당 건립의 건의, 1980년에 완공했단다. 

이름도 그의 호, '중정'을 따서 중정기념관. 

2007년 천수이벤 정부가 '탈중국화'와 장제스 전 총통의 권위를 부정하며 '국립타이완민주기념관'이라는 이름으로 바꿨는데 

2008년 천수이벤 정부가 무너지고 다시 국민당 정부가 들어서면서 이곳 역시, '중정기념관'이라는 옛 이름으로 돌아왔다. 


이렇구나...

남의 나라 역사이지만 어쩜 이렇게 세상은 비슷하게 돌아가는 걸까?

필리핀의 부패권력 마르코스가 쫓겨나도 그의 부인 이멜다가 되살아나고 그의 아들, 딸이 다시 정계에 진출하고 

수만명의 시민을 죽인 정권이 여전히 권력을 누리고 있고 추앙받고 있는 현실...

아버지에서 아들 딸 들로 이어지는 권력의 승계가 아시아에서는 어쩜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지속될 수 있는건지...

여행을 떠나왔지만 마음은 이리 불편할 수가 없다. 


입이 떡 벌어지게 크게 만들어놓은 문을 통과하여 만난 중정기념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겠다. 

어쩜 이렇게 크게 만들어놓았는지...

끝도 없다. 

엄청나게 넓은 광장 한참을 걸어야만 만나는 기념관, 그리고 내부에 근엄하게 앉아있는 그의 동상. 




워싱턴에 있는 링컨 기념관과 같은 분위기에 같은 구조다. 

거기서는 참 많이 감동했는데... 

더구나 거기는 ' I Have Dream' 을 외쳤던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이야기까지 겹쳐서...

그런데 여기서는 왜 이 큰 동상과 이 넓은 광장이 불편하기만 한건지...


그래도 하나는 건졌다. 

중정기념관 앞에서 만난 노란 리본. 

처음엔 '세월호 추모'인가 싶어 깜짝 놀랐다. 

최근 홍콩 시민들의 '우산혁명'에 대한 지지 선언이다. 

우리 세월호와 똑같은 색깔과 똑같은 모양의 리본을 단 대만의 젊은이들!

봐라! 확실하지 않은가?

민주주의와  정의에 대한 갈망, 정당한 요구에 대한 폭력 진압에 대한 분노는 세상 공통이라는 사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시위가 가능한 것일까?

헐!! 내가 너무 소심해졌나???





여행을 너무 많이 다녔나보다. 

지금 우리나라 상황이 너무 싫은 가 보다. 

관료화된 공원에서 실망하고 넓은 광장이 불편한 지금. 

꽃할배에서는 친절한 대만 사람들도 자주 만나더니만.... 

적어도 여행 첫날인 오늘까지 공항에서든, 지하철 매표소에서든 우리는 불친절한 사람들만 만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