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지금은 여행중 /10월 대만

사흘 밤 나흘 낮의 타이페이 이야기

프리 김앤리 2014. 10. 11. 23:16


<2014 10월 타이완 여행 다섯번째 이야기>

 

우리가 내린 여행에 관한 여러가지 정의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건 
‘ 익숙한 것과의 이별 그리고 낯선 것과의 만남’이다.

 

내가 아주 자주 써먹는 건 ‘여행은, 일상의 반댓말’이라는 거다.
어디를 가도 좋다, 무엇을 봐도 좋다. 그곳이 일상이 아니기만 한다면
잠시 일상을 꺼두어도 되는 지금 이 순간에 맘껏 행복하라고 내 맘속을 다지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을 부추기기도 한다.
집을 치우고 밥 만들던 아줌마들에게는 아침 제공되고 방까지 깨끗하게 치워놓는 하루하루를 즐기고,
직장에서 뺑이치던 직딩들에게는 '오늘 해 치워야 할 업무'가 없는 이 순간을 기뻐하라고 다독인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타이완 여행 역시, 충분히 행복하다.
더구나 오랜만에 남편과 단둘이 떠난 여행이기에 더더욱…
집을 치워야 되나, 아니면 밥을 해야 하나, 밀려들던 사무실의 많은 일들을 해치우기를 해야 하나~~~
 

그런데 타이페이에 도착하자마자  계속 툴툴거리고 있다.
사람이 너무 많네, 여기는 시스템이 정말 엉망이네, 이렇게 밖에 못보여줄까…
짜증과 안타까움, 피곤함과 애석함, 낯설지 않아서 재미없고 쉽지 않아서 불편한 순간들이 교차되고 있다.
우리가 여행을 너무 많이 다녔나보다, 세상을 너무 많이 봤나 보다.
이걸 보면 저기 다른 나라가 생각나고 또 저기를 방문하면 또 다른 어느 나라의 어느 순간이 오버랩된다.
거기는 이랬었는데, 이렇게 하면 좋았을 걸, 여기는 이럭하고 있구나.
한국의 어느 순간일 수도 있고 그동안 숱하게 다녀왔던 다른 나라의 어느 순간일 수도 있었다.
얼얼바 기념공원과 중정기념관에서는 우리나라 상황이 떠오르고
101빌딩 앞에서는 말레이시아의 높은 빌딩과 뉴욕의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을 떠올리고, 
타이완 사람들의 신심을 발견한 룽싼스에서는 신심이 깊어 감동을 줬던 우크라이나 키예프의 조그만 성당을 기억해냈다.
복잡한 시먼딩 거리에서는 시리아의 올드 타운을 같이 이야기했고

취두부 냄새 가득한 스린 야시장에서는 중국 따리의 어느 골목의 냄새도 새삼 떠올렸다.
툴툴거리기도 했지만 사흘 밤 나흘 낮을 타이페이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그동안의 우리 기억들 위에 때론 감탄하고 때론 짜증내면서 현재 여행의 추억을 덧쌓고 있는 중이다.

 

<국립 국부 기념관(궈리 국부 기념관)>

 타이완의 국부로 추앙받고 있는 손문을 기리기 위한 기념관이다. 

 장제스 총통 기념관인 중정기념관처럼 중앙 홀에 손문(쑨원)의 거대한 동상을 만들어두었다. 

 그런데 어찌나 멀리 있는지...

 크로아티아 스플릿에 가면 그레고리 닌 주교의 동상도 이만큼 크지만 사람들이 가까이 다가갈 수 있어서

 닌 주교의 엄지발가락은 사람들이 하도 만져서 반들반들해졌다. 

 로마 바티칸 성당의 베드로 발가락도 반질반질하고, 러시아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표트르 대제 동상은

 사람들이 그의 무릎에 앉을 수 있도록 만들어두었는데...

 이리 멀리서 근엄하게 만들어 두었다고 사람들의 존경심이 생길까? 친근하지 않은 근엄함은 어떤 의미일까????


 

<국부기념관의 근위병 교대식>

 런던 버킹검 궁전 앞에도 근위병 교대식을 보기 위해서 여행자들이 구름떼같이 모여들기는 하지...

 근데 군악대의 음악이 없어서 그렇나? 뭔가 좀 섭하다. 

 소리도 내지 말라고 너무 조용히 시켜서 그렇나?

 근위병들의 발이 착착 맞아야 하는데 투둑툭 자꾸 엇갈리는 군화소리가 너무 선명하게 들켜버린다. 

 ㅋㅋ

 

<손문 아저씨의 초상화> 

 이건 좀 친근해 보이는데???


온통 한자니!!! 이 긴 문장을 얼마 아는 한자 실력으로 끼워 맞출수도 없고...

'국민정부건국대강'

손문의 삼민주의를 잘 알고 중국의 역사를 잘 아는 현지인들, 혹은 중국인들에게는 감동을 주는 문장이겠지???

 

<손문에게 주요한 의미를 가지는 숫자들>

11번의 혁명을 이끌었고, 미국 우표에 두 번이나 등장했고 그의 인생 40년 동안 혁명운동에 헌신했다는데

내 눈에 띈건 17이라는 숫자다. 

손문은 열 일곱 나라 이상 여행했다???

ㅎㅎㅎ 우리가 훨씬 더 많이 다녔구나~~~


<101빌딩> 

저 꼭대기를 올라갈까? 올라가면 뭐가 보일까?

뉴욕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시카고 씨어스 타워에는 큰 돈을 주고 다 올라갔는데 여기도 올라가야 하나?

파리 에펠탑도 프라하의 대성당 꼭대기도 심지어 앙코르왓트의 그 미끄러운 사원도 기어기어 다 올라가놓고 여기서는 머뭇머뭇. 

 

결국 101빌딩은 아래 몇 개층의 상점들만 기웃거리다 지하에 있는 푸드코트에 가서 점심 한 그릇만 때리고 돌아나왔다. 

빌딩은 빌딩일 뿐!

 

올라가면 이리 보인다는 걸까???  

실제 보이는 타이페이 모습보다 포스터의 타이페이가 훨씬 더 정갈해 보인다.

 

<타이페이의 어느 거리에서 만난 신라면 광고>

타이페이 기차역 앞에도 신라면 광고가 크게 붙어 있더만 제법 여러 번 만났다.  

실제 슈퍼에도 신라면이 떡하니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더라는...

한류는 한류인가 보다. 야시장에서 흘러 나오는 여러 노래가 한국 노래더라는...

<시먼딩 거리>

타이페이 최초로 만든 보행자 거리란다

올드 타이페이의 한 구역으로 타이페이 시내에서 가장 활기찬 다운타운의 풍경을 볼 수 있다는데...

우리에게는 그냥 서울의 한 거리, 부산에서도 흔히 볼수 있는 풍경일 뿐이다.

거리 모습도 낯설지 않고, 사람들도 비슷하고 심지어 상점 이름도 눈에 익어있는...

시리아 다마스커스의 올드타운은 완벽하게 여행 온 기분을 낼 수 있었는데...

거리를 걷는 사람들 가운데 우리만 딱 이방인, 모든 것이 낯설고 신기하고 관심을 끄는 것이었는데...

 

<타이페이 지하철>

여기도 똑같다.

입고 다니는 옷 메이커, 머리 모양, 신발 모두다 익숙한 광경이다.

한글판 가이드북을 들지만 않았다면 어느 누구도 우리가 여행자임을 눈치챌 수 없는 완벽한 은신처(?).

그래도 반만 가려져 있는 스크린 도어는 낯설다.

하지만 참 좋다. 시원하고 깔끔하고...

방공호로 깊이 파내려가 육중한 쇠문이 덜커덩 닫혀버리는 모스크바의 지하철보다는 훨씬 더 기분좋기는 하다.

 

<타이페이의 거리>

여기도 비슷하기는 한데... 우리 눈에 띈 건 가로수의 광고판이었다.

우선 클래식 연주회를 참 많이 하는구나 라는 첫번째 생각,

(가을이라서 그렇나? 여러 종류의 클래식 연주회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길 가에 포스터를 참 깔끔하게 붙여놓았구나 하는 두번째 생각.

우리처럼 기다랗게 가로 플랭카드를 경쟁하듯 붙여놓지 않고, 가로수나 그 옆 기둥을 잘 활용했다는 느낌.

 

<용산사(룽산쓰)>

늦은 밤, 룽산쓰를 찾았다.

룽싼스는 타이페이에서 가장 오래된 사원으로 현지인들에게 사랑을 듬뿍 받는 사원이다.

 

제법 늦은 시간이었는데도 룽산쓰 안은 기도를 하는 사람들로 가득차 있었다.

룽산쓰 바로 밖의 세상은 시끄럽고 정신이 없었는데 이 곳만큼은 아주 진지하다.

두 손을 모으로 뭔가를 비는 사람, 절을 올리는 사람, 촛불을 키는 사람, 그리고 송편 모양의 나무토막 두 개를 던지는 사람...

저마다의 소원을 빌고 나무 토막을 던지면서 신의 응답을 듣고자 한다.

한쪽은 볼록하고 한쪽은 납작한 송편모양의 나무 조각 두개를 던져 각각 다른 면이 나오면 신이 자신의 기도를 들어준다는 뜻이라는데...

사람들은 두 조각이 다른 면이 나올 때까지 몇번씩이나 기도를 올린다.

남편은 나 한테도 한 번 해보라고 했지만 '믿지도 않으면서 남의 방식을 빌어 소원을 비는 것'은 죄악(?) 이라며 살짝 거절!!

 

<보피랴오 역사거리>

룽산쓰를 나와서 조금만 걸어오면 보피랴오 역사거리라는 곳이 나온다.

목조건물들이 늘어선 거리라는데 타이완 영화의 촬영무대로 골목 양쪽으로 시계방, 사진관 쌀집 이발소등을 재현해 놓아서

타이완의 옛날 풍경을 그대로 볼 수 있는 곳이었단다.

저녁 5시면 문을 닫는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 우리가 갔을 때는 문을 다 닫아버린 심심한 거리.

아깝따!

 

<룽산쓰 MRT 역 입구 안마 >

문닫힌 보피랴오 역사거리가 아쉬웠지만 그래도 돌아가는 룽산스 역에서 만난 거리 안마사들 덕분에 잠시 휴식!

200 대만 달러 (6천원 정도)만 주면 20분 동안 어깨를 시원하게 풀어주더라는...

대부분이 맹인 안마사였는데 우리나라처럼 실내로 들어가 있는 것이 아니라 밝은 지하철 역사에서 그리 비싸지 않은 돈으로

영업을 하고 있어 아주 많은 사람들이 애용하더라는...

우리나라에도 이런 게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5천원이나 만원 정도 주면 30분 정도 잠시 어깨를 맡길 수 있는 곳이 있다면 애용할텐데...

굳이 옷 갈아입고, 시간 맞춰 찾아가고 그렇게 하지 않고 말이다... 거기다 비싸기까지 하니...

 

이젠 먹으러 가볼까?

사흘밤 나흘 낮을 타이페이 시내를 돌아다니면서 한끼도 안빼먹고 다 먹기는 먹었는데 별로 기억에 나는 것이 없기는 하다.

여행을 떠나기 전 타이페이는 먹을 것 천지라던 여러 블로그의 글을 읽어서인지 기대는 컸었는데,

며칠을 돌아다닌 우리의 결론은 이렇다. (우리의 결론이 맞다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과는 좀 '다른' 결론일 수 있다는 것)

'타이페이는 주전부리의 천국'

꼬치며, 만두, 국수, 전, 튀김, 케익, 전병, 빙수, 펄 티등...여기서 하나 집어먹고, 옆에서 또 하나 집어먹는 소소한 재미를 누리는 곳.  

간식거리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우리들에게는 그다지 매력적이지는 않았다는 것.

그래도 한끼도 안 빼먹고 이것 저것을 다 먹기는 했다는 것.

줄을 서서 타이완 피자라는 계란 야채 전을 사먹기도 하고

또 어디만큼 길게 늘어선 줄을 기다려 타이페이의 별미 '아종면선'에서 국수를 한 그릇 사먹기도 하고

스린 야시장에 들러

바베큐 꼬치도 사먹고(헉! 저 안에 들어있던 파는 우찌 그리 맵던지...)

오징어 구이를 넘보기도 하고...

그 외에도 진주알(?) 같은 것이 송송 올라오는 버블티도 사먹고 육즙이 쫙 나오는 만두도 사먹고...

 


타이완에 오면 반드시 먹어봐야 된다는 장어 덮밥도 먹고, 모밀국수도 먹고, 한번은 연어 튀김 정식을 먹기도 하고

돈까스와 시원한 육수가  맛있던 일본식 탕도 먹고... 하여튼 먹기는 엄청 먹었다. ㅋㅋㅋ

 

그리고 아침이 안나오는 게스트하우스라 아침식사는 맥도널드 아침 메뉴를 이용하기도...

팬케익 세조각과 커피 한잔이 대만 돈 63달러(2,000원 정도). 아니면 계란과 햄 치즈가 들어있는 맥모닝 셋트도 비슷.

우리의 아침으로 충분했다.

 

어느 날 아침, 맥도널드에서 만난 할아버지. 졸고 계신다.

이 할아버지는 오늘도 아침을 이 곳에서 먹고 있을까???

참 평안해 보였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