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지금은 여행중 /10월 대만

타이페이 성품서점과 전주 홍지서림

프리 김앤리 2014. 10. 7. 20:40

<2014 10월 대만여행 2>


9월 말에 전주를 갔다 왔다. 남편 친구들이랑 부부들이 함께 한 오랜만의 나들이였다. 
콩나물 국밥부터 전주 비빔밥, 온갖 만두에 각종 꼬치, 그리고 한상 두상 준다는 막걸리, 심지어 전주 한옥마을에 왔다 간 사람이면 누구나 사가지고 간다는 
쵸코파이까지, 먹는 것 일색이어서 이틀 내내 이러다가 배가 터져버릴 지도 모른다는 비명을 질러댔다. 
사실 부부 나들이였지만 우리 둘은 그곳에서 늦은 나이에 새로운 공부를 시작한 김교수를 만나고, 올 1월 함께 스페인을 여행했던 전주의 선생님 두 분을 
만나느라 다른 부부들보다 하루 먼저 전주를 찾았다. 
물론 그들과도 전주 먹거리 탐방에 나섰으니 우리 둘은 배가 터져버릴 지도 모른다는 미안한 비명을 하루 전부터 했던 셈이다. 
전주 출신의 선생님 두분과는 전주 시내에서 약간 벗어난 어느 멋진 정식집에서 연잎밥을 실컷 먹었는데 부른 배를 주체 못한 우리가 
편백나무 숲을 가자고 부탁했다. 전날 김교수가 전주의 편백나무 숲을 자랑해서다. 
선생님들은 기꺼이 즐거워하면서 전북대학교 뒷편의 편백나무 숲으로 우리를 데려다주었다. 
살랑살랑 부는 바람을 맞으며 거닐던 편백나무 숲에는 혼불을 쓴 최명희 작가의 무덤도 있었다. 
무덤 주변으로는 그가 쓴 작품들에 있었던 멋있는 문장들을 바위에 새겨놓았더랬다. 
경상도 출신인 우리가 박경리 선생님의 토지에 나오는 문장들이 입에 착착 달라붙듯이 
최명희 선생님의 글은 전라도 출신인 두 분 선생님들의 입에 착착 감긴다고 했다. 

그때였다. 
전주에 있다는 홍지서림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던 것이.  
'원미동 사람들'을 쓴 소설가 양귀자씨가 전주 출신인데 전주의 향토 서점, 홍지서림을 운영하고 있다고… 
홍지서림은 50년도 넘은 전주의 서점으로 양귀자, 은희경, 최명희등 전주 출신 작가들 치고 그 서점에 죽치고 앉아 책 속에 빠져들지 않은 이가 없다는 이야기, 
사람들이 책을 덜 읽고 적자에 허덕이던 책방들이 하나 둘 문을 닫게 되고 전주의 상징과도 같았던 홍지서림 역시 문을 닫게 될 처지에 놓이자 
양귀자씨가 그 서점을 인수했다는 거다. 
현재도 여전히 책방의 수입은 형편없겠지만 ‘소녀시절 자신에게 문학의 꿈’을 품게 만든 서점에게 감사하며 
또 누군가의 ‘꿈’을 펼칠 수 있는 그 곳을 포기하지 않고 운영하고 있다는 아름다운 이야기. 

타이페이에 와서 문득 양귀자씨의 홍지서림을 떠올린 건 우연히 만난 성품서점(청핀수뎬, Eslite Bookstore)때문이다. 
우리나라와 비슷하고 걍 도시일 뿐, 별다른 감동을 느낄 수 없었던 타이페이에서 24시간 동안 문을 열어둔다는 성품서점. 
(성품서점은 타이페이 여러곳에 있다는데 중샤오둔화역 가까이 있는 둔화점만 24시간 문을 연다.)
우리가 찾아갔던 시간이 오전 9시쯤이었는데 이미 서점안에는 사람들이 제법 많았다. 
책을 사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우리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서점을 곳곳에 진을 치고 있는 책읽는 사람들이었다. 
모퉁이 구석구석마다 자리를 차지하고 책에 열중하고 있는 사람들. 
아침에 왔을까? 아님 어제 저녁부터 계속 있는 것일까? 이 사람들은 지금 무슨 꿈을 꾸고 있을까?

2004년 뉴욕 타임지가 아시아 최고의 서점으로 선정했다는 곳. 문득 여기서 전주의 홍지서림을 떠올린다.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누군가의 꿈을 키워내기 위해 있다는 전주의 한 서점 덕분에 타이페이까지 와서 살짝 웃어본다. 

 



타이페이 성품서점(청핀수뎬, Eslite Bookstore)



전주 홍지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