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지금은 여행중 /10월 대만

그 할배, 웃음 하나 - 국립고궁박물관

프리 김앤리 2014. 10. 9. 10:00


<2014 10월 대만 여행 네번째 이야기>

런던의 대영박물관,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그리고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에르미타쥬 박물관과 함께 
세계 5대 박물관의 하나로 꼽힌다는 대만의 ‘고궁 박물관(구궁보우위안)’.
기대가 컸다.  

남편과 동행하는 여행에서 ‘박물관’의 의미는 참 크다.  
왜? 울 남편은 아주 아주 정말 정말 박물관을 좋아한다. 
여기나 저기나 다 똑같다고, 지친다고 이제 그만 나가자고 툴툴거려도 남편은 끄떡도 않고 꼼꼼히 읽어보고 뚫어지게 쳐다본다. 
그래서 어떤 때는 아예 혼자 들어가라고 내팽개치거나(?) 어떤 때는 나도 마음을 접고 집중한다. 
세계여행을 하면서 들어갔던 숱한 박물관에서 나와 남편의 관람 태도는 엇갈리거나 혹은 합쳐졌다. 
이스탄불의 고고학 박물관이나 피렌체의 우피치 미술관 같은 경우는 내팽개친 경우고,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이나 마드리드의 프라도 미술관 같은 경우는 도시락까지 싸들고 들어가서 마음잡고 집중해서 함께 봤다. 
그러니까 박물관 감상에 관한 한 우리는 ‘모 아니면 도’ 다. 

대만 고궁박물관은 ‘도’가 아니라 ‘모’이기로 했다.
칭찬이 자자했기 때문이다. 
꽃할배 대만 편을 보면 유럽에서 그렇게 심드렁하던 백일섭이 고궁 박물관에서만은 관심있게 집중하기도 했거니와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는 친구가 남편이랑 같이 간 대만여행을 말할때마다  고궁박물관에 안 간걸 후회(?) 한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해서 
나는 이번에 확실히 보고 오리라, 박물관 좋아하는 남편과 오랜만에 마음 맞춰서 꼼꼼히 보리라 마음 먹었었다. 

그런데 이번 대만여행은 왜 이리 삐걱거리는지…
중국의 쌍십절 휴가와 맞물려서 그렇나, 아니면 한국의 황금연휴와 겹쳐서 그렇나, 그도저도 아니면 원래 대만이라는 곳이 이렇게 비좁은 곳인가…
도무지 차떼기로 밀려들어오는 사람들 덕분에 숨쉴 틈이 없다. 
잠시 외곽으로 나간 예류, 진과스, 지우펀에서도 사람들 한테 떠밀려 다니고,  스린 야시장에서도 줄지어 늘어서 있는 사람들한테 질려버리고
시장만 돛대기가 아니라 박물관도 완전 돛대기다. 

여치 두마리가 살포시 앉아있는 배추를 조각해 놓은 취옥백채는 은은한 비취색에 정신을 잃고, 
수천년된 은나라(? 주나라) 제기 서주만기 모공정의 중후한 모양새와 안쪽에 새겨넣은 500여 글자를 보고 있으면 감탄에 감탄을 자아낸다는 데…
이거야 원, 
우선 작품을 가까이서 보기 위해 관객들 사이에 아귀다툼을 해야 하고 
정신을 잃기도 전에, 감탄을 자아내기도 전에 뒷사람에게 밀려 진열장 주변을 떠나야 하니 날벼락도 무슨 이런 날벼락이 있는건지…
작품을 제대로 볼수가 있나, 옆의 설명을 읽을 시간이 있기를 하나...
떼거지로 몰려와 왁자지껄 떠들면서 작품을 본둥 만둥 우루루 지나가는 단체 관광객들에게 화가 나고, 
돈버는 것도 좋지만 이렇게 밑도 끝도 없이 관람객을 밀어넣는 박물관 측에 화가 나고, 
이렇게 밀어 넣자면 '주요 작품들의 배치라도 잘 해 놓지’  3층에 집중한데다 관람실도 작게 만들어 둔 박물관의 무성의에 또 화가 나고…
장개석 군대가 중국에서 도망쳐 나오면서 소중한 유물들을 하나도 손상시키지 않고 잘 옮겨와 지금껏 잘 보존하고 있다는 사실에만 감사해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이것 때문에라도 대만을 한번 더 와야 할 것인지…

그래도 남들은 두어시간 정도면 보고 나간다는 고궁 박물관을 우리는 오후 한 나절을 다 바쳐 1~3층을 오르내리며 부지런히 이방 저방을 돌아다녔는데도 
뭔가 아쉽고 섭섭하고 화가 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이 대단한 작품들을 이렇게 밖에 감상할 수 없다니…

‘모’를 결심하고 찾은 박물관이 결국엔 또 ‘도’ 가 되어버리는 것 같아 억울해 하던 그 때쯤, 그러니까 박물관이 거의 문을 닫을 시간 쯤, 
아니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그렇게 시끄럽던 단체 관광객들이 어느 정도는 빠져나간 즈음,  
몇 번을 시도하다 사람들한테 떠밀려 못들어갔던 3층 방 한군데를 다시 찾았다. 
나무들을 정교하게 깍은 아주 작은 작품들이 모여있는 곳이었다. 
대추씨를 깍아서 만들었다고 해던가? 
황양목이라는 단단한 나무를 깍아서 만들었다고 했던가? 
확대경을 통해서만 볼 수 있는 아주 정교한 작품들. 

거기서 그동안 숨겨왔던 탄성을 한꺼번에 내뱉었다. 
대단하다!!!
작은 대추씨 안에는 소동파가 배를 타고 놀고 있었고 어떤 작품에는 말등에 아기가 놀고 있었다. 

그리고 그 할배!!!
팔 근육이 드러나고 가슴 뼈도 어깨 뼈도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는 대단한 작품. 
손가락 하나보다 작은 나무안에 웃통을 벗은 할배가 넉넉한 웃음을 띄고 있었다. 
저 조그만 나무를 깍아 저렇게 생생하게 조각을 했다니…

그 할배의 넉넉한 웃음 하나는 그토록 우리를 짜증나게 만들던 고궁 박물관의 모든 걸 충분히 보상하고 있었다. 








          



       

고궁박물관 내에서는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다. 

이 사진은 인터넷에 있는 사진을 가져온 것이다. 
복도에 단체관람객이 3층 복도에서 많이 기다리고 있는 사진은 아이폰으로 몰래 찍었다.
작품을 찍은 것도 아닌데 박물관안에서 사진을 찍는다고  관리자에게 혼이 났다.
작품을 찍은 것도 아닌데...
우리를 감동시켰던 그 넉넉한 웃음의 할배는 이 작품과 많이 닮기는 했지만 이건 아니다. 
닮아서 가져왔을 뿐, 복도에 걸려 있는 포스터 사진이라도 살짝 찍어오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 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