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지금은 여행중 /10월 대만

사람에게 떠밀려 다녔다. 예류, 진과스, 지우펀

프리 김앤리 2014. 10. 8. 20:15


<2014 10월 대만 여행 이야기 3>


사실 대만은 우리 여행 코스 중에 한참 뒤의 이야기였다. 
지금보다 훨씬 더 나이가 들어서도 갈 수 있는 곳,  다리에 힘이 있지 않아도 쉽게 갈 수 있는 곳, 심지어 꼭 안가도 되는 곳으로,
한참 뒷순위 여행지였다. 
그런데 올 여름, 잇달은 해외여행으로  무척 피곤해서(시차 극복도 예전같지 않은 것 같고…) 올 하반기에는 '꼼짝 않고 집에 있자는 주의’ 였다. 
아~~ 그런데 어쩌랴. 
시월 황금연휴가 눈 앞으로 다가오고 지금 아니면 또 언제 우리 둘이 함께 여행을 나가냐는 생각이 스멀스멀… 
그렇다면 '멀지 않은  가까운 곳으로 가자’가 최우선의 원칙이었다. 
그래서  고른 곳이 대만이었다. 

대충 고른 여행지지만 몇군데 손꼽히는 가보고 싶은 곳은 있었다. 
대만을 갔다온 사람들의 후일담이나 블로그에서 자주 등장하는 예류, 그리고 지우펀. 
바닷가에 버섯 바위가 불쑥 불쑥 솟아있는 낯선 풍경의 예류와 
비정성시니 온에어니 하면서 영화와 드라마의 단골 촬영지에 좁은 골목의 홍등이 켜지는 지우펀은 우리의 마음을 끌었다. 
안개비가 촉촉히 내리는 저녁 시간 붉은 등을 밝힌 지우펀의 모습이란… 
거기다 이집트 람세스 2세의 부인, 네페르타리를 꼭 닮은 예류의 여왕 버섯 바위가 붉은 노을을 받으며 그림자를 드리우는 모습에서는...


여왕 옆에는 서보지도 못했다. 예류

타이페이를 떠나기 전까지는 무척 들떠 있었다.  
서울이나 부산같은 걍 우리나라 도시와 전혀 다를 바 없는 타이페이에 실망한 우리들은 그래도 도시를 벗어나면 좀 낫지 않을까 기대했다. 
게다가 오랜 세월의 바람과 파도가 만들어놓은 독특한 바위들이 불쑥불쑥 솟아있다질 않는가!

타이페이에서 예류까지 버스 한시간, 그리고 바닷가 길을 따라 걷는 이십분여 거리. 
비릿한 바다냄새가 났다. 갓 잡은 갈치를 다듬고 있는 어부들의 바쁜 손길이 우리를 들뜨게 했다. 
‘그래, 역시 도시를 벗어나야 해, 이게 여행이야~~~’

그러나 악! 
예류공원 입구에서 우리는 비명을 지르지 않을 수 없었다. 
차떼기로 실어날라온 수많은 사람들, 따따따따 시끄러운 중국말 소리에 모든 것이 묻히기 시작했다.  
조용한 바닷가 길도, 비릿한 바다냄새도 그리고 이른 아침 어부들의 바쁜 손길도… 
티켓을 어떻게 구입했는지도 모르게 우리들은 떠밀려 예류공원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촛대바위, 버섯 바위, 여왕의 신발… 
온갖 이름의 바위들이 있다는데 제대로 감상할 분위기가 안되었다. 
사진 한장을 찍으려고 하면 누군가가 훅~ 지나가고, 바람 한 번 느끼려고 하면 사방천지에 시끄러운 소리였다.  
바닷가 길로 난 나무 데크를 걸으면서 천천히 수만년 걸린 자연의 위대한 작품을 감상하고 싶었으나 그건 애시당초 불가능한 일이었다. 
햇살이 드는 네페르타리를 오랫동안 감상하고 멋지게 카메라에 담아보고 싶었으나  
길게 늘어선 줄에 공장에서 뭐 찍어내듯 "다음 다음!"하며 여왕 옆에 살짝 붙어 섰다가 몇 초만에 착착 그 옆을 떠나야 하는 끔찍한 장면 때문에 
나는 여왕 옆에 서보지도 못했다.  ㅠㅠ

결국 우리가 선택한 길은 예류공원을 크게 도는 한적한 길. 
그 곳은 새들이 모여드는 곳이라나??? 
덕분에 파도에 철썩이는 두부바위도 보고,  조용히 숨죽이고 앉아 새를 기다리고 있는 작가들을 만날 수는 있었다. 





<네페르타리 옆에는 서보지도 못하고... >





광부 도시락은 먹어보지도 못했다.  진과스 

진과스는 폐광촌이다. 
한때는 아시아 최고의 금광이었다는 진과스는 원래 2차대전 당시 악명높은 일본군 전쟁포로 광산이었다. 
일본 식민지하의 광산에서 철로공사를 하다가 우연히 금광을 발견하여 급속하게 발전한 마을이었다. 
그러나 금맥이 메말라가자 사람들은 하나 둘씩 떠나가고 쓸쓸한 폐광촌으로 남게 되었던 곳. 
이후 대만 정부는 한때는 화려했던 마을, 진과스를 관광지로 재개발하여 요즘은 인기를 끌고 있는 곳이다.  
그렇게 된 배경에는 진과스 마을의 아름다움 덕분이었다.
 바다가 바라보이는 아름다운 산악 마을, 광산촌일 당시 일본인들이 지어놓은 일본식 집들과 정원, 
그리고 산위에 놓여진 외로운 철도… 
여행자의 마음을 끌기에 충분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예류에서 진과스를 가기 위해서는 지롱까지 우선 한시간의 버스를 타고 가야 한다. 
다음은 다시 한시간 정도의 버스로 진과스 마을. (버스 한구역 전이 지우펀이다.)

아름다웠다. 
수려한 산세에 싱그러운 공기,
일본 태자가 머물렀다는 깔끔한 집과 아담한 정원, 금을 실어날랐던 작은 철길과 아담한 골목길들.  
수십억 간다는  금덩어리를 직접 만져보는 영광까지… 
진과스는 좋았다, 참 좋았다. 

그런데 배가 고팠다. 이른 아침 타이페이를 떠나와 먹은 거라고는 겨우 비스켓 몇 조각. ㅋㅎㅎㅎ 
'그래도 괜찮아, 여기와서는 꼭 먹어봐야 한다는 광부도시락이 있잖아! 
 돼지고기 튀김을 얹은 돈가스 덮밥을 옛날 광부들이 먹던 것 처럼 도시락에 담아주는 운치가 있다잖아??’

그러나 웬걸~ 여기도 줄이 어디까지 늘어서있다. 한시간을 기다려도 못먹을 판이다.  
할 수 없이 옆에 있는 다른 레스토랑을 찾았지만 여기는 오늘 사람들이 너무 많이 와서 더이상 팔 밥이 없단다. 
ㅠㅠㅠ  
아~~~ 대만에는 먹을 것 천지라더니만 왜 이리 배가 고픈 것이야~~~




홍등을 기다리기에는 시간이 너무 걸렸다.  지우펀

여왕바위 옆에는 서보지도 못하고, 광부도시락은 먹지도 못하고 우리는 지우펀으로 향했다. 
떼지어 들어오는 대형 관광버스들이 아슬아슬하게 지나가는 좁은 산비탈길을 만원 버스에 끼어타고 지우펀으로 겨우 들어왔다. 

으아아~~~ 사람들이 너무 많다.  
좁은 지우펀 길은 사람들로 꽉 메워졌다. 
걸어가는 것이 아니라 떠밀려가는 판이다. 
길 양쪽으로 앙증맞은 가게들도 있고 그냥은 결코 지나칠 수 없다는 온갖 간식거리가 있는 지우펀이라고 했는데 제대로 구경을 할 수도 멈춰 설수도 없다. 
게다가 코를 찌르는 취두부 냄새. 

배는 고픈데 선뜻 마음먹고 들어가고 싶은 식당이 없다.  너무 정신이 없다. 
중국 사람들은 그 와중에 길거리에 서서 혹은 식당을 비집고 들어가 뭔가를 잘도 사먹고 있는데 우리는 엄두가 안났다. 
겨우 사람들이 적게 있는 식당을 찾아 들어갔지만… 역시 사람이 적은데는 이유가 있었다. 
맹물에 말아주는 듯한 비릿한 국수 한 그릇과 취두부 냄새가 역한 만두를 씹는 듯, 삼키는 듯 거의 버리는 수준으로 후루룩 먹고 일어서는데 그 허탈감이란. 

‘그래, 그래도 여기서는 홍등이 켜지는 걸 보면 성공이야! 
 다른 건 몰라도 영화에서 보듯 해지는 저녁 시간이 오면 이 좁은 골목길 아래로 붉은 등이 하나둘씩 켜지겠지… 
 그걸로 모든 걸 용서하자. ‘  
커피 한잔을 시켜놓고 한참을 기다렸다. 
그래도 시간이 가질 않아 복잡한 지우펀 길에서 살짝 벗어나 사람들이 별로 없는 옆길로 빠져나가 산동네 지우펀을 구경했다. 
해는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었다. 
이제는 홍등이 켜질까??? 우쒸~~~ 왜 이렇게 등을 안켜는 거야. 
그래, 그런 거였다. 
지우펀에 오는 사람들은 누구나가 홍등이 켜지길 기다린다. 
그리고 불이 하나둘씩 켜지면 경쟁적으로 사진들을 찍고 다시 우루루 빠져나가버리는 거였다. 
그러니까 등을 빨리 켜면 사람들이 빨리 빠져나가 버린다는 약점이 있는 곳. 지우펀의 가게들은 천천히, 아주 천천히 불을 밝혔다. 
그래야 사람들이 좀 더 오랜 시간동안 지우펀에 머무를 테니까…

보기는 봤다. 아주 오랜 시간을 기다려 지우펀의 그 좁은 골목길에 홍등이 켜지는 걸. 
예뻤다.  영화에서처럼 드라마에서 처럼.  예쁘기는 예뻤다. 
...
그런데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뭔가 촉촉한 감성을 느끼기에 지우펀 역시, 실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