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지금은 여행중 /1월 이탈리아

산 마르코 성당의 그림 읽기

프리 김앤리 2016. 12. 2. 17:00

 

< 2017년 1월 투어야여행사 단체배낭, 품격 이탈리아 여행  준비 2>

 

베네치아의 산 마르코 성당(Basilica di San Marco)는 마가(마르코) 복음의 저자, 성 마르코의 유해가 안치된 성당이다.

서기 830년경 공사를 시작해 몇 번의 재건축 끝에 1094년 완공된 건물로 지금까지 남아있는 후기 비잔틴 교회 가운데

가장 크고 사치스럽게 장식된 성당으로 알려져 있다. 성당의 정면은 불꽃 모양의 아치와 고딕 스타일이 혼재되어 있으며

아름다운 대리석에 금빛 배경을 지닌 화려한 모자이크 벽화로 장식되어 있어 이 성당이 지어질 당시 베네치아 공국의 부와 힘을 느낄 수 있다.

성 마르코의 유해는 성당 안의 정면으로 걸어들어가면 오른쪽(발다키노) 옆에 있다.

 

그런데 이 성당을 짓게 된 배경에는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다.

 

중세의 베네치아는 강력한 힘을 자랑하던 도시국가였으나, 그 도시의 수호성인인 성 마르코의 유해를 모시지 못하고 있었다.

성 마르코는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서 전도활동을 하던 중 이슬람 교도들에게 살해를 당하여

당시 이집트에 살고 있던 기독교인들이 그가 세운 알렉산드리아의 성당에 묻어주었다.

이후 이슬람교의 칼리프(이슬람교의 종교적 최고 권위자)가 알렉산드리아에 거대한 이슬람 궁전을 세우기 위해

성 마르코가 묻혀있던 성당의 기둥을 뽑아쓰도록 명령, 성 마르코의 무덤이 훼손될 위험에 처하였다.

마침 알렉산드리아에 살고 있던 베네치아의 상인들이 이 사실을 알고 성 마르코의 유해를 가져갈 수 있도록 교회의 성직자들에게 도움을 청하였다.

당시 성당의 지하 묘지에서 성인의 유해를 찾는데 마르코 성인이 현시하여 자신의 위치를 알렸다고 한다.

( 그 상황을 묘사한 그림이 틴토레토의 ‘성 마르코 유해의 피신’이며 이는 베네치아 갤러리아 델 아카데미아에 소장되어 있다. )

 

성인의 유해를 옮긴다는 것은 매우 위험하면서도 숙명적인 일이기에 철저히 비밀에 부쳐야 했다.

우선 이집트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눈을 피하려고 성인의 유해를 다른 사람의 시신으로 위장하고,

또 세관원들의 눈을 속이고자 유해의 가슴 부분에 사라센 사람들뿐 아니라 유대인들도 혐오하는 햄과 돼지고기를 넣었다.

유해의 가슴을 열어젖힌 항구 세관원은 그 속의 햄과 돼지고기를 보고 혐오감에 치를 떨며 얼굴을 돌리고는 그 시신을 당장 배에 실을 것을 명했다.

이렇게 해서 성인의 유해는 별 탈 없이 배에 오르고 베네치아를 향해 무난한 항해를 할 수 있었다. 서기 827년의 일이다.

 

베네치아로 옮겨진 성 마르코의 유해의 안치도 그리 평탄하게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성마르코의 유해가 베네치아에 도착하자 베네치아의 총독은 자신의 욕심 때문에 그 유해를 총독성에 안치하기를 명령했다.

그러자 유해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겁에 질린 총독이 경의를 표하고 그 자리에 성당을 짓겠다고 하자 그제서야 유해가 움직였다고 한다.

그 자리에 지은 성당이 바로 베네치아의 성 마르코 성당이다.  

 

베네치아의 성 마르코 성당의 입구에는 당시의 상황을 설명한 거대한 모자이크가 그려져 있다.

 

<왼쪽 그림> 돼지고기와 햄으로 감싼 성 마르코의 유해를 보고  피하는 이슬람 교도들의 모습.

                  그들은 어서 물건(?)에서 달아나며 어서 빨리 배에 실으라고 명령하고 있다.

<오른쪽 그림>성 마르코의 유해를 싣고 지중해를 건너는 배를 묘사하고 있다.

                                                                                            

<왼쪽 그림> 베네치아 총독의 욕심에 의해 유해를 총독성에 안치하기로 명하자 마르코 성인의 유해가 꿈쩍도 하지 않는 것을 묘사한 모자이크.

<오른쪽 그림> 산 마르코 대성당으로 옮겨지는 마르코 성인의 유해.

 

 

 

<참고> 틴토레토의 ‘성 마르코 유해의 피신’   - 베네치아 갤러리아 델 아카데미아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