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지금은 여행중 /1월 이탈리아

부르노, '진실'을 말하라!

프리 김앤리 2016. 12. 26. 15:00

< 2017년 1월 투어야여행사 단체배낭, 품격 이탈리아 여행  준비 30>

 

이번에 같이 여행을 떠나는 이쌤의 문자.

 "로마에 가믄 '조르다노 브루노' 동상 보고시포요~~~"

나의 답변.

 "헉!!! 역시 선생님도 조르다노 브루노!!!

  울 남편은 이탈리아 가서 브루노 동상 하나 사오라고 똑 부탁하던걸요.

  역쒸!!!!!! 선생님~~~"

  

 조르다노 부르노(Giordano Bruno, 1548~1600), 그는 자신이 생각하는 진리를 위해 목숨까지 내 놓은 사람이다.

 어떤 권력이나 폭력에도 굴하지 않고 자신의 신념과 확신을 끝까지 주장한 사람이다.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                                 조르다노 부르노                                          갈릴레오 갈릴레이

(Nicolaus Copernicus, 1473~1543)               (Giordano Bruno, 1548~1600)                   (Galileo Galilei, 1564~1642)

 

'태양이 지구 주위를 도는 것이 아니라,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돌고 있다'는 '지동설.

코페르니쿠스가 지동설을 처음 발표한 것이 1543년, 갈릴레이가 지동설로 재판을 받았던 것은 1633년, 조르다노 부르노는 그 사이에 있었던 사람이다.

조르다노 부르노는 과학자가 아니라 수도사였다.

그러나 이단으로 몰려 교단에서 쫓겨나 제네바로 파리로 그리고 영국이나 독일 등지를 다니면서 자신의 의견을 개진했다.

그는 당시까지도 신을 부정한다고 금기시되던 '지동설'을 주장하였으며  특히 종교적인 신앙에 의해서만 인간이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에 반대하면서 인간의 모든 활동이 존엄하다는 주장을 해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더욱이 그는 서로간의 이해와 토론의 자유를 바탕으로 모든 종교의 평화 공존을 추구했을 만큼 당시의 기독교 신앙에도 아주 자유로웠다.

결국 그는 이단죄로 종교재판소에 회부되어 로마 교황청 소속 감옥에서 7년간의 시달림을 받아야 했다.

그는 '지동설'을 비롯한 자신의 의견을 무조건 철회하라는 재판관에 맞서 자신의 의견을 굽히지 않았다. 

이에 교황 클레멘스 8세는 그를 회개할 줄 모르는 고집 센 이단자라고 칭하고 화형에 처할 것을 명령하였다.

부르노는 몸을 묶은 기둥아래 장작더미가 불타오르는 화형대에서도  “선고를 받는 나보다 선고를 내리는 당신들의 두려움이 더 클 것이오.”라는 말을 남기고 입에 재갈을 물린 채 불에 타 죽었다.

그가 불에 타면서 죽어가고 있을 때 참된 신앙인들은 그에게 십자가를 전해 주었지만

그는 스스로 선택한 죽음 앞에서 이를 거부함으로써 자신의 신념을 끝까지 지켰다. 1600년의 일이다.

마찬가지로 지동설을 주장했던 갈릴레이 갈릴레오가 재판을 앞두고 지동설을 포기하고 풀려나면서

'그래도 지구는 돈다'는 말을 중얼거렸던 것은 그로부터 30여년이 지난 후의 일이다.

 

지동설에 관한 한, 우리는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이만 기억하고 있지만 그 사이, 자신의 몸을 불사르며까지 신념을 굽히지 않았던 부르노 라는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자신의 과학적 지식을 언젠가는 사회가 받아들일 것이라고 믿고 신념을 포기한 과학자 갈릴레이가 후대에 과학적 영향력을 발휘했다면, 브루노는 신념을 포기하지 않는 자유인의 모범을 보이며 사상의 자유를 상징하는 존재로 남았다.

그런 까닭에 그는 순교자란 명성을 얻기도 했다. 신앙의 순교자가 아니라 ‘자유로운 사고’의 순교자로서 말이다.

 

로마의 캄포 디 피오리 광장은 자신의 확신을 끝까지 지킨 조르다노 부르노가 화형을 당했던 장소.

그 곳에가면 '자유로운 사상의 순교자' 조르다노 부르노의 동상이 놓여있다.

2107년 1월 17일 저녁, 우리는 그를 만나러 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