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지금은 여행중 /10월 일본 시코쿠

길에서 만난 사람들

프리 김앤리 2015. 12. 10. 10:28


시코쿠 순례 여섯번째 이야기

 

'후쿠시마'는 시코쿠 순례길에서 가장 힘들다는 쇼산지를 오르는 산 위에서 만났다.

수줍은 미소를 띄우는 카나자와 출신의 23살 청년이다.

그와는 쇼산지 아래 쓰다찌관에서는 같이 묵었고 시시쿠이 해변 목욕탕안에서 만났고(물론 울 남편이랑 ㅋㅋ) 다노역 앞의 미소노 집에서 다시 만났다. 태평양을 끼고 있는 시시쿠이 해안은 거친 파도를 타는 서퍼들이 가득했는데 그도 하루는 서핑을 즐긴다고 했다.

서핑으로 우리보다 하루 일정이 늦었는데 미소노 젠콘야도가 워낙 좋아서 우리가 하루 일정을 거꾸로 돌려 하루 더 묵는 덕분으로 다시 만나게 된

귀한 인연이다. 시코쿠 순례의 88개 절을 다 걸을 예정이라 12월 초까지도 시코쿠 길 위에 있을 수줍은 청년.

 

'민나미'는 순례길 첫날, 깜깜한 밤에 처음 만났다.

7번절 앞의 이시다 민숙에 집을 풀고 목욕, 저녁까지 다 끝내고 이미 잠자리에 든 시각이었다.

주인 할머니 이시다도 진작 주무시러 본 집으로 떠났고. 밖은 깜깜한데 초인종이 계속 울리는거다.

망설이다 문을 열어줬다. 땀벅벅이 된 순례자였다. 예약을 해놓았다는 말에 주인처럼 안으로 들어오게 했다.

몇번씩이나 '아리가도 아리가도!' 를 말하며 옆집에서 자고 있던 주인 할머니를 전화로 깨우는 걸 보며 우리는 다시 잠자리로.

다음날 우리의 숙소는 11번 절 근처 비지니스 호텔이었다.

오후 2시쯤 도착, 체크인 후 낮잠도 한번 자고, 목욕도 하고 밖에서 저녁까지 다 끝내고 다시 호텔로 돌아오는 데 온 몸은 땀에 젖고 지팡이에 의지한 채 다리를 약간 절룩거리며 들어가는 순례자 한 명이 보였다. 민나미였다. 우리보다 한참 늦은거다.
"아~~ 다리가 약간 불편해서 어제도 늦게 도착한거구나~~"
악명높은 쇼산지 산길에서는 우리보다 앞선 민나미를 만났다. 우리보다 훨씬 일찍 출발했나보다.

산 위에서 사진 한 장 같이 찍고 우리가 앞서 내려왔는데(그날 저녁 그의 숙소도 쓰다찌관) 우리가 도착하고도 네 시간도 더 지나 온 몸을 땀으로

휘감은 채 그는 나타났다. 어두운 산길이 걱정되서 저녁 먹으면서 한번 올라가볼까하는 생각을 하고 있던 참이었다.
그는 지금 우리보다 한참 뒤에 있을꺼다.

지금도 어느 길위에서 천사같은 얼굴을 하면서 "다이죠부, 다이죠부(괜찮아, 괜찮아)" 하면서 걷고 있을 것이다.

 

'레스'는 미국인. 63살, 자전거 순례자다.

방을 못구해 어렵게 찾아낸 무료 젠콘야도, 기쿠야 민박에 해가 다 져 버린 늦은 시간 그가 들어섰다.

안내해주는 동네 사람이 우리더러 영어가 가능하다면 방을 나눠쓰라기에 당연 OK! 무료 숙소는 나눠쓰는 게 원칙이자 예의!
'고이치'는 기쿠야 민박 근처에 사는 동네 사람. 기쿠야 젠콘야도에 오셋타이로 감을 가져다 놓은 이웃이다. 젠콘야도에 불이 켜진 것을 보고 왔단다.
졸지에 한국인, 일본인, 미국인이 한 자리에 모인 거다.

젠콘야도 안에서는 맥주 금지라고 써 붙여 놓았는데 고이치가 오히려 맥주 한 캔씩을 오셋타이(접대) 로 내 놓고 이야기판이 벌어졌다.

말 많은 레스의 이야기를 남편이 더듬더듬 일본어로 통역하고 고이치 이야기를 남편이 설명해주면 내가 영어로 레스에게 전달한다.

한국어, 영어, 일본어 거기다 각종 바디 랭귀지까지...

그래봐야 어디서 왔냐? 나는 일본 어디 가봤다, 거긴 어떻더라, 거긴 뭐가 유명하다.... 이 정도의 이야기였지만

한 캔의 맥주가 다 떨어져버릴까봐 맥주를 베어먹으며 시간을 아낄만큼 재미있는 시간이었다.
자전거로 순례하면 18~20일 정도면 시코쿠 순례길을 다 갈수 있다 했으니니까 레스는 이제쯤 끝났을라나??

샌디에고에 산다며 미국 오면 꼭 연락하라며 명함까지 주고 갔는데...

60이 넘어서도 자전거 하이킹에 세일링에 패러글라이딩, 가라데까지 각종 액티비티를 즐기는 무한 에너지의 레스...

ㅋㅋ 그런 그도 잠결에 언뜻 본 주먹만한(그가 이렇게 표현했다) 바퀴벌레를 보고 놀래서 그 새벽에 밖에 텐트를 칠수 밖에 없었다는 사실.

ㅋㅋ 새벽이슬로 퉁퉁부은 얼굴을 한 채 아침에 우릴를 보고 하는 말,
 "니네들은 너무 잘 자고 있어서 깨울 수가 없었어, 미안. 나만 밖에 나가서 자서...

 아마 니네들도 그 주먹만한 바퀴벌레를 눈으로 봤다면 거기서 잘 수는 없었을꺼야... ㅋㅋㅋ"

 

'이 친구'의 이름은 모른다.
22번 뵤도지 근처에는 민박이 딱 하나밖에 없는데 거기는 이미 full. 10km는 더 걸어가야 하나 고민하며 터덜터덜 걷다가 만난 친구였다.

이 근처에 무료 젠콘야도가 있다해서 마주 걸어오는 이 친구에게 물었더랬다.

기쿠야라는 게 있다는 정보만 받은 채 어디로 가야하는지 모른 채 그대로 우리 길을 걸어갔다. 

이동네에서 방을 못구하면 10km는 더 걸어야했으므로 마음이 급했다. 제법 걸었다.

갑자기 등 뒤 저 멀리서 우리를 부르는 소리가 들리며 이 친구가 달려오는 거다. 기쿠야를 찾았다며.

한 걸음이라도 아끼는 순례자에게 가던 길을 거꾸로 온다는 것은 죽음이다. 근데 500m 이상을 되돌아온거다. 순전히 우리를 위해서.

다시가야하니까 1km나 되는 어마무시한 낭비!!! 기쿠야 주인한테 가서 우리 사정을 이야기해주고 방까지 안내했다.

오늘 어디서 잘거나고, 이 근처에 방도 없는데 여기서 같이 자자는 우리의 제안에 자기는 시코쿠 순례 전체를 노숙할 거라며 쿨하게 제 갈 길을 가버린 청년.  지금쯤 어느 길을 걷고 있을까?

 

이름은 들었는 데 까먹었다. 23번절을 떠나 무로토까지 75km의 지겨운 길을 걷다 거리 휴식소에서 만난 사람.

나고야에서 왔다는 '63살의 아저씨'.

거리에서 만난 일본인 대부분은 거의 영어를 못했는데 그래도 이 분은 제법 말이 통했다.

나이 마흔부터 꿈꾸어오다 이제서야 이 길에 나섰다며 아주 행복해하던 분이셨다.

예순을 넘긴 나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 선한 얼굴에 청바지도 아주 잘 어울리는 젊은 오빠!

 

'미소노 야마모토'. 다노역 근처에 있는 젠콘야도의 주인이다.
원래 계획은 27번 절 아래에 있는 민박집들이었다. 5km쯤 남겨놓은 다노역 앞에서 전화를 넣었는데 모두다 full 이란다.

27번절 아래는 고사하고 다노역 근처의 민박집도 다 풀~이다. 다시 10km쯤 돌아가거나 아니면 기차를 타고 뛰어 넘어가야 하는 난감한 현실.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들어선 미치노에끼(길의 역. 슈퍼+식당+ 간혹 인포메이션 센터)에서 알려준 집이 미소노 젠콘야도다.

그런데 만족 만족 대만족! 아침과 저녁두끼 식사 포함 2500엔에 집 근처에 천연온천, 나무로 지은 평범한 일본 가정집에서 집밥까지.

음식솜씨 짱, 영어 능력 짱. 모든 것이 완벽했다. 지금도 초등학교에서 방과후 영어 선생님을 하고 있는 미소노는 말하는 것을 워낙 좋아해서 쉬지않고 말을 붙여왔다. 저녁 밥을 먹으면서도 원래 내놓은 음식에다 이것도 더먹어볼래? 이건 어때 하며 사시미도 내어놓고 정어리 구운 것, 다랑어 찐 것들을 계속 선보였다. 방을 못구해 난감하는 오후의 상황과는 대반전이었다.

다음날 우리가 25km를 걸어 아키역까지 갔다가 되돌아와 하룻밤을 더 묵고 다음날 아침 기차로 아키역까지 가서 다시 시작하게 만든 건 순전히 미소노 때문이었다. 덕분에 한번 더 후쿠시마를 만나는 행운도!!!
그녀는 자기집으로 되돌아오는 우리를 아키역에서 픽업해서 어릴 때 자기가 살던 집, 일본풍이 그대로 남아있는골목과 미쯔비시사를 세운 야타로 생가까지 안내하는 등 개인 가이드를 자처했다.
유쾌 상쾌 통쾌 미소노 야마모토. 오늘도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순례자들을 즐겁게 만들고 있겠지?

 

지금은 36번절 쇼류지 옆에 있는 국민숙사입니다.
태평양이 훤히 내려다 보이는 산 위의 아주 멋진 숙소입니다.
1번절 료젠지부터 36번절 쇼류지까지 어제 저녁으로 모두 372km쯤 걸었습니다.

순례길에 나선지 꼭 15일째였습니다. 이번 순례는 여기까지...       - 2015년 10월 31일 

 

 <쇼산지에서 만난 후쿠시마>

 

< 미소노 집에서 다시 만난 후쿠시마 >

<지금쯤은 시코쿠 순례길을 끝냈겠지??? 의지의 민나미>

 

<기쿠야 젠콘야도에서 뭉친 삼국. 한국인 남편과 미국인 레스, 일본인 고이치>

 

< 마흔부터 꿈꾸던 길에 드디어 나선 63살 청년(?) >

 

< 가던 길을 한참 되돌아와 길을 알려주던 착한 청년 >

 

<유쾌 상쾌 통쾌 미소노 야마모토. 그녀의 맛있는 부엌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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