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지금은 여행중 /1월 이탈리아

폼페이 관람 효율 동선

프리 김앤리 2016. 12. 27. 19:57


< 2017년 1월 투어야여행사 단체배낭, 품격 이탈리아 여행  준비 33>




                                   



2. 마리나 문 (Porta Marina)

포르타 마리나는 이탈리아어로 '해변의 문' 이라는 뜻.  화산 폭발 이전의 폼페이는 해안 절벽에 형성된 마을이었다.

화산 폭발로 베수비오화산 반경 30km까지 화산재로 묻히고 육지가 바다쪽으로 1.2km나 늘어나면서 지금의 폼페이는 바다에서 떨어진 도시처럼 보이게 되었다. 포르타 마리나 주변에서는 내륙에서 흘러온 사르노강의 흔적과 선착장의 모습을 찾아 볼 수 있다.

성문은 큰 문과 작은 문으로 나뉘는데 당시 마차가 다니던 길과 사람이 다니던 길을 구분해 놓은 것이다.


5. 바실리카 (Basillica)

폼페이의 여러 공공 건축물 가운데 2층까지 남아있는 유일한 건축물이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바실리카다. 바실리카는 주로 시민을 위한 장소였으며 당시 2층에서는 법정 소송사건이 다루어졌다. 기둥과 기둥 사이 노천 마당은 시장이 들어섰던 곳으로 물건을 사고 팔며 각종 거래를 한 계약의 장소였다. 바실리카의 건물 구조는 중세 이후 성당의 건축 양식으로 자리잡았고 그 결과 지금은 규모가 큰 성당을 바실리카라고 한다.


4. 포럼 (Forum)

직사각형 모양의 광장. 쥬피터 신전, 시장, 목욕탕 등 공공의 건축물로 둘러 싸인 폼페이의 중심지이다. 현재는 모래바닥이지만 나폴리 북쪽 카세르타 궁전을 장식하기 위해 무분별하게 돌을 훔쳐가기 전까지는 흰 대리석이 전체를 덮고 있던 매우 아름다운 장소였다.


6. 아폴로 신전 (Tempio di Apollo)

아폴로(아폴론)와 그의 쌍둥이 여동생 디아나(아르테미스)를 모시는 신전. 정면에 흰색 제단과 14개의 계단이 보이는데, 계단 위에는 총 28개의 기둥이 건물 지붕을 받치고 있었다. 지붕과 기둥은 모두 손실되었고 지금은 정면에 있는 2개의 기둥만 복원되었다. 계단을 등지고 왼쪽에 있는 궁수의 신 아폴로 상은 활을 쏘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아폴로 상 맞은 편에는 사냥의 여신인 디아나 상이 전시돼 있다. 둘 다 모조품이며, 진품은 나폴리 국립 고고학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7. 곡물 창고 (Granai del Foro)

예전에는 곡물 창고였으나 지금은 발굴된 유물을 임시로 보관하는 장소로 이용되고 있다.  화산 폭발 당시 부드러운 화산재에 묻힌 채 오랜 시간이 흘러 시신은 썩어 없어졌지만 화산재는 그대로 굳어지면서 생겨난 공간에 고고학자들이 석고를 부어 굳힌 뒤 주변 화산재를 제거하는 방식으로 만들어 낸 석고본 들이다.이중 가장 강렬한 인상을 주는 것은 숨통을 조여오는 화산재와 가스 속에서 얼굴을 있는 대로 찡그린 어느 노예 소년이 굳은 몸이다. 그 옆에는 노새가 똑같은 표정으로 '동작 그만'을 하고 있다.

멀리 있는 베수비오스 산을 한번 바라보자.


73. 대중목욕탕 (Termo del Foro)

지중해 전역에 분포된 수많은 로마시대 목욕탕 가운데 가장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는 목욕탕이다. 하루 일과가 오후 2시면 끝나는 로마시대 사람들은 하루를 목욕탕에서 마감하였다고 한다. 당시에는 목욕 문화가 굉장히 발달해 있어 로마인들은 청결의 중요성을 일찍부터 인식하였으며 자연스레 도시도 항상 깨끗하게 관리했다. 이러한 이유로 로마제국 시대에는 큰 전염병이 돌았다는 기록을 찾아 볼 수 없다. 또한 목욕탕은 단순히 목욕만 하던 시설이 아닌 휴식과 체력 단련을 함께 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목욕탕 내부에는 실제 체력 단련실과 휴게실의 모습도 살펴 볼 수 있다.


85. 비극 시인의 집(Casa del Poeta Tragico)

당시 중산층의 생활 수준ㅇ르 알 수 있는 곳. '비극 시인의 집'이라는 명칭은 정원에서 비극 시인을 묘사한 모자이크가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현관 입구 바닥을 보면 귀와 발톱을 바짝 세운 개의 그림과 라틴어로 '개조심(Cave Canem)'이라는 경고문이 쓰여 있어 당시 폼페이 인의 지혜와 위트를 느낄 수 있다.


84. 선술집(Thermopolium)

선술집은 예나 지금이나 시내 곳곳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곳으로, 유동인구가 많은 중요 길목을 당시에도 차지하고 있다. 약간의 턱이 보이는 데 여기에 여러 종류의 술과 음료를 진열해 놓고 손님에게 팔았을 것으로 본다. 손님을 그것을 들고 안으로 들어가 화덕에서 막 구워낸 동그란 밀가루 빵과 같이 먹으며 고된 하루를 마무리 했을 모습을 상상해 볼 수 있다. 선술집은 로마시대 가장 서민적인 장소였고, 이곳에서 팔던 음식 또한 당시 가장 대표적인 음식이었다. 폼페이에서는 여기 말고도 여러곳에서 이런 선술집이 발견된다.


74. 파우노의 집(Casa del Fauno)

당시 귀족의 저택. 이곳에서 발견된 약 50cm 크기 청동상 (목축의 신 파우노(판))의 이름을 따서 파우노의 집이라고 부른다. 목신 파우노는 춤과 음악을 좋아하고 여성을 밝히는 호색한으로 유명하다. 입구에는 영어로 'HAVE' 라고 쓰여있는데, 라틴어로 '어서 오세요' 정도의 뜻을 담고 있는 말로 '아베'라고 읽는다.  파우노의 집은 집주인 가족을 위한 안뜰과 창고, 신전, 노예들의 집이 있는 바깥 뜰로 구분된다.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바닥에 장식된 모자이크로 기원전 330년에 알렉산드로스 대왕과 페르시아의 왕 다리우스 3세가 결전을 벌였던 이수스 전투 장면을 표현하고 있다. 돌을 쪼개서 만든 이 모자이크화는 발전된 로마시대 미술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작품으로 같은 색깔이지만 명암을 다르게 하여 입체감과 사실감이 느껴진다. 원작은 나폴리 국립고고학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64. 창녀촌(Vicolo del lupanare)

화산폭발로 폼페이가 화산재에 묻힐 당시의 폼페이 인구는 약 2만이었다. 도시 규모로 보면 상당히 작지만 도시 안에 집창촌이 무려 21개나 발굴되었다. 이곳에서 일하는 직업여성들은 투표권은 없어도 유세권을 가지고 있었으며, 당당히 세금을 내면서 하나의 직업으로 인정받았다. 이곳은 폼페이의 수많은 창녀촌 중에 가장 대중적인 곳으로 10여명의 직업 여성이 종사하였는데 국적은 로마, 그리스, 아프리카 등으로 다양하였다. 여러 지역 출신의 여성들이 일을 하였고, 다양한 국적의 손님이 찾아왔으므로 의사소통이 어려웠을 것이다. 그래서 각각의 방 위에는 야화를 그려놓아 손님은 그림을 보고 원하는 방으로 찾아 들어갔다.


23. 24. 대극장, 소극장 (Teatro)

5천명을 수용할 수 있는 반원형 극장. 그리스 2대 서사시 '일리아드'와 '오디세이'를 공연하기 위해 세웠다. 그리스 인들은 언덕의 지형을 이용해 노천극장을 만들었고 시와 음악의 경합을 다투었다.

대극장의 무대 뒤쪽으로는 회랑으로 둘러쳐져 있는데 이곳은 당시 공연을 하는 검투사나 공연자들의 대기 공간이었다. 대극장 옆에는열린 소극장 "오데온 극장'이 있다.


25. 검투사 양성소 (Caserma del Gladoatori)

원래는 체력단련장으로 지어졌으나 서기 58년 네로 황제가 본격적으로 검투사 경기를 활성화시키면서 검투사 양성소로 용도가 바뀌었다. 날씨가 좋고 식량이 풍부하여 로마시대부터 휴양지로 각광받던 이탈리아 남부는 로마 귀족들의 눈요기를 채우기 위한 검투경기가 활성화 되어 도시마다 수많은 검투사 양성소가 있었다.

 - 이탈리아 가이드 북 『이탈리아 여행백서』 『이탈리아 데이』에서 부분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