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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69 (5월 15일) 2500년만에 만난 아!!! 페르세폴리스

프리 김앤리 2009. 5. 17. 00:32

 

2500년전 이 땅에는 위대한 제국이 있었습니다.

페르시아 제국입니다.

BC 550년경, 오늘날 이란의 쉬라즈 근처 파사르가다, 페르세폴리스에 제국의 수도를 만들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키루스대왕(CYRUS , 사이러스라고도 불리운다)입니다.


키루스대왕은 페르시아제국을 건설했지만,

정벌한 나라의 문화와 종교도 인정하는 인간적이고 포용력있는 왕으로 존경을 받았으며,

우리가 세계사에서 배운 “바빌론유수”의 주인공이기도 합니다.

바빌론을 정복한 키루스는 노예로 잡혀있던 수많은 유태인을 해방시켜 예루살렘으로 돌려보냈기에,

오늘날에도 이스라엘 사람들은 키루스대왕을 존경한다고 합니다.


키루스가 전쟁중 갑자기 죽고 후계자가 없어 페르시아는 한동안 혼란에 빠졌다가,

페르시아 장군 중 한명이던 다리우스 1세가 등장하여 제국을 더욱 확장합니다.

키루스의 무덤은 평소 그의  성품대로 생전의 위대한 업적에 비해 아주 소박하고 겸손합니다.


다리우스 1세는 페르시아 제국에서 반란을 일으키는 식민지를 정벌하고,

속국의 반란을 뒤에서 부추긴 그리이스를 정벌하러 나섭니다.

오늘날 이스탄불의 보스포르스 해협... 약 4km의 거친 해협에 배를 이어서

(마치 조선의 정조가 한강을 건너기 위해 다산 정약용선생이 배를 이어서 부교를 만든 것처럼)

다리를 만들고, 대군을 이동시켜 그리이스를 공격하지만, 패배합니다.

(이것이 마라톤의 기원, 마라톤 전투에서의 페르시아의 패배입니다.)

당시 다리우스 1세는 이집트의 반란을 진압한다고 바빴다고도 합니다.


그의 아들 크세르크세스(Xerxes)도 그리이스를 다시 공격하지만, ‘살라미스 해전’에서 패배합니다.

살라미스해전의 패배이후 대제국 페르시아는 점차 힘을 잃어갔다고 합니다.


이러한 와중에 150년에 걸쳐 ‘페르세폴리스’가 건설됩니다.

"페르세폴리스(PERSEPOLIS)"란  "파르스(PARS : 페르시아)의 도시(POLIS)"라는 뜻으로

그리이스인들이 부르기 시작하면서 부터입니다.


페르세폴리스가 대단한 것은 도시의 규모나 높이도 그렇지만,

물 한 방울 나지 않는 황량한 사막위에, 물을 끌어와서 상수도 시설을 하고, 주변에 나무를 심고,

인근에는 밀을 경작했다는 것입니다.

물론 페르세폴리스의 궁전도, 조각도 훌륭하지만...


높다란 계단을 올라가면 ‘만국의 문’이 나오는데... 페르시아어(쐐기문자)로 새겨져 있습니다.

“나는 크세르크세스다, 위대한 왕, 왕 중의 왕, 대지의 왕, 수많은 인종의 왕, ...다리우스왕의 아들이며,

아케메니드 왕조... 수많은 아름다운 것들이 페르시아에서 만들어졌다. 나와 나의 아버지가 그것들을 만들었다”


그러나 그 위대한 페르세폴리스는 BC 330년경에 불타 지금의 흔적으로만 남았습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안타까운 방화로 알려진 사건...


여기서 우리는 알렉산더 대왕을 만납니다.

20대의 마케도니아의 왕, 알렉산더는 BC 330년경 페르시아를 정벌합니다.

페르세폴리스에 도착한 알렉산더는 한동안 옥좌에 앉아 아마 페르시아의 잠재력과 위대함에 감탄했을 것입니다.

그리스처럼 물이 풍부한 곳도 아닌 곳에, 순전히 인간의 힘으로 물을 끌여 들여 건설한 위대한 페르세폴리스를 보고...


알렉산더의 스승은 아리스토텔레스입니다. 알렉산더는 스승을 통해 그리스 문화가 가장 위대하다는 것을 배우고,

이를 전파하기 위해 야만족인 페르시아를 정벌하고, 속국을 해방시켜서 위대한 그리스 문화를 전파하려는 야심이 있었습니다.

페르세폴리스에 입성한 알렉산더는 여러 달을 여기에서 지냈다고 합니다.

페르시아의 과학적이고 정교한 카나트(지하관개수로)를 보고,

‘왕의 도로’(페르시아가 속국을 효과적으로 통제하기 위해 도로를 건설했다)를 보면서... 알렉산더는 크게 놀랐다고 합니다.


이후 알렉산더는 부하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페르시아 사람들로 하여금 지방의 관리를 맡게 하고 페르시아 문화와 관습을 존중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페르세폴리스를 불태운 역사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합니다.

어떤 역사가는 알렉산더가 그리스를 침략해 불을 지른 크세르크세스에 대한 보복으로

페르세폴리스를 부수라고 명령했다고 하기도 하고, 또 누구는 알렉산더의 명령없이 승전의 기쁨에 젖은 술취한

마케도니아병사들의 실화로 페르세폴리스가 불탔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키루스, 다리우스1세, 크세르크세스, 아타르크세르세스, 다리우스3세,

그리고 알렉산더대왕...

지금은 아무도 없고,  우리는 그들이 만들고, 부수고, 비와 바람

그리고 세월이 다듬은 페르세폴리스를 보면서 인류의 위대함을 봅니다.

설산 히말라야를 차마고도를 통해 넘나들며 차와 소금을 사고 팔았던 리지앙의 나시족을 보면서 느꼈던 것처럼...

 

4대 문명중 가장 먼저 시작되고 오래된 메소포타미아문명.....

기원전 3500년경에 시작된 문명이자 최초로 밀을 경작하기 시작하고, 최초의 문자와 성문법(함무라비 법전)을 만들었고,

우리 인류의 문화와 생활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 문명입니다.


메소포타미아’의 뜻은 ‘두강(티크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사이의 땅’입니다.

지금은 전쟁중이라 갈 수 없지만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발원지 이라크를 다음엔 꼭 가고 싶습니다.


키루스 대왕이 서있었던 그 자리, 다리우스 대왕이, 알렉산더 대왕이 서서 바라보던

그 산과 그 황량한 벌판을 바로 그 자리에서 보면서 밀려오는 감동을 주체할 수 없었습니다.

지금은 흔적 밖에 남아있지 않았지만,  수많은 기둥 중에 몇 개만이 겨우 남아 있지만,

2500년 전을 가만히 상상하면 감동이 밀려옵니다.


(이번 여행을 준비하면서 우리는 아주 많은 다큐멘터리를 다운 받아 왔습니다.

 저녁이면, 숙소에서 우리가 여행할 지역의 관련된 프로그램을 보고, 여행 전에 읽었던 책을  정리해 놓은 자료,

 그리고 가지고 있는 가이드 북을 종합하여 우리의 기억속에 다 까먹어버린 세계사를 다시 짜깁기하고 있습니다. 

 이란으로 들어오면서는 고대문명사, 이슬람 문명, 메소포타미아 문명, 유라시아 로드, 페르시아 제국의 영광,그리고  이란 등등...

 참 유용합니다. 각 나라에서 그에 해당하는 역사를 다시 공부하는 것, 이번 여행의 또 다른 즐거움 중의 하나입니다. )

 

  참 아이러니컬게도 페르세폴리스를 그리스 사람들이랑 같이 하게 되었습니다.

  페르세폴리스를 불태운 알렉산더의 후예들과 함께.

  쉬라즈에서 페르세폴리스까지는 대중 교통이 없어 택시를 대절해서 가야하는데,

  택시 한 대에 하루종일 60달러였습니다. 두 사람이 가도 60달러, 네 사람이 가도 60달러.

  콘스탄틴과 크리스토퍼는 야즈드의 같은 숙소에 있어서 야즈드에서 터미널로 갈때도 같이

  택시를 타서 택시비를 나눠냈고, 페르세폴리스도 같이 갔습니다. 서로의 여행경비를 아끼기 위해서... 

  이 사람들은 불타버린 페르세폴리스를 보고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정말 묻고 싶었는데....

  묻지 않았습니다.

  수많은 세월이 지난 지금에 와서 보면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도 기둥만 남아있고, 페르세폴리스도 역시 흔적만 남아있는데...

  그것 자체가 역사인 것 같아서...

 

 

 

 


 키루스 대왕의 무덤. 참 소박합니다.

 

 

   낙쉐로스탐.

   다리우스 1세, 2세, 크세르크세스, 아타크세르크세스의 무덤입니다.

   언덕을 올라서 보는 순간 그 규모에 놀라 억!! 소리를 질렀습니다.

   엄청나게 큰 바위산을 직각으로 깍아 무덤을 만들고 엄청난 크기의 조각을 새겨넣었습니다.

   앞에 있는 사람과 비교하면 무덤의 크기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파사르가다에서 본 키루스의 유적. 키루스의 개인 궁전을 바라볼 수 있는 플랫폼과 같은   것이었답니다. 


 

 드디어 페르세폴리스로 들어섰습니다.

 페르시아 제국으로 들어서는 ‘만국의 문’ 

 

 작렬하는 태양. 마치 흑백 영화같은 장면.

 ‘만국의 문’ 너머에 있는 황량한 돌산이 보이십니까?

 

 100개의 석주궁전(큰 돌기둥) 앞에는 페르시아 제국의 힘을 알려주는 조각이 새겨져 있습니다.

 각국의 사신들이 페르시아 제국에 공물을 바치는 장면입니다.


 

  아!!! 페르세폴리스!!!

  만약 불타지 않았다면 더 감동적이었을까?

  아니 불에 타 흔적만 남아있어 오히려 우리의 상상력을 더욱 불러옵니다.

 

 페르세폴리스에서 바라본 황량한 산.

 또 다른 왕의 무덤이 보입니다. 햇볕이 내리쬐어 올라갈까 잠시 머뭇거렸지만  ‘언제 여기를 다시 올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힘들게 올라갔다 왔습니다.  

 

 페르시안 병사들. 유적의 곳곳에 새겨져 있는 모습입니다.

 몇 나라를 돌면서도 가방이 무거울까봐 기념품을 전혀 사지 않았던 우리들도 이 병사가 새겨져 있는 기념품은 하나 샀습니다.

그런데 앞으로 그 긴 시간동안 이걸 어떻게 들고 다닐까요? 부숴지지나 않을런지...


무덤 앞에 새겨져 있는 조각.

 2천 5백년 이상동안 한 자리에서 묵묵히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다리우스왕과 그의병사들.

교과서에서 많이 보던 조각품입니다.

 

조각 옆에 섰습니다.

역사와 내가 함께 하고 있습니다.

 

 100개의 석주.

 지금은 몇 개 밖에 남아있지 않지만... 이것이 일렬로 쭉 늘어서 있는 궁전의 모습.

 천정은 나무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눈을 감고 상상했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은 여기에 서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그 자리, 그 곳에서 역사를 생각합니다 

 

   우리를 감동하게 한 건...

   페르세폴리스의 웅장함, 역사의 한 장면에 서 있는 감동, 위대한 유산...

   그것과 함께 바로 이 모습이었습니다.

   주변을 둘러보면 온통 황토색만 보이는 황량한 벌판에 돌 산인데....

   그 한가운데 자라고 있는 밀입니다.

   야즈드에서 쉬라즈까지 오는 길에 몇 시간 동안이나 계속되던 밀밭.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이런 환경에서 어떻게 생명을 키워나갈 수 있었을까?

  

   그것이 페르시아 제국의 위대함이었습니다.

   인류의 위대함이었습니다.

   비도 오지 않고 강물도 흐르지 않는 메마른 땅.

   아니 거의 돌산입니다.

   이천오백년전 페르시아 제국은 100m 이상의 땅속을 파내려가 물을 찾아내고

   땅속으로 물길을 만드는 카나트(관개수로)를 건설한 것입니다.

   지금도 이 땅에서 농사를 짓는 이란 사람들은 예전의 조상에게 감사하고 있답니다.

 

   다시 쉬라즈 시내로 돌아왔습니다.

   그 전에는 그냥 보이던 쉬라즈 시내의 나무들이 새삼 다시 보였습니다.

   사진의 저 너머에는 풀 한포기 없는 메마른 돌산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들은 여기에 카나트를 건설해

   사막의 오아시스를 만들어 낸 것입니다.   이란에는 이러한 카나트가 5만 여개  있다고 합니다.

 

    나무가 잘 자라고 있는 땅을 자세히 보면 위에는 메말라서 쩍쩍 갈라져 있습니다.

    가물어서 물 한번 만난 적 없는 듯한 땅. 그러나 이들은 땅 속에서 나무에게 물을  주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공원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안락한 공간을 만들어 주고 있었습니다.

 

  공원에는 아이들과 어른들이 나와 축구를 하고 있었습니다.

   (무슬림들은 금요일이 휴일입니다. 마침 금요일이라 많은 사람들이 공원에서 놀고 있었습니다. )

   아이들의 얼굴을 보니, 이란 영화에 나오는 아이들과 어찌 그리 닮았는지요.

   (안그래도 우리가 받아온 자료중에 이란 영화가 빠져있어 굉장히 섭섭해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다시 훨씬 더 잘 이해되고, 감동도 몇배 일텐데... 천국의 아이들’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일까’ ‘올리브 나무 사이로’ ....)

 

 Bagh-e-Eram에서. 우리나라 식물원과 같은 곳입니다.

우리는 페르세폴리스를 보고 감동하고 있는데, 이란 사람들은 쉬라즈에서 여기가 가장 좋다고 적극 추천했습니다.

우리에게는 그저 잘 가꾼 나무가 있고, 꽃이 있는 조그마한 식물원 정도로 생각되는데...

 이 사람들에게는 사막의 한 가운데 이런 꽃과 나무가 울창한 숲이 아주 자랑스러운가 봅니다.

 엄청나게 많은 이란사람들이 이곳을 찾아와 사진을 찍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듯 했습니다.

 

 Arg-e Karim Khani에서 만난 아미드. 한국에서 왔다니까 사진 한 장 같이 찍잡니다.

  이란 사람들은 외국인을 만나면 같이 사진 찍기를 아주 좋아합니다.  이란에서 사진 빵빵 찍어줍니다.

 여기 와서 보니, 지금 우리나라 드라마 ‘주몽’이 아주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데 송일국이랑 닮았으면 인기 짱 일뻔 했습니다.

  한국이라고만 하면 사람들이 주몽! 주몽! 합니다.

 얼마전에는 ‘대장금’이 그리 인기가 있었다는데, 내가 이영애를 조금만 닮았어도 거의 스타 될 뻔 했습니다.

 

  물론 쉬라즈에도 역시 무슬림의 모스크가 있었습니다.

  늦은 저녁(10시가 넘은 시각)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모스크를 찾아와 코란을 읽고, 기도를  합니다.

  테헤란, 마샤드, 야즈드를 거쳐 쉬라즈로 왔는데 이 모스크가 가장 아름다웠습니다.

 

 

 쉬라즈는 ‘페르시아문화의 심장, 철학의 도시’라고 합니다.

  학문과 노래, 시로 상징되는 도시이기도 합니다.  가이드 북에 의하면 이란 사람들 집에는 반드시 두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코란이며, 하나는 하페즈 시인의 시랍니다.

  그래서 쉬라즈 사람들이 아주 많이 찾는다는 하페즈의 무덤엘 저녁 늦게 갔습니다.

  무덤이라면 공동묘지 같은 으스스한 곳만 생각되는 우리로서는 마치 공원처럼 꾸며놓은 하페즈의 무덤을 보고

  또 한번 놀랐습니다. 마치 연인들의 데이트 장소, 가족들의 놀이터 같았습니다. 숲도 있고, 시도 있고...


 하페즈의 무덤위에 장미꽃을 올려두고, 연인이 사랑스럽게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하페즈의 시를 읽기도 합니다.

 

 하페즈의 무덤에서 낮에 Arg-e Karim Khani에서 만난 아미드를 또 만났습니다.

 이번에는 그의 가족 모두와 함께. 아내, 아들, 딸, 사위까지.

 우리는 아미드를 찾아낼 수 없지만, 아미드는 우리를 그 많은 사람들 중에 금방 찾아냈습니다.

 사진은 아미드의 딸과 아들. 페라도라는 쉬라즈 전통 아이스크림(?)을 함께 먹었습니다.

  그런데 아미드는 테헤란에서 40분 정도 떨어진 Karaj라는 곳에 살고 있다며,

  주소와 전화번호까지 적어주며 꼭 자기 집에 들르랍니다.

  쉬라즈와 에스파한을 거쳐 카스피해의 칼루스를 갈 예정이라니까, 칼루스는 반드시 Karaj를 거쳐야 한다며 꼭 오랍니다. 

  한 번 가보고 싶긴 한데...

  아직 결정은 못했습니다. 에스파한을 가서 테헤란으로 다시 들어가면서 결정할 겁니다.

 

지금 우리들은 쉬라즈를 떠나와 한 때 '세계의 절반'이라고 불리워졌던 에스파한에 와있습니다.

어제 저녁에 이어 이틀에 걸쳐 인터넷을 사용해 겨우 사진을 올립니다.

저녁 9시만 되면 인터넷 까페 문을 닫아 버립디다.

(여기는 한국보다 4시간 반 늦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