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지금은 여행중 /여행 하루하루

T 87(6월 25일) 젊음의 도시 골웨이에서

프리 김앤리 2009. 6. 27. 18:09


아시아에서 여행을 하다가 유럽으로 넘어오니 좋은 것도 있고, 안 좋은 것도 있다.

여행이란 게 원래 그렇기도 하겠지만.

깨끗하다는 것. 사람들의 말에 속을까 걱정 안해도 되고, 물건 값도, 쓰여진 그대로 -달라고 하는 그대로 주면 되는 것.

버스 시간도 숙소 예약도 딱딱 맞아 떨어지는 모든 것이 잘 조직화 되어 있는...

사람들과 부딪혀야 하고 어느 게 진짜일까 얼마를 깍아야 바가지를 쓰지않을 지, 고민해야 하는 피곤한 상황이 없는 것은

유럽 여행의 장점이다. 그걸 부정적인 입장에서 본다면 인간미가 좀 없다고나 할까?

여하튼 우리 같은 약간 나이 든 여행자에게는 이런 조직화가 편안함과 안정감을 주는 것은 틀림없다.

 

그런데 유럽 여행의 피곤한 점은 ‘물가’가 주는 정신적인 스트레스다.

호화로운 호텔은 커녕, 우리 둘만 쓰는 더블 룸은 한번 쳐다보지도 않고 그저 여러 명이 한방에서 자는 도미토리만을

 찾고 있는데도 일인당 최소 3만원 이상이다.

깨끗하지는 않았지만  5천원, 3천원 하던 중국, 라오스, 인도의 방들이 그리워지고 있다.

 

그리고  또 하나는 교통비.

지하철 한번만 타도, 한 20분 정도밖에 가지 않는 버스를 타도 3파운드(6천원) 이상을 하니

 6천원만 주면 10시간 걸리는 야간 침대 기차에, 저녁밥과 마시는 차까지 주던 이란이 그저 그리울 뿐이다.

 

게다가 먹는 것은 또 얼마나 황당한지.

식당을 찾으면 아무리 허접한 샌드위치라도 5파운드(일만원)는 줘야 하니.

아무 식당에나 들어가서 그 많은 메뉴를 두고 ‘오늘은 무얼 먹을까’ 행복한 고민을 하게 했던 중국, 인도, 라오스 식당이 자꾸

생각난다. 먹는 대로 다 맛있고 다 먹고 나서 계산 하면서도 ‘아니 뭐야? 이렇게 먹고도 이렇게 밖에 안 나왔단 말야?

한국에서 이걸 먹었다면?’ 하면서 음식 선택의 탁월함에 스스로 감탄하던 그런 건방진 시간은 여기에서는 헛물이다.

 

나의 경우, 여행을 나오면 느끼는 작은 즐거움의 하나는 매일 먹어야 하는 밥을 내손으로 안 차려먹어도 된다는 거였다. 

그런데 지난 70여일 아시아에서 여행을 하면서 거의 내 손으로 식사를 준비하지 않고 사먹기만 해서 오히려 부엌에서

내가 직접 해먹는 밥을 먹고 싶기까지 했었는데...

유럽으로 들어와서는 아시아에서의 그 소원(?)이 완벽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허접한 샌드위치를 사먹느니 음식 만드는 것 좋아하는 내가 슈퍼에서 이것 저것 사와서 직접 내 손으로 밥을 해 먹는 게

더 맛있겠다는 생각, 영양가도 훨씬 높고 생활비도 줄일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

어쩔 수 없는 주부다.


여행이라는 게 다른 나라의 문화를 보고, 감탄하고, 뭔가를 배우는 것.

그리고 또 다른 측면에서는 지겨운 일상에서 탈출하고 그래서 에너지를 얻고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왔었지만,

언제부터인가는 ‘이것 또한 삶의 한 방식’이라는 느낌을 가지고 있다.

실제로 둘이 함께 여행을 하다보니 지리적으로는 아주 멀리 떠나왔지만 ‘여행하고 있다는 느낌’보다는

그저 한국에서 살아가듯이 함께 시간을 보내며 생활하고 있다는 편안한 느낌이 더 많이 들곤 한다.

 

한국에서라면 서로가 너무 바빠서 각자의 일에 매몰되어, 몰두하고 있는 생각도  고민하고 있는 지점도 달라

같이 살고 있어도 마치 다른 곳에 있는 듯한 느낌이 많이 들었다면,

여행을 하면서는 같은 것을 보고 거의 비슷하게 느끼고 많은 시간을 같은 주제를 놓고 이야기 할 수 있어

 ‘함께 있음’을 감사하게 하는 순간이 많다. 

‘여행이라기 보다 그저 생활’인 것을...


골웨이(Galway)에서는 진짜 그랬다.

원래 골웨이는 주로 모어 절벽(Cliffs of Moher) Tour를 가기 위해 찾는 곳이다.

그런데 우리는 따라만 다니는 투어를 하기 싫어

우리가 직접 둘린(Doolin)까지 가서 4만 걸음 이상, 약 30km 이상을 왕복하며, 모어 절벽을 다 돌아보고 온 터라

굳이 골웨이를 갈 필요는 없었다. 멋진 둘린 숙소,  Aille River Hostel을 아침에 나서면서는 도네갈(Donegal)을 갈 참이었는데,

같이 나선 캐나다 가족들이 골웨이에서 갈수 있는 Connemara가 좋다 길래 갑자기 노선을 바꾸면서 찾게 된 도시였다.

 

Connemara를 가려면 골웨이에서 버스를 갈아타야 했는데 도착해보니 시간이 한시간 쯤 비는 거다.

그런데 버스를 타고 가면서 읽은 자료에 의하면 아일랜드계 미국 대통령 JF 케네디도 골웨이를 방문해서 ‘케네디 공원’도 있다는 둥, 중세 건물도 많이 있다는 둥...

 슬 마음이 동하는데다가 전날 저녁 숙소의 Ann이 말한 ‘골웨이가 굉장히 밝고 젊음이 가득찬 도시’라는 칭찬까지 떠올라

‘한시간을 기다리느니 거기는 내일가고 골웨이에서 머물러 볼까’ 하다가 멈춘 도시다.

마침 바로 앞에 괜찮은 Hostel도 보이고... 버스 정류소 바로 앞에 케네디 공원이기도 하고...

그리고 슈퍼를 찾아서 시장을 보고, 밥을 지어먹고... 돌아본 도시...

 

말 그대로 밝고 젊음이 가득찬 도시였다.

갑자기 끼어든 도시, 그래서 의외의 즐거움을 가져다 준 도시였다.

물론 조용한 시골 도시, 국립공원이 있는 Connemara 라는 곳은 골웨이 때문에 포기하기는 했지만.....

 

 

아일랜드에는 소를 그저 풀어놓고, 풀만 뜯고 있으니 인공사료, 광우병에 대한 두려움도 없고...

MB가 들여놓은 광우병 소 때문에 자존심 상해서 한국에서는 일년 이상 소고기도 못먹었는데...

여기서 내 손으로 만든 스테이크로 그간의 배고픔을 푼다.

스테이크, 샐러드, 밥, 한국에서 가지고 온 된장(분말) 미역국, 그리고 그 유명한 아일랜드맥주 기네스까지.

 

도심 한가운데 있는 동상. 오스카와일드, 또 한명은 *** 와일드 동상이라네.

우리나라의 동상은 그저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 보는 근엄한 것들만 있는데...

마치 같이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듯. 

 

 1,600년대에 지어진 건물. 지금도 Bar로 이용되고 있다.

 

저녁 9시경의 골웨이 거리 풍경. 거리에 가득 있는 Bar와 이 Bar를 가득 메운 사람들.

술에 취하기 보다는 그저 맥주 한 잔을 시켜놓고 거리 공연을 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

밤이면 숙소가 텅비고... 늦은 밤 조금은 취한 듯 돌아오고...

 

섬나라 아일랜드에서 골웨이는 서쪽 해안에 자리잡고 있는 도시다.

저녁 9시지만 아직 해는 하늘에 환하게 떠있고, 사람들은 바닷가로 나와 한여름의 밝고 화창한 저녁을 즐긴다.

 ( 저녁은 시간인가? 어두움을 나타내는 것인가?  밝은 오후 10시는 저녁인가 오후인가 하는 말도 안되는 의문이 생기기도 한다.)  

 

이렇게 많은 백조를 한꺼번에 보기는 처음.

그런데 누군가는 ‘우아하게 떠 있는 백조도 알고보면 물 아래서는 안빠질려고 죽을 만큼 다리를 젖는다’ 더니만

맑은 물 아래로 보니 발도 그저 천천히 우아하게 젓고 있던걸?

 

해변에서 바라본 골웨이의 집들.

집과 집 사이의 벽은 붙어 있지만 서로 다른 색깔로 페인트 칠을 해 놓아서 구분도 되고 아주 예쁘다.

 

유럽에서 자주 보는 글씨 벽화.

기차역이나, 도심 곳곳에 보이는 이런 글씨들이 그저 낙서같아 보였는데

색색의 스프레이로 그냥 직접 그리고 있는 것을 보니 예술이다.

쓱쓱... 정말 잘 그린다.

 

편안하고, 조용하고...

 

 한 성당 안.

 금요일에 있을 작은 공연을 준비하는 중이다.

 무슨 엄청난 합창단이 아니라 동네 어르신들이다.

 배도 불룩하게 나오고, 머리는 거의 백발이 다 된 노인도 있고, 허리는 구부정...

 중년도 넘어선 노년그룹이다. 

 반주는 없는 아카펠라로 성가와 아이랜드 노래를 합창한다. 성당안이라 울림까지 더해져 정말 아름답다.

남성들의 합창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금요일 저녁 진짜 공연을 못봐서 아쉽다.

간간이 우리가 아는 노래도 부르는데...

 

부자지간 거리 공연.

꼬마는 자꾸 틀리기도 하는데, 아무렇지도 않다.

아버지가 리더하면 꼬마가 따라오다가, 아들이 리더하면 아버지는 따쓰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열심히 맞춰준다.

공연을 하는 사람도, 보고 있는 사람들도...

거리 공연이라기 보다는 거의 ‘거리 연습’ 중.

스스로 음악을 즐기는 이런 편안함이 좋다.

 왜 우리나라 음악가들은 대중들에게 이런 즐거움을 주지 않지? 자기들도 음악 자체를 즐기는것 같지도 않고?

 

 케네디 파크에 있는 케네디 두상부조.

 1963년에 방문하고 골웨이의 명예 시민이 되었단다.

 

하룻밤을 묵고 내일은 아일랜드 북부해안의 도시 부시밀스(BUSHMILLS)로 간다.

정확하게는 영국령 북아일랜드로의 거인이 만든 ‘자이언츠 코지웨이’(GIANT'S CAUSEWAY)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