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지금은 여행중 /여행 하루하루

T145(8월 22일) 독일 포츠담, 베를린

프리 김앤리 2009. 8. 26. 05:41

 <이름만 익숙한 도시, 포츠담>

포츠담. 얄타...

 우리에게 참 익숙한 도시다.

미,영,소가 모여서 일본항복을 요구한 회의가 열린 곳이다.

 

학교시절 사회 시간에 열심히 외운 덕분이다.

(우리는 왜 그렇게 외우는 걸 중요하게 생각했었는지.

 그것보다 무슨 생각을 어떻게 해야하는 지.그 사건의 사회적 배경은 무엇인지를 알게 했어야 하는데...

 ㅋㅋ

  또 그 사회적 배경이라는 것도 달달 외워햐 하나?

  우리의 생각을 꽁꽁 묶어 두었던 학생시절이 아쉽다.

  그 시절은 그립지만 그 때의 삶은 참 아쉽다. >

 

포츠담은 베를린에서 20여 Km밖에 떨어지지 않은 도시다.

그래서 베를린을 가면서 덤으로 여행할 수 있는 도시다.

베를린에서 S- 반으로 40분.

 

포츠담 인포메이션 센터가 있는 광장  바로 앞에 개선문이 있다.

일명 작은 브란덴부르크문이다.

별로 많이 찾지 않을 거라는 우리의 생각과는 달리 여기 저기 관광객들이 눈에 뜨인다.

궁과 박물관만 70여개가 있어서 이기도 하겠지만..

 

상 수시(Sans souci) 공원 입구.

잘 가꾸어진 나무들이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길게 늘어서 있다.

 

독일의 숲가꾸기는 정말 대단하다.

지도를 보면 독일 땅 넓이는 우리나라의 몇배를 능가한다.

그런데 국토의 70%가 산인 우리나라 지형과는 다르게 여기는 거의 산이 없다.

(모든 독일을 다 돌아다니지는 않았지만 남부부터 북부까지 올라오면서

 오스트리아와의 국경 지방에서 높은 산- 바이에른 알프스-를 보았을 뿐 나머지는 모두 평지다. )

엄청나게 넓은 가용면적을 가지고 있는 거다.

그런데 그 넓은 땅에 밭 아니면 나머지는 모두 숲이다.

다  인공적으로 조성해놓은 거다.

(물론 집들이 있는 공간을 빼고)

숲이라는 게 단순히 사람들에게 편안함을 주고 안시처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독일에서는 숲 자체가 하나의 생산산업이다.

우리나라처럼 그저 ' 산을 푸르게 푸르게' 라는 이름으로 빨리 자라는 아카시아류를 심어놓은 것이 아니라

하늘로 쭉쭉 뻗은 목재용 나무를 심어 목재를  이용 가능한 숲으로 만들어 둔 것이다.

 

스위스나 오스트리아에서 보던 푸르고도 넓은 잔디 풀밭은 많이 보이지 않는 대신

뭔가 농작물을 짓고 있는 땅이 아니면 다 엄청나게 깊고도 짙은 숲을 만들어 놓았다.

 

이 나무는 몇년이면 이만큼들 자랄 수 있을까?

상수시 공원에는 공원으로 조경을 해 둔 것이겠지만

국토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숲을 만들어 딱히 산이 별로 없어도 녹지공간이 전혀 부럽지 않은 나라가 되어있다.

  

상 수시 궁전을 올라가는 길.

포츠담 인포메이션 센터에 의하면 포츠담에는 20여개가 넘는 궁전이 있다고 한다.

그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바로 이 상 수시 (Sans souci) 궁전.

어느 책에선가 상 수시 궁전이라고 해 놓아서 이게 무슨 부산시, 상주시, 경주시... 이런 것도 아니고

이름이 이렇게나 웃기나라고 생각했었는데 철자를 그대로 읽으면 정말 상수시다.

아마 라틴어겠지?

"근심이 없다"라는 뜻이라나?

 

1747년 프로이센의 황제 프리드리히 황제의 휴식을 위해 지은 궁전이란다.

프로이센 최고의 조경전문가가 설계한 궁전의 정원이 엄청나게 크고도 아름답다.

베르사이유 궁전을 많이 본 땄다고 한다.

 

궁전으로 오르는 계단 양쪽으로는 여지껏 다른 정원에서는 보지 못했던 모습이다.

유리로 칸을 만들어 꽃나무를 심어놓았다.

유리라는 게 예전에는 사치 품목이었다니 아마 최고의 화려한 궁전을 위해 정원에다가도 유리집을 만든거겠지?

 

엄청나게 많은 유리집 정원.

 

상수시 궁전 건물.

정면에 보면 상 수시라고 써놓은 글귀가 보인다.

 

상수시 궁전의 뒷 모습.

아치형으로 기둥들은 쭉 세워놓았다.

 

'근심이 없다'라는 이름까지 붙인 이곳을 지은 프리드리히 황제는 정작 왕비와 사이가 나빠

결국에는 애견 11마리와 함께 이곳에 묻혔다니..

근심이라는 게 뭔지, 행복이라는 게 뭔지....

 

나는 최근에 없던 두통이 심하게 와서 상 수시 궁전 앞에 앉아서 요가에서 배운 호흡을 하고 있다.

앞으로는 쫙 펼쳐진 정원을 내려다 보며...

외국인들이 이상한 듯 쳐다보기도...

 

궁전을 돌아나오는 숲길에서 만난 조각상.

귀족들의 흉상을 조각해 놓았는데 이중에 몇개는 이런 까만 돌로 만들어져 있다.

흑인들을 조각한 것일까?

아니면 단지 여기서 많이 보이는 흑요석을 재료로 해서 만든 조각상일까?

단순히 재료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머리 모양을 보면 서양사람들의 그것과는 좀 다른 특별한...

 

 

<독일과 자전거>

아일랜드 아비모어에서 만난 독일 여자애 둘은

여름 휴가 며칠을 거기 아비모어 국립공원 산악 자전거를 타고 돌아간다고 했다.  

'아니 고작 자전거를 타려고 여기까지 비행기타고 온단말이야?' 라고 생각했었는데

독일에 와서 보니

독일에 있어서 자전거란 '국민 스포츠' 라는 개념을 넘어서서

독일인과는 뗄 수 없는 아예 '생활 그자체'였다.

전 국토에 자전거 길이 나있어 사람들은 자전거 트레킹을 하고 있었다.

(우리 나라 같으면 그저 넓은 땅이 나오면 잔디를 심어 골프장을 만들려고 하는데...

오히려 골프장은 잘 보이지 않는다. 백화점의 스포츠 센터에 가도 1층입구엔 일반 스포츠용품과 의류, 지하에 구석에

골프관련 의류등이 판매된다.)

 

어느 도시에서도 자전거 길은 반드시 나 있었다.

그리고 할머니 할아버지 애들 할 것없이 전 국민이 이 자전거 길을 애용하고 있었다.

이렇듯 기반시설이 잘 되어 있으니 자전거를 탈 수 밖에...

교통신호등도 차, 사람 그리고 자전거 신호등도 있다.

지금이 자전거용 파란불이 와서 따르릉 거리며 우리앞을 지나간다.

 

꼬마때부터 자전거를 탄다.

상 수시 공원에서 자전거를 타고 있는 애기들.

몇 살쯤이나 되었을까?

자기 걸음도 제대로 걷지 못하는 애들이다.

그런데 작은 애들 자전거를 자세히 보면 페달이 없고 나무로 만들어져 있다.

우리나라 보행기와 비슷한 개념이라고 할까?

어릴 때 부터 저런 자전거를 익숙하게 해 걸음걸이도 배우게 하고, 균형감각도 가지게 하는 것 같다.

저 언니를 따라서 두 꼬마는 아주 신나게 잘 달렸다. 

 

<베를린, 홀로고스트 기념공원>

 브란덴부르크문에서 200여m 정도밖에 떨어지지 않은 구 동독영역에 넓은 기념공원이 있다.

나치에 의해 학살된 유태인이 약 600여만명

폴란드에서 약 300만, 러시아에서100만, 그외 유럽여러나라에서 200여만명이 학살되었다.

인류최대의 악행일 것이다.

중세시대 마녀사냥으로 죽은 숫자도

단일 전쟁으로 인해 죽은 숫자도 이렇지 않았다.

사람의 귀중한 생명을 숫자로 봐서도 안되지만 말도 안되는..논리를 사람이 사람이 죽였다.

그것도 너무 많이...

 

홀로고스트 기념공원은 2005년에 완공되었다.

만들어진 지 불과 4년 밖에 되지 않았다.

 

 낮게는 높이가 50cm, 높게는 3m가 넘는 길다란 직육면체가 많이, 아주 많이 있다.

하나하나가 학살된 이들에 대한 추모비이다.

추모비가 많지만, 학살된 수에 비해선 너무 적다.

 

이것들은 추모비이기도 하지만, 밀밭을 형상화 한것이라고 한다.

밀밭을 걷듯이

한사람 한사람의 안식을 바라면서...

천천히 아주 천천히 걷는다. 

 

기념공원 지하에는 홀로고스트 기념관이 있다.

크게는 소개하는 방, 가족의 방, 이름의 방, 홀로로스트 기념 데이터베이스 등...

히틀러와 나치의 만행이 아주 자세히 소개되어있다.

 

 

가족의 방중에서...

사진나온 가족들... 거의 대부분이 학살되었다.

어린아이는 아이대로, 할머니는 할머니대로...

이름과 죽은 곳, 가족의 간단한 내력들이 기록되어있다. 

 

 

<세계 선수권 대회>

 

베를린에서는 마침 세계 선수권대회가 열리고 있었다.

오늘은 마라톤이 있는 날.

구시가지에서 브란덴부르그 문까지 이어진 베를린의 가장 아름다운 거리 unter den Linden에는 이른 아침부터

사람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마라톤 선수들을  격려하기 위해서다.

 

베를린의 상징, 아니 독일의 상징, 브란덴 부르크 문이 오늘 마라톤의 끝 지점이다.

베를린 시가지를 돌아 이 브란덴 부르크 문을 4번 돌아야 오늘의 42.195Km  마라톤이 끝난다.

 

각국에서 모여든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나라 국기를 걸어놓고 기다리고 있다.

 

한국 응원단도 보인다.

여기서 한국 국기를 보니 정말 반갑다.

 

독일 사람들은 자기나라 국기로 스카프(?)를 만들어 어깨에 걸치고 신나게 거리를 활보하고...

 

마라톤 선수들이 지나 갈 길목에 가득 모여 있다.

이제 곧 선수들이 지나갈꺼다.

 

"대한민국 파이팅!!!"

아!! 대한민국 선수가 지나간다.

큰 소리로 대한민국 파이팅을 외쳤다.

이 선수는 내 소리를 들었을까?

그 소리에 좀 더 힘이 났을까?

(그런데 저녁에 신문을 보니, 이날 마라톤에서 한국은 참패를 면치 못했단다.

 45위? 65위? 도중에 한 명은 포기까지 했다나...)

 

그런데 절대 나무랄 건 못된다.

뛰고 있는 선수들은 정말 혼신의 힘을 다해 뛰고 있었다.

다리에 근육이 울퉁불퉁, 온 몸은 땀 벅벅이 되어 있었다.

 

우리는 마라톤을 이야기 할때 온통 몇등을 했냐, 1등이 누구냐에만 관심을 가지지만

여기 응원을 나온 사람들은 그 선수가 앞에서 몇번째 뛰고 있더라도

지나갈때면 매번 열렬한 박수를 보내고 격려를 보냈다.

한명 한명 모두에게...

감동적이었다.

 

응원 시민.

박물관의 높은 벽면에 앉아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유물 옆에 앉아있으면 안되는데...)

 

프로마라톤의 세계 선수권 대회가 끝나고 난 뒤

일반인들의 마라톤도 이어졌다.

10Km 마라톤.

일만명 정도가 참가했단다.

가족 단위로, 직장 단위로 참가한 사람들도 많이 보였지만

눈에 띄는 건 꼬마 아이, 그리고 연세가 아주 많으신 할머니 할아버지, 그리고 다리가 퉁퉁 부어 어딘지 모르게 불편한 듯

보이는 사람들도 있었다는 점이다.

아마추어 급 들중에서도 빨리 뛰는 사람도 있었지만 거의 걷다 시피 오는 사람들도 많이 보였다.

거리에 늘어서 있는 수많은 사람들은 이 사람들 한명한명에게도 열렬한 박수를 보냈다.

거의 꼴등 쯤에 들어서는 할머니.

사람들은 더욱 더 큰 박수를 보냈다.

자신과의 처절한 싸움을 하고 있는 할머니에게..

나이가 들어도, 힘이 없어도 포기하지 않는 감동적인 사람들에게...

 

10Km를 달려온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것은 그저 참가 메달 하나뿐.

그러나 걸어주는 사람도 그것을 목에 거는 사람도 모두 행복한 표정이다.

몇등이 문제가 아니라 끝까지 해냈다는 것으로.

(우리도 한국에 돌아가면 이런 마라톤에 한번 참가해 봐야 겠다)

 

마라톤이 끝난 베를린 거리.

차량 통제를 아직 풀지 않아 대로에 섰다. 

 

 

<책을 불태우다.. 텅빈 책꽂이> 

베베광장(Bebe Platz) 한 곳에 관광객들이 모여 서 있다.

사람들은 광장의 땅 속을 바라보고 있다.

자그마한 투명 유리 한 장. 

 

히틀러가 불온한 책들이라며 모두 불태워 버린 장소에 만든 상징물이다.

땅 표면에 유리를 박아둔 것이 전부다. 

안을 자세히 살펴보면 텅빈 책꽂이가 사면을 둘러싸고 있다. 

나치의 야만적인 행동을 말없이 비난하고 있는 거다.

 

광장 바로 옆에는 " 책을 불태우는 자들은 결국엔 사람마저 불태우리라"라는 하이네의 문구가 적힌 동판이 박혀있다.

책을 태우던 나치가 결국에 사람까지...

 

<페르가몬 박물관>

베를린에는 여러가지 박물관이 있지만 그중에에서도 페르가몬 박물관에 가장 가고 싶었다.  

세계 어디를 가도 기원전 고대 도시를 여기만큼 생생하게 관찰 할 수 있는 곳이 없기 때문이다.

 

현재 페르가몬은 터키 서부해안에 있는 도시다.

성경의 요한 계시록에 의하면 고대도시 버가모(페르가몬) 의 신전이 있었던 곳이다.

여기 베를린의 페르가몬 박물관은 그 신전을 통째로 뜯어다 옮겨 놓은 곳이다.

 

들어서면 우선 그 엄청난 규모에 놀란다.

 

자기네들의 안내문에 의하면 터키와 사이가 좋은 시절, 이리로 가져 올 수 있었다고 쓰여져 있지만

고대 도시의 성문, 벽화 등을 통째로 뜯을 수 있는 건 약탈이 아니고서는 불가능 했으리라.

우리나라 동대문을 다른나라에 설치해 두고서 우호적인 외교관계로... 복원하고 보존하기 위해

제3국에 설치했다고 한다면...참참...

 

성문앞을 지키는 이 큰 조각상도 통째로...

 

요르단의 고대도시의 벽면? 성벽인지?도 통째로...

 

 

고대도시를 통째로....다 가져왔다.

 

박물관이 아니라 약탈관?이 아닌지 하는 생각도 든다.

영국의 대영박물관에 가서 받았던 느낌 하고 똑 같다.

이런 유물을 그 자리 그대로, 그 자연과 함께 있어야 감동도 더 할텐데...

아니 단순히 후손들의 감동을 위해서가 아니라

역사적인 가치에서도 그 자리에 그 흔적 그대로 있어야 하는데...

 

다른 한편으론 한군데서 여러가지 진귀한 유물들을 쉽게 봐서 좋고, 잘 보존해 줘서 고맙지만...

그래도 너무하다는 생각이다.

 

베를린의 페르가몬 박물관은 터키 페르가몬 지역의 유물 뿐만 아니라

이집트, 앗시리아 문명의 유물들도 엄청나게 많다.

소장 유물의 수와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고 있지만

한 때 세계 곳곳을 침략한 제국주의의 탐욕을 보고 있는 것 같아 씁쓸하기만 하다.

 

전시된 유물 중에 귀여운 조각상.

발바닥에 붙어 있는 가시를 빼내고 있는 중이란다. 

 

 

<베를린 장벽>

우리에게 있어 베를린은 '장벽'이다.

'무너진 장벽'이다.

'80년 말 세계정세의 변화'이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그날, TV를 통해 전해져 오던 그 전율을 잊을 수 없다.

바로 우리 시대에 일어난 일.

동독과 서독에서 몰려온 사람들이 장벽을 부수고, 장벽위로 올라가서 눈물을 흘리는 장면..

그리고 소련의 붕괴...

 

그 베를린 장벽 앞에 섰다.  

1961년 8월, 소련군에 의해 쳐진 155Km 베를린 장벽이 89년이 되어서야 허물어졌다.

한 나라이면서도 동쪽과 서쪽으로 갈라져 살았던 30년 세월.

이후 어려움도 많았겠지만 20년이 세월이 다시 지난 지금은 그저 하나의 상징물로 도시 한쪽에만 남아있다.

서독과 동독의 구별도 거의 없어지고 사람들도 서로 별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이렇게 금방 하나가 될 수 있는데...

48년에 남북으로 갈라져 벌써 60년의 세월동안이나 떨어져 살았던,

전쟁이 없었던, 서로 죽일 듯이 비난하는 세월이 없었던 동서독과는 달리

가혹한 전쟁의 시절도 있었고... 그 이후 서로가 서로를 비난하는 세월을 보내고 있는

우리나라의 통일은 언제가 될까?

과연 가능이나 할까?

 

두어해 전만 하더라도 이제 우리나라에 곧 통일이 오겠구나라고 생각했었는데...

점점 더 멀어지는 것 같은 건 왜일까?

 

이제 한 조각으로 남은 베를린 장벽을 집으며...

우리의 휴전선 철조망은 언제 걷혀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