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지금은 여행중 /여행 하루하루

T152 (8월 29일) 스웨덴의수도 스톡홀름에서

프리 김앤리 2009. 8. 30. 10:38

위도 60도.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에 도착했다.

알레스 스테나르에서 660Km 거리.

 

'스웨덴'

그동안 나는 이 나라에 대해서 무엇을 알고 있었을까?

복지국가, 남녀 4인조 그룹 '아바'가 스웨덴 출신이라는 것,

북쪽에 있다는 것... 고작 그 정도...

가만 생각하면 아는 게 아무 것도 없다는 결론이다.

그냥 어딘가 저 멀리 북쪽에 그런 이름을 가진 도시가 잇다는 정도.

  

스톡홀름..

14개의 돌섬위에 세워진 도시.

본격적으론 700년경부터 유럽에서 사람들이 건너와 살기 시작했던 곳...

크고 작은섬과 섬은 다리와 배로 연결하고...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항구도시로 알려져있다.

 

도시 어디에서도 바다가 보인다.

 

섬과 섬 사이에는 다리로 배로 연결되어 있고...

 

차가운 발트해의 바닷바람이 불어와

이곳 스톡홀름은 이제 여름을 지나 가을에 접어들었다.

 

함께 여행을 하고 있는 준호씨는

스톡홀름이라는 도시를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북쪽의 베니스"라고 표현하고 싶단다.

물길과 물길로 섬들이 연결된 아름다운 도시. 스톡홀름

 

'아!!! 하나 더 있다.'

스웨덴 하면 떠오르는 것.

다이나마이트를 발명한 과학자 노벨이 스웨덴 출신이라는 것.

그래서 노벨상 수상을 하는 나라.

 

사진 오른쪽에 있는 건물이 노벨상 만찬회가 벌어지는 곳이다.

(노벨상 수상은 스톡홀름의 시청사에서 주어지는 데 마침 우리가 간 날이 일요일이라 시청사는 문을 열지 않았다)

 

이제 내년부터 노벨상 수상 소식이 들리고, 만찬회가 열리는 모습을 보면

우리는 이 도시를 떠올릴 수 있을까?

만찬회가 열리는저 건물앞의 동상을 보면 오늘의 이 여행을 생각할 수 있을까?

 

무턱대고 떠나온 북유럽, 스톡홀름이라 이날도 숙소를 구하는 데 애를 먹었다.

'이제는 8월도 거의 끝나가니 방을 구하는게 별 문제가 없을거'라는 무식한 생각도 한 몫했고,

나름대로 여행 고수 3명이 함께 하는 여행이니 방을 쉽게 구할 수 있을 거라는 건방진 생각도 있었다.

그러나 아직 스톡홀름은 여행자들 천지였다.

 

생각하고 간 도심의 유스호스텔은 이미 방이 꽉 다 찼고

허접해 보이기 까지 하는 호텔 조차도 방은 엄청 비쌌고, 그나마 그 방 조차 구할수 없었다.

겨우 구한 스톡홀름 지도에 마침 한국 식당 전화번호가 하나 있어

무조건 거기를 찾아가 하루밤 신세를 질 방을 물어보니

스톡홀름에서 30년을 살고 있는 교민 한분의 전화번호를 가르쳐 준다.

다행이 그 집에는 우리가 머무를 수 있는 방을 구할수 있었다

 

하여튼 어떻게든 방법은 있기 마련이다.

 

도심에서 제법 떨어진 곳에 숙소가 있어서

그 집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고 지하철을 타고 도심으로 나왔다.

그래서 도착한 역이 Tcentralen 역.

 

사람들만 다니는 보행자도로로 나서니 제일 먼저 이 동상이 우리를 맞았다.

준호씨는

"그 녀석의 몸매가 자신과 꼭 닮았다"며

바로 뛰어 올라가 옆에서 같은 포즈를 취한다.

함박웃음까지 지어가면서...

그런데 정말 닮은 것 같다.

 

키 큰 서양인들이 가득차 있는 거리를

동양인 세명이 키득키득 거리며 길을 나선다.

 

길거리 안마...

유럽 거리에서는 특이한 구경거리다.

중국이나 동남아에서 자주 보이는 안마를 여기는 길에서 하고 있다.

(호주 시드니에서 길에서 안마하는 것을 본 적이 있는데

 그 때 안마사들은 대부분 중국사람들이었는데...)

10분에 10유로(만팔천원)하는 꽤 비싼 비용이었는데

제법 많은 사람들이 안마를 받고 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만난 두번째 동상.

'총 부리를 묶어 놓은 권총'

평화를 만난다.

 

동상이라는 게 별로 없는 우리나라에서 만날 수 있는 동상은

주로 과거 우리 조상들의 무뚝뚝한 전신상이 대부분이다.

세종대왕, 이순신, 신사임당 같은...

어떤 의미를 상징한다기 보다는 도심 한가운데 우뚝 그냥 세워 놓은 것 같은...

그래서 별로 감흥을 받을 수도 없는...

 

그런데 유럽의 도시 곳곳에서 만나는 동상은 표현에 있어 참 자유롭다.

굳이 사람이 아니어도 되고.

동물이나 사물도 많고...

거기에 다 나름의 의미를 표현하고 있어

좀 새롭다.

 

'총구를 묶어버린 권총'

도심 한가운데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Tcentralen 역에 내려 거리를 쭉 따라 걸어내려 오면

스웨덴 왕궁이 있는 감라스탄섬(Gamlastan)으로 들어간다.

왕궁으로 들어서는 성문.

 

옆으로는 바로 바다가 보인다.

 

왕궁을 지키는 여자 병사와 함께.

준호씨는 방긋(?) 웃음을 지어보이는 데

여자 병사는 글쎄...

'군인 정신'에 투철해서 일까?

 

감라스탄 섬에는 왕궁도 있지만

그 옆으로는 일반 사람들이 살고 있는 건물도 있다.

일층에는 기념품을 파는 가게들도 보이고.

 

이 먼 북쪽까지는 로마제국의 힘이 미치지 않았던지

흔히 유럽에서 보이는 도로(정육면체, 직육면체의 깍아진 돌들로 만들어진 로마길)가 보이지 않고

아스팔트 도로가 거의 대부분이다.

 

다른 유럽 도시들에서 많이 보이는 중세 건물도 거의 없고

대부분이 현대식 건물들이다.

 

그래도 좁은 골목으로 들어서면 로마식 길이 보이기도 한다.

 

섬과 섬을 다리로 연결한 스톡홀름.

하지만, 추운 발틱해의 도시 건물은 건물과 건물 사이도 다리로 연결해 두었다.

 

유럽에서(?) 가장 오래됐다는 은행 건물 앞에서.

동상에 대한 설명은 전혀 해놓은 것이 없지만

안경을 약간 치켜들고 무슨 장부 같은 것을 손에 들고 있어 '은행가'나 '회계사' 정도 된다고 생각했는데

들고 있는 책을 자세히 보니 악보가 그려져 있다.

무엇을 하는 사람일까?

그래도 여기서 우리는  또 '따라쟁이'놀이를 해본다.

 

'아!!! 말괄량이 삐삐가 여기 드라마구나...'.

시내 가게엔 말괄량이 삐삐의 인형이 많이 보인다.

어릴적 열심히 보던 주근깨 아가씨 말괄량이 삐삐가 생각나 슬그머니 웃어본다.

 

잘 알고 있다시피 일본에서는 우리나라 드라마 겨울연가가 대 히트를 쳐서

그 드라마의 무대, 남이섬으로 일본사람이 그렇게나 많이 여행을 온단다.

이란에서는 주몽이나 대장금이 엄청난 인기를 얻고 있고

베트남이나 방콕 같은 아시아 나라에서는 풀하우스 같은 드라마가  인기를 얻어서

청소년들이 '비'를 그렇게나 보고 싶어한단다.

 

독일 드레스덴에서 만난 터키 여자애는 한국 드라마를 어찌나 좋아하던지

우리나라 연예인들을 줄줄이 꿰고 있었다.

몇몇 연애인들에 대해서 물어보는 데 나는 오히려 대답을 못하고 자기가 더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한국을 꼭 가보고 싶다고...

 

언젠가, 먼훗날

한국 드라마를 보면서 한국을 상상했던 애들이 한국을 여행하면

지금 내가 느끼는 것 처럼 자신의 어린 날을 추억할 수 있을까?

 

말괄량이 삐삐 덕분에 내 어린 날이 떠올라 기분이 상큼하다.

 

노벨 박물관에서.

왕궁은 내부도 안보고 그냥 밖만 보고 돌아 나왔는데

여기 노벨 박물관은 굳이 입장료를 내면서 안에 까지 들어갔다.

 

입구에서 하는 영어가이드가

"이 곳 노벨 박물관을 둘러보면서는 Creative(창조적인, 독창적인) 에 대해서 많이 생각"해 달란다.

 

노벨상을 탄 사람들의 업적이나 그들의 노력을 구구절절 설명할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창조에 대해서, 독창성에 대해서 생각을 하라는 그 말이 신선하다.

 

'저렇게 교육을 하는 구나'

어른인 나보다 아이들이 와서 보면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우리가 노벨 박물관에 반드시 들어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건

2000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김대중 대통령의 흔적을 찾고 싶어서였다.

박물관의 한 유리박스 안에는 노벨상 수상자의 소장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문학가 예이츠의 소장품도 보이고, 시인 타고르의 것도 보인다.

그리고 이름도 잘 알지 못하는 여러 과학자들의 작은 소장품들이 보인다.

 

유리 박스의 한쪽에 김대중 대통령이 이희호 여사에게 보낸 옥중서신이 전시되어 있었다.

발신일자를 보니 1982년이다.

그렇다면 5공화국 당시 내란음모죄로 체포되어 사형선고를 받고 복역중일때의 편지이다.

봉함엽서에 빈틈 하나 없이 깨알같은 글씨로 빼곡하게 '정치 , 사회 , 경제...' 여러 분야의 이야기를 써놓았다.

 

물론 당시에는 감옥에서 밖으로 보내는 서신은 심하게 검열하던 시기라

생각하고 있는 당신의 생각을 다 표현하시지는 못하셨으리라.

 

워낙 깨알같은 글씨로 빼곡이 쓰여있어 제대로 읽어 볼 수는 없었지만

한 눈에 봐도 당신의 해박한 지식이 그대로 닮겨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제는 이런 분을 볼 수 없는 게 안타까울 뿐이다.

 

옥중 서신 옆에는 이희호 여사가 감옥에 있는 남편을 위해 손수 짜서 넣어주셨다는

털신도 놓여 있다.

 

하늘나라에서 두 분 대통령은 만나셨을까?

지금도 우리나라를 걱정하고 계실까?

더 이상 이 분들을 이땅에서 만날 수 없다는 생각을 하니 가슴이 져며온다.

 

박물관에는 현재 또 하나의 영상물들을 전시하고 있었다.

"How free is free?"라는 주제로.

 

"How free is free?"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얼마나 자유로와야 자유로울까?"

"얼마나 자유롭다는 것이 진짜 자유롭다는 뜻일까?"

잘 모르겠다.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에 대한 여러 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가지고 만든 영상물을 전시하고 있다.

노벨 박물관에서의

"자유"에 관한 전시물...

 

"평화는 너와 나로 시작된다"

박물관의 "How free is free?" 전시코너에 여러나라 말로 써져 있는 문구다.

 

잘 알다시피

다이나마이트를 만든 노벨은 자신의 발명품이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는 살상무기가 된데 대해

심하게 좌절했다고 한다.

노년에는 세계 평화에 대해 많은 고심을 했다고.

그래서 사후 스웨덴 정부로 기부된 어마어마한  그의 재산으로 노벨위원회를 만들고

해마다 세계를 위해 여러 부문에서 탁월한 일을 한 사람들에게 노벨상이 주어진다는 사실.

 

노벨상은 의학, 경제학, 문학, 물리학,화학 분야도 있지만

그 모든 것을 가장 우선하는 것은 바로 평화상 부문이라고.

 

'총구를 묶어버린 권총' 동상과 함께

스톡홀름은 내게 '평화'를 상징하는 도시로 각인되었다. 

 

감라스탄 섬을 나와 스톡홀름을 도심 사이를 오가는 보트를 탔다.

1시간짜리, 2시간 짜리 도 있는데 우리는 스톡홀름 중심 섬을 오가면서 언제든지 내리고 다시 탈 수 있는

일일용 티켓을 사 조그만 보트에 올랐다. 

 

밖에서 바라보는 도시의 모습.

진짜 '북쪽의 베니스'다.

 

보트에서 내려  Djurgarden 섬에서.

이 섬엔 침몰한 범선을 전시해 놓은 것도 있고,

야외 민속 박물관도 있는데

그것보다 사람들은 놀이공원에 오롯이 들어있다.

 

어디나 놀이공원은 인기 만점.

저 아래 알레스 스테나에서 여기 스톡홀름까지 600Km를 넘게 달려오면서

' 이 넓은 땅에 사람들이 다 어디에 살고 있나'라며

사람 사는 동네 거의 없이 나무로 덮힌 숲만 지나왔는데

'스웨덴 사람들이 여기 다 모여있나'라고 생각할 정도로 발 디딜 틈이 없다.

놀이기구의 수준은 우리나라랑 거의 비슷한데...

바다에 면해 있는 것이 특이하기는 하지만...

조용하고 점잖게만 보이던 스웨덴 사람들도 이렇게 짜릿한 놀이는 좋아하나 보다.

 

하루종일 여기저기를 쏘다니느라 발이 아프다.

맥주 몇병을 사들고 시청사가 보이는 이름하여 '스톡홀름의 테라스'로 나갔다.

아직은 8월이라 저녁 8시가 되어도 어두워지지 않는다.

그래도 불어오는 바람에 발도 시리고 얼굴도 시리고

맥주병을 들고 있는 온 몸이 으슬으슬 춥기까지 하다.

 

'테라스의 경치' 정말 아름답다.

한 편의 붉은 노을과 검은 구름.

그리고 하나씩 켜지기 시작하는 도심의 불빛들...

 

오른 쪽 건물이 스톡홀름의 시청사다.

 

 

 

테라스의 벤치에 앉은 사람도 흔들리고

카메라도 흔들리고...

 

스톡홀름의 밤은 깊어간다.

평화의 상징 스톡홀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