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지금은 여행중 /못다한 여행이야기

와우!!! 4백8십4만 걸음을 걷다!!!

프리 김앤리 2010. 3. 4. 13:21

 

 *** 2009년 3월 8일부터 올해 2월 4일까지 우리는 세계여행을 하고 돌아왔다.

       중국 베이징에서 시작해 라오스, 네팔, 인도, 이란을 지나 유럽의 대부분의 나라들과  아이슬란드, 러시아, 우크라이나도 여행했다.

       그리고 이집트를 지나 요르단, 시리아도  거쳐서  터키를 마지막으로 우리나라로 돌아왔다.

       5월 하순경, 한국에 잠시 들어와서 3주정도 머물렀던 걸 제외하면 꼬박 311일간의 여정이다.

       그동안 우리 블로그의 글은 순전히 가족들에게 보내는 안부 차원이라서  매일 매일 어느나라 어디를 어떻게 돌아다니고 있는지

       또 우리는 건강하게 잘 있노라고 걱정하지 말라는 차원의 글을 적을 수 밖에 없었다. 

       이제 다시 세상에서 가장 안락한 가족들과 함께 있으면서 여행중에 다 적지 못했던 여행이야기를 조금씩 정리하려고 한다.

       한 나라, 어느 한 곳의 소개만이 아니라 여행 전체에서 우리가 느꼈던 것들,

       이 나라 저 나라, 이 곳 저 곳을 넘나들며  가졌던 우리의 생각을 '못다한 여행이야기' 코너로 만들어서 쓰고자 한다. ****

 

             

311일간 걸어다닌 걸음은 모두 계산해보니 4,844,314걸음이다.

우아!!! 스스로 생각해도 대견하다.

한걸음이 70Cm라고 계산하면 약 3,400Km를 걸은 셈이다.

그런데 실제 걸어다니면서

표지판에 거리가 나와있을 때 우리가 걸은 걸음수와 비교해보면 거의 1Km가 천걸음 정도 됐었다.

그렇게 따진다면 거의 4,800Km.

서울-부산을 왕복으로 5번은 걸어다녔다는 이야기다.

항상 이렇게 되는 건 아니겠지만  적어도 4,000Km이상은 우리 두 발로 뚜벅뚜벅 걸어다녔다는 이야기다.

남들보다 조금 더 천천히, 생각할 여유를 가진 것 같아

계산을 다 끝낸 지금,

무척 행복하다.

 

와우!!!

건강해야만 여행을 다닐 수 있다는 의견도 있지만,

여행을 다녀서 더 건강하게 될 수도 있다는 걸 느낀다.

장단지에 알이 배기고

온몸의 무게가 수직으로 발바닥에 전달되어 지구의 중력을 원망하면서,

허벅지가 부숴지는 듯한 피곤함으로 숙소에 들어선 수많은 날들에 대한

기억이 아련하게 되살아 온다. 

 

고맙다.

끝까지 잘 걸어준 우리 두 다리와 발바닥이.

신발 밑창이 다 떨어지고, 가지고 간 양말이 거의 다 헤져서 나중에 꿰매신고 다녔다는 우리의 이야기에

어떤 사람은 자기도 신발이 다 떨어질때까지 신어보고 싶다고 말한다.

어른이 되고 나서는 신발이 떨어져서 바꾼 적은 거의 없다고.

 

걸음은 하루도 안 빠지고 내 허리춤에 차고 다니던 만보계의 위대한 승리다.

매일 저녁 숙소로 돌아와서

만보계에 그날 하루 걸어다닌 걸음을 내 일기장에 적는 기쁨도 여행중간에 대단했었다.

아!! 오늘도 우리는 이렇게 부지런히 다녔구나!!!

뚜벅뚜벅 세상을 걸어다녔구나!!!

하루도 빠뜨리지 않고 기록했던 것도 대견하다.

 

험한 산을 오르기도 하고, 

상쾌한 바람을 맞으면서 바닷가 길을 걷기도 하고,

사막을 가로지르기도 하고, 

도심을 마구 헤집고 다니기도 했다.

 

중국 윈난성에서 티벳까지 이르는 차마고도의 한자락,

'호도협 트레킹' 33,439걸음.

티벳의 소금과 바꾸기 위해 말의 등에 차를 싣고 험준한 히말라야 산을 넘나들었던

먼옛날 이 곳 사람들의 삶과 죽음이 계속 떠오른 산행이었다.

 

네팔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를 올랐다가 내려가는 길.

29,308걸음.

온통 눈이었다.

어디가 하늘인지 어디가 땅인지도 구별하기 어려웠던 눈부신 길.

고산증으로 심장이 벌렁거리고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는데도...

내려가는 길이 아쉬워 자꾸 자꾸 뒤돌아보며 우리는 안나푸르나를 내려갔다.

머리와 가슴이 따로 놀아서

머리는 빨리 내려가라고 발걸음을 재촉하는데

가슴은 천천히 내려가라고 발목을 잡았었다.

 

인도 맥그로드 간지의 3,000m급 트리운드 트레킹.

끊임없이 사람을 속이려들던 인도 사람들, 쓰레기와 오물로 뒤덮힌 더러운 인도 거리를 벗어나

우리는 천국을 걷는 기분이었다.

이날 우리는 모두 34,360보를 걸었다.

 

이란의 야즈드.

사막의 한가운데 도시, 야즈드는 집들도 모두 흙담이었다.

끝도 없이 이어지는 무채색의 거리. 전혀 새로운 세계 속에 우리가 빠져든 느낌이었고,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같은 골목길이다.

하루종일 이 골목, 저 골목...

18,362걸음.

 

스코틀랜드 하이랜드 지방. 글렌코를 올랐다.

6월의 싱그러운 신록이 산 전체를 감싸고 풀 내음이 가득했던 곳.

글렌코, 아비모어... 스코틀랜드 하이랜드 트레킹은 정말 다시 걷고 싶은 코스다.

26,405걸음.

 

아이슬란드의 굴포스.

엄청난 굉음을 내며 쏟아져 내려오는 폭포 가까이에서 우리의 옷은 흠뻑 젖었더랬다.

빙하의 나라, 용암의 나라 아이슬란드는 정말 많이도 걸어다녔다.

이 날은 13, 766걸음 밖에 안 걸어다닌 날이다.

사진이 너무 멋있고, 걸어가는 길이 뚜렷이 드러나 이 사진을 고른다.

 

'왜 난 걷는 건지?

무엇이 삶의 목적인지? "

"언제나 변함없는 저 푸른 산과 하늘..."

마테호른이 있는 스위스의 체르마트에서. 36,522걸음.

 

다섯 마을, 이탈리아의 친케떼레 길을 걸으며...

한 여름 뙤약볕 아래 우리는 옥빛 바다 옆으로 난 길을 따라 팥죽같은 땀을 흘리며 끝도 없이 걸었다.

달랑 비키니 차림으로 걷는 사람들도 많이 보여 걸으면서 눈까지 호사했던 길.

26,176걸음.

 

히틀러의 별장, Eagle's Nest.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국경 근처에 있었다.

아직 우리나라 사람들은 많이 안가는 곳이었는데, 독일 사람들에게는 아주 인기있는 트레킹 코스라고 했다.

13,285걸음.

 

드디어 북유럽으로 올라가서.

스웨덴의 스나르스테드.  영국의 스톤헨지와 비슷하다는 거대 바위덩어리들이 늘어서 있던 곳.

투어야 여행사의 손준호 대장이랑 동행했었다.

10,271걸음.

 

노르웨이의 스타방에르에 있는 피요르드 꼭대기 '프라이케스톨렌'을 오르던 날.

바람이 얼마나 세차게 불었던지.

제단처럼 넓은 바위였는데도 까마득히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피요르드로 날려 빠져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었던 날. 

15,154걸음.

 

룩셈부르크 에크트나흐의 뮬러탈 숲도 걸었다.

아주 오래 전 거대한 물줄기가 흘렀을 깊숙한 계곡.

이제는 육지로 올라와있지만 아직도 검은 이끼가 가득했던, 산소 가득한 상쾌한 숲.

걷는 길이 천국같았던 뮬러탈 숲.

그곳도 다시 걷고 싶은 길 중 하나다. 

30,657걸음.

 

우크라이나의 키예프.

전혀 계획에도 없던 우크라이나를 여행해서 마치 행운을 만난 듯한 느낌을 줬던 도시.

하루 종일 키예프를 돌아다녔다. 24,125걸음.

 

러시아의 모스크바.

크레클린 궁과 바실성당. 그리고 붉은 광장.

사흘동안 머물면서 오가며 저 거리를 얼마나 많이  걸었던지....

가을의 문턱에 들어선 모스크바의 바람은 제법 차가웠다.  22,715걸음.

 

라트비아의 시굴다.

에스토니아의 수도 탈린, 라트비아의 수도 리가를 거쳐 전원도시 라트비아를 찾았을 때는

성수기가 지나 여행자들의 발길 조차 뜸한 계절이었다.

비는 내리고... 바람은 차고...

그런데 온 길거리에 주인 없는 사과나무에 가득 달려있는 사과. 또 땅바닥에 떨어져 있는 사과...

가방 한가득 주워서 맛있게 먹었었는데... 10,448걸음.

 

루마니아의 시나이아 산을 찾았을 때.

작년 이 곳에서 우리는 처음 눈을 만났다.

그런데 눈이 반갑다기 보다는 추위때문에 오히려 원망스러웠다는...

산을 오르다 오르다 너무 추워서 그냥 포기하고 내려온 날.

30,172걸음.

 

불가리아의 벨리꼬 뚜르노보.

마치 우리나라의 달동네를 보는 듯한 정겨웠던 곳.

벨리꼬 뚜르노보 성도 포근하게 우리를 맞아주었다. 

21,481걸음.

 

우리 블로그를 봤다는 사람들 중에 많은 사람들이 크로아티아의 플리트비체 호수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 호수의 오묘한 물 빛깔을 ... 그리고 그 곳에 가고 싶노라고 말을 전했었다.

코발트 색, 연초록색...

햇빛이 있었더라면 더 환상적이었을 플리트비체 호수 걷기. 16,556걸음.

 

벼랑끝에 매달린 공중수도원이 있던 그리스의 메테오라.

이 수도원, 저 수도원 하루종일 산길을 걸어다니면서 우리는 자연과 하나가 되어 있는

하늘에 매달린 중세 수도원을 만났었다.

28,531걸음.

 

 남들은 다 낙타다, 말이다, 당나귀를 타고 다니던 이집트 카이로 기자지구의 피라미드에서도

우리는 그냥 뚜벅뚜벅 걸어다녔다.

피라미드를 만들었던 먼 옛날 노동자들을 생각하면서... 19,685걸음 

 

요르단의 페트라.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아 오른 바위 틈을 지나 신기루 처럼 성전이 나타나던 곳.

천천히 느긋하게....  22,983걸음.

 

우리의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어줬던 시리아의 마르무사 수도원 뒷산에서.

해질녁, 나무 한그루 없는 시리아의 사막은 오로지 붉은 색만 있었다. 12,723걸음. 

 

5일동안 머물렀던 터키의 괴레메.

우리가 한 일이라고는 아침에 일어나서 저녁 해질때까지 걸어다닌 일 밖에 없었다.

이 곳이 과연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가 맞는가... 라는 생각과 함께.

경이로운 자연. 27,168걸음.

 

정말 많이 걸어다녔다.

근 1년을 있으면서 도심 내에서 택시를 탄 것은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다.

아니 거의 없다.

그냥 걸어다녔다.

걸어다니는 골목 골목에서 아이들도 만나고 그 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도 만났다 .

덕분에 우리는 택시나 버스의 속도보다 훨씬 느리게 그 곳을 볼 수 있었고, 더 자세하게 만났고, 더 깊은 감동을 받았다.

오를 수 있는 산이라면 다 올라보려고 노력했다.

그 곳의 자연속에 푹 파묻혔다. 그래서 행복했다.

천천히... 느긋하게...

  

 다 정리하고 보니 이 날이 가장 많이 걸은 날이었다.

아일랜드의 '모어 절벽'을 따라 걷는 길.

하루에 무려 41,538걸음.

5월 하순에 잠깐 한국에 들렀다가 다시 여행을 시작했던 시점이었다.

그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정말 걷는 것 뿐일것만 같았다.

지상의 슬픔을 가슴에 품고 아무말없이 그냥 걸었다.

 

어디선가 바람만 불어오면 눈물이 나던 시간, 모든 것이 어려웠던 순간들.

수억년에 걸쳐 만들어진 시간의 길을 걸으면서

우리 만남의 짧고 행복했던 시간을 아픈 다리로 달래면서 잊을 수 있었다, 보낼 수 있었다.

그냥 하루종일 걸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