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지금은 여행중 /못다한 여행이야기

'무기' 대신 '예술품'이, 중국 베이징 따산즈

프리 김앤리 2010. 2. 25. 02:32

 *** 2009년 3월 8일부터 올해 2월 4일까지 우리는 세계여행을 하고 돌아왔다.

       중국 베이징에서 시작해 라오스, 네팔, 인도, 이란을 지나 유럽의 대부분의 나라들과  아이슬란드, 러시아, 우크라이나도 여행했다.

       그리고 이집트를 지나 요르단, 시리아도  거쳐서  터키를 마지막으로 우리나라로 돌아왔다.

       5월 하순경, 한국에 잠시 들어와서 3주정도 머물렀던 걸 제외하면 꼬박 311일간의 여정이다.

       그동안 우리 블로그의 글은 순전히 가족들에게 보내는 안부 차원이라서  매일 매일 어느나라 어디를 어떻게 돌아다니고 있는지

       또 우리는 건강하게 잘 있노라고 걱정하지 말라는 차원의 글을 적을 수 밖에 없었다. 

       이제 다시 세상에서 가장 안락한 가족들과 함께 있으면서 여행중에 다 적지 못했던 여행이야기를 조금씩 정리하려고 한다.

       한 나라, 어느 한 곳의 소개만이 아니라 여행 전체에서 우리가 느꼈던 것들,

       이 나라 저 나라, 이 곳 저 곳을 넘나들며  가졌던 우리의 생각을 '못다한 여행이야기' 코너로 만들어서 쓰고자 한다. ****

 

 

 

프랑스 파리의 '오르세 미술관'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철도역을 개조해서 만든 미술관'이라는 사실이다.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 개최에 맞추어 지어졌던 오르세 역은

이후 철도역 영업을 중단한 뒤 텅빈 역사만 쓸쓸하게 남아있었다.

일부에서는 철거를 하자는 의견도 있었으나 프랑스 정부가 이를 보존하여 활용하는 방안을 강구한 끝에

1980년대 현재의 미술관으로 거듭난 곳이다. 

미술관이 전시하고 있는 다양하고 수준높은 작품과는 별도로

용도폐기된 철도역사가 미술관으로 다시 태어나게 되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나의 관심을 끄는 곳이었다.

 

우리나라 밀양에 있는 연극촌도 마찬가지이다.

더이상 뛰어놀고 공부할 학생이 없어 폐교가 된 학교를 보수하여 만든 연극을 위한 공간으로 다시 태어난 곳이다.

이제 코흘리개 꼬마들의 웃음소리는 더이상 들을수는 없지만

이곳은 전국에서 모여든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웃음과 함성이 가득한 곳으로 변모했다.

 

이번 여행에서 중국 베이징에서도 그런 곳을 발견했다.

'798 예술구', 흔히들 따산즈(大山子) 라고 부른다.

수많은 갤러리와 스튜디오, 서점, 까페들이 줄지어 있는 곳,

거대한 조각품들이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는 798 예술 특구.

 

중국 미술계의 해방구라고 불리우는 이 곳은 원래 중국의 군수물자를 만들어내던 공단지대였다.

1950년대 구 소련의 원조와 동독의 설계,건축으로 조성된 798공단은 중국 공업화의 현장이었다.

냉전의 시대, 군수물자를 만들어내기 위해

공산주의를 대표하던 소련과 동독과 중국이 힘을 합쳤다는 역사에서

예술을 떠올리고 문화를 떠올리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개방 개혁의 물결을 탄 중국안에서

도심 한가운데 있는 무기를 만드는 공장은 경쟁력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하나 둘 공장들은 문을 닫고 798 거리는 점점 폐허처럼 방치되어 갔다.

 

그러나 버려진 공단지대의 저렴한 임대료,  넓은 작업 공간은 예술가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몇해 전부터 미술가, 사진 작가, 디자이너 들이 하나둘씩 이 거리로 모여들어

작업실을 만들고 갤러리를 열고 작품들을 전시했다.

세계의 작가들이 전시회를 열고 사람들은 그것을 보기 위해 모여들었다.

쇳물을 녹이고, 쇠망치 소리로 시끄럽고 하늘을 뒤덮을 듯 연기를 피워올리며

무기를 생산하던 공장이 문화를 생산하는 곳으로 거듭나고

조각품으로 그림으로, 그리고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거리는 가득 채워졌다. 

아직도 여전히 원래 공장의 붉은 벽돌의 외관을 가지고 있고

철재파이프도 그대로 남아있고, 오래되고 낡은 건물들이지만

베이징 시내 어디에서도 맡을 수 없었던 해방의 냄새, 자유의 향기를 품고 있는 곳이었다.

 

이 거리 저 거리 아무 계획없이 그저 발길 닿는 대로 걸어다니며

바라보는 거리의 거대한 조각품들은 우리를 사로잡았다.

어디든지 무료로 들어갈 수 있는 갤러리 안에서는

전시되어 있는 수많은 작품을 만날 수 있고,

때로는 젊은 작가들이 직접 작업하고 있는 현장을 볼 수 있는 행운을 만나기도 했다.

10년전에 왔을 때보다는 훨씬 깨끗해지기는 했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더러움이 남아있는 베이징의 다른 거리와 다르게

따산즈의 거리는 깨끗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따산즈를 돌아다니면서 무엇보다 우리를 감동시킨 건

이 곳이 전쟁을 상징하는 무기를 생산하던 곳이라는 사실이었다.

화력발전소를 개조했다는 영국 런던의 현대미술관 '테이트모던',

설탕공장을 재활용했다는 이탈리아 파르마의 '파가니니 음악당'

가깝게는 정수장 건축물을 재활용한 서울의 '선유도 생태공원'

낡은 것과 새로움이 만나는 현장은 다 감동적이고 의미있겠지만

'파괴'가 목적인 무기공장과

'창조'가 목적인 예술이 만난 베이징의 따산즈, 그 곳이 압권이었다.  

잊을 수 없는 '자유의 느낌'.

  

 

 

 

 

 

 

 

 

 

 

 

 

 

 

 

 

 '798'이라는 건 베이징 행정구역을 의미한다고 한다.

우리로 치자면 아마 798번지 정도 되는.

그런데 정작 따산즈로 가면 어디에도 '798'이 들어있는 간판은 볼수 없다.

단지 따산즈 거리 바로 옆에 예전 군수물자를 실어날랐음직한 기차역을 만날수 있다.

이곳의 번지는 아마 751이었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