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지금은 여행중 /못다한 여행이야기

가장 쉬운 것부터 골라하기

프리 김앤리 2010. 3. 17. 00:25

여행사에 둥지를 틀었다.

새로운 일이다.

오랫동안 선생님으로 불리우다가 여행을 다녀오고 나니 내게 새로운 일이 다가왔다.

'여행 기획'

짧은(?) 방학동안에만 다녀와야 하는 여행이 감질나 늘  안타까워했는데,

이제 일년 열두달, 하루 24시간 동안 여행만 생각하게 된 거다.

취미가 일자리로 다가왔다는 즐거운 비명을 질렀던 건 아주 잠시다.

그저 나의 즐거움으로 계획하던 여행이

이제 다른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줘야 하는 '기획으로서의 여행'으로 거창하게 다가오니

현재는 스트레스 중이다.

학교를 그만두고 한 2년은 여행만 다니면서 푹 놀려고 했었는데

제안 받은 일이 욕심이 나서 덜컹 받아 안고보니 버겁기까지 하다.

역시 일은 그저 즐겁기만 한 건 아닌가 보다.

 

1년간의 여행을 다녀 올때만 해도 내가 생각해 둔 내 블로그에 올릴 글은 무궁무진했었다.

스페인의 산티아고 길만 걷는 길로 로망을  가지고 있는 주변 사람들에게

세상에는 걸어다닐 수 있는 길이 얼마든지 있다고 알려줄까도 생각했었고,

여행 중에 궁금했던 여러가지 숙제들 (예를 들면 680Km 자유의 인간사슬을 만들었던 발트 연안 국가들의 이야기같은)에 대해

좀 더 공부해서 정리를 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또 여행중에 만났던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도 내 글의 소재가 될 수 있었다.

종교가 자기 인생에서 아주 중요하다고 말했던

이집트 카이로에서 아스완까지 가는 밤기차에서 만난 약간은 사이코 같았던 폴란드 중년 남자의 이야기나

중국 징홍에서 만났던 한국인 여권을 가지고 다니던 일본인 2세의 이야기,

세계를 돌아다니며 영어강사를 하다보니 중국 애들이 가장 열심이더라는 의외(?)의 말을 전하던 호주 아줌마 이야기...

 

그런데 아무것도 쓸 수가 없다.

새로운 일에 치여 마음의 여유를 가지지 못한 탓이다.

아니 남의 여행을 기획하느라 내 여행을 생각하지 못한 이유이기도 하다.

 

블로그에 새로운 글을 올리지 않는데도 하루에 3~4백명씩은 찾아오는데,

간혹 며칠씩은 하루에도 천명이 넘는 방문객이 있는데 무슨 글들을 읽고 나가는지 알수가 없다.

주변에 사람들은 '버릇처럼 블로그에 들어가봐도 새 글이 없어서 심심하다'는 이야기만 전해오고,

그럴 때 마다 나는 댓글도 방명록도 남기지 않는 눈팅족들에게

흔적도 없이 살짝 들어왔다가 나가는 당신들  때문에 심심하기는 나도 마찬가지라는 너스레만 떨면서 하루하루가 가고 있다.

밤늦도록 깔깔대며 술을 마신 날 후배에게

"방명록 하나 적어주면 새 글 하나 올려주지~~~" 라며 한 약속 때문에

떡 하나 던져주면 안잡아먹겠다는 호랑이의 빈 말이라도 지키기 위해

이제는 뭐라도 하나 적어야겠다.

아니 스트레스를 받으며 새롭게 시작한 일 속에서도

부지런히 뭔가를 하고 있어야 하는 천성에 다시 발동을 걸기 위해서라도 마음을 다 잡아 먹는다.

 

그래, 가장 쉬운 것 부터 시작하자.

'먹는 것'

모든 것을 다 제낄 수 있어도 의식주의 문제는 우리가 비껴갈 수는 없지 않은가?

그 중에서도 '먹는 것'이라면 쉽게 쓸 수 있겠지.

 

오늘은 라오스의 음식으로 발동을 건다.

쫀득쫀득한 찰밥이 있어 행복했던 나라, 비록 바닷것은 아니라도 비린내 나는 물고기가 지천이었던 나라,

싱싱한 채소로 온갖 것을 만들어내 우리 밥상을 가득 채워줬던 나라, 라오스의 음식으로 시작해보자.

  

라오스는 프랑스의 지배를 받았었다.

동남아에서 유일한 완전 내륙국가로 다른 나라로부터 별다른 침략을 받은 적은 없는 라오스지만

유독 프랑스의 지배만은 받았었다.

그래서 라오스의 거리에서 프랑스의 빵, 바게트를 보는 건 아주 흔한 일이다.

바게트 하나를 사서 그냥 맹으로 먹어도 고소하지만

때로는 꿀이나 초코렛을 바르기도 하고 햄, 야채등을 넣어서 샌드위치를 만들어주는 데 맛이 아주 그만이다.

최근 라오스에 열광하고 있는 서양 여행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도로 사정이 아직은 좋지 않아 한 도시에서 다른 도시로의 이동시간이 많이 걸리는 라오스에서는

도시락으로 바게트 샌드위치를 준비하면 아주 손 쉽다.

 

우리의 흥미를 끈 것 새벽시장이었다.

이른 아침 탁밧 의식을 구경하고 다시 숙소로 돌아오는 길, 새벽장이 섰다.

라오스에는 아직까지 일반 가정에서 냉장고를 가지고 있는 일은 드물다.

그래서 아침이면 사람들이 새벽시장에 나와서 그날 먹을 음식 재료들을 사간다.

우리나라처럼 마늘을 한 두릅 엮어 놓았다 .

앞에 가는 언니들은 우리 동네 시장에서 만나는 이웃하고 꼭 같은 익숙한 차림이다.

 

새벽시장에는 우리가 좋아하는 건어물도 많이 보인다.

오징어, 한치(?)... 그리고 생선 말린 것까지...

그런데 바다가 전혀 없는 이 곳에도 오징어가 나나?

꼬리한 냄새가 지금도 나는 것 같다.

 

풍성 야채들.

따로이 진열대도 없다.

팔고 있는 양도 그다지 많지도 않다.

오늘은 이 만큼만 팔면 된다...

세상에서 가장 느긋한 나라가 라오스라고 했던가? 

 

뭉텅뭉텅 묶어 놓은 야채를 늘어놓고 그다지 서두르지도 않는다.

붙잡지도 않는다.

'오늘 마수라도 해달라'며 치근거리지도 않는다.

한낮의 찌는 더위가 없이 선선한 아침바람이 부는 시장.

파는 사람, 사는 사람 모두가 한가롭다.

 

우리도 이것 저것을 골라샀다.

오이도 사고, 고추도 사고 바나나도 샀다.

그리고 찰밥을 바나나 껍질에 싸서 푹 찐것도 하나 골랐다.

가지고 간 미역과 분말된장으로 된장국도 끓이고 고추장 튜브를 돌돌 말아가며 마지막 남은 것까지 다 짜냈다.

상큼한 우리의 아침 식사.

 

그래도 여행이 즐거운 건, 내가 차려 내놓아야하는 식탁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차려 내오는 밥상을 받는 일이다.

누구나다 감탄한다는 라오비어와 야채 샐러드, 그리고 닭고기 살을 부스러트려 파파야랑 비벼오는 땀막홍.

대나무 바구니에 담아오는 쫀득쫀득한 찹쌀밥.

 

 

다음날도 역시 라오비어와 숙주나물과 토마토를 맵싸하게 무쳐온 야채 샐러드와 라오비어.

어찌 그리 맛있던지... 게다가 가격도 환상이고...

 

저녁이면 서는 야시장에는 먹을 것 천지였다.

Vegetarian들을 위한 부페.

온갖 야채 샐러드가 다 나온다.

한 접시에 5,000낍. 0.5달러가 조금 넘는다는 얘기다.

하루종일 마을을 돌아다니고, 트레킹을 하고, 메콩강가에서 놀다온 사람들이

야외에 차려진 식탁에 둘러 앉아 자신들이 원하는 음식을 골라먹는다.

 

 

 우리도 한 접시를 담아왔다.

여기에도 역시 빠질 수 없는 건, 라오비어.

 

야시장엔 바베큐도 많다.

숯불을 피우고 방금 구워내는 생선, 닭고기, 돼지고기...

도마가 따로이 없다.

이들에게 넓적한 바나나 잎만 있으면 된다.

기다란 꼬챙이에 끼워놓은 각종 구이들...

ㅋㅋㅋ

침이 막 돈다.

 

 

닭고기 바베큐를 사먹으면서 바로 옆에 있는 난전에서 우리나라 물김치 비슷한 것도 찾아냈다.

갓김치였다.

양념에 고추를 넣었는지 색깔은 전혀 붉지 않는데 매운 맛이 톡 쏜다.

국수도 한 그릇 사 먹었나 보다.

 

방비엥에서 하루 종일 카약킹, 튜빙, 수영을 하고 저녁시간 마을로 나왔을 때

돼지고기 바베큐를 만났다.

갈비 부위를 턱턱 잘라 큰 덩어리째 쇠꼬챙이에 끼워 숯불에 구워주던 돼지고기.

마침 수영을 하고 온 다른 서양애들 한 무리가

수많은 꼬챙이를 다 휩쓸어서

"모두 얼마냐?"며 다 먹어치우는 바람에 우리에게 돌아온 몫은 마지막 남은 토막뿐이었다.

 

겨우 몇덩이 얻어서 옆에 만들어 놓은 난전 식탁에 또 쫀득쫀득한 찹쌀밥과 갓김치, 그리고 매운 고추 절임.

수영하느라 소진한 에너지를 한방에 해결한 신나는 저녁이었다.

 

이른 아침이면 우리는 아침을 해결하기 위해 동네를 어슬렁거렸다. 

가난한 동네의 착한 라오스 사람들은 이른 아침 정성껏 지은 밥을

탁밧하러 나오는 어린 스님들에게 공양하고 있는데..

우리는 그저 옆에서 서성거리면서 그들을 쳐다보면서...

우리의 아침을 해결하기 위해 분주했던 시간들.

방비엥의 사흘 아침을 꼬박 찾아갔던 아주 고운 아줌마의 맛있는 닭죽을 파는 가게 앞에서.

 

한 그릇에 6~700원 정도 밖에 하지 않던 닭죽.

튀긴 작은 밀가루 빵도 하나씩 넣어 먹었었지.

첫날은 하나만 넣어먹다가, 다음날부터는 그 빵도 맛있어서 두개도 넣어먹고,

잔잔한 미소를 지어주시는 아줌마가 타주는 진한 라오커피를 한잔 마시기도 했다.

 

 루앙프라방에서도 우리의 아침은 닭죽이었다.

향기가 진한 향초(샹차이)를 넣지 말라고 손을 마구 휘저어서 우리를 보고 있던 라오스 사람들이 어찌나 웃던지...

그런데 처음에는 도저히 먹지 못할 것 같았던 샹차이 맛도 나중에는 익숙해지면서

그 향기가 그리워졌었다.

여행의 후반부로 가서는 이집트 같은데서 간혹 샹차이가 나오는 음식은 오히려

고향의 맛을 느끼기까지 했었으니까...

 

라오스는 바다가 없는 나라다.

그래서 바닷 생선은 없다.

그러나 '생명의 강' 메콩강에는 민물고기가 많이 잡힌다.

냉장고가 없는 라오스 사람들은 이른 아침 시장 바닥에 널부러져 있는 물고기를 사와서

찜도 해 먹고, 구이도 해먹고, 튀겨서 양념을 발라 먹기도 한다.

생선가게에는 달라드는 파리떼들을 쫓기 위해 막대기 끝에 비닐 조각을 매달아

고기 위를 쉬지않고 저어주고 있다.

물고기 양식장에서 키워 잡은 고기가 아니라는게

큰 놈, 작은 놈 크기도 다양하고 물고기의 종류다 다양한 걸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오늘 먹을 만큼만, 오늘 팔 만큼만 잡아서 시장으로 내오는 소박한 사람들.

 

 

집으로 팔려간 고기들은 소박한 라오스 가정의 식탁에 맛있게 오를 것이고,

식당으로 팔려간 고기들은 또 여러가지 방식으로 요리가 된다.

구워지고, 쪄지고, 양념에 재워지고, 또 튀겨지고....

 

메콩강가에 줄지어 늘어서 있는 야외 식당으로 가면 어디든 고기 타는 냄새가 진동한다.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소금 잔뜩 뿌려서 석쇠위에 구워놓은 민물고기들...

 

메콩강변의 식당에 자리를 잡았다.

야채 샐러드와 함께 구운 고기가 우리의 식탁에 올랐다.

식초 대신에 아주 작은 레몬(? 이름이 뭔가 있었는데) 이 오른다.

살짝 뿌려 고기의 비린 맛을 없앤다.

이날 우리는 신나게 이 고기를 잘 먹었는데....

고기가 문제가 있었는지, 깨끗하지 않은 물로 씻어낸 야채가 문제였는지

밤새 설사로 오지게 고생했더랬다.

저녁 식탁에서는 환상적인 맛으로 입은 호사를 했었는데,

속은 부글부글 끓고 죽을 맛이었다.

 

우리는 끔찍하여 한번도 시도해보지 않는 음식도 라오스에는 많이 있다.

참새를 비롯한 날아다니는 새들을 잡아 그대로 말린 것.

새까맣게 바짝 마른 녀석들은 꽁꽁 묶어 팔고 있다.

얼굴도 그대로 남아있고, 다리도 털도 선연히 남아있는 녀석들.

꾸득꾸득 쪄서 먹으면 그렇게 고소하다는데, 보는 것만으로도 끔찍한 장면이었다.

이건 시도 못했다.

 

포장도 제대로 안 된 먼지나는 길을 달리다 보면 라오스의 일반 농가를 많이 만난다.

거기에는 새를 말려서 매달아놓고 팔기도 하고, 과일을 내 놓고 팔기도 한다.

그리고 바로 그 옆에는 돼지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돌아다니고 있다.

 

우리네 애완견처럼 가족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집안 식구는 아닐 터.

저 녀석들을 그대로 잡아서 바베큐도 만들고 다른 음식도 만들 것이다.

우리안에 가둬놓지 않아서, 억지로 항생제 먹이고 성장 호르몬을 먹이는 녀석들이 아니라서

완전 유기농 식품이라고 외국 잡지에서는 광고를 하고 있었지만,

길거리를 그대로 활보하고 있는 돼지들을 만나는 일은 사실 좀 두려웠다.  

  

라오스 음식은 우리나라 사람들의 입맛에 참 맞다고들 한다.

비엔티안의 시장을 돌아다니면서 왜 그런지 확실하게 알게됐다.

젖갈 종류가 아주 많다.

시장 안을 진동하는 비릿한 생선 젖갈 냄새들.

살아서 혀를 낼름거리고 있는 꼬막까지 보인다.

 

닭을 삶아서 시원한 국물과 함께 파는 음식도 보이고...

 

쌈밥집에 가면 나오는 각종 야채 쌈도 보인다.

우리 입맛에 꼭 맞다.

 

라오스 음식의 가장 큰 매력은 싸다는데 있다.

아니 라오스의 매력은 물가가 싸다는데 있다가 더 정확한 말인지도 모른다.

교통비도 싸고, 숙박비도 싸고 당연히 음식값도 싸고.

덕분에 메콩강변에 위치한 근사한 인도 식당에서도 떨지 않고 음식을 주문할 수 있었다는 것.

인도카레 두가지에 난에 라오비어까지 시켜먹는 즐거움이 기다리는 곳이 라오스였다.

 

우리를 흥분시켰던 건, 또 하나 무수한 음료들.

망고, 오렌지등 수많은 과일쥬스들과 막 끓여 내주는 두유까지.

근사한 컵은 아니어도 비닐봉지에 싸 주는 새하얀 두유.

스트로우를 끼워 들고 다니면서 길거리를 걸어다니며 먹는 즐거움까지 준다.

 

그리고 열대 지방에는 빼 놓을 수 없는 사탕수수 즙도.

설탕을 전혀 넣지 않아도 그 달콤함에 넋을 잃는데,

그 놈의 단 맛때문에 사탕수수 즙을 내고 있는 저 순간에도 기계안으로

파리들이 버글버글거리더라는 것.

그래서 혹시 파리도 같이 갈려서 나오는게 아닌가 하며

약간은 두려움에 떨기도 했지만...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라오스에서 가장 맛있는 건 밥이었다.

새우,야채 고기등을 넣어서 만들어 주는 볶음밥. (까오?)

10달러만 내면 카약킹,튜빙, 수영까지 하루종일 데리고 놀아주는 일일투어에는

맛있는 점심까지 제공했었다.

볶음밥에 야채 고기 꼬지, 과일, 바게트까지 주는 라오스를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좋아서 입이 찢어진다.  

  

 

가장 잊을 수 없는 건 바로 이 코코넛 대나무 찹쌀밥. (까오람)

대나무 통 안에 찹쌀, 밤 등을 넣고 코코넛 즙을 짜넣고 오랫동안  찐 뒤에

딱딱한 겉껍질은 칼로 다 벗겨내고 부드러운 대나무 속살만 남겨놓는다.

그러면 우리는 대나무 결을 쭉쭉 찢어서 안에 있는 찰지고도 달콤한 밥을 먹으면 되는거다.

 

아!!! 다시 먹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