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지금은 여행중 /못다한 여행이야기

세상에서 가장 친절한 이란 사람들 |

프리 김앤리 2010. 3. 29. 01:50

<이란의 여성들>

이란 여행의 가장 고역은 히잡을 써야 하는 거였다..

여행자라고 해서 봐주는 건 없었다.

길거리는 말할 것도 없고

호스텔 안에서도 방에서 잠시 나와 화장실을 갈때도 히잡을 둘러 써야 했다.

 

이란의 법이라고 했다.

1979년 호메이니의 이란 혁명 이후 10살이 넘는 여자들은 무조건  가족 이외의 사람들 앞에서는

머리카락을 가려야 하고 윗옷이 엉덩이 아래까지 내려와야 한다는 법을 정했단다.

 

이란 여성들이 써야하는 히잡은

이란의 폐쇄성을, 그리고 여성에 대한 억압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상징으로 되어있다.

저들의 머리를 꽁꽁 가려야 하는 히잡을, 온 몸을 휘감고 있는 망또같은 긴 옷을 벗어 던지는 날,

이란 여성들이 진정한 해방을 맞을 것이라고

외부 세계에서는 말을 하고 있지만...

 

여성에 대한 억압과 구속이라는 갑갑한 느낌으로 시작된 이란 여행.

그러나 내가 만난 이란의 여성들은

우리가 그동안 상상했던 만큼 억눌려 있다거나, 사회적인 제약속에서 몸부림치고 있는 모습들이 아니었다.

겉모습은 히잡을 쓰고 있었으나

그들의 모습은 밝았고 적극적이었다.  

실제 현재 이란 대학생의 65%가 여성일 만큼 교육열도 높고 여성들의 사회진출도 두드러지게 늘어나고 있단다.

 

이스파한의 이맘 호메이니 광장에서 만난 이란 아주머니들.

동양에서 온 여행자를 반기며 함께 사진을 찍자고 청해왔다.

서로들 각자가 가지고 있는 핸드폰에 사진을 찍혀주느라 한참동안을 번갈아가면 모델 노릇을 해줘야 했었다.

이란에 대한 느낌, 이스파한에 대한 느낌을 짧은 영어로 물으면서 내 주위를 한참동안이나 서성거렸던 분들이다.  

 

난 을 구워파는가게 앞에서 줄을 서있으면서.

이란에는 어떤 줄이든지  여성용과 남성용이 따로 있다.

티켓을 살때도, 가게에서 물건을 살 때도, 버스를  기다릴 때도...

자기 아이의 사진을 찍어주는 우리에게 아주 아름다운 미소를 보내줬던 한 어머니.

 

야즈드에서 만난 대학생들.

머리에 둘러쓴 히잡뿐만 아니라 온몸을 휘감는 차도르 까지 하고 있었던 아름다운 그녀들.

공개적인 장소에서는 남자들에게 눈길을 주지 않았지만

우리 끼리만 있는 곳에서는 적극적으로 이야기를 걸어온다.

 

 

 이란에서는 그 때 한참 한국 드라마 '주몽'이 인기를 끌고 있었다.

가판대에서 파는 잡지의 표지 모델은 주로 주몽역을 했던 송일국과 소서노 역할을 했던 한혜진이었다.

우리가 지나가면 두 손을 모아 한 주먹으로 만들고 '주몽'이라고 외치기도 하고,

우리에게 살며시 다가와서 '송일국'의 이메일 주소를 아느냐고 묻기도 했다.

 

낯선 이방인에게 선뜻 다가와서

환영을 하고 또 이것 저것 궁금해 하던 사람들.

이슬람의 코란에는 그렇게 적혀 있다고 했다.

"손님은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그래서 자기네 나라를 방문한 우리를 이렇듯 친절하게 맞아들이고 있노라고.

 

1979년 처음 혁명 당시는 여성들의 옷차림에 제약도 아주 많았고,

그것을 어기는 여성들은 경찰서에 잡혀가고 매를 맞기도 했단다.

그러나 지금은 오랜 여성권리 투쟁에 힘입어 많은 부분이 느슨해 지고 있단다.

마샤드와 같이 지금까지도 이란 내에서 가장 보수적인(? 종교적인 색채가 강한) 도시를 제외한 다른 도시들에서

만나는 젊은 여성들은 머리카락의 많은 부분을 드러내놓고 자신만의 헤어스타일을 살짝 뽐내기도 했었다.

몸의 어느 부분도 맨살로 드러내서는 안되었다는 예전과는 달리 팔을 살짝 걷어 올리기도 하고, 발목을 드러내기도 하고...

 

 이 언니는 머리카락을 제법 많이 드러냈다.

 

여기도...

그래 어쩌면 이런 것이 구속이고 억압일 지 모른다.

히잡이나 차도르를 벗어던지고 자기 자신만의 아름다움을 맘껏 드러내보이고 싶은데

아직까지도 그것을 완전히 벗어던지지 못한다는 것 자체가,

그래서 살짝 머리카락의 일부만을 드러내 보이려는 저 치밀한 노력이 바로 사회적인 제약일지도 모른다.

 

남자들과 함께 있을 때는 별로 말이 없던 이 애띤 여성들도

자기네들끼리만 있을 때는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을 하던지.

이른 아침에 방문한 꽃 가게에서 이들의 적극적이고 활달한 모습에 오히려 우리가 당황하기 까지 했었다.

 

가족이 아닌 다른 남자들이 있을때, 그리고 공공의 장소에서 다른 사람들의 눈이 있을 때는

조신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가

그들이 없을 때 만난 낯선 이방인의 남자에게는 이렇듯 환한 미소를 띄우고

이것 저것 가리지 않고 궁금해하면서 물어본다는 것 자체가 아직은 완전히 다 해방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는 증거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은 분명 변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조금씩 조금씩 달라진다고 했다.

 

단지 이번 여행에서 내가 느꼈던 것은

단순히 히잡을 써야 한다는 사실에 이들이 억눌려 있을것이라는

외부세계의 일방적인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사실.

CNN을 통해서 보고 느끼는 미국적 사고의 틀에서 내 개인의 생각을 옭아매고 있었다는 것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아름다웠고, 밝았고 적극적이었다.

 

진실로 아름다웠고 그리고 세상 어느 곳에서도 만날 수 없었던 가장 친절한 사람들이었다.

 

 

<이란의 아이들>

세계 어느나라나 다 마찬가지이지만 이란의 아이들도 참 예뻤다.

아직 히잡을 쓰지 않아도 되는 겨우 걸음마를 하는 아이도

엄마랑 이모, 언니가 히잡을 쓰고 다니니 따라하고 싶어서 히잡을 종종 쓰고 다닌다.

 

안타까운 건 이런 꼬마들도 머리에 뭔가를 써야 한다는 게 아쉽기도 했지만...

 

야즈드의 아미르 착마흐(Amir Chakhmaq) 광장에서 만난 아이들.

  

 쉬라즈의 한 공원에서 축구를 하고 있는 어른들과 아이 응원단.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 올리브 나무 사이로' ' 천국의 아이들'...

감동적으로 봤던 이란 영화에 나왔던 아이들의 얼굴이 바로 그곳에 있었다.

 

오트바이 타고 시내를 활보하는 폭주족? 같은 청년들도

지나가다가 오트바이를 세우고 같이 사진을 찍자고 청하고...

그것도 길 한복판에서.

 

한무리의 고등학생들은 왁자지껄 떠들썩하게 우리에게 다가왔다. 

 

 

<가족들과 함께> 

이란 사람들의 외출은 '가족과 함께'가 아주 많다.

어스름 저녁 시간이 되면 이들은 가족들과 함께 광장으로 모여든다.

이스파한의 이맘 호메이니 광장은 아빠와 엄마, 아이들이 같이 나와 저녁시간을 즐긴다.

술이 없는 사회 - 이란에서는 어디에서도 술을 살 수가 없다.  아무곳에서도 팔지 않는다.

가정에서는 밀주를 만들어놓고 마신다고는 하지만 이란을 여행 하는 내내 우리는 단 한방울의 알코올도 마시지 못했다.-

저녁시간에 가족들을 팽개치고(?) 마실 술이 없으니 가장들의 저녁은 주로 가족들과 함께다.

 

아이와 함께, 엄마도 아빠도...

 

이맘 호메이니 광장의 분수대에는 아이들이 발을 담그고 놀고 있고,

어른들은 그 주변에 앉아 담소를 즐기고...

가족 단위로 놀러 나온 사람들은 각자들 한자리씩 잡고 싸가지고 온 저녁을 먹고...

 

그래서일까?

이란에서 저녁을 얻어먹는(?) 일은 아주 쉬웠다.

저녁시간이 다가오면 그냥 광장 주변을 쓱 한바퀴 돌기만 하면 된다.

군데 군데 모여 있던 가족들이 우리를 불러 자기 가족들을 소개하며

난(빵)도 주고, 차도 주고, 비스켓도 주고.

여기서 빵 얻어먹고 또 조금 더 걸어가면 다른 가족이 불러 자기들이 만들어 온 쿠키를 주고,

또 일어나 다른 곳으로 걸어가면 차를 주고....

 

강가로 나가도 마찬가지였다.

어디든지 가족들의 모임이 있었고

'하나님이 보내주신 선물'이라는 손님인 우리들은 그들의 저녁 나들이에 초대되었고

그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아버지가 고등학교 영어 선생님이라며 영어를 아주 잘하는 딸을 둔 엄마와 이모는

꼭 자기집에 오랬는데...

쿠키하고 차밖에 대접 못한 것을 아주 아쉬워 했었는데...

  

테헤란의 한 공원에서.

가족들끼리 놀러나와 자기네들 사진을 찍으면서 옆으로는 자꾸 힐끔힐끔 우리를 쳐다보았었다.

그저 '낯선 사람이라서 그렇겠지'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한참을 머뭇거리다 결국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

같이 사진 한장 찍어주면 안되겠냐고.

"No problem!!!"

 

여기도 나들이 온 한 가족.

사진 작가라는 아저씨가 자기 부인과 딸과 나를 세워놓고는

이리 저리 여러각도로 몇장씩이나 사진을 찍었다.

낯선 곳에서 온 익숙하지 않은 모습의 얼굴을 여러장 남겨놓고 싶으셨는지... 

이 아저씨.

그런데 자기는 사진을 찍으면서 눈길한번 주지 않으신다.

또 한가족.

아빠는 자기 아이에게 우리를 소개하고 싶어하는데,

아이는 우리를 보자마자 그만 울어버린다.

어린아이에게 우리는 아마 아주 낯선...

이상한 사람들로 보였을 것이다.

태어나서 동양인을 처음 봤을 수도 있고...

 

우는 아이를 한참동안이나 달래어서 겨우 한 장 찍은 사진.

그래도 아이는 경계심을 늦추지 않는다.

언니도 마찬가지이고...

 

 그런데 한참을 돌다가 이 아이들을 다시 만났다.

어쩌면 일부러 우리 주위를 서성거렸는지도 모른다.

언니가 얼른 포즈를 취한다.

아까보다는 경계심이 훨씬 풀린 모양이다.

 

제일 기억에 많이 남는 가족들.

낮에는 아버지를 만나고 저녁에는 쉬라즈의 하페즈 무덤에서 그의 가족을 왕창 만났었다.

부인과 딸, 아들, 사위 까지 가족들 모두...

쉬라즈의 명물 아이스크림까지 사주면서 테헤란 옆에 있는  Karaj 자기 집에 꼭 놀러 오라고 했었는데...

이스파한을 거쳐 테헤란으로 들렀다가 이 사람 가족들 집에는 놀러가려고 했었는데...

이란 여행을 갔다 온 사람들이라면 누구나들 입에 침이 마르도록 자랑을 하던 현지인의 초대에 응해서

받았던 환대를 우리도 받을 수 있었는지도 모르는 일이었는데...

5월 말에 한국을 들어갈 일이 생겨서 다시 만나지 못한 사람들이다.

 

야즈드의 자메 모스크에서 만난 할아버지 할머니.

이란이 좋냐며,  야즈드는 또 좋냐며,

자기가 줄 건 사탕밖에 없다며 가방안에서 한웅큼의 사탕을 내 주시던 할머니.

영어라고는 'Iran good?'  'Yazd good?' 단 두마디 밖에 안하셨지만

다른 어떤 긴 문장과 긴 대화보다도 더 따뜻한 느낌을 줬던 분들이었다.  

"Iran good?"

"G~~~O~~~O~~~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