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지금은 여행중 /못다한 여행이야기

할마씨들이 주책스럽구로...

프리 김앤리 2010. 3. 20. 00:19

대학교 3학년때였을거다.

단풍이 절정이라는 계절, 나는 우리나라에서 단풍이 가장 아름답다는 내장산을 갔었다.

바로 다음주에 우리 과에서 똑같이 내장산으로 채집여행이라는 걸 공식적으로 떠나는 계획이 있었는데도

굳이 그걸 마다하고 가까운 선후배들이랑 단출하게 떠나는 걸 선택했다.

그 다음주가 되어버리면 절정일때의 단풍을 다 놓쳐버리면 어떡하나 라는 조바심도 있었고,

내심 우루루 과 전체가 떠나는 번잡한 여행이 싫었던 이유도 있었다.

'낭만'이라는 게 다른 어느 것 보다 중요했던 나이였다.

산 전체가 붉게 물든 모습을 보고 어쩌면 나는 울어버릴 지도 모른다고 생각도 했었다.

단풍 낙엽이 가득 떨어져 있는 숲길을 걸으며 가지게 될 고독이라는 걸, 외로움이라는 걸 기대했다.

가을,숲길, 인생, 쓸쓸함,  이런 단어들을 연상하며 우리는 내장산 입구에  들어섰다.

과연 산은 붉게 불타고 있었다.

가슴이 뛰는 것 같았다. 눈물이 나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건 잠시였다. 정말 아주 잠시였다.

내장산의 초입부터 이미 단풍을 점령하고 있던 한무리의 중년의 아저씨 아줌마들.

이미 한잔씩 거나하게 걸치셨는지 다들 몸을 제대로 가누지도 못하는 듯한 모습으로

고래고래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고 있었다. 거의 비틀거리는 수준이었다.

얼마나 열을 내고 춤을 추던지 스스로들 더위에 못이겨 치마를 훌러덩덩 벗어버린 채였다.

요즘 같으면 산에 오는 사람들이 검은 등산바지에 삐까번쩍 기능성 파카, 값비싼 운동화를 신고 오겠지만

당시만 해도 어쩌다 단풍놀이를 나오는 시골 아낙네들이 입고 오는 옷은 한복이나 일반 치마 같은게 많았다.

그 무리들은 대부분 한복들을 입고 와서는, 한복 치마는 다 걷어차버리고

속치마 바람으로 춤을 추고 산이 떠나갈 듯이 노래를 불러제껴

고독, 외로움, 쓸쓸함... 그리고 낭만을 찾고자 했던 우리들의 희망을 한순간에 짖밟아버렸다.

 

"할마씨들이 주책스럽구로..."

우리는 마치 못 볼 걸 봤다며 얼굴을 돌려버렸다.

부끄럽다는 생각뿐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저 중년 정도의 나이였는데,

우리는 주저함이 없이 그들을 '할마씨'라고 부르며 주절주절 불만을 털어놓았었다.

"그냥 집에나 가만 계시지..."

 

그 땐 그랬다.

'청춘! 이는 듣기만 하여도 가슴이 설레이는 말이다' 라는 피천득의 청춘예찬을 무슨 주문처럼 외우고 다니던 시절.

청춘은 끓는 피고, 물방아같은 심장고동 소리라는 문장을 가슴속에 품고 살던 시절이었다.

세상의 자유는 우리들만의 것이고, 세상에 대한 분노도 우리 청춘들만의 몫이었다.

 

그게 한여름의 뙤약볕 아래서 소금땀을 흘리며 농사를 짓고, 가을 들녁의 추수까지 끝낸 어르신들이

단풍든 가을 산으로 오랜만에 마실을 나와

세상사의 피곤함을 다 털어버리는 한판 축제같은 것이라는 걸 깨달은 건 

그로부터 한참이 더 지난 후였다.  

세상의 자유도, 세상에 대한 한풀이도,

세상을 즐기는 놀이도 청춘들만의 독점물이 아니라는 걸 깨달은 것도

교과서안의 지식에서 벗어나 세상에 나와 비로소  배우고 난 뒤에 터득한 진리였다.

 

그 뒤로는 '주책스러운 할마씨'들로서가 아닌

세상을 다 짊어지고 가는 어르신들이 어떻게 세상을 즐기는 지를 살펴보는 건

내 여행의 숙제 같은 것이기도 했다.

유럽을 나갈 때 마다 수많은 서양 노인들이 여행을 다니는 것을  부러운 눈으로 쳐다봤다.

2인용 두발 자전거를 함께 타고 숲길을 하이킹 하는 부부,

산악용 자전거를 젊은이들 못지 않게 멋지게 타는 노인들,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고 강변을 씽씽 달리는 캐나다의 할아버지들,

밤 늦도록 바에 둘러앉아 맥주를 마시고 노래를 부르는 아일랜드의 할머니, 할아버지들...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그 중에 가장 압권은 중국의 어르신들이다.

10년전 중국 여행의 쑤저우 광장에 봤던 수많은 사람들.

그들은 아주 오래된 성벽 안의 광장에 불을 밝혀두고 쌍쌍이 짝을 지어 다 함께 춤을 추고 있었다.

 

이번 여행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베이징의 천단공원에서 만났던 노인들,

찬바람이 불어 젊은 나도 몸이 오그라드는 정도였는데,

그 강추위를 마다하지 않고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무슨 노래냐고 물어봤더니 자기가 작곡한 걸 가지고 주변 친구들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중이라고했다.

한쪽에서는 노래를 부르고, 또 한쪽에서는 재기를 차고 , 마작을 하고 , 춤을 추고...

자식들이 어디 데려다 주어야 밖으로 나간다는 생각은 전혀 없으시단다.

자기들의 인생은 자기들 스스로 즐긴다고...

아름다웠다.

결코 주책스러운 할마씨들이 아니라...

  

천단공원의 할아버지? 할머니?

성별은 잘 모르겠다.

내가 본 어떤 미소보다 아름다운 미소였다.

 

천단공원의 광장에서.

한껏 멋을 낸 사람들이 누가 보거나 말거나 신나게 춤을 춘다.

앗!!! 꼭 멋내는 옷을 입은 것 만은 아니다.

집에서 입던 옷으로 나오면 또 어떠리.

베이징에서 만난 젊은 처녀 왈, 자기 엄마는 매일 아침 눈만 뜨면 천단 공원으로 나가셔서

신나게 춤을 추고 돌아오신단다.

자기는 그 사실을 한번도 부끄럽게 여긴적이 없다고.

매일 매일 건강하게 나가시는 자기 엄마가 참 좋아보인다고. 

 

 

 

 

두 개의 동영상은 2007년도 중국에 갔었을때 찍은 거다.

목소리들도 얼마나 우렁차던지.

얼음이 꽁꽁 얼어있던 아주 추운 날씨였는데

이들은 결코 추워 보이지 않았다.

 

******

오늘  회사 동료의 둘째 아이가 백일이라며 사무실로 떡을 보내왔다.

어찌하다보니 새로 들어간 회사에 내가 가장 나이가 많아

"아이 백일이나 돐떡은 그냥 받아먹으면 안된다"고 왕언니 노릇을 하며

조금씩 돈을 거둬서 아이 아빠한테 전했다.

무럭 무럭 잘 크라고, 아빠 처럼 건강한 마음과 건강한 체력을 가진 멋진 아이로 자라라는

기원을 보태면서 아주 기쁘게 떡을 먹었다.

세상에 태어나서 백일을 맞아 부모는 주변으로 떡을 돌리고

아이 얼굴을 한번 못 본 우리였지만 아이의 건강과 행복을 빌고, 함께 기뻐하고...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모습이다.

 

백일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더 긴 세월,

천일, 만일을 살아오신 어른들의 건강과 행복을 빌고 함께 기뻐하는 것 역시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모습일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