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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01 마침내 미국에 들어오다. 뱅고르(Bangor)

프리 김앤리 2010. 7. 5. 20:22

미국에 들어왔습니다.

여행을 떠나오기 전부터 몇 개월짜리 비자가 나올란지 은근히 마음 쓰이게 하더니만

별 문제 없이 여권에다 3개월짜리 도장을 꽝! 찍었습니다.

누구는 국경에서 비자 도장 찍어주는 사람 마음이다, 3개월 짜리는 잘 안 나온다고 얘기하기도 하고,

또 누구는 가능하면 깨끗한 차림의 밝은 계통 옷을 입고

입국심사대에 들어서라 라는 말도 했습니다만...

 

우리 둘은 그렇게 생각했지요.

굳이 미국을 튕기면서 우리는 느거들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을 필요도 없지만

여기서 무슨 먹고 살 일이 있을 것도 아니고

미국 갔다 와서 대단한 벼슬 할 것도 아닌데,

그냥 우리 있는 대로 하자,

3개월짜리 비자가 나오면 원래 계획대로 3개월 여행하고,

1개월짜리면 딱 그만큼만 미국에서 돈 쓰고 그냥 떠나버리자,

여행 오겠다는 사람도 안 받아주는 건방진 나라라면 우리도 그럴 마음 없다로 말입니다.

 

그런데 육로 쪽으로 들어와서 그런지,

아니면 시골이라서 그런지

입국 심사대에 있는 사람들에게서 미국 사람 특유의 건방짐은 볼 수 없었습니다.

2005년도에 저 혼자서 미국을 한번 여행할 때는

공항으로 입국하면서 내 심사가 약간 뒤틀릴 만큼 까다롭게 굴더니만,

이번엔 아주 편안한 웃음까지 지어주었습니다.

그래도 다른 캐나다 사람이나 미국 사람들은 금방 통과시키면서

우리는 간단한 서류도 하나 작성해야 하고

열 손가락 지문도 다 찍어야 했고,

사진까지 찍어야 해서

같은 버스를 타고 온 모든 사람들이 우리 둘 땜에 한참을 기다려야 하는

귀찮음이 있기는 했지만...

 

하여튼

더럽게 굴면 금방 나가버릴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러지는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그렇게 도착한 미국의 첫 도시가 뱅고르(Bangor)입니다.

캐나다에서 미국으로 넘어왔지만

아직까지 풍경은 거의 변화가 없습니다.

도심 한 가운데로 강이 흐르는 조용한 시골 마을.

 

저녁 7시가 다되어 도착한 곳.

뱅고르 숙소에 관한 정보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우리가 자주 들어가는 호스텔 싸이트에도 없고,

론니 플래닛 미국판에서도 뱅고르에 관한 설명은 거의 없습니다.

어제 캐나다 세인트 존에 머물렀던 숙소(Newman House Hostel)의 주인 할머니가

구글 싸이트까지 검색해서 찾아준 숙소의 주소만 가지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버스 터미널에 도착하니 그 곳은 너무 멀리 있었습니다.

3~4 마일 떨어져 있다며 택시를 타랍니다.

걸어서는 못 간다고...

내일 아침이면 일찍 보스톤으로 내려가야 하는데 택시를 타고 갔다 왔다 하는 것은

시간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낭비일 뿐이라는 생각.

도대체 어디서 오늘, 이 밤을 자야 한답니까?

버스 터미널에서 그냥 배낭여행자의 감으로 길 하나를 선택해 터벅터벅 걸어 내려왔습니다.

 

오호홋!!!  역시...

Charles Inn 호텔이라는 걸 하나 발견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뱅고르의 숙소 대부분은 원래 우리가 가지고 왔던 주소 근처에 다 모여 있고,

이 Inn이 이 근처에 딱 하나 있는 호텔이랍니다.

감 잡는데는 이제 귀신입니다.

난생처음 와 보는 동네에서도 십분도 안되어 숙소를 찾아내는...

문제는 가격입니다.

밖도 그럴싸하고... 로비도 널찍합니다.

90불이랍니다.

아이고... 그러면 그렇지..

우째야 합니까?

택시를 타고서라도 어제 생각해 뒀던 그 호텔로 가야 합니까?

거기는 그래도 70불 정도면 되겠던데...

“좀 더 싼 방은 없을까요?”

“80불짜리는 있다...”

“그것도 우리한테는 너무 비싸요... 아, 물론 당신 호텔이 안좋다는 건 아니죠...

우리가 돈이 없다는 거죠... 내일 아침이면 일찍 떠날 건데... 하루 밤만 자면 되는데...

혹시 좀 깍아줄 수는 없나요?”

가격 다 붙여 놓는 호텔에다가 깍아 달라는 말이 통하기나 하겠습니까?

그냥 한번 해본 소리일 뿐이죠...

 

어라???

그런데...

계산기를 막 두들겨 보던 스텝,

“그래... 좋다. 그러면 70불짜리 방에 들어가라.”

‘70불짜리 방? 뭐 반 지하같은 방을 줄라나?’

“방에 침대가 있기는 합니까?”

“더블 침대가 있다.”

어이?

그러면 됐다. 하루 밤만 자면 되는데 좀 꾸지면 어떠리...

지금 우리가 찬밥, 더운 밥 가리게 됐냐?

날도 이미 어두워지고 있는데.. 배도 고프고...

 

70불. 적은 돈은 아니지만

캐나다에서도 여러 명이 같이 쓰는 도미토리도 60불은 했었습니다.

호텔이니 게다가 아침밥도 줄 거 아냐...

그렇게 돈을 지불하고 가방을 질질 끌고 들어선 방.

오잉?

이렇게 멋진 방이?

사각만이 나오는 사진의 프레임 안에 다 안 들어가서 그렇지

침대 아래로도 얼마나 넓은 공간이 있던지,  발레를 해도 되겠습디다.

 

크하하하

이 날, 우리는 오랜만에 만난 욕조가 있는 욕실에서

그동안 썩혀 두었던 이태리 타올을 꺼내 한 달간의 묵은 때를 빡빡 밀었습니다.

크하하하..

 

호텔 앞에 만들어 둔 파티오(작은 정원)에 앉았습니다.

 

사람의 기분이 얼굴에 나타나는 건 진짜 맞는 말인가 봅니다.

미국 여행만 생각하면 한쪽을 누르고 있던 비자 문제도 3개월로 쉽게 끝나고,

오늘 저녁 묵을 방도 별 어려움 없이 구했는데...

그것도 좋은 방이다 보니, 저절로 얼굴에 웃음이 핍니다.

 

그렇게 우리는 다시 미국 슈퍼를 찾아 나서서

컵라면 두 개와 닭 가슴살 구워 놓은 걸 사와서 저녁까지 해결했습니다.

생판 처음 도착한 낯선 미국 도시에서 슈퍼를 찾아가는 길.

노을도, 미국 어느 노부부도 함께 걸어가는 길이었습니다.

 

이제 그만 자야겠습니다.

내일 아침이면 일찍 보스톤으로 떠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