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지금은 여행중 /여행 하루하루

20100704 Freedom Trail , 보스톤

프리 김앤리 2010. 7. 9. 23:44

이제부터 본격적인 미국 여행이다.

동부에서 시작해서 중부를 지나 서부까지 가는 3개월 미국 여행.

그 처음이 동부의 메사추세츠 주에 있는 보스톤이다.

 

보스톤.

그동안 나는 이 도시에 대해서 무엇을 알고 있었을까?

보스톤 차 사건, 미국 독립전쟁의 시발 도시, 보스톤 교향악단, 보스톤 마라톤,

그리고 하버드 대학, MIT 공대...

내용은 없이 단편적인 단어만들이 머리 속을 맴돌고 있는 곳이다.

 

 

<공부 벌레들은 다 어디에 있는 것일까?>

하버드 대학을 찾아갔다.

‘하버드 대학의 공부벌레들’이라고 책도 나오고 미국 드라마도 재미있게 봤었는데...

전 세계의 수재들이 모여 있는 곳,

도서관에도 교정에서도 식당에서도

어느 곳에서나 열심히 책을 파먹으면서 공부하는 학생들이 있다는 곳.

......

그런데 우리가 간 날이 일요일이라서 그런지 그 ‘공부벌레들’은 거의 보이질 않는다.

방학이라서 다들 휴가를 즐기러 간 건지,

아니면 방문객들은 도저히 들여다 볼 수 없는 도서관에 다 모여있는 것인지...

공부 벌레들은 없고 그들을 보고 싶어하는, 그들을 따라하고 싶어하는 여행자들만 가득하다.

여행자들 중에 특히 중국 사람과 한국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단체 여행자건 개별 여행자건.

공부에 대한 욕심이 가득하다는 것이 하버드 대학으로 구경 나온 사람에게서도 느껴지는 민족들이다.

 

하버드 대학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서있는 곳은 바로 이곳이다.

1600년대 자신의 유산의 절반과 책을 기증했다는 존 하버드의 동상.

설립자도 아니지만 이 사람이 한 기부의 뜻을 기려 대학 이름을 하버드 대학으로 바꾸었다고.

하버드의 왼쪽 발을 만지면 자신이나 자신의 가족이 하버드 대학에 들어간다는 전설이 있어

사람들은 줄을 지어 동상의 왼발을 만지면서 사진을 찍는다.

이제와서 새삼스럽게 내가 하버드 대학에 들어갈 것도 아니지만

남들 다하는 포즈를 안하는 게 아깝기도 하고,

또 아나? 오늘 내가 이 사람 왼발을 만져서 내 가까운 누군가가 언젠가 하버드 대학에

들어갈수 있을지...

 

도서관으로 가는 길.

푸르다.

 

대학 앞 거리.

생각보다 하버드 교정 자체는 그리 크지는 않다.

그런데 우리나라 처럼 대학교정이 따로이 울타리를 쳐서 있는 게 아니라

거리도 바로 대학 교정의 일부처럼 되어 있다.

드라마에서 보면 여기에 있는 까페에서 저녁 늦게까지 하버드 대학의 공부벌레들이

토론을 하기도 하고 맥주도 마시더만...

 

“혹시 아는 사람 중에 하버드 대학 나온 사람있어?”

“그럼~~”

“그래? 누구?”

“오바마도 나오고 케네디도 여기 출신이고...”

“치~~ 그런 사람들 말고.”

“반기문도 여기를 나왔지, 아마?”

ㅋㅋ

우리는 오바마도 알고 반기문도 잘 알지만, 그 사람들이 우리를 알라나?

 

하버드 대학에서 강쪽으로 걸어내려오다 보면

세계 최고의 공과대학이라는 MIT 공대도 나온다.

 

이 친구들도 저쪽 대학 공부벌레들 만큼이나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학생들이겠지?

 

만약 다시 대학엘 들어간다면

나도 학과 공부를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을까?

아니 고등학교를 다시 들어간다면

공부를 죽자고 해서 하버드나 MIT를 왔을까?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과거로 시간을 되돌려본다.

그리고 그때 하지 않았던 일을

지금이라면 다시 할 수 있었을까라는 가정을 해본다.

그와 동시에 지금 한국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는 조카들을 떠올린다.

걔들은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을까?

어른들이 자신의 시간을 되돌리면서까지 '엉뚱한 상상(?)’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을까?

 

보스톤에서 만난 하버드, MIT는 우리의 과거와 대학을 미래로 남겨 놓고 있는

아이들을 동시에 생각한다.

 

 

<그리고 보스톤의 여기저기>

보스톤에서는 나흘밤을 잤다.

다른 사람들은 2~3일, 짧게는 하루 이틀이면 다 본다는 그리 크지 않은 곳이라는데

우리는 대학 돌아보고 시내의 여기저기를 돌아다니고,

케네디 대통령 기념관을 아주 세심하게 보느라고 하루를 꼬박 보내고,

미국 독립의 발자취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Freedom Trail을 따라 걷느라고 고스란히 하루를 할애하고

얼마나 바빴는지 모른다.

그 와중에 미국 독립기념일이었던 7월 4일도 끼어 있었고...

뭔가 천천히, 평화롭게 지내던 캐나다와 달리 미국에 들어오니 뭐가 그리 바쁜지.

느긋하던 캐나다 사람에서 패스트푸드에 길들여져 있는 듯한 바쁜 미국 사람으로 우리도 바뀌어버린 느낌이다.

 

볼꺼 많아, 할꺼 많아

이리 저리 바쁜 우리들과 다르게

자기네들은 보스톤 챨스강에서 요트도 즐기고, 카약도 하고 자전거도 타면서

아주 유유자적이다.

 

아주 광적으로 야구도 즐기고.

알고보니 보스톤이 야구팀 Red Sox의 고장이었다.

우리가 있던 금토일 사흘 내내 저녁시간이면

야구장으로 몰려드는 사람들로 우리 숙소 주변이 발디딜 틈이 없었다.

숙소 옆 길에 있던 대형 간판.

‘야구장에 날아온 홈런 볼이 이 간판을 친다면 그날 모든 사람에게 저녁을 공짜로 주겠다’는 한 레스토랑의 선전 문구다.

가능할까?

저 식당이 왜 저러나???

하하하

그러나 전혀 걱정 없겠다.

야구장에서 떨어져도 한참은 더 떨어져 있는 큰 길가에 있는 식당이다.

이런 말도 안되는 허황한 문구를 붙여놓다니...

그래도 레드 삭스에 광적으로 열광하고 있는 야구팬들은 저 문구를 볼때마다

홈런 볼이 여기까지 날아오는 짜릿한 상상을 할꺼다.

 

그래서 야구가 끝나는 저녁시간이면

낮 동안의 품위(?)있던 보스톤 거리가 갑자기 난전으로 변한다.

레드삭스 모자에 티셔츠에 각종 기념품까지...

오늘의 승패와 상관없이 야구장을 떠들썩하게 나서던 사람들이

흔쾌히 뭔가를 하나씩 산다.

 

그러면 우리도 한번 즐겨볼까?

역시 우리가 좋아하는 길은 숲길.

보스톤의 쭉 뻗은 대로 Commonwealth 옆의 숲길을 걷는다.

 

가는 길에는 여성 흑인 인권 운동가도 만나고.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공원이라는 20헥타르의 보스톤 커먼(Boston Common)에서도 푸르름을 만나고

 

 

저녁 시간이면 사람들이 산책을 나오는 인공호수(? 대형 연못?) 앞으로도 나갔다.

고층빌딩 사이로 끝도 없이 넓은 호수 주변으로 이 동네 사람들이 어슬렁거리듯이 우리도 천천히 시간을 즐겼다.

 

넘들 연애하는 옆에 슬쩍 서보기도 하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우면서도 내게는 슬픔으로 남아있는 도시,

이란의 이스파한이 떠올랐다.

밤에 보는이 교회는 마치 이슬람 사원같다.

 

 

< Freedom Trail >

보스톤에서 우리가 가장 걷고 싶었던 길은 Freedom Trail이다.

영국 식민지 시절의 미국을 볼수 있는 곳, 미국 독립이 탄생한 역사적인 현장을 따라 걸어가는 길.

우리도 자유의 길을 따라 걷는다.

 

프리덤 트레일의 시작은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공원이라는 보스턴 컴먼(Boston Common)에서 시작된다.

1630년도에 최초에는 소를 방목해서 키우던 곳이었다.

영국 식민지 당시에는 영국 군대가 이곳을 사용했었단다.

 

메사추세츠 주의사당(Messachusetts State House).

프리덤 트레일을 따라 가는 길, 역시

우리같이 낯선 여행자들에게는 물어물어, 찾아찾아 가야하는 힘든 길이다.

설~렁 설~렁 구경하듯이 걸어가야 하는데,

우리는 또 역시 책을, 자료를, 지도를 들여다보느라

머리는 땅바닥으로 향해있다.

 

이 건물은 1798년에 완성되었다.

그러니까 미국 독립 선언후 20년정도 지난 후에 완성되었다.

독립선언서에 서명을 하기도 한 존 핸콕이 제 1대 메사추세츠 통치자가 되어 이곳에서 집무를 하였단다.

현재도 이 주의 의사당 건물로 그대로 사용되고 있다.

 

미국 독립전쟁 당시의 학교 모습이 찍힌 사진이 있었는데

여기도 우리나라처럼 ‘국기에 대한 맹세’ 같은 것이 있었다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문장의 내용도 우리와 거의 비슷한...

우리가 거기에서 베꼈나?

 

 

건물 안에서 눈에 띄었던 건 학생들의 자원봉사 모습이었다.

우리나라 학생들이 채워야 하는 봉사시간, 봉사점수와는 좀 다른 모습이었다.

우리 동네 지하철에는 그냥 한쪽 구석에 서서 핸드폰이나 만지작 거리면서

그저 시간만 떼우고 있는 학생들을 자주 본다.

물론 봉사에 대한 기본 의식이 없어서 그럴 수도 있지만

봉사활동을 하는데도 아이들의 의지가 들어가거나, 자신의 창조적인 생각과 열정이 들어갈 틈을 주지 않는

형태의 봉사활동만 제시해서 그럴 수도 있다는 거다 .

그런데 여기에서는 아이들이 직접 원하는 사람들에게 의사당을 돌아다니면서 일일이

설명을 해주는 활동을 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이 활동을 위해 스스로 공부도 해야 하고

사람들의 반응에 따라 뿌듯함이라는 자기 만족감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캐나다에서도 의회나 박물관, 도서관 같은데서 아이들이 방문객들에게 설명하는 봉사활동을 많이 봤었는데...

우리도 저렇게 할 수는 없을까?

 

트레일은 계속 된다.

파크 스트리트 처치(Park Street Church) 바로 옆의

Granary Burying Ground로 간다.

그라나리 묘지라고 하면 되겠지.

존 핸콕, 사무엘 아담스 같은 미국 독립 전쟁의 영웅들, 보스톤 대학살의 희생자들의 묘가 있다.

그리고 벤자민 프랭클린의 묘도 여기에 있다.

 

이 사람들, 영웅들에 대한 추모는 참 각별한 것 같다.

 

King's Chapel.

방문객들을 위해 연극으로 설명까지 곁들여 준다.

 

미국 최초의 공립학교가 있었던 곳.

아이들을 가르치는 그림이 새겨져 있다.

 

모퉁이의 오래된 책방과 광장.

 

그 광장에선 지금...

아주, 정말, 황홀하게, 멋진 전자 기타 연주.

잊을 수가 없다.

정말 끝내줬다.

 

1700년 당시의 정치, 상업의 중심이었던 Old State House.

  

마침 우리가 간 날이 7월 2일이라

7월 4일 독립기념일과 가까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Freedom Trail을 따라 걷고 있는지...

 

모여드는 사람들을 위해 가는 길 곳곳에 공연도 벌어지고.

이건 비보이 공연이었는데

특이하게도 이 팀에는 꼬마까지 끼어 있었다.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공연을 하는 듯하다.

 

공연하고 공연보는 광장앞에서 우리는 점심도 사먹고.

 

트레일은 챨스 강가로 이어진다.

식민지 미국민들에게 가혹한 세금, 심지어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즐겨먹던 차에도 세금을  부가하려는 대영제국에게 반발하여

소위 ‘미국의 아이들’이라는 단체 소속의 사람들이

보스톤 항구에 떠있는 배위로 올라가 차가 들어있는 박스를 상자째로 바닷물에 던져버렸던

‘보스톤 차 사건’이 일어났던 곳.

 

영국과의 독립전쟁 당시

영국의 침입했다는 소식을 알리며

말을 타고 보스톤부터 렉싱턴까지 달려갔다는

미국 독립전쟁의 영웅, Paul Revere의 생가.

 

우리는 미국 독립전쟁사를 잘 몰라, 그저 그렇게 돌아보고 있는데

사람들은 이 장면을 아주 잘 알고 있는지

굉장히 열심이다.

 

투어 가이드들은 온갖 자료를 다 들고 와서

당시의 상황을 설명하고.

 

당시 복장을 한 가이드는 아이들에게 부지런히 뭔가를 일러준다.

 

“그래, 여기가 바로 Old North Church란다.

아가 그 Paul Revere의 신호로 영국군이 들어오고 있다는 것을 알게되자

이 교회에서는 두 개의 등불을 켰단다.

그 전에 교회에서는 사람들이 모여서 준비를 하고 있었고...

...”

이들에게는 이게 자기들의 역사다.

 

말을 타고 달리는 Paul Revere의 동상 너머로 Old North Church가 보인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이들의 영웅 이야기보다, 그들의 치열했던 전투 이야기보다

교회 뒷마당에 걸려있는 군인들의 비표가 더 눈에 띈다.

붙여놓은 글을 읽어보니

‘이라크전과 아프가니스탄전에서 희생된 사람들을 위한 추모’란다.

거기서 목숨을 잃은 군인들의 비표인가 해서 하나하나 들춰보는데

아무 글씨도 없다.

어?

아~~~ 그랬다.

이라크전과 아프가니스탄전에서 희생된 군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이들 전쟁에서 목숨을 잃은 모든 사람들을 위한 추모였다.

그렇지. 사실 이 문구를 언뜩 봤을 때

‘이 전쟁에서 미군에 의해 목숨을 잃은 민간인은 무슨 죄라고?’

라고 생각했었는데,

‘희생된 모든 사람들을 위한 것’이란다.

얄밉던 것이 좀 해소된다.

미국 독립의 길을 따라 걷고 있으면서도

나는 그들의 독립의 길보다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교회 앞마당에서도 역시 연극으로 상황을 설명하는 사람이 있고.

(물론 교회 안에도 있었다.)

 

Copp's Hill Burying Ground.

또 다른 묘지다.

자기네들 역사 속의 영웅들이 묻혀 있는 곳이다.

우리는 잘 모르지만, 자기네들은 잘 알고 있는...

 

이제 트레일은

챨스타운 다리를 걸어서 건너간다.

 

그곳에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군함이라는 USS Constitution이 서있다.

 

 

독립기념일을 맞아

독립전쟁 당시 미 해군이 싸웠던 모습을 재현하는 퍼포먼스도 보여주고.

   

그리고 Freedom Trail의 맨 마지막.

미국 독립전쟁 당시 영국군과 가장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는

벙커힐(Bunker Hill)로 오른다.

1775년 6월 17일, 그 날.

이 들판에선 1,400명의 사상자가 나왔단다.

그래서 지금은 이 언덕위에 당시를 기리는 221피트 높이의 기념탑이 우뚝 세워져 있다.

 

거의 300계단이 다 되는 꼭대기까지 걸어 올라가

숨을 헉헉 거리면서 보스톤 시내를 내려다보는 것으로 우리의 보스톤 Freedom Trail은 끝났다.

 

 

<미국 독립기념일>

7월 4일이다.

미국의 독립기념일.

보스톤 전체가 떠들썩하다.

아니 미국 전체가 떠들썩하단다.

전체 50개 이상의 도시에서 저녁이면 불꽃놀이를 하고 페스티벌을 연단다.

보스톤은 챨스 강가에 보스톤 팝스가 대규모 공연을 하고, 뒤이어 불꽃놀이도 펼쳐진단다. 

 

우리도 챨스 강가로 나가볼까?

무슨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모였는지...

 

보스톤 팝스 공연이 직접 있는 강 남쪽보다

강 북쪽에 사람들이 더 많이 모여있다.

강 북쪽은 보스톤의 화려한 야경, 스카이 라인이 다 보이는 곳에서 불꽃놀이를 구경할 수 있기 때문이란다.

보스톤 팝스 공연은 대형 앰프 시설로 강 북쪽으로도 연주 실황이 다 들리는 장치를 세워두었다.

귀로는 음악을 들으면서 눈으로는 화려한 야경과 함께 불꽃놀이를...

저녁 8시가 되어서 시작한다는데 오후 3~4시부터 와서 자리를 잡고 앉아있다.

 

강 위에는 요트, 보트, 카약들이 북적인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불꽃을 바로 머리 위에서 볼 수 있다나?

 

정말 많다. 

 

기쁨에 넘쳐 있는 사람들...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들...

 

자유롭게 보이는 사람들

Freedom Trail에서 내가 가장 많이 본 단어는 “Liberty"였다.   

미국에 있어 자유란 뭘까?

 

뭔가 비장해 보이는 사람.

   

남편은 그런다.

우리가 아무리 미국을 좋아하지 않더라도

절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은

1700년도에 왕정을 거부하고 민주주의라는 것을 만들어 낸 나라라는 거다.

세습되는 왕정이 아닌, 

사람들이 자신의 대표를 뽑을 수 있는 권한을 가지도록 만들었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것이라고 말이다.

물론 여성이나, 노예등 투표권을 가지지 못했던 당시의 한계도 있겠지만

그것을 최초로 제도적으로 만들어 낸 나라라는 건 인정하자는 거였다.

 

아직도 우리에게는 시간이 많이 남아있다.

이제 겨우 처음 도시일 뿐이다.

 

미국 독립전쟁이 시작된 도시, 그래서 다른 어느 곳보다 진보적이라는 보스톤.

대학이 있어 젊음과 열정이 넘쳐나는 도시,

옛날과 현대가 잘 어울려 품위있어 보이는 보스톤에서

내 평생 그렇게 많이, 그렇게 오랫동안 터지는 것을 본 적이 없는 불꽃놀이로 또 하루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