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지금은 여행중 /여행 하루하루

20101113 진보의 산실이라는데...캘리포니아의 버클리대학

프리 김앤리 2010. 12. 23. 01:26

<잡다한 이야기 먼저>

능력 있는 사람들은 한꺼번에 여러가지를 다해내면서도 

아주 짜임새있고도 능숙하게,그리고 완벽하게 일들을 처리해낸다. 

그런데 나는 한꺼번에 두가지 이상의 일을 다 쳐내지 못하는 얼뜨기다. 

책을 읽으면서 음악이 나오면 나는, 책에도 집중하지 못하고 음악도 제대로 못듣는 경우다.

책을 읽든지 음악을 듣든지 둘중에 하나를 택해야 한다. 

TV보면서 방 치우기, 이런 것도 못한다. 

TV를 보려면 소파에 눕다시피 기대어 앉아 있어야 하고, 

방을 치운다면 학교에서 교실청소 하듯이 식탁 의자까지 다 뒤집어 올려야 청소를 제대로 한 것 같이 느낀다. 

그래서 어쩌면 아예 방을 어질러 놓고 사는지도 모른다. 

외유내강, 뭐 이런 것도 못한다. 

강하지도 않으면서 겉으로는 강한 척, 튼튼한 척 할 뿐이다. 

찐~한 여행을 하자고 계획하면서 학교 선생님을 그만두겠다고 결정한 것도 그 맥락이다.

여행을 하면 여행이고 선생님을 하면 선생님이어야 하는 그런 부류다.   

 

근 2년동안 세계 여행속에 빠져 있었다. 

2009년 3월에 시작한 310일이 넘는 중국부터 유럽, 중동까지의 여행, 

그리고 2010년 6월 다시 시작해서 거의 11월말까지 돌아다닌 아메리카 대륙 여행.

바로 지난주에 끝난 마지막 일본 여행까지.

2년을 여행만 하고 다녔다.  여행 생각만 했다. 

여행을 다니고 있는 동안에는 여행 이야기를 블로그에 열심히 올렸다. 

그런데 막바지가 되니 육체적으로 피곤함은 물론, 정신적인 피로까지 겹쳐

블로그에 여행이야기를 올린다는게 그렇게 힘들수가 없었다. 

다 팽개치고 놀았다. 

 ...

아니 거짓말이다. 

여행을 마칠 즈음부터는 내년 1월1일 부터 다시 사회의 일원으로, 어엿한 정상인으로 복귀를 하겠다고 생각하고 나니까

두가지를 한꺼번에 하지 못하는 능력없는 얼뜨기인 내가 우왕좌왕했던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기나긴 여행이야기를 완벽하게 마무리하고 나서 새로운 일을 구상해야 하는데

한국으로 돌아오고 나서부터는 어느새 나의 세계여행이야기는 과거의 일로 만들어버리고 

다시 시작해야 할 일에 빠져 있었던 이유다. 

그런데 이제 내가 놀 수(쉴 수?) 있는 시간의 한계점에 도달하려는 순간 

문득 돌아다보니 아직 앞선 일이 다 정리가 되지 않아 또 얼뜨기 같은 느낌이 드는 거다. 

 

... 마저 마무리한다. 

남아있는 미국이야기에 그리고 일본 여행까지.    

 

 

<진보의 산실이라는 버클리대학>

최근에 읽은 책 중에 며칠동안 내 머리를 떠나지 않는 구절이 있다. 

오마이뉴스의 오연호 기자와 서울대 법대 조국교수가 쓴 책 '진보집권플랜'에서다.     

  그렇죠.  이명박 정권이 추구하는 정신을 풀어보자면 이런 겁니다.    

  "인권이 밥 먹여주냐, 민주화가 밥 먹여주냐, 진보가 밥 먹여주냐."    

  그에 대해서 진보 개혁 진영은 주로 "밥 보다 중요한 게 있습니다"라고 답해왔습니다.     

  맞습니다.     

  밥보다 중요한 게 있습니다. 그런데 부족합니다.     

  질문에 대한 답을 한 게 아니예요.    

  "진보는 밥 먹여줍니다"라고 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떠한 방식으로 밥을 만들고, 어떠한 방식으로 밥을 나눌 것인지를 얘기해야 한다는 겁니다.  

 

보수라는 단어보다 진보를, 보수보다는 개혁이라는 말에 더 호감을 가지고 살아가는 나에게 있어 

그동안의 진보와 개혁은 '보수가 아니기만 하면 되는 것'처럼 

알갱이는 없이 관념속에서 허우적 거렸다는 느낌이다. 

최근에 잇슈가 되고 있는 연평도 사격훈련을 비롯한 한반도의 전쟁과 평화, 

무상급식으로 대표되는 복지정책에 관한 입장을 따져본다면 

나는 분명 보수라고 칭하는 사람들의 생각과는 확실하게 다르다고 말할 수 있지만, 

스스로 구체적인 상을 그려내지는 못하는 무식쟁이다.   

 

버클리대학도 마찬가지다. 

버클리라고 하면 미국내의 가장 대표적인 진보계열 대학이라는 사실만 알고 있을 뿐

그 진보라는 것이 무엇이며 어떻게 진행되고 어떻게 결실을 맺고 있는지도 정확하게 잘 모른다. 

버클리 대학이 베트남 전쟁과 관련하여 반전 운동의 발상지였다는 사실 하나만 정확하게 알고 있을 뿐이다.

그 이후는 어떤 연구소가 어떤 진보정책을 만들어 내고있는지, 

그것이 미국 사회내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채 이 곳을 다녀왔다. 

 

단지 미국보수의 산실이라는 같은 캘리포니아의 또 다른 대학 스탠포드를 돌아보던 느낌과 비교해서 

버클리 대학은 그냥 딱 봐도 훨씬 더 자유로운 분위기였다거나

생기있는 대학생들의 활발한 모습으로 캠퍼스가 북적거리고 있었다는 느낌이 강렬하게 와 닿았을 뿐이다. 

한국에서 돌아와서 읽은 '진보집권플랜'과 맞물려지면서 

그래서 버클리의 여행은 지금와서 생각하면 부끄럽기 그지없다.       

 

버클리 대학을 들어서서 제일 먼저 만난 건 이런 부산스러운(?) 전단지들이었다. 

스탠포드 대학에서는 어느 한 귀퉁이에서도 발견할 수 없었던...

하버드 대학이나 MIT, 혹은 미국의 어느 다른 대학에서도 쉽게 발견하지는 못했던 모습이다.

 

각종 집회나 공연 알림부터 같이 공부하자, 같이 여행가자, 때로는 방내놓음 방 구함까지...

덕지덕지 정신없이 붙어 있는 게시판을 보면서 

이것이 정신없음으로 비춰지는 게 아니라  뭔가 살아움직이는 모습으로 보였다면

나의 지나친 애정이었을까???  

 

일요일이었는데도 학교 캠퍼스 곳곳에 학생들이 가득하다. 

살아있는 느낌이었다. 

물론 도서실에서 그리고 연구실에서 공부를 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학교 전체가 쥐죽은 듯이 조용한 유럽이나 미국이 여타 다른 대학은  또 그 나름대로의 우수함은 있겠으나 

그런 대학들에서 내가 받았던 느낌과는 또 다른

활동적이고 자유로운 모습을 풍기는 곳이 버클리였다.

 

도서실에는 버클리 학생이 직접 설명을 해주는 도서실 가이드투어도 진행되고 있었고  

 

또 다른 한쪽에서는 무슨 동아리인지 아카펠라 연습이 한참이다. 

미국의 다른 주보다 캘리포니아주가 더 그렇다고 익히 듣기는 들었지만 

버클리대학에는 유독 유색 인종들이 많다. 

아시아 나라의 학생들은 물론이고 히스패닉 계통의 학생들이 아주 많이 보인다.   

 

일요일 아침, 캠퍼스에 울려퍼지는 이들의 노래를 가만히 듣는데 

내용은 도통 알수가 없다. 

그런데 어느 나라 노래인지 모르겠는데, 한국식으로 발음만 들린다.   

 ♪♪♪ 잠좀자라 잠좀자라 ♪♪♪

설마 한국노래겠냐만은 우리에게는 이들의 노래소리가 잠좀자라 잠좀자라라고 밖에 안들린다. 

ㅋㅋ

버클리 대학애들이 얼마나 열심히 공부를 했으면 제발 잠 좀 자라라고 노래를 부를까?

ㅋㅋ

만구 우리 생각이다. 

하여튼 전체가 아주 밝고 살아 펄떡거렸다. 

 

대학의 입구는 다른 여느 대학들과 거의 비슷한 모습이었는데도 말이다. 

정문이 있고, 캠퍼스가 있고... 아참, 아니다. 

미국의 다른 대학은 정문이 없었던 것 같다. 

정문이라는 걸 만들어놓고 여기서 부터 딱 대학이다라는 경계를 만들어 두지는 않았던 것 같다. 

정문과 캠퍼스, 광장, 거기다 일요일이었는데 사람들이 드나드는 모습까지 우리나라의 대학모습과 비슷했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한국의 소리.

쿵쿵 쿠궁쿵!!! 북소리다. 

가만보니 한국학생 그룹은 아니다. 

5년전에 버클리를 찾아왔을 때 한국인 유학생 그룹들이 치던 사물놀이 소리가 같이 겹쳐져

북소리만 듣고서 이번에도 버클리의  한국학생 그룹이겠거니 지레 짐작을 했는데 이번엔 틀렸다. 

그래도 전부다 아시아계다. 

함께 하는 구령도 그래서 죄다 영어다.

 

자세히 다가가서 보니 북도 아니다. 

앞에 있는 지도자(?) 그룹을 빼고는 모두다 폐타이어에 랩을 꽁꽁 싸매고 그 위에 천을 덮었다. 

그래도 다같이 함께 장단을 맞추며 두들기는 소리는 저 멀리까지 웅장하게 울려 퍼지는 

영락없는 북소리다. 

반바지 차림인데도 땀을 뻘뻘 흘리는 패기있는 젊은 버클리 학생들이다. 

학생들이 어디에 숨어서들 공부를 하고 있는지 

도통 알수가 없는 조용하고 적막하기까지 했던 다른 대학과는 정말 완전 딴판이다. 

정신없는 게시판에 군데 군데 무리지어 있는 학생들, 노래소리 북소리까지 두둥둥 울려퍼지는 

시끌벅적 왁자지끌한 대학교. 그게 우리가 만난 버클리였다. 

 

같이 갔던 중 1짜리 조카녀석에게 

니가 이 곳에 들어온다면 얼마나 좋겠냐? 그러면 니보러 샌프란시스코에 몇번씩이라도 더 올텐데...랬더니

자기는 이 곳보다 베를린 공대가 더 땡긴단다. 

유럽의 대학은 대부분 학비가 면제라는 이야기에다

공과계통으로는 독일이 아주 우수하다는 지나가는 이야기를 허투루 들은 건 아닌갑다. 

여기도 얼마나 유명한데... 노벨상 수상자도 얼마나 많이 나왔는데...

정작 나중에는  어느 대학을 가더라도 

지금은 세계 모든 대학이 자신의 미래에 가능한 것으로 만들어놓은 수 있는 청소년이라는 때가 참 부럽다.

 

올해의 대학 졸업자 사진을 걸어놓은 광장.

버클리도 지금 당장 유명한 사람, 위대한 사람보다도 

앞으로의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자신들의 졸업생을 축하해준다는 뜻이겠지.

이들이 펼쳐나갈 올바른 세상을 기원하며 말이다.

 

 버클리 대학 캠퍼스의 상징이라는 새더타워(Sather Tower). 파란 하늘과 하늘끝으로 솟아있는 시계탑을 바라본다. 

 

그리고 버클리대학의 캠퍼스에서 바라다 보이는 태평양과 

저멀리 샌프란시스코의 상징, 금문교에도 눈길을 준다. 

살아 펄떡거리면서도 평화로운 버클리에서 나는 어떻게 '진보'라는 의미를 찾아야 할까?

또 다른 숙제를 받아안고 우리는 이날 오후 미국의 마지막 여행지 샌프란시스코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