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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겨울 일본 '료마를 만나다, 나가사키 1'

프리 김앤리 2011. 1. 9. 03:28

사실 일본여행은 갑자기 계획한거다.

미국 여행을 끝마치고 돌아오면서 한달 정도 남은 기간동안 오만과 아랍에밀레이트 등 중동지방으로 마지막 여행을 떠나고 싶었다.

그런데 다른 것 다 제쳐두고 여행이라는 이름으로, 여행만 생각하며 보낸 시간이 거의 2년에 가까워지자

몸도 마음도 다 피곤해진거다.

중동이라는 단어에서 주는 묘한 매력과 설레임, 호기심등이 주는 매력보다

또다시 낯선 곳에서  낯선 문화를 헤집고 파헤쳐야 할 의무감 같은 것이 더 강한 무게로 다가왔다.

좀 쉬운데로 가보자.

먹는 것도 낯설지 않고, 시간의 차이도 계절의 차이도 없는 가까운 곳으로 가보자.

그렇게 선택한 것이 일본이었다.

굳이 공항까지 나가지 않아도 되는 곳,

지하철을 뽀로로 타고 항구로 나가 쉬운 검색절차를 거치고 아침에 배를 타면 채 정오도  안되 도착할 수 있는 곳,

먹는 것도 낯설지 않고 사람들 생김새도 낯설지 않은 곳, 일본이 딱이었다.

 

 

<10권의 장편소설, 료마가 간다>

사실 일본은 거리상으로만 가까운 나라였지 따지고 보니 별로 아는 게 없다.
학교에서 수학여행을 갔다거나, 유럽 아메리카대륙을 들락거리면서 잠깐잠깐 내려서 힐끗 본거 말고는
뭔가를 알고자 하는 마음도 관심도 별로 없었다.
일본 여행을 가겠다고 마음을 먹는 순간, 일본에 대해 완전 무식한 나를 발견한다.
남편은 나더러 장편 소설 '료마가 간다'라도 얼른 읽으란다. 

 

사카모토 료마는 일본이 서양을 비롯한 미국의 개항요구에 몸살을 앓고 있던 시기,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1860년대 막부 말기, 막부 타도 운동에 앞장서 메이지 유신의 밑그림을 그린 사람이다 .

막부나 각 번(한)이 가지는 권력과 이익, 그에 대한 충성만이 있던 당시 일본 사회에서 

료마는 처음으로 '전일본'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250여년 이상 권력을 독점하고 있던 막부를 타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료마라는 인물에 대해 현재 밝혀진 역사가 여러가지 허구가 있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하급무사 출신이었던 료마가 당시 일본 상황에서는 일반적이지 않았던 신분 철폐에 대한 생각이나

일본이라는 섬나라에 갇히지 않고 세계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만큼은 확실한 것이었다.

사쓰마 현과 조슈현간의 삿초동맹을 중매한다거나 막부의 권력을 천황에게 돌려주는 '대정봉환'을 구상하는 

일본역사에 남은 아주 굵직한 일을 해낸 료마이기에 일본에서는 근대 일본의 길을 연 국민적 영웅으로 추앙받는 것이다.  

 

미국 여행과 일본 여행시작의 사이,

그 잠깐의 기간동안 '료마'에 뿍 빠져 살았다.

10권의 장편 소설 '료마가 간다'를 순식간에 읽어제꼈다.

1960년대에 일본의 한 신문에 연재되었던 '료마가 간다'는

그 때까지도 사람들에게 별로 알려져 있지 않던 료마를 일본인의 영웅으로 부각시킨 소설이다.

더구나 일본 NHK가 2010년 연초부터 드라마 '료마전'을 방영해 바야흐로 전 일본에 료마 열풍이 불고 있다는 것이다.

10권의 장편소설을 다 읽고 48부작 드라마 '료마전'을 우리 노트북에 몽땅 다 담아서 일본으로 떠났다.

우리는 어떻게 료마를 만날 것인가? 

 

부산 중앙동 부두에서 쾌속선 코비를 타고 꼭 세시간 만에 후쿠오카 하카다항에 도착,

곧바로 하카다 역으로 가서 JR 카모메를 타고  나가사키로 내려간다.

예쁘게 장식해놓은 기차에 그려진 이쁜 인형들이 'がんばれ!!!' 라는 메세지를 전한다.

'감바레!!!'

그래 아자 아자 화이팅이다.

다시 떠나온 여행, 힘을 내자 힘을 내!!!    

 

사카모토 료마를 알기 전 내게 있어 나가사키는

히로시마와 더불어 2차 대전 당시 원자폭탄이 떨어진 곳으로만 각인되어 있을 뿐이었다.

지구상에 몇 안되는 그라운드 제로의 하나라는 사실만해도 엄청난 것인데

료마가 일본 최초의 주식회사라고 불리는 가메야마사추를 만들어 활동했던 곳도 나가사키라는 사실을 알고나서는

낯선 도시에 새로운 의미 하나가 덧칠해진다.

왜 누구 한명이라도 아는 사람이 사는 동네나 아파트를 지나칠때면 괜히 그 사람이 생각나고

그래서 한번 더 돌아봐지지 않는가?

 

과연 료마 열풍이었다.

 

배에서 내려 후쿠오카로 들어서는 순간부터 하카다 역에서 그리고 나가사키 역, 거리, 상점,

료마가 마시던 술, 료마가 그려진 수건부터 등, 과자....

무덤덤하게 생긴 실제 료마의 모습과는 달리 드라마 료마전의 주인공이 워낙 잘생긴 일본 배우라

얼굴 인기까지 더해져 걸음 걸음마다 료마에서 벗어날 수가 없게 만들어 두었다.

 

나가사키의 거리에서 만난 료마와 그의 부인 오료상.

일본 열도 전체를 달구는 료마의 인기에 영합하려는 듯 료마관을 후다닥 급조한게 역력하게 드러나는 종이 동상까지. 

 

겨울 연가가 떠서 경기도의  남이섬이 뜨고,

가을 동화가 떠서 속초 아바이 마을이 뜨고...

없던 료마상을 새삼스럽게 급조해서 종이 인형으로 만들어놓은 나가사키 거리의 조잡함에서는 벗어나고 싶었다.

드라마가 떴기 때문에 료마를 보고 싶은 것은 아니었다.

 

일본 역사속의 실제 인물, 사카모토 료마를 만나고 싶었다.

 

 

일본 여행을 떠나오기 전 남편은 내게 하나의 화두를 던졌다. 

 

'동양과 서양의 차이,선진국과 후진국의 차이는 어디서 비롯되었나?

 일반적으로 사회학자들은  총 균 쇠 라는 세마디로 답한다. 

 그러면 같은 동양인 일본과 우리나라의 차이는 언제 어디서 부터 시작되었나?

 일본도 메이지 유신 이전에는 우리와 비슷하게  작은 섬나라 농업국에 불과했는데...

 천황과 막부, 번의 영주,무사와 농민 상인등의 계급구조도

 왕과 사대부, 양반과 상민 천민등으로 나누어진 우리나라와 비슷했는데...

 그리고 양쪽다 백성들의 삶은 피폐하기 그지 없었는데...

 

 그런데 일본을 보니까 막부를 타도하고 천황을 새롭게 세우던  메이지 유신때

 메이지 유신을 지휘하던 지도부, 무사와 지식인들은

 이미 미국의 워싱턴 대통령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미국은 천황(대통령)을 국민이 직접 뽑는다. 천황은 하녀의 월급을 걱정한다더라.

  대통령을 4년마다 바꿀수 있고 누구나 그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될 수 있다더라.

  사람들 사이에는 계급이 없다더라."

  만약 우리나라의 동학농민전쟁때 전봉준 장군이 혹은  전봉준할배의 참모가 조지 워싱턴을 알고 있었더라면...

  천지인, 이런 것 말고도.

  좀 더 구체적으로, 우리도 왕을 우리가 직접 뽑자고 했더라면

  좀 늦게라도 조선의 백성이 비젼을 가지고 싸우지 않았을까?'

 

우리가 일본이라는 나라에서 료마의 흔적을 찾고자 한 이유는 여기에 있었다.

저리도 무덤덤하게 생긴 사나이에게서 발견할지 모르는 우리와 다른 그 무엇을.

 

일본의 개항기, 외국 상인들과의 무역 중심이 되었던 구라바 저택을 찾은 이유도 그랬다.

그 곳에는 료마를 흥분시켰던 미국 흑선 (구로후네)의 모형이 전시되어 있었고

미쯔비시의 창시자 이와사키 야타로의 이야기도 있었다.

- 이와사키 야타로는 료마와 같은 고향출신으로 소설 료마가 간다나 드라마 료마전의 중심인물로 등장한다-

 

구라바엔  저택을 나온 우리들의 다음 코스는 료마 동상이 세워져있다는 가자카시라야마(風頭山)를 찾아 올라간다.

나가사키 항구 전체가 다 내려다보이는 곳이라고 하는데...

지도상으로 보면 도심에 있는데... 오르는 길은 공동묘지다.

일반 주택들이 있는 골목에서 올랐을 뿐인데 온통 묘지다.

'료마의 길'이라는 게 이렇게 생겼나?

일본 열도를 달구고 있는 료마 열풍과는 사뭇 다르다.

 

마치 우리나라 달동네를 오르는 것과 같은...

 

한참을 올랐다.

료마의 실제 키도 170Cm를 넘었다는데 언덕위에 놓여져 있는 료마상도 묵직하다.

그는 여기에 서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허구가 많이 섞여 있는 소설속의 료마를 읽고 나는 마냥 그를 영웅으로 여기고 있는 건 아닐까?

사실 소설이나 드라마에서 나오는 료마의 여러가지 이야기에 대해서는 의구심을 많이 품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관심은 그를 비롯한 당시 일본 지식인(? 무사계급? 메이지 유신의 주축) 들이 가지고 있었던

새로운 사상이고, 그들이 적극적으로 도입했던 신기술이었다.

이번 여행에서 나누는 우리의 대화는 실제 역사에 바탕한 소설속 인물들의 삶과 생각을 떠올려 보는게 아닐까?

 

료마 동상을 뒤로 하고 아래로 내려온다.

어이? 이 길이 진짜 길인가 보네?

음산하고도 가파른 공동묘지 길과는 다르게 표지판까지 있는 깔끔한 길이 나온다.

아까는 길을 잘못 들었었나 보다.

료마동상은 340메토루, 료마가 활동했던 가메야마사추는 210메토루 돌계단을 내려가라는 안내판이 보인다.

 

일본어 회화는 잘하지 못해도 일본 글을 읽을 수 있는 것만 해도 얼마나 다행인지...

한자를 알고 있는게 얼마나 다행인지...

만약 이번 여행을 일본으로 정하지 않고 중동으로 정했다면

우리는 아랍어 앞에서 완전 까막눈이 되어 공포감과 함께 한참을 헤메고 다닐텐데 말이다.

 

'료마토리- 료마의 길'

단정한 일본집들이 늘어서 있는 길이다.

깔끔한 일본 길.

 

허리에는 칼을 차고 팔짱을 끼고 있는 항상 같은 포즈의 료마의 꼬마동상을 길 안내표지판 위에 올려 놓았다.

12월인데도 집 밖으로 늘어진 나뭇잎이 파랗다.

우리보다 위도가 낮아서 그런거겠지?

 

료마가 활동했던 가메야마사추 터.

가메야마 사추는 훗날 가이엔타이(海援隊, 해원대)를 거쳐 미쓰비시 그룹으로 발전한다.

 

메이지 유신이 성공하기 몇년 전 , 당시 막부 타도를 공공연히 주장하는 지방 번은 사쓰마 번과 조슈번이었다. 

그러나 같은 입장을 생각을 가진 조슈와 사쓰마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   

조슈번은 이미 이전에 막부를 한번 공격하여 패배를 한 적이 있었다.

당시 사쓰마 번은 막부의 편에 서서 조슈 정벌에 앞장을 섰기 때문에 조슈와 사쓰마는  원수지간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름하여 1864년의 1차 조슈정벌 사건이다.

막부는 이후 조슈의 완전 섬멸을 위해 다시 조슈번을 공격하고자 한다.

그러나 이번에는 사쓰마번의 입장이 막부 옹호가 아니라 막부의 타도로 바뀐다.

 

 (소설이나 드라마에서는 료마가 새로운 일본의 건설을 위해 사쓰마번의 지도자와 만나 이를 성사시키는 것으로 나오지만

  -소설이나 드라마에서의 료마는 거의 람보다. 뭐든 다 할수 있는 , 누구든지 설득할 수 있는...???-

  정확한 역사적 사실은 잘 모르겠다.

  위대한 새로운 일본 건설이라는 원대한 포부를 품은 료마가 이루어낸 일인지,

  아니면 가메야마사추라는 장사하던 회사의 이윤을 위해 상인적 기질을 발휘한 것인지

  혹은 힘이 움직이는 곳을 정확하게 파악한 사쓰마 현을 비롯한 지방정부들의 정세 인식이 발효된 것인지...)

 

그런 와중에 막부의 대군이 조슈를 공격하기 위해 쳐들오고 있었다.

조슈 번이 전쟁에서 지면 막부를 타도하고 새로운 정부를 구성하는 것은 한낱 허황된 꿈으로 밖에 남을 수 없었다. 

조슈 번은  이미 막부에 의해 반란군으로 규정되어있어  해외와 어떤 거래도 할 수 없었고

당연히 막부와 싸우기 위한 총기도 구입할 수가 없었다.

이때 료마와 그의 가메야마사추가 등장한다.
료마는 사쓰마 번과 조슈 번의 주요 인물들을 설득하여 서로 동맹을 맺게 하고,

조슈 번이 막부군과 싸울 때 쓰기 위한 총기를 사쓰마 번이 대신 구매해 주도록 주선한다.

일본 역사를 새로이 쓴 삿쵸동맹(삿쵸 밀약)이 맺어지는 순간이다.

조슈 번은 료마의 중계 덕분에 막부군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었고

결국 사쓰마와 조슈, 도사는 이후 힘을 합쳐 막부를 무너뜨리고 메이지 유신을 성공시키게 된다.

 

이후 료마는 막부의 권한을 천황에게 돌려주는 대정봉환을 실현시키고

새로운 정부 조직이나 인물배치에 대한 구상까지 마쳐 각 번주들에게 전달하나

메이지 유신의 성공을 보지 못하고 자객들의 습격을 받아 최후를 맞는다.

 

가메야마사추 정원.

삿초동맹, 대정봉환등 엄청난 사건의 구상이 진행된 역사적인 장소다.

 

 

 

 

 

 

 

 

 

 

 

 

 

 

 

 

 

 

 

 

 

 

 

 

 

 

 

 

 

 

 

 

 

 

 

 

 

가메야마사추를 내려오면 만나는 료마의 부츠 상.

 

뭐, 신발 하나가 대단한거라고 동상까지 만들어두나???

그런데 앞에 붙여둔 글을 대충 읽으니 이해는 된다.

 

신분제도가 엄격했던 시기의 당시에 하급무사 집안에서 태어난 료마는

자유와 희망의 도시 나가사키로 와서 일본에서는 최초로 부츠를 신었다는 것이다.

정해져 있는 의복만 착용해야 했던 관습을 깨부순 그의 모습의 상징이 바로 부츠라는 것이다.

료마의 부츠는  가메야마사추 130주년을 기념하여 제작 설치하였는데

실제로 신어볼수 있는 체험형 모뉴먼트라나?

료마가 바라보던 언덕위의 이 곳에서 실제 신발을 신고 료마의 기상을 체험하라고...

 

나도 료마의 부츠에 발을 넣는다.

그가 걸었던 길, 그가 바라보던 그 곳에 서서 나도 그의 기분을 느끼며... 

어떤 소설적 허구와 드라마적 포장을 다 벗겨내고서라도

고정된 계급 구조에 저항했던 실제 역사 속의 료마의 기분을 느끼기 위해서다. 

 

료마의 길을 따라 내려온다.

 

드라마 료마전의 포스터를 보면 'Re Japan! Project'라고 쓰여져 있었다.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회장은 중학생때부터 그를 숭배하여 따라 배우기를 해왔다고,

료마의 열정과 헌신성, 고정관념에서 탈피하는 독창성이야말로 일본 최고의 CEO라고 치켜올렸다.

오부치 게이조 전 일본 총리는 정파의 이해관계를 적절하게 조정하여 안정된 정국을 이끌어야 하는 일본 총리로서

힘들때 마다 일본 번영의 토대를 마련한 료마를 찾는다며 그를 영웅으로 만든다.

 

일본인들의 자부심을 위해, 새로운 일본의 건설을 위해

뭐든 다 할수 있는 람보식 료마를 드라마에서 만든 건지도 모른다는 내심 불편한 마음을 갖고서도

부정할 수 없는 실제 인물 료마를 나는 일본의 첫 여행지, 나가사키에서 만나고 간다.

아직 남편이 던진 화두의 답을 찾지는 못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