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지금은 여행중 /여행 하루하루

흑돼지 샤브샤브가 있는 가고시마, 2010 겨울 일본

프리 김앤리 2011. 1. 17. 21:17

 

오늘은 먹는 이야기만 할랍니다.

사실 좀 품위있게 사는 것 처럼 보이려면

'인간은 빵만으로 살 수 없다'거나 ' 배부른 돼지보다는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낫다'

뭐,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먹는 것보다 더 형이상학적인 이야기를 해야 한다지만

우리같은 배낭여행자들에게는

'오늘 어디서 자야하나?' 그리고 '오늘은 무얼 먹나?' 만큼

더 절실한 것은 없습니다.

'먹고 자고'가 가장 고차원적인 요구입니다.

 

감동적인 역사가 있는 유적지를 앞두고 책도 읽고 공부도 많이 하고 합니다만

이런 것들은 시간이 지나면 마치 까마귀를 삶아먹은 듯 다 까먹어버리지만

여행지에서 맛있게 먹었던 음식들은 어찌 그리 또렷히 기억나는지요.

라오스의 쫀득쫀득한 찰밥을 잊을 수 없고,

아침마다 따뜻하게 구워져 나오는 이란의 난과 육개장 비슷한 디지는 자다가도 그립습니다.

시리아의 알레포에서 먹었던 핫케익도, 차안에서 노숙하면서 먹었던 아이슬란드의 연어회도 그 달콤한 맛이 또렷합니다.

터키의 카파도키아에서 먹었던 항아리 케밥 맛도 여전히 입안에서 살살 돌고

뮌헨의 뒷길에서 먹은 학센도 독일 이야기만 나오면 빠지지 않는 우리의 단골 이야기입니다.

미국 여행길에서는 곳곳을 돌아다니며 만난 선후배 친구들의 집에서 먹은 한국 음식이

그 집 여주인장의 미소와 함께 또렷히 기억나는 겁니다.

 

나보다 배낭여행의 경험이 늦었던 동생이 그러더군요.

유럽이다 어디다 세계를 여행하고 돌아온 언니가 허구헌날 하는 이야기가

어디는 뭐가 맛있더라, 어디에서 먹은 뭐가 정말 끝내주더라 라는 말 밖에 안하더랍니다.

남들이 못하는 여행을 그렇게 많이 다니면 뭐 좀 그럴싸하고 낭만적인 이야기를 해주나 싶었는데

맨날 먹는 이야기밖에 안하더라나요?

그런데 자기도 여행은 나가보니 먹는 것 만큼 즐거운 게 없더라는 걸 느꼈다는 겁니다.

ㅋㅋ

 

가고시마에서 우리가 잡은 숙소는 덴몬칸(천문관) 거리 바로 옆에 있었습니다.

기차를 갈아타고 갈아타고 가고시마 중앙역에 내려서 텐몬칸 숙소까지 왔을 때는 이미 저녁 시간이 되어 있었습니다.

규슈 섬의 남쪽 끝에 붙어 있는 가고시마는

완전 시골의 조그마한 동네일거라는 우리의 상상과는 다르게 번쩍거리는 도시였습니다.

허기진 배를 부둥켜 안고 나선 가고시마의 덴몬칸 거리는 먹는 것 천지였습니다.

덴몬칸의 뒷 거리에는 마치 우리나라 선술집처럼 보이는, 그러나 결코 초라하거나 허름하지 않은 음식점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었습니다.

자!!! 무얼 먹을까나!!!

 

가게마다 잘 차려놓은 음식 모형을 보면서 침이 꿀꺽꿀꺽 넘어갑니다.

그렇다고 아무거나 먹을 수는 없지요.

우리의 정보망에는 이미 '가고시마의 흑돼지 샤브샤브'가 입력되어 있었으니까요.

 

이 집도 기웃, 저 집도 기웃.

쉽사리 정하지 못한 것은 순전히 가격 때문이었습니다.

영어는 거의 통하지 않고, 그렇다고 우리의 일본어 회화 실력이 그러하니 일본어도 거의 통하지 않는 상태에서

숙소 스텝에게서 더듬더듬 알아낸 정보에 의하면 흑돼지 샤브샤브는 일인분에 1800엔은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1,800엔이라!!! 거의 25,000원입니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이제 우리의 기나긴 세계 여행은 끝이 나고 있는데...

큰 맘 먹고 기웃거리는데 1,800엔짜리도 찾아내기 힘듭니다.

 

ㅋㅋ 멋진 집을 찾아냈습니다.

분위기도 딱 일본 식당 같은게 안을 힐끗 들여다보니 연기가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가운데 사람들이 꽉 들어차 있는 곳입니다.

밖에 써 놓은 간판을 대충 읽어보니 '1시간에는 1,800엔  2시간에는 3,000엔' 이렇게 써 있습니다.

그것도 2

 

 

 

 

엔"

"오잉?"

우리는 두가지에 놀랐습니다.

2명에 3,000엔이 아니라 1명에 3,000엔 이었다는 사실.

그리고 더 시킨 맥주값은 받지 않는다는 사실.

'수고이' '혼도니 오이시이데스' ' 판타스틱'  온갖 짧은 일어 영어까지 섞어가며 찬사를 늘어놓은 것이 쑥스러워

벌벌 떠는 손을 눈치채지 못하도록 단도리하며 거금 6,000엔을 내밀고 돌아 나오면서

우리 둘은 동시에 또 하나의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렇다면 아까 더 준다던 그 고기들도 먹었어도 된다는거 아냐?"

 

그때서야 새삼 우리가 잊고 있던 식당앞에 놓인 간판의 한 구절이 생각났습니다.

'2시간에 3,000엔'

2시간 동안은 얼마든지 더 먹어도 된다는 거였는데...

샤브샤브건 구이건 맥주, 밥을 시간 동안에는 얼마든지 리필이 가능하다는 뜻이었는데...

그 중요한 사실은 다 놓쳐버리고 2명이라는 글자에만 꽂혀서 잘못 해석해가지고는...

우리나라 식 으로 따지자면 최소 2명은 되어야 된다는 뜻, 아니겠습니까???

 

사실 더 먹으라고 해도 먹지도 못할 만큼 배가 불렀지만

공짜로 먹을 수 있었다는 사실이 우리 가슴을 찔렀습니다.

맥주라도 더 마실걸!!!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래도 어찌 그리 맛있던지요?

또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에 우리에게 있어 가고시마는

어둑어둑한 불빛 아래, 분위기 마음에 드는 조그마한 식당의  흑돼지 샤브샤브로 기억될 겁니다.

돈을 계산하던 벌벌 떠는 손과 함께...

그냥 두고 나온 시원한 기린 맥주와 함께...

 

가고시마에는 사실 먹을 것 천지였습니다.

가고시마 항구에 있는 쇼핑센터도 그랬고

가고시마 중앙역 안에 있는 가게 안에서도 온갖 종류의 카스테라, 찹쌀모찌를 팔고

가고시마의 특산물이라는 오뎅도 종류대로 다 팔고 있었습니다.

팔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가게마다 견본품을 내어놓고 시식을 권하기 까지 하는겁니다.

항구의 쇼핑센터에서도, 그리고 가고시마 중앙역의 가게에서도  얼마나 많이 집어 먹었는지...

오뎅 맛은 가히 환상적이었습니다.

 

오뎅은 집어 먹는데 정신이 팔려 사진 한장 없고 카스테라 사진만 찍었군요.

빵 종류도 어찌 그리 많은지...

배고픈 시각 들른 우리나라 슈퍼에서 우선 한바퀴 돌며 이것 저것 집어먹는 즐거움이 일본에도 고스란히 있었습니다.

아니, 우리나라 보다 좀 더 많았다고 할까요?

한 가게도 빠짐없이 다 시식코너가 있었으니까요.

 

딱 한군데 이 아이스크림을 파는 가게에는 시식코너가 없었습니다.

가고시마의 명물 시로쿠마 아이스크림(빙수)라는데...

짠챙이 배낭여행자 둘은 아무 망설임 없이 안 사먹었습니다.

공짜로 안줘서...ㅋㅋ

다른 걸 워낙 많이 집어먹어서 더 들어갈 틈도 없었습니다.

 

흑돼지 샤부샤부 말고도 우리는 가고시마에서 우동도 사먹고 맛있는 홋까홋까의 벤또도 사먹었습니다만

특별히 다른 곳보다 가고시마 하면 먹는 걸 연상하는 이유는 우리의 숙소였습니다.

짧은 일본어 실력으로 일본어 사이트에 직접 들어가 숙소 예약을 하면서

우리의 가장 큰 관심은 그 호텔이 아침밥을 주느냐 아니냐, 또 그 밥이 어떠냐는 것이었습니다.

호텔이라고 해도 어차피 방 크기야 미국 여행 다닐때와 비교하면 숨도 못 쉴만큼 콩알만한 것이기에

애시당초 기대는 접었고 오로지 우리의 관심은 맛있는 일본식 아침이었습니다.

아침식사가 인기라는 글귀에 꽂혀 선택한 가고시마의 우리 숙소는  메이트 호텔이었습니다.

과연 탁월한 선택이었습니다.

 

중앙 탁자에 놓여있는 반찬밖에 찍지 못했지만

한 편에는 갖가지 소스와 함께 야채가 종류대로 담겨 있고,

밥과 국은 또 다른 탁자에, 그리고 여러 종류의 빵과 음료수도 가득 담겨 있었습니다.

가고시마에서 맞은 이틀은 맛있는 음식이 가득찬 행복한 아침이었습니다.

아침부터 반찬과 밥을 두번씩이나 가져다 가득 배 채워 먹고서도 오뎅이뇽, 카스테라뇽 마구 집어먹던 가고시마가 그립습니다.

 

먹는 즐거움을 가득 안겨준 아주 고차원적인 이야기, 가고시마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