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지금은 여행중 /여행 하루하루

검은 모래에 파묻히니 송글송글 땀이 나더이다. 2010 겨울 일본

프리 김앤리 2011. 1. 28. 00:30

 

우리가 이브스키역을 찾은 이유는 딱 한가지였습니다.

이곳에는 좀 색다른 체험을 할 수 있다는 겁니다.

일본의 남도 바다가 보이는 모래사장에 온 몸을 푹 파묻는다고 합니다.

모래 찜찔이야 한여름 뙤약볕 아래의 해운대에서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지만

이곳은 사시사철 모래찜질이 가능하다는 겁니다.

화산활동이 활발한 일본이기 때문이지요.

땅 속 깊은 곳에서는 지금도 활활 타오르고 있는 자연 에너지를 이용하는 거지요.

땅만 파면 뜨거운 온천이 솟는 일본 큐슈지방은 바다와 닿아있는 바닷가의 모래사장이

한겨울에도 열을 받는 모양입니다.

한여름 태양에 달궈진 모래가 아니라 땅속 열기로 데워진 모래,

더구나 그 모래가 화산 모래, 검은 모래라니 구미가 당기지 않습니까?

언젠가 한 TV 프로그램에서 양희은하고 개그맨 박미선, 송은이가 이브스키 검은 모래에 몸을 파묻는 모습을 본 이후

그 장면이 머리에 확 꽂혀 있었더랬습니다.

목욕용품만 챙겨들고 가고시마에서 기차를 타고 한시간 정도

우리는 이브스키 역에 도착했습니다.

 

조그만 시골 동네였습니다.

시골역사 바로 앞, 역시 이 곳에도 족탕이 있습니다.

어느 곳이나 땅만 파면 뜨거운 물이 솟아나는 일본 남도.

이 사람들은 참 좋겠습니다.

아니 무서울까요?

자신들이 디디고 서있는 발아래 땅이, 자신들의 보금자리를 지어놓은 집터 바로 아래에서

뭔가 부글부글 끓고 있다는 생각에서 두려울까요?

그냥 낯선 여행자의 기우일까요? 호기심일까요?

남북을 휴전선으로 그어놓고 언제든지 서로 총부리를 겨누는 듯한 한반도에 대해

외국 사람들이 늘 조심스런 눈빛으로 '니네 나라 아무 문제 없냐'고

'무섭지 않냐'고 질문들을 해와서 황당하곤 하던 그런 식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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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시마를 출발하기 전까지 이날 우리의 주제는 단 한가지였습니다.

'어여 빨리 이브스키 검은 모래에 몸을 파 묻어보자 !'

그래서 역 앞에 있던 깔끔한 족탕도 그냥 지나치고

도로를 따라 내려오면서 만난 맛있는 일본 벤또도 본둥 만둥 지나쳤는데

스멀 스멀 다른 생각들이 피어오르는 겁니다.

 

일본 여행을 시작하면서 자꾸 들었던 생각.

여기서도 또 듭니다.

일본 거리는 우리나라와 다르게 어딘지 모르게 깨끗한 것 같다는 느낌 말입니다.

휴지가 없어서 그럴까?

요즘 우리나라에도 길거리에 휴지 나부랭이들이 널부러져 있는 건 아니잖아!

전봇대와 얼기설기 얽혀있는 공중의 전기줄이 보이지 않은건가?

우리도 요즘은 전기줄이 그리 많이 있는 건 아니잖아. 그리고 뭐 여기도 전기줄은 있는데???

그럼 뭐지?

뭐가 있어 일본 거리는 이리 깨끗하고 단정하다는 느낌을 받지?

대문이 없어 안마당이 훤히 드러다보이는 조그마한 집들을 만납니다.

참 단정하다, 그치? 뭔가 깔끔해 보이지 않냐?

소박해서 그런가?

군더더기도 없고 겉치레도 없잖아?

하여튼 깨끗해... 하여튼 단정해...

어찌보면 어디 한구석 빈틈이 없어보이는 참 얌체같이 보이는 깨끔함입니다.

청소를 열심히 해서 그런가?

 

이 집 저 집, 이 골목 저 골목 다 마찬가지입니다.

여기 이브스키에서만 느끼는 깨끗함이 아니라 일본 여행을 시작하면서 내내 드는 느낌이었습니다.

뭘까?

도대체 뭘까?

왜 우리나라와 다르게 여기는 이렇게 단정해 보이는 걸까?

아파트가 없어서 그렇나? 도로 구획이 잘 되어 있는걸까? 간판이 없어서 그렇나? 우후죽순 늘어서 있는 가게들이 없어서???

???

오히려 집들은 더 낡았는데도???

???

오로지 검은 모래찜질만 기대하고 들어선 시골동네 이브스키에서

우리는 또 다른 생각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아~~~~ 알았다.

차가 없다 !

골목에 차가 하나도 없다 !

가만 생각해보니 일본 골목에서는 자가용이든 뭐든 주차시켜 놓은 차를 본 적이 없습니다.

집 밖의 골목에 자기 물건,

그것이 자가용이든, 간판이든 제 집안의 물건을 도로로 내어놓은 것은 없었습니다.

도로는 통행하는 곳이었습니다.

공공의 장소를 개인적으로 사용하지는 않고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사실 차도며 골목이며 이렇게 단 한대의 차도 주차되어 있지 않는 거리를 발견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지요.

일본의 거리가 우리나라보다 훨씬 더 깔끔하고 단정해 보이는 이유가 바로 차량이었다는 사실.

놀라운 발견이었습니다.

골목은, 도로는 사람과 차가 통행하는 곳이지 차를 세워두는 공간이 아니라는 아주 뻔한 사실에 놀라고

공공의 장소를 어느 한가지 제 물건으로 채워놓지 않은 깔끔함에 또 놀랍니다.  

 

새로운 발견에 들떠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걷기를 이십여분.

어느새 검은 모래 찜질을 할 수있는 해변에 도착했습니다.

바다가 보입니다.

TV에서 봤을 땐 그냥 바로 해안 모래에 누워있었는데 찜질하는 곳 위로 대나무 발도 쳐놓았습니다.

저 속이 어떻게 생겼나 몹시 궁금합니다.

 

810엔(원래는 900엔인데 어젯밤 우리가 묵은 가고시마의 숙소에서 10% 할인 쿠폰을 발견하고 오려왔습니다.)을 내니

이런 요상한 옷을 줍니다.

유카타라네요.

덕분에 웃긴 차림을 하고 밖으로 나섭니다.

 

오잉? 천막 아래에 옹기종기 사람들이 머리만 내어놓고 모래에 폭 파묻혀 있습니다.

머리끼리 맞대고, 발 아래 또 다른 사람의 머리가 붙어 있고...

웃기는 장면입니다.

모래가 뜨거운지 수건으로 감싼 얼굴들이 모두 벌겋습니다.

 

반듯이 누운 제 몸위로도 검은 모래를 마구 퍼 올립니다.

그냥 모래만 해도 온 몸을 짓누르는 무게로 무거운데

온 몸의 반쪽은 뜨거운 바닥에 , 그 위로 뜨거운 모래들을 퍼 담으니 무겁기도 하고 뜨겁기도 하고

꼼짝달싹도 못하겠고... 참 가관입니다.

무지막지한 삽으로 검은 모래를 퍽퍽 올려놓는데 남편은 그저 웃으면서 사진만 찍습니다.

 

결국 남편도 뜨거운 검은 모래속에 파 묻히고...

삽을 들었던 종업원은 무지개 양산까지 씌워주고는 아주 익숙한 솜씨로 우리 둘의 사진을 찍어줍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

어이쿠!!! 뜨거워라....

으매!!! 무거워라....

검은 모래에 파묻히니 온 몸에 땀이 숭글숭글 나더이다.

눈 앞에 펼쳐져 있는 바다고 뭐고 감상할 여유도 없이 온몸을 지져대는 바닥의 열기로

어느 새 우리 몸은 땀으로 옴팍 젖어들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