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지금은 여행중 /여행 하루하루

귀여운 지옥, 벳부 지옥순례. 2010 겨울 일본

프리 김앤리 2011. 1. 31. 03:00

 

오늘은 벳부다.

일본 온천 여행을 갔다왔다는 사람치고 벳부를 안갔다는 사람은 거의 못봤을 정도로 벳부는  내게 이미  아주 낯익은 지명이다.

그래서 우리나라 온천들처럼 어디 큰 대중목욕탕에 뜨뜻한 물이 철철 넘쳐나는 그런 곳인줄만 알았다.

한겨울에 눈내린 산을 바라보며 몸을 푹 담그고

'어~~ 어~~ 신음소리' 내며  몸을 팅팅 불려 때를 우두둑 벗겨내고 뽀사시 윤기나는 얼굴로 마감하는

그런 온천들이 주루룩 있는 곳.

 

2년째의 세계여행 막바지라고 이제는 건방시럽게 공부도 제대로 안하고 아무 정보도 없이 내려선 벳부역.

인포메이션 센터에 들어갔다.

무슨 지옥순례라는 걸 해야 한단다.

그리고 벳부 버스를 하루종일 마음대로 타는 일일 티켓을 사라는 이야기.

준비를 안하고 온 바보 둘이는 그저 시키는대로 할 수 밖에

역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호텔에 짐을 풀어놓고 다시 역으로 나와서 일일 티켓을 사고

벳부 온천 지옥 순례에 나선다.

과연 벳부의 지옥은 어떤 곳일까?

 

첫번째 지옥.

우미 지코쿠, '해지옥'이다.

8개의 지옥 모두의 입장권이 일인당 2,000엔이나 한다.

오잉?

그나마 벳부 일일 버스 티켓이 있다고 200엔을 할인해준다지만 1,800엔씩, 두사람이면 3,600엔이나 된다.

무슨 대단한 지옥이 있길래 5만원이나 되는 입장료를 내야 한다는 말씀?

그래도 하는 수 없지.

물가 비싼 일본에 왔으니까...

여기가 그래도 8개의 지옥중에 가장 크고  가장 멋지다는데... 과연???

 

1,200년전 화산 폭발때 생긴 연못이 마치 바다처럼 보인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이 우미 지옥, 바다지옥이란다.

부글 부글 끓는다.

섭씨 200도씨가 넘는 뜨거운 수증기가 하루에 3,600Kl 분출된단다.

높은 온도는 놀랄만 하지만...부글부글 끓고 있는 것도 대단하기는 하지만...

이게 여기서 가장 큰 지옥온천이란 말이지?

에게???

 

바로 옆에는 벌건 온천이 끓고 있다.

그것도 콩알만 하다.

안을 다 돌아보는데 채 몇분이 걸리지도 않는다.

바다 지옥??? 우미 지옥???

 

"우미~~"

사진을 찍을 때 서양 사람들은 웃으라며 "치즈~"라고 하고

우리 나라 사람들은 "김치~"라고 하고

일본 사람들은 "우미~"라고 입꼬리를 올리며 웃으라고 한다더니만...

그냥 사진찍으면서 입꼬리를 올리며 가벼운 웃음을 짓는 정도의 지옥이라고나 할까?

"우미~~~"

 

세계 여행 후유증인가?

그동안 너무 거대한 걸 많이 봤나 보다.

엄청나게 비싼 입장료를 지불하며 지옥순례라는 거창한 이름까지 붙여 놓아서 너무 큰 기대를 했나보다.

 

첫번째에서 단번에 실망할 수는 없지...

다른 뭔가가 있겠지...

진짜 지옥이 있겠지...

 

우선 밥이나 먹고 생각해야 겠다.

배가 고프면 제아무리 멋진 경치도 눈에 들어오질 않잖아...

주린 배를 채우고 뱃속이 두둑해지면 좀 더 너그러운 눈으로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뭔가 새로운 것으로 감동하지 않을까?

 

벳부 기차역 바로 앞에 있는 벤또 가게에서 사온 일본 도시락.

우선 배를 채운다.

일본 여행... 혀끝으에서 느끼는 맛의 감각으로는 황홀 그 자체다.

게다가 벤또 가격은 싸기까지...

부글 부글 끓는 바다지옥 바로 옆에서 황홀한 벤또에는 감동한다.

배를 채운다.

 

다음은 오니이시보즈 지코쿠(괴석방주 지옥).

회색 진흙탕이 부글부글 끓어오른다.

조그마한 연못 몇개에 고작 몇군데의 움직임이다.

부글부글이라고 하기에도 좀 뭣한... 보글보글이라는 게 더 적당한 표현이다.

ㅋㅋ

일본 지옥. 지옥이라고 하기에는 앙증맞다.

섬 전체가 부글부글 끓고 있는, 그래서 지구가 살아있다는 느낌이 고스란히 전해져오던 아이슬란드에서는

그  광활한 규모에 넋을 잃었었는데...

단테의 신곡에서 묘사한 지옥이 이랬을것이라며 바라보던 미국 데스밸리의 단테의 시선.

그곳에선 아주 오랫동안 많은 생각을 했었다.

수십억년전 지구의 탄생부터 인간의 오랜 삶까지...

인간과 자연과 삶의 가치를 생각하게 만드는 지옥이었다.

단테의 시선에 앉은 우리는 쉽사리 자리를 뜰수도 없었다.

너무 많은 생각들이 떠올라서...

 

역시 세계여행 후유증인가?

이렇게 앙증맞은 지옥순례길에서는 그저 작은 미소만을 띄울 뿐이다.

ㅋㅋㅋㅋㅋ

 

이번은 산지옥, 야마 지코쿠란다.

 

김이 모락모락.

맹렬하게(?) 내 뿜는 점토가 산기슭에 쌓여 산처럼 생겼다 해서 산지옥이라 부른단다.

여기서 나오는 에너지를 이용해 동물도 키우고 식물도 키우는 곳이란다.

지옥의 행세가 볼품없으니 다른 볼거리라도 갖다 둔건가?

그래야 어마무시한 입장료에 대한 불만이 없을꺼니까???

 

그래서 하마도 보인다.

징그러운 하마.

미끈미끈 몸뚱이에 쭉 찢어진 눈에 떡벌린 입과 무서운 이빨.

사람들은 하늘로 치켜벌린 하마의 입에다 사과, 감, 바나나등을 통째로 집어넣어준다.

나는 지옥을 보러 온건데...

 

그 옆엔 눈빛이 선한 라마 우리도 있다.

안데스 산맥의 잉카 트레일하면서 산 모퉁이를 돌다 불현듯 만난 라마가 생각난다.

그때도 라마의 착한 눈빛에 반했었는데...

산지옥에는 하마, 라마 이외에 플라맹고도 있고 원숭이도 있다.

지옥들이라고 해봐야 한군데를 돌아보는데 채 십분도 안걸리는 작은 규모들이니

여기는 동물들이라도 갖다놓아 사람들의 발길을 붙든다.

 

벌써 네번째 지옥이다.

8개나 다 돌려면 오늘 하루중에 다 못볼지도 모른다고 걱정했던 건 순전히 기우다.

적어도 지옥을 순례하는 길이라고 생각했던 우리의 통 큰 상상과는 다르게

바로 옆, 바로 옆에 오밀조밀 붙어 있는 지옥들에

하나하나도 다 고만고만한 연못들이니...

 

여기는 가마도 지코쿠, 솥지옥이다.

여기서 나오는 증기로 밥을 지어 조상신께 바치는 축제에 올렸다나 어쨌대나...

 

여기서는 한무리의 한국인 단체관광객을 만난다.

단체로 오면 여덟개의 지옥을 다 안돌아보는 건가?

다른 곳에서는 못봤는데 유독 이곳에는 많다.

시끌벅적하다.

함께 오는 여행, 떠났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흥분되는 것이겠지...

한번 마시면 10년은 젊어진다는 온천 약수를 한 사발씩 떠먹으며 왁자지껄 웃음을 날린다.

 

우리도 한잔씩 마셨다.

10년씩은 젊어졌다.

10년전으로 다시 돌아가면 무얼해야 하지???

시끄러운 교실, 떠드는 아이들, 알코올 냄새나는 과학실... 평생 나의 친구가 되어 있는 신문반 아이들...

좀 더 너그러운 마음으로 그 아이들을 만날 수 있을까?

 

여기는 정말 한국 사람들이 많이 오는가 보다.

태극기까지 걸어놓았다.

온천에 넣어 바로 삶은 달걀도 팔고...

벳부가서 사먹는다는 달걀이 바로 이거구나...

 

가마도 지코쿠 안에서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북적거려 그냥 지나쳤던 온천 달걀을

밖으로 나와서는 지나치지 못하고 결국 사먹었다.

지옥 증기로 삶은 "옥자(계란)".

ㅋㅋ

옥자... 맛있다.

지옥 온천에는 감동 못하는데 일본의 먹거리에는 매번 감탄한다.

온 동네가 따뜻한 수증기 타운이다.

부글부글 끓는 동네다.

 

여기는 오니야마 지코쿠(괴산지옥).

여기서 나오는 열기를 이용해 악어를 키우고 있는 곳이란다.

악어가 150마리나 된단나?

이 녀석 눈 꼬리도 짝 찢어졌다.

본디 심성은 어떻는지 모르지만 참 못땠게 생겼다.

허접한 지옥순례를 보고 있자니 놀고 있는 악어조차 밉게 보인다.

 

여섯번째 지옥, 시로이케 지코쿠(백지옥)

청백색의 특이한 열탕이다.

분출할 때는 무색 투명하지만 분출 후에 온도와 압력이 낮아짐으로 인하여 자연히 청백색을 띈단다.
여기는 바로 옆에 수조를 만들어놓고 따뜻한 물을 이용해  물고기를 키운다.  
'야삼'하다.

 

돌아가신 시아버님이 일본 여행을 다녀오고 하신 말씀이

"참, 그놈들 야삼하더라"였다.

'야삼'이라는 단어는 다른 어느 누구한테서도 들어보지 못했던 우리 아버님만의 단어다.

사전에도 없는 야삼이라는 단어가 일본 여행에서 문득 떠오른다.

정말 딱 맞는 표현이다.

뭔가 쬐그맣고, 얍삽하고 얄미운 느낌이 드는 단어.

아버님을 떠올린다.

 

광활하고 거대한 자연과 마주서면 머리속에 수많은 생각들이 떠오르고

나를 되돌아보고 삶을 되돌아보게 되던 경험과는 다르게

벳부에 들어서면서 부터는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생각할 틈을 주지 않고 바로 옆 바로 옆으로 이어지는 조그만 가게, 조그만 연못,

그리고 뭔가를 억지로라도 들여놓아 관광지화 해놓은 곳에서

그저 기웃거리고 또각또각 다음 코스로 넘어가게만 만들어놓아서...

나막신을 신고 종종 걸음으로 또각또각 걸어가는 일본 사람들의 뒷모습이 딱 어울리는 여행지다.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아 그저 심심했던 벳부에서 

몇해전 돌아가신 아버님 생각을 떠올리게 해서 그것만은 참 고맙다.

 

하여튼 이 놈들 관광지 만들어놓은 게 참 '야삼하다'. 

 

6개의 지옥을 순식간에 다 돌아보고 이번엔 차를 타고 조금 떨어진 지옥을 간다.

치노이케 지코쿠(혈의 지옥)이다.

산화철이 포함된 점토가 뿜어져 나와 연못물이 마치 피 색깔을 하고 있다고 해서 이름 지은 거란다.

이것도 돌아보는데는 잠깐.

 

마지막이다.

용권지옥, 다쯔마키 지코쿠다.

다쯔마키는 일본 말로 회오리바람이라는 뜻.

마치 용이 승천하는 것 처럼 회오리 바람을 불러일으키며 땅속에서 뜨거운 물이 치솟는 간헐천이다.

30분 간격으로 20m 높이로 물이 치솟는단다.

시간을 잘 맞춰가야 한다며 벳부역 앞에 있던 인포메이션 센터에서

이 지옥 온천에 들어가기 전에는 입구에 있는 출입구 2층 난간에 붙어 있는 신호등을 잘 보고 들어가라고 했다.

위에 파란 등이 켜져 있을때 온천이 솟구치고 있다는 표시라고.

지금은 빨간 불이다. 조금 기다렸다가 들어가야 한다.

 

드디어 파란 불이 켜지고... 사람들이 몰려 들어간다.

진짜 콩알만한 간헐천이다.

물론 우리나라에는 저런 것도 없지만...

 

우쒸 !!! 진짜 못참겠다.

이런 걸 두고 ...

지옥순례니 뭐니... 문화재 지정이니 뭐니...

 

아이슬란드의 간헐천. 이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는가?

이건 입장료도 안 받았는데...

모든 사람들이 탄성을 질렀었는데...

 

미국 데스밸리의 '단테의 시선'에서 ...단테가 묘사한 지옥이 이럴꺼라고 말했었는데...

저 곳에서는 아주 오랫동안 아무 말없이 머물렀는데...

 

세계여행의 후유증, 맞다.

너무 큰 걸 보고 다녔다.

너무 대단한 걸 이미 너무 많이 봐버렸다.

 

일본 벳부의 지옥은 여행자의 특권인 '생각할 공간'을 주지 않는다.

그냥 귀엽다고나 할까?

 

벳부의 야삼한 지옥순례를 마치고 나니...

뭔가 모자라고 손해본 것 같다.

아무 생각없이 그냥 동네 한바퀴를 한다.

지옥순례를 하는 기점인 칸나와에 있는 인포메이션 센터다.

다른 지역에서 보던 것 처럼 참 단정한 일본식 집이다.

벳부역에서 일일 버스 티켓을 사면서 받은 '뿌레젠토(Present) ' 티켓을 내미니 작은 수건 두개하고 엽서를

선물로 준다. 그냥 조그만 수건인데... 공짜로 받으니 그 기분은 좀 좋다.

 

그런데 인포메이션 센터 바로 옆에는 새우나 게 등 해산물이나 야채들을 사서 바로 그 자리에서 쪄주는 코너도 있다.

신기하다.

먹어볼까?

감동은 없고 쬐그마한 지옥들에서 귀엽다는 느낌 정도만 얻어서 좀 섭섭했는데

먹는걸로라도 감동을 채워볼까?

그런데 돌아가는 시간이 만만찮다.

그냥 보는 것으로 만족. 벳부에 왔으니까 이 동네  전통 일본 목욕탕엘 가서 온천이나 해야겠다.

 

마을을 따라 내려간다.

참 정갈한 동네다.

온 동네가 온천이고 물만 틀면 뜨뜻한 물이 콸콸 쏟아진단다.

온천 목욕탕이 꽤나 많다.

 

일본 사람들이 다른 나라 사람들보다 깨끗하다고들 하는데

온천이라는 자연조건이 주는 혜택임에 틀림없다.

 

버스 정류소에서 만난 일본 사람이 추천해주던 목욕탕을 찾아냈다.

막 온천욕을 끝내고 나왔는지 뽀싸시하고 불그레한 얼굴로 어찌나 열심히 설명을 해주던지.

영어가 통 안통하던 일본에서 영어 쓰는 사람을 만나서 오랜만에 중요한 정보를 얻었다고 기뻐했는데...

비싼 데도 있지만 자기는 100엔밖에 안하는 이 온천을 추천한다며

다른 사람들 다 듣는데서 아주 큰 소리로 영어 자랑을 해가며 설명해줬는데...

 

입구가 어째 좀 허술하다.

혹시나 해서 여탕 입구 문을 드르륵 밀고 들어섰는데...

홀딱 벗은 할머니들이 나를 물끄러미 쳐다본다.

힐끗 안으로 들여다보니 보통 집에 있는 욕조 두 세배 크기의 조그만 탕이 하나 있을뿐이다.

문을 열면 바로 그 입구에 옷을 벗고 바로 안쪽에 욕조가 덜렁 드러나 있는...

동네 할머니들만 오글오글하다.

'젊은 니는 누구냐?' 라는 얼굴로 할머니들은 나를 빤히 쳐다보신다.

어이구야~~~

그냥 돌아나와버렸다.

하기야 100엔짜리 목욕탕이라더니...

 

그러고 보니 동네를 돌아다니는데 대부분의 목욕탕이 비슷하다.

어떤 건 공짜도 있는데 이런 건 조합원밖에 안된다고 하고

100엔짜리들은 모두들 다 비슷하다.

한쪽에는 남탕 출입구, 또 한쪽은 여탕 출입구.

안은 다 조그마한 욕조들에 할머니들만...

 

거리로 나와있는 목욕탕의 창문으로는 안이 훤히 들여다 보인다.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남탕 여탕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옷을 벗고, 욕조에서는 목욕을 하고 계시고...

덕분에 할아버지들 벗은 뒷모습도 봤다.

ㅋㅋㅋㅋ

 

아무리 물 좋은 온천이라지만 이런데서 우찌 목욕을 !!!

목욕하려면 현금이 든 복대도 풀어야 하고

카메라도 노트북도 어디다 두어야 하는데, 귀중품을 둘 곳도 없다.

그냥 선반에 올려놓는 곳이다.

여행자는 행여나 하는 마음이 들면,  하면 안된다.

 

700엔 정도 하는 비싼데도 있었지만 100엔 하는데나 700엔 하는데나 똑같은 이곳 물일거라고 생각하니

갑자기 아깝기도 하고, 호텔에 딸린 공짜 목욕탕에나 가지 뭐...

그래도 거기는 밖이 다 드러나보이는 곳은 아닐테니 말이다.

 

결국  칸나와에서 우리가 선택한 것은 또 족탕이었다.

 

뜨거운 증기로 발은 물론 정강이까지 찜질 해주고 ...

 

그 옆에서 오랫동안 족욕도 실컷 했다.

 

무서운 지옥이 아니라, 끔찍한 지옥이 아니라

귀여운 지옥들을 만나며 '우미~~~"하며 웃으며 말이다.

야삼한 그것들을 보며 아버님도 떠올리고...

우리가 지나왔던 아이슬란드도 미국도 떠올리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