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지금은 여행중 /여행 하루하루

"좃또 와까리마스" 2010 겨울 일본 여행

프리 김앤리 2011. 2. 9. 01:00

직업 중에 참 괜찮은 직업이 여행사에서 일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지금도 그 마음은 그대로다. )

남들이 보면 그럴싸해 보이는 변호사도 만나는 사람이 모두 도둑놈 아니면 사기꾼, 문제있는 사람들이라거나

(물론 인권변호사인 경우는  전혀 다른 경우이기는 하지만)

돈 잘 번다는 의사들도 알고보면 하루종일 만나야 하는 사람들이 모두 아픈 사람들이니

늘 아픈 이야기만 들어야 하고

약사도 그 좁은 공간에서,

만나는 사람들이라고는 어딘가 아파서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들 뿐이니

얼마나 피곤한 직업이겠냐고.

그나마 선생님이라는 직업은 팔팔 끓는 청춘들을 만나는 일이니 좀 괜찮다 싶다가도

요 녀석들이 때로는 끔찍하게 다가올 경우도 있으니 항상 즐거움만 있는 직업도 아니고.

음악가나 화가, 작가 같은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창조적인 작업을 해서 참 좋겠다 싶다가도

창조라는게 어디 하늘에서 그냥 툭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그걸 위해서 얼마나 골머리를 쌔매어야 할것이냐를 생각하면 그것도 그리 편한 건 아닌 것 같고.

 

그런데 여행사에서 일을 한다는 건

만나는 사람들이 모두 여행을 하기 위해서니까

이야기를 해도 내내 여행 이야기만 하니까 얼마나 즐겁겠냐고..

여행을 가기 전에는 떠나는 설레임에 들떠 서로 즐거운 이야기를 나눌테고

갔다 와서는  즐거운 추억을 읊을 권리가 있으니 또 얼마나 신나는 일이겠냐고.

도적놈들을 만나거나 아픈 사람들을 만나는 돈 잘버는 직업보다는 훨씬 더 신이 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일이라는 이름으로 여행 다니는 덤까지 얹어 받을 수 있으니 그 보다 더 멋진 직업이 어디 있겠냐고.

 

지금은 뭐 그다지 마당발은 아니어서 만나는 사람들의 숫자와 범위가 훨씬 쪼그라들었지만

한때는 남 부럽지 않은 마당발로 여기저기를 들쑤시며 사람들을 만나고 다닐때도

내가 가진 술자리 중에 가장 흥겹고 신나는 사람들은 여행사에서 일하고 있던 후배들이었다.

"이번엔 어디 갔다 왔냐?" " 돈이 얼마 들었냐? " " 어디가 제일 좋더냐?"

딱 그정도의 질문만을 던지고 나면 더이상 이야기가 진전되지 않던 대다수의 사람들과는 다르게

여행사에서 일하고 있던 친구들과의 술자리는 밤을 꼴딱 새우고도 끝나지 않는 여행 이야기로

한번도 찡그린 적 없고 피곤해지지 않았다.

여행 중에 일어났던 작은 에피소드에서 부터 어느 순간에 느꼈던 황홀함과 흥분,

때로는 절박함과 고통들까지 같이 나누고, 같이 이해하고 같이 웃던 친구들.

역시 여행이라는 주제를 안고 사는 친구들이라 그렇게 화통하고 적극적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늘 그랬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도 즐거웠고

돌아와서도 기분이 좋았다.

가기 전에는 여행을 꿈꾸느라고 신이 났고

돌아와서는 모든 것이 추억이었다.

길을 잃었다면 또 그것이 재미있는 추억이었고

배가 고팠어도 그것 조차 한참을 떠들수 있는 나만의 추억이었다.

여권을 잃어버린 기억도, 소중한 추억이 든 카메라를 잃어버렸던 황당하고도 슬픈 기억도,

돌아오기만 하면 그것이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 되어 있어서 또 흔쾌했고....

빈대한테 물려 피부가 덕지덕지 되었던 기억조차 재미있는 이야기거리였다.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빈대를 잘 잡는 방법도 배웠고, 빈대를 잘 잡는 노하우를 다른 여행자에게 가르쳐주는 것도 재미나는 일이었다.

 

그리고 돌아오기만 하면 됐다.

즐겁게 여행을 떠났고, 다시 일상으로 무사히 돌아오기만 하면 만사 오케이였다.

여행지에서의 시간도 다른 사람의 것이 아니라 나의 것이었으므로

즐기고 기뻐하고 낯선 것을 낯설게 받아들이는 모든 것이 나의 여행이었다.

익숙한 삶속에서만 살면 고정된 관념과 시각을 가지기 쉬운 반면,

낯선 사람, 낯선 곳을 만나다 보면 우리는 고정관념을 떠나 새로운 눈과 생각을 가지게 되어 즐거움은 더해졌다.

여행중에 받았던 에너지가  그 이후에 이어져 오는 일상 안에서는 충분히 비타민이 되어 주었다. 

 

그런데 여행사에서 일을 하고 있으니 꼭 그렇지만은 않은 사람들도 간혹 만난다.

한겨울에 민소매에 반바지를 입고서 다니면서 소개해 준 민박집이 추워 죽겠다고 항의하는 전화가 오질 않나.

그것도 여행을 하고 있는 현지에서 국제전화까지 걸어서 말이다.

혹시 소개해준 민박집에 보일러가 고장났나 해서 부랴부랴 현지로 전화를 돌려보면

제발 그 아가씨, 옷 좀 입으라고 말해달라고 오히려 부탁까지 하는 민박집 아주머니 이야기를 들으면

참 기가 찬다.

여행을 가니 마침 크리스마스라 모든 가게가 문을 다 닫아서 아무것도 못해

바꿔간 외화가 남아 그 돈을 다시 환전해야 해서 손해가 났다며 보상을 해달라고 하기도 한다.

소개해준 숙소가 이사를 해서 이리저리 헤매다가 택시를 탔다며

택시비 보상은 물론 정신적인 피해보상을 이야기 하며 엄청난 금액을 요구하기도 한다.

갑자기 철도 파업을 해서 다음 장소로 이동을 하지 못해 부랴부랴 그 지역의 호텔에 숙박을 해주게 했는데도

일정이 하루 늦어졌다며 보상을 요구하기도 한다.

 

나 같으면 - 물론 한겨울에 옷을 마구 껴입었겠지만-

'아이구... 이 놈의 동네는 정말 춥구나... 이렇게 추운 동네도 있구나... '하며 발을 동동거리며 돌아다니거나

아니면 따뜻해지는 뭔가를 도모했을텐데...

멋도 모르고 떠난 동네에서 맞은 텅빈 거리의 크리스마스에

그러면 이 동네 사람들은 크리스마스에 뭔 일을 하면서 놀고 있는지, 도대체 어디서들 꽁꽁 숨어서 지내고 있는지 살펴보았을텐데..

그 낯선 황당함을 즐겼을건데...

파업으로 갑자기 벌어들인 하루에, 하늘에서 툭 떨어진 공짜 호텔에 아주 희희낙낙 했을텐데...

 

여행은 익숙한 것과의 이별이고 낯선 것과의 만남인데...

익숙하지 않고 만나는 황당함이 오히려 여행이 주는 비밀같은 매력인데...

어떤 상황이든지 여행지에서의 시간 또한 나의 것이므로

그 순간을 당당하게 맞아들이고 즐길 수 있어야

진정 여행이 사랑스러워지는 것인데..

그리고 무탈하게 돌아온 것 자체로 이미 여행은 성공한 것이었다고 기뻐하면 되는데...

ㅋㅋㅋ

 

유후인... 일본의 유후인은 사실 우리에게 완전 황당함을 안겨준 마을이었다.

원래 계획은 벳부역에서 아소- 유후 고원일주버스를 타고 산속의 무슨 구름다리도 가보고

구로가와 온천도 들르고 아소산까지 올라갔다가 오후 5시나 되어서야 유후인에 도착하는 게 목표였다. 

암행어사 마패같은 걸 사면 구로가와의 여러 온천들 중에서 마음에 드는  세곳을 골라 가도 된다고 했다.

큐슈 레일패스를 사면 아소 유후 고원버스는 공짜로 탈 수 있는 거였다. 

그날 하루는 버스를 타고 멀리 한바퀴를 편하게 돌면서 

그동안 이쁘기만 하고 어딘지 모르게 야삼하던 일본 도심의 거리에서 벗어나

오랜만에 일본의 높은 산, 아소산에 올라갈 수 있겠다는 야무진 기대도 가지고 있었다.

 

아침 8시에 벳부역에서 출발한 고원일주버스의 손님은 우리 둘을 포함해 단 네사람이었다.

버스가 출발하기 전 안내양은 우리에게 다가와 살살 녹는 음성으로 일본어를 할 줄 아느냐고 물었다.

"좃또 와까리마스!!" (쬐금 압니다)

대학 다니면서 우리나라에는 번역되지 않은 일본 책들을 구해서 읽느라고

일본어를 마스터한(일본어 회화가 아니라 순전히 책을 읽기 위한 일본어 마스터) 남편은

겁도 없이 조금은 할줄 안다고 말해버린거다.

문자 해독능력이 있다는 거지, 듣고 말하는 것에는 거의 젬병이면서

솔직히 거의 모른다고 고백했어야 하는데 건방지게 조금은 안다고?

버스가 출발하면서 부터 안내양은 아무 거리낌없이 줄줄줄 일본어로 주변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거기까지는 좋았다.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풍경을 일본어로 설명하고 있었지만 하나도 이해하지 못해도 좋았다.

꼭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선생님 설명을 열심히 듣는다고 꼭 좋은 것은 아니니까 말이다.

한시간도 채 안되어서 버스가 유후인역에 도착했다.

뭐지? 여기 잠시 쉬었다 가나?

그러고 보니 유후인역에서 3~40분을 쉬었다 간다고 어디서 읽은 것도 같다.

손짓 발짓을 섞어 여기서 얼마동안 쉬었다 가냐고 안내양에게 물었는데

뭐라뭐라 하는 말중에 "욘줏분(40분)"이라는 말이 들리는 듯 했다.

봐라.. 여기서 40분간 쉬었다 간다잖아.

모르면 경계라도 해야되는데

이미 '좃또'라고 해버린데다 우리 마음대로 해석하고는

'그렇다면 잘됐다. 나중에 잘 방도 안 구해놨는데 인포메이션 센터라도 들러서

 방 알아보고 예약이라도 해두자'

고민도 하지 않고 버스에서 멀리 떠나와 마을 중간에 있는 인포메이션 센터도 들르고

가는 길에 보이던 작은 호텔에 들어가서 방이 있는지 없는지도 알아보다가

정확하게 30분 정도가 지나서 다시 유후인 역 앞으로 돌아왔다.

...

그런데

...

버스가 없다.

...

무슨 일이???

두리번 두리번거리는데 역무원처럼 생긴 사람이 나와서

혹시 이 가방이 우리꺼냐며 건넨다.

아까 버스 짐칸에 실어두었던 우리 가방이다.

...

버스는 이미 떠나갔고, 안내양이 우리 가방이라며 내려놓으면서 전해주라더란다.

...

뭣이야...그러면 그게 욘줏분이 아니었단 말씀?

...

그러게 내가 뭐랬어?

모르면 모른다고 솔직하게 고백했었어야지.

알지도 못하면서 좃또 안다고 해가지고서는 안내양이 우리를 챙기지도 않았잖아.

처음부터 일본어를 잘 모른다고 생각했으면 그 안내양이 바보같은 우리를 어미처럼 보살펴줬을텐데...

 

푸하하...

그렇게 우리는 구로가와 온천이고 뭐고, 아소산이고 뭐고 아무것도 보지 못한채

아침 9시 30분에 가방 하나와 함께 유후인역에 버려졌다.

푸하하...

 

뭐하지? 이렇게 이른 아침부터 뭐하지?

황당함. 쪽팔림. 멍~~~

 

제일 처음 우리가 해야했던 건 우선 오늘 저녁 잘 숙소를 구해서 가방부터 맡겨 놓는 것이었다.

이미 버려진 몸. 어디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방을 구할 애착도 에너지도 없었다.

전날 인터넷에서 누군가의 블로그에서 읽었던 '플로라 하우스 Flower House'를 겨우 기억해 내고

인포메이션 센터에서 전화번호를 알아낸 뒤 그 집을 찾았다.

 

일본 민박집이었다.

비싸고 어쩌고를 따질 상황이 아니었다.

역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서 논길을 따라 걸어가는 수고에 짜증을 낼 상황도 아니었다.

너무 일찍어서 체크인은 안된다고 해서 그냥 가방만 맡겨놓고 다시 먼길을 돌아나왔다.

 

그리고 어슬렁어슬렁.

두시간이면 딱이라는 유후인 마을을 일부러라도 아주 천천히 걸어다니면서

어느새 유후인에 취하고... 봉하마을을 떠올리고...

졸지에 왕창 벌어들인 하루를 즐겼다.

좃또... 좃또 해가며... 둘이서 킥킥 거리며...

진짜 여행같았다.

이 황당한 사건이 하필 한치의 비뚤어짐도 없이 잘 짜여진 일본에서 벌어져 더 통쾌했다.

우리 식대로 여행을 즐겼다.

으이구... 무슨 일본말을 할줄 안다고...

 

아무리 천천히 걸어도

동네를 샅샅히 돌아다녀도...

더이상 갈 곳이 없었다.

어찌나 쬐매난 동네였던지.

유후다케라도 오르면 아소산엘 못 오른 복수라도 할 수 있었겠지만

비도 칠칠 오고

갑자기 벌어들인 넉넉한 하루를 편안하게 즐기자며 오히려 산에 가는 것도 포기해버렸다.

그리고 체크인 시간에 딱 맞춰서 3시에 민박집으로 돌아왔다.

 

우리방이라고 들어선 순간, 나는 소리를 질렀다.

너무 좋아서...

정갈한 다다미 방에 노다메 칸타빌레 볼때마다 나오던 고다쯔도 있고,

창문 너머론 아름다운 풍경이 있고...

 

우리 방에서 내려다 본 마당.

 

우후훗

고원버스에서 버려져서 얻은 산뜻한 선물이다.

고맙다.

좃또야 고맙다.

 

손님이라고는 달랑 우리 둘 밖에 없어서

온천도 완전 독차지...

낯섬과 황당함을 즐겨서 얻은 선물이다.

푸하하하....

 

 

따뜻한 고다쯔에 발 넣은 채, 가지고 간 일본 드라마 료마전을 실컷 보고,

그동안 둘이서 어깨 낑겨가며 밤새 떨어질까봐 벌벌 떨며 잤던 콩알 만한 일본 침대가 아니라

넓은 다다미 방에서 대빵만하게 큰 이불 깔고 활개치며 푹 자고...

다음 날 아침에는 집에서 직접 가꾼 채소로 만든 깔끔한 아침밥을 먹고...

 

여행은 이런거다.

이래서 좋은 거다.

(일본 여행중 우리는 처음으로 일본식 다다미방에서 잤다. 그리고 우리가 묵은 숙소중 가장 비싼 방이었다. 다음날 우리는 한끼를 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