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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후인 마을과 봉하마을. 2010 겨울 일본

프리 김앤리 2011. 2. 7. 22:43

<일본 유후인 마을과 우리 봉하마을>

 

유후인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우리는 우리나라의 봉하마을을 떠올렸다.

 

유후인은 지금 일본 사람들이 가장 여행하고 싶은 관광지 1위다.

1960년대까지 유후인은 아주 낙후된 전형적인 시골마을이었다.

그러나 여기에도 개발 열풍이 불었다.

아프리카의 사파리와 비슷하게 지역을 만들려 하기도 하고

댐 건설이나 온천 리조트 건설, 골프장 건설같은 대규모 공사 계획이 발표되었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은 대기업들의 이윤만을 위한 무지막지한 공사,

유후인의 정취와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헤치는 공사에 반대했다. 

 

유후인 주민들은 단순한 관광지로서의 개발이 아니라

'애착이 가는 마을',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개발'에 초점을 두었던 것이다. 
부동산 개발이 한창이었던 시기에도 땅을 팔아 단기적인 이익을 얻기보다는

대대로 이어져온 가업을 유지하면서 후손들이 어떻게 살아가야하는 가를 고민했다.

 

댐 건설 반대운동에 앞장섰던 36세의 젊은 시장, 이와우 히데카시를 중심으로

마을 주민들은 다 같이 힘을 합해 '유후인 만들기'에 돌입했다.

 

거기에는 몇가지 원칙이 있었단다.

첫째, 자연이 주는 편안함과 천천히 즐기면서 편하게 쉴 수 있는 관광지여야 한다.

그래서 자연의 미를 충분히 살리면서도 소박한 동네 만들기에 주력하고

옛것을 버리지 않고 살리면서 쉬면서 즐길수 있는 관광에 초점을 두었다.

 

둘째, 안전한 관광지여야 한다.

1970년 야쿠자 조직의 실력자 출소 기념파티를 유후인에서 개최하려고 하였으나 유후인 주민들이 반대운동을 벌였다.

결국 마을 주민들의 힘이 약해 기념파티는 열렸지만 유후인 주민들은 이에 항의하기 위하여

기념파티가 있는 날 전 상점이 문을 닫는 철시 운동을 전개해

결국 이 운동이 전국 뉴스로 방영되었고 이후 유후인은 오히려 아주 안전한 지역으로 부각되었다.

 

셋째, 경관을 만드는데 가슴 속 깊이 남고 철학이 있는 경관을 만드는 운동을 전개하였다.

환경친화적인 소도시로 느낄수 있도록 골목길을 살리고

담장은 가급적 살아있는 나무 울타리나 대나무로 처리했다.

 

넷째, 관광 수입은 지역 주민에게 환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도네시아 발리의 경우 세계에서 으뜸가는 관광지이지만 대부분의 소득이 대기업이나, 다국적 기업의 이윤이 될 뿐

지역민의 소득으로 연결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유후인의 여관은 대부분 소규모이다. 그리고 가게들도 다 조그마하다.

규모가 작기 때문에 지역민 누구나 여관이나 가게들을 열 수 있는 기회가 됐고

이것을 바로 지역민의 소득으로 연결시켰다.

 

다섯째, 유후인만의 관점에서 옛것을 되살리는 것에 초점을 두고 이것을 유후인 만들기의 철학으로 삼았다.

유후임만의 독특함, 유후인의 옛것과 소박한 것에 대한 이미지 홍보가 더욱 의미있다고 생각하고

여기에 집중하고 이것은 적중했다.

지역의 자원, 즉 온천, 유휴다케(산), 하천, 들꽃, 지역농산물과 경작지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던 것이다.

 

그리고 아주 중요한 건 마지막이다 .

건전한 주민자치제의 구성이었다.

세계최고가 아니라 지역색을 어떻게 찾을 것인가에 초점을 두었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지역주민이 주체가 되는 것이 중요하며

정책에 참여할수 있는 체제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했다. 

장년층과 청년층으로 구성된 마을가꾸기의 조직과

장래 리더적인 역할을 하게 될 젊은층을 육성하려는 노력이 유후인 마을을 더욱 빛나게 만들었다.

 

마을 주민들은 집집마다 가축을 기르고 목초지를 조성하는 등 마을가꾸기 운동을 벌였다.

그 결과 수십년 동안 5층 이상의 고층건물이 단 한 채도 없는 목가적인 온천 휴양지로 마을의 이미지를 갖게 되었고

지금의 유후인은 연간 400만명의 관광객이 다녀가는 일본 최고의 온천 휴양지로 변모했다.

 

아~~~ 우리의 봉하마을.

우리 대통령님의 고향마을.

너른 들판에는 완전 무농약 친환경 오리쌀이 생산되고

산에는 장군차 나무가 자라고, 산길 구석구석 이야기가 있는 산책길이 만들어지고

사자바위에 올라서서 앞 뱀산을 바라보며 맘껏 소리를 지를 수 있는 마을.

마을 주민들이 힘을 합해 다함께 만든 단정하고 소담한 가게들이 있어

거기서 나는 쌀도 팔고 딸기도 팔고 배추도 무우도 파는 마을.

언제든지 찾아가면 고향 할아버지가 잔뜩 이야기거리를 가지고 우리를 기다리는 마을.

소박한 잔디밭에 빙 둘러앉아 막걸리와 파전을 나눠 마실수 있는 정다운 고향...

 

유후인 거리를 걸으면서 내내 우리는 봉하를 떠올리고 있었다.

 

유후인 역을 나서면 바로 만나는 단정한 거리와 높이 솟아있는 유휴다케 산.

 

크지 않은 가게들, 깨끗한 거리가 우리를 반겼다.

 

유후인은 일본 애니메이션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만든 영화

'이웃집 토토로'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배경이 된 곳이다.

유후인의 토토로샵.

 

가게들이 그다지 크지도 않았다.

모두들 조그마한 규모.

마을 주민들은 각자가 작은 가게를 열고 가업을 잇고 있었다.

 

튀는 가게도 없었다.

마을 전체와 어우러지는 소담하고 단정한 가게들이었다.

 

몇 평 되지 않는 작은 가게를 열어놓고

일본인 특유의 친절함으로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유후인 역에서부터 채 1Km 정도 밖에 되지 않는 듯한 거리에

가게들마다 자신들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 놓고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산나물 하나를 팔아도, 장아찌 하나를 팔아도

각자 독특하게 예쁘게 포장을 하여 물건을 사는 손님들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고 있었다.

국적 불명의 옥수수떡, 너도 나도 여기저기 비슷비슷하게 파는 오뎅, 쥐포등이 있는 관광지와는 차원이 달랐다.

 

배가 고팠다.

우리가 머물렀던 료칸의 주인이 일러줬던 농산물 직판소 내에 있는 작은 식당을 찾았다.

마을 주민들이 직접 경영하는 곳이다.

 

거기에는 마을 사람들이 직접 기른 채소와 과일, 고기도 팔고 있었고

한쪽에는 작은 식당도 경영하고 있었다.

 

모두들 거기서 나는 재료로 만든 음식이라고 했다 .

돈까스와 우리나라 된장국 수제비같은 단고(?)를 먹었다.

깔끔했다.

무엇보다 주민들이 직접 농산물 직판장을 만들고

소비자들과 직거래를 하는 곳이라 마음이 더 갔다.

값도 다른 곳보다는 훨 쌌다.

 

다시 유후인의 거리로 나섰다.

끝에서 끝까지 걸어봐야 두어시간도 채 걸리지 않는 짧은 길.

그러나 그 깨끗함에, 그 앙증맞음에 그리고 소박함에 마음을 쏙 빼앗겼다.

 

마을사람들이 힘을 합하면 이런 마을을 만들 수 있는 거구나.

불도저로 밀어붙이고 높은 빌딩을 쌓아올리지 않아도 이렇게 멋있는 마을을 만들 수 있는거구나.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이 벌려고 아웅다웅 하지 않아도 되는 거구나.

모든 사람에게 고향을 느끼게 할 수 있는거구나.

이 거리를 걸어다니는 사람들 모두, 이렇게 행복하게 만들수 있는거구나...

 

치렁치렁 비가 내렸지만 이 거리를 걷는 사람들은 모두들 행복한 미소를 띄고 있었다.

 

거리의 집들도 모두 아담하고...

 

자동차가 다니지 않는 거리.

앙증맞은 인력거만이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가장 일본다운 거리에서...

일본다운 탈 것을 만들어서...

일본다운 옷차림으로...

 

가게들이 늘어선 거리를 약간 비켜나면 사람들이 살아가는 마을.

거기에는 또 정겨운 돌담길도 있었고, 대나무 담이 늘어서 있었다.

 

아주 조그만 하천.

아무런 사치도 아무런 깔롱도 부리지 않은 그저 조그마한  하천과 산허리에 낮게 깔린 안개...

무엇 하나 눈에 확 들어오는 것은 없어도

어느 하나 버릴 것 없이 모든것이 다 포근히 감겨오는 유후인에서...

우리는 우리 마음의 고향, 봉하를 떠올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