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지금은 여행중 /3월 중국

상하이의 밤과 아침

프리 김앤리 2011. 3. 7. 12:52

 

'중국은 절대 No!' 라는 남편 친구가 있었다.

뭐라고 딱 꼬집어 그 이유를 말하는 건 아니었으나 하여튼 거의 본능적으로 중국을 거부하는 친구였다.

하지만 그 친구네 부부는 시간만 나면 일본 여행은 다녀왔다.

그렇다면 여행 자체를 싫어한다는 것은 아닐 터.

 

긴 여행을 다녀온 뒤 친구들과의 만남에서 배낭여행 이야기가 나왔다.

다들 아직도 직장에서 산업역군으로 일해야만 하는 한 가정의 아버지 어머니들이라

멀리는 갈 수 없고 한 며칠 잠깐 짬을 내서 가까운데로 같이 가보자는 의견.

그런데 문제는 장소였다.

엄청나게 많이 가봤지만 그래도 여전히 매력적이라는 일본, 

최근 뜨고 있는 대만, 그리고 바로 옆동네 중국이었다.  

의사 인턴 시절, 한번 가봤던 대만에서  맡았던 중국 음식냄새가 지금까지 역겹다는 그 친구는

여전히 중국이나 대만에 대해서는 '아니올씨다'였다.

 

그래도 한번 가보자.

저리 여행을 오래다닌 저 친구들(우리 부부를 말하는 거다)이 가자고 할때 중국을 한번 가보는게 어떠냐???

사실 중국이 얼마나 대단한 곳일줄 아느냐 ? 전세계가 인정하고 있는데 괜히 한국 사람들만 중국을 얕본다.

(이건 우리부부가 한 말이다.)

그래? 이 참에 중국 한번 가보자...

 

아직도 못내 마뜩찮아 하는 친구의 망설임을 여러명이 한꺼번에 집중 공략을 해서

갑자기 정해진 중국여행이었다.

여행사에서 일한다는 이유로 내가 모든 걸 위임받았다.

장소 선정부터 일정까지.

비행기표 구입부터 쉽지는 않다.

말만하면 알만한 팩키지 여행사에서 2월말 3월초 황금연휴기간의 비행기표는 다 선점해놨다.

꽉 짜여진 일정에, 정해진 밥, 그리고 여행보다는 쇼핑으로 시간을 더 많이 보내는 팩키지는 가지말자고 해놓은 터였다.

겨우 비행기표를 구했는데 허걱! 웬만한 팩키지 여행사에서 내 놓은 상품가격하고 비슷하다.

고작 비행기표뿐인데...

물론 팩키지 상품가격에는 거기다 Tax에, 가이드 팁, 비자비, 옵션비등이 더 포함되어야겠지만

그래도 이건 괜히 여행가자고 했다가 안들어도 될 뒷소리를 듣는게 아닌가 슬그머니 후회가 되기도 한다.

 

비행기 가격만 해도 엄청 비싼데 우짜까요? 라는 질문에 친구들의 대답은 흔쾌하다.

알아서 다 하란다. 믿고서 무조건 따라간단다.

허걱!!

이런 부담감...

중국은 절대 안가겠노라는 친구, 무조건 믿는다는 친구,

2년동안 동네 동사무소에서 배운 부인의 중국어가 드디어 빛을 발하게 됐다는 친구...

그리고 그 부인들... 아이들까지... 두루두루 엮어서 중국 상하이로 여행을 떠났다.

 

모르겠다.

괜한 짓을 하는거 아닌지도 모르겠다.

배낭여행이라는 게 무릇 아무런 욕심없이 가볍게 슬쩍 떠나야 제맛인데,

마치 등 뒤에 짐을 몇보따리는 지고가는 낙타처럼 어기적어기적 걸음을 떼놓는다. 

 

ㅋㅋ

그래도 믿는 구석은 딱 하나 있다.

여행은 어디를 가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누구와 함께 가느냐가 훨씬 더 중요하다는 사실.

 

이번 여행은 누구와 함께 가나요???

수십년 된 친구들과 함께 떠나요...

그럼 대답이 된 건가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3박4일동안 우리 모두는 내내 웃고 다녔다.

불쑥 찾아들어간 식당에서도, 페인트 벗겨진 허름한 호텔에서도, 어디가 어딘지 모르면서 길을 헤맬때도...

역시... '여행은 누구와 함께 가느냐'가 중요하다.

 

 

<상하이의 첫날 밤>

아니나 다를까,

토요일까지 환자를 보고 가장 늦게 나타난 의사 친구가 한마디 한다.

"야, 중국에는 가짜 계란이 있다는데..."

허걱.

이 드런놈들.

언제쯤 'Made in China'를 'Made in Japan'나 'Made in Germany'처럼 그냥 딱 믿게 만들어 놓을거야?

나쁜 쉐끼들, 우리한테 가짜 계란만 내놔봐라!!!

 

해는 이미 저문 토요일 저녁, 상하이 푸동공항에 도착했다.

안개가 자욱하다.

이곳은 자주 이렇단다.

시내까지 한 시간여의 거리, 안개속에 다리가 흔들거린다.

카메라가 흔들렸다는 게 정확한 표현이겠지만

두시간도 안돼 다른 나라로 건너간 우리 모두의 마음이 흔들거리고 있었다는 말이 더 정확한 건지 모른다.

 

비행기 안에서 준 기내식으로 배가 별로 안고플 것 같아 원래 계획했던 훠궈(중국식 샤브샤브)는 포기하고

얼른 다른 식당(Grand Mother Restaurant)을 찾았다.

대성공!!!

중국 여행오면 먹을 게 하나도 없더라던 사람들의 우려를 한 방에 날려버린 멋진 식사, 그리고 환상적인 가격.

다행이다.

모두들 만족이다. (중국의 먹는 이야기는 다음 포스팅에 올릴 예정이다.)

든든한 배를 두드리며 상하이의 야경을 보러 나선다.

 

지구촌 구석구석 '백만불짜리 야경'이라고 불리우는 곳은 아주 많다.

프라하성을 배경으로 카를교 야경이 빛나는 체코의 프라하,

신기루같이 높이 솟아있는 반짝이는 빌딩이 예술인 뉴욕 맨하탄,

세느강을 따라 흐르는 유람선을 타고 바라보는 프랑스 파리의 야경....

그런데 여기 중국 상하이도 끝내준다.

 

꺄오!!!

누가 중국을 허접하다고 했던가?

누가 중국은 우리보다 한참 못한 더러븐 동네라고만 폄하했는가?

 

와이탄에서 바라본 강 건너편 푸동지구의 화려한 불빛.

퀴퀴한 중국 냄새와 메이드인 차이나에서 풍기는 뭔가 속은 듯한 느낌을 상쇄할만한 찬란함이다.

 

상하이의 첫날 밤.

할머니의 손맛같이 맛깔스러운 저녁과  와이탄의 백만불짜리 화려한 야경 덕분에

어쩌면 '중국여행에 대한 걱정'이 별게 아닌걸로 끝날 것 같은 좋은 예감을 가져본다.

 

사실 나는 이 여행을 준비하면서

 중국에 대한 반응을 두 가지로 예상하고 있었다.

 "어?" 와 " 역시"로. 

여행에 대한 느낌은 물론 여행자 본인이 만들어가야 하는 것이 틀림 없지만

본능적 거부감 내지는 마뜩찮아 하는 상태로 시작한 여행의 결과가 '어?'와 '역시'는 천지차이이기 때문이다.

 

 

<상하이의 아침>

상하이의 아침이다.

그래, 중국의 아침은 늘 이랬다.

어디 틈만 있으면 아침운동을 하고 있는 사람들.

우슈도 좋고, 체조도 좋고, 댄스도 좋다.

 

우리 호텔 앞도 마찬가지다.

한무리의 중년 부인들이 등장하셨다.

중국의 힘???

13억 인구의 건강??

 

나이는 어느 정도쯤  되셨을까?

빨간 부채까지 펼쳐들고 쪼그려 앉는 폼새가 예사롭지는 않다.

아침들은 드시고 나오셨을까?

집에 아침은 차려주고 나오셨을까?

 

맨손 체조에 이어 부채춤.

오늘 아침 언제부터 운동을 시작했는지 아직도 끝날 분위기는 아니다.

우리도 아침을 먹었겠다, 에라이 나도 저기 끼어서 아침운동이나 해볼꺼나?

대열의 제일 뒤에 섰다.

 

얼쑤!!! 얼쑤!!!

우슈-ㄴ지 뭔지 난생 처음 해보는 이들의 몸사위가 내게는 낯설다.

그래서인지 입을 꽉 다물고 신중하게 하는 이들과 내 얼굴은 좀 다를 수 밖에.

나는 어정쩡, 옆사람을 보고 따라하자니 그저 웃을수 밖에...

 

그러니 이런 꼴이 난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양손을 아래로 내리는데 혼자서만 아직 위로 치켜들고 있는...

꼭 한박자씩은 느린...

 

어찌 좀 잘 따라하다가도

 

모두들 왼쪽으로 보는 타임에 나 혼자만 오른쪽으로 보고 있는...

옆에 있는 아줌마들은 계속 중국말로 나보고 뭐라고 코치를 해준다.

뭔 소린지 알수가 있어야지...

 

ㅋㅋ

아주머니들... 꼭 나만 그런것도 아니네요, 뭘.

오른쪽으로 휘돌리는 사람, 왼쪽으로 휘돌리는 사람,

누구는 팔이 위로, 누구는 아래로...

 

중국인을 관통하고 있는 정신은 메이 꽌시(沒關係)라고 했던 말이 생각난다.

한자의 뜻을 그대로 번역하자면 '관계가 없다', '상관이 없다'라는 것인데,

중국에서는 이 뜻이 '괜찮다'라는 의미로 쓰인다.

나하고 관계가 없으면 다 괜찮다라는 것으로 중국인의 배타성을 설명할 때 쓰이기도 하고

다른 사람의 일에 참견하지 말라는 뜻으로 쓰이기도 한다.

이건 또 다른 사람의 시선에 개의치 말라는 뜻이기도 하고.

 

아침을 깨우는 중국인들의 체조에서 나는 그들의 '메이꽌시'를 떠올린다.

이건 쪽팔림이 아녀... 내가 하고 싶으면 하는 것이여...

아무렇게나 주섬주섬 입고 나타나 누가 보든 말든, 틀리든 말든 자신의 건강을 챙기고 있는

건강한 중국인과 함께 운동을 하면서 몇년전에 들었던 '메이꽌시'를 떠올린다.   

 

나는 고작 몇 분 안되는 체조 한 번 하고 등에 살짝 땀이 나고 정갱이가 묵직했는데

이들은 내가 그만두고도 한참을 더 아침 운동을 했다.

근엄한 표정으로...

 

 

< 상하이의 또다른 밤>

난징동루 보행가다.

차들은 다닐 수 없이 사람들만 걸어다니는 길.

우리나라 서울의 명동처럼 번화한 거리라 그랬다.

상점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어

현지인이든 여행자건 어슬렁 어슬렁 거리면서 상하이를 즐기는 거리.

 

어디선가 트럼펫 소리가 들린다.

'베사메무쵸(Besame Mucho ).

사회주의 국가에서 들려오는 "Kiss Me Much'의 달콤한 음악.

 

길을 걷던 사람들은 전혀 다른 사람들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음악에 맞워 남녀가 팔짱을 끼고 춤을 춘다.

우리 일행 중 한 부부도 중국의 거리에서 두 사람만의 부르스를 즐겼다.

같이 여행 온 아들 딸은 옆에서 춤추는 아빠 엄마의 사진을 찍고...

 

사회주의 국가라고 해서 그냥 경직된 곳이라고 생각했단다.

아직도 중국의 철의 장막, 죽의 장막으로 닫혀진 폐쇄적인 사회라고 생각했었는지 모른다.

그런데 난징동루 보행가의 모습은 유럽이나 미국의 어느 거리나 마찬가지로 자유로운 모습이다.

세상을 돌아다니면서 우리는 이런 자유의 모습이 너무나 당연하게 느끼고 있었는데,

중국을 처음 찾은 친구는 놀라운 발견을 했는지도 모른다.

 

이곳도 자유로운 생각을 가진 자유로운 사람이 살고 있는 세상이다.

 

우리도 어슬렁 어슬렁, 상하이의 밤 불빛에 취했다.

난징동루 보행가의 수많은 사람들 속에 표안나게 잘 섞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건 큰 오산.

아들이 상점 안에서 과자를 사고 있는 동안 밖에서 기다리던 한 친구에게 여자 한명이 살짜기 다가오더란다.

"한국인이세요? 차 한잔 어때요~~~"

어이?

이게 그, 한국인 여행자를 대상으로 한다는 그?

남편도 내가 잠시 상점 안에 들어가 있는 사이 똑 같은 유혹을 받았단다.

어찌 알았을꼬? 우리가 보면 중국 사람하고 구별이 안가는 것 같은데

어리버리한 중년의 한국 여행자인걸 어떻게 알았을꼬?

 

ㅋㅎㅎㅎㅎ

친구들의 장난끼가 발동한다.

니도 한번 서봐라, 니가 서 있으면 여자가 다가올 것 같으냐? 여자가 아무한테나 올거 같으냐....

으이구...

그래서 친구 하나는 노란 불빛이 은은한 쇼윈도우 아래 홀로 서 있었다.

홀로... 한참동안... 

 

...

아무 소식이 없다. 

선수를 바꿔 다른 친구가 다시 혼자 서 있었다.

최대한 외로운 척 하면서...

 

그래도.... 아무도 다가와주지 않는다.

으이구...

미모의 여성(이것도 알수가 없다. 우리가 본 적이 없어서.... 순전히 여자의 유혹을 받은 두 사람의 자의적인 판단이다.)이

은근히 다가왔던 남정네들은 뭐고,

내놓고 한참을 혼자 서 있어도 아무런 일이 없는 남정네들은 또 뭔지...

그걸 지켜보며 웃는 부인들은 또 뭔지...

 

무엇을 해도 허물이 되지 않는 오랜 친구들과 함께 하는 여행.

우리들의 상하이는 유쾌한 시간의 연속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