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지금은 여행중 /3월 중국

함께 여행 한다는 것은... 항주에서

프리 김앤리 2011. 3. 8. 14:03

 

같이 여행한 사람들은 안다.

항주, 서호, 뢰봉탑... 노란 담벼락의 빨간 글씨, 비누방울을 불고 있던 아이...

이 사진을 찍었던 그 순간을 함께 알고 있다.

 

그러나 같이 여행을 한 사람이라면 사진을 찍은 그 순간뿐만 아니라

사진에는 나타나지 않지만 사진 저 너머에 있는 여러 시간을 함께 알고 있다.

우리가 타고 왔던 조그마한 봉고버스, 차가 밀리던 고가도로, 허접하던 동굴, 한약같았던 소홍주, 머리를 아프게 만든 이과두주,  

애기 주먹만한 초록색 중국 대추, 눈매가 선하던 버스 기사 왕씨 아저씨, 그리고 멀미를 하던 뻐꾸기까지...

그 때 우리의 시선을 함께 알고 있고, 그 때 우리가 함께 맡았던 향기를 같이 떠올릴 수 있다.

그래서 여행은 좋은거다.

다른 사람에게는 그냥 색깔 좋은 한장의 사진에 지나지 않는 장면도

함께 여행을 한 사람들에게는 말하지 않아도 함께 떠올리는  그 순간의 공기가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아닐런지도 모른다.

같은 시각, 같은 공간에 있었다고 하더라도 여행을 하는 사람 개인의 눈에 들어온 장면은 다른 것인지도 모른다.

함께 여행을 하고 있어도 또 여행자는 각각의 개인이 되어

자신이 만든 프레임안에 세상을 담아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우리는 안다.

밀리던 고가도로를 뒤로 하고 내려선 청화방 옛거리.

보라색 양산을 들고 수줍게 웃고 있는 소녀들의 모습을 담아내지 않았더라도

이 거리의 부산함과 살짝 땀이 나는 듯한 더위와

결국엔 못사먹고 버스를 타야했던  입구의 아이스크림 가게를 함께 기억한다.

 

뢰봉탑.

인간으로 변한 백사 백소정과 허선이라는 사내의 사랑이야기,

그러나 둘의 사랑은 이루어지지 못하고 흰 뱀은 뢰봉탑 아래에 갇힌다는 슬픈 이야기에

여성들의 기를 누르기 위해 사람들이 뢰봉탑을 채운 벽돌을 하나둘씩 빼내가서 원래의 탑은 무너지고 새로 세웠다는 이야기까지.

 

저 돌계단을 오르며 지었던 웃음들,

저 꼭대기에서 바라보았던 수묵화 같은 서호를 동시에 떠올릴수 있다.

 

우리가 탄 배는 저런 게 아니었어!

좀 더 소박한 것이었지.

저 배는 뭐, 유명한 사람들이 오면 띄우는 배라나?

일년에 몇번 정도만 뜨는 배라고 했어.

그리고 거기 사람들은 우리같은 관광객들이랑은 조금 다른 배를 타더라구.

호숫물 위에 납작하게 붙어 떠있는 조각배.

배를 타고 있는 사람들은 여흥을 즐기고

노를 젓는 사람들은 모두 손님들을 등 뒤로 태우더라구.

뭐, 옛날 어느 황제와 황후를 태운 배의 사공이 자꾸 황후를 쳐다보더래나?

그래서 그 이후 황제는 모든 뱃사공에게 등을 뒤로 하고 노를 저으라고 명을 내렸대나 어쨋대나...

 

함께 보았던 호수다.

나란히 앉아 같은 눈높이로 보이던 뢰봉탑이다.

 

다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누구는 이 호수를 보며 한편의 수묵화를 떠올렸을지도 모르고

또 누군가는 연애시절 연인과 함께 노젓던 어느 호숫가의 조그마한 배를 생각해냈을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검은 옥수수를 열심히 먹고, 누군가는 검은 옥수수 한 조각을 영구처럼 이빨 사이에 끼웠고,

또 누군가는 그 영구입을 크로즈업해서 사진을 찍었고... 그리고 누군가는 사진 찍는 그 모습을 물끄러미 보고 있었고...

 

새순이 파리하게 돋아나던 서호 둘레길.

 

세찬 소리를 내며 그 하늘을 날고 있던 나래연들.

우리는 그  끝을 안다.

허망하게 꼬꾸라지던 저 녀석들의 몰락을.

 

이 여인들이 기억나시는지요?

선뜻,  아름답다고 표현하기는 힘든 무용수들.

지지직 거리는 마이크에 잉잉잉 거리는 중국 노래까지,

한껏 나이가 들어 어디 가무단에서 퇴출된 그룹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까지 들게 하던 사람들.

그들이 춤을 추고 있던 그 정자가 기억나시는지요?

쌀쌀한 바람이 불어대던 조그만 정자를.

 

그 화면과 그 노랫가락이 떠오르신다면

당신은 우리와 함께 여행을 한 것이 분명합니다.

같은 시각, 같은 거리에 있었던 것이 확실합니다.

 

사진 찍는 걸 좋아한다고 했지?

아니, 대학의 사진동아리 회장이라고 했어.

자연을 담은 전체 화면으로 프레임을 짜던 아저씨와 달리

넌 항상 모든 사물 하나하나를  세심하게 담아내는 너만의 눈을 가지고 있었지.

 

여권을 들고 우리 사무실을 들어섰을때 나는 딱 알아봤어.

수줍은 듯 별말을 안했지만 니 속에 숨어 있는 밝은 기운을.

정말 내가 잘 봤던거야.

같이 여행을 떠나온지 하루도 되지 않아 너의 진가가 발휘되기 시작했어.

결코 튀지 않으면서도 주변 사람들에게 기분좋은 기운을 듬뿍 전해주는 너의 매력에 우리들은 빠져들었지.

 

나는 아주 오랫동안 니 이름을 뻐꾸기로 알고 있었지.

그리고 그 뻐꾸기라는 별명을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뻐꾸기 왈츠'와 연관시키고 있었어.

맑고 고운 빛깔, 풀잎 위로 또르르 굴러가는 이슬같은 음색으로 말이야.

그런데 그게 시간마다 울어대는 너의 어릴적 이야기라는 말에 얼마나 웃었던지...

그런데 말이야, 뻐꾹아.

너는 이제 시간마다 징징 울어대는 꼬마아이가 아니라

무채색의 호수에 깊은 생각을 입히는 아름다운 여인이 되어 있었어...

 

그래요... 함께 여행을 한다는 것은 참 좋은 건가봐요.

같은 시간을 가진다는 건 참 멋진 일인것 같아요.

남겨놓은 사진은 낡아 줄이 그어지고 빛 바랠질때라도

우리의 기억속에는 여전히 이 순간이 찬란하게 빛을 발할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