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지금은 여행중 /3월 중국

그래도 먹는 이야기

프리 김앤리 2011. 3. 21. 18:23

 

사실 블로그에 이 사진을 올려놓은 건 열흘도 더 전의 이야기다.

딱히 더 공부해야 할 역사적 사실이 있는 것도 아니고,

상세하게 설명해야 하는 정보가 있는 것도 아니니

마음만 먹는다면 금방 글을 완성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일본에 대지진이 일어나 버린거다.

집에 TV가 없어서 사고 당일은 그저 인터넷상의 뉴스만 봤을 뿐이니

'대형 사고'라는 짐작 정도여서 그다지 내 마음이 동요하는 건 아니었다.

'대형 지진'이니 '쓰나미'니 해도

고작 내가 상상할 수 있는 건 영화의 장면들 뿐이었으니

보고 있는 순간만은 아찔하고 두렵고 희생자들에 대한 연민을 만들지만

결국 영화였다는 결론 뿐.

모든 것이 다 허구더라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있는 영화를 가지고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는 실재를 상상한다는 것은 애초부터 무리가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언니네 집 까지 올라가서 본  TV화면 속의 현실은 일주일 내내 나를 뒤집어 흔들어 놓았다.

마치 서서 달려오는 듯한 거대한 물기둥과 모든 것이 쓸려 내려가는 처참함, 두려움, 공포.

삶과 죽음, 가족과 이웃, 민족과 나라...

허무한 인생 같으면서도 죽음과 맞닥뜨린 인간의 위대함까지...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 상황에서 나는,  중국 여행가서 이런 음식들을 먹었노라라는 글을 쓴다는 게 참 하찮게 느껴졌다.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부끄럽게 느껴졌다.

중국엘 가면 아무 것도 먹을 게 없을 것이라다라는 친구들의 편견을 깨고

여행 내내 맛있는 것들 천지로 있는 중국 여행이라서

우리는 뭔가 좀 달랐노라고, 팩키지가 아닌 자유 배낭여행은 이래서 즐거운 것이라는 컨셉의 글을 염두에 두고 있던 내가

한없이 부끄러워졌다.

 

일주일 내내 나는  인터넷 속에서 살고 있었고

딱히 일본이라고 느껴지지 않는 사람들의 삶과 죽음 속에서 헤매이고 있었다.

여행을 많이 다녀서 그런지

일본이라는 게 다른 나라가 아니라

그저 세상 어느 곳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받아들여졌다.

한국이라는 나라, 한민족이라는 민족의 개념은 어느 덧 내게는 남아있지 않았다.

저기도 사람이 살고 있는 곳.

저기도 사람이 죽어가고 있는 곳.

단 한마디의 이야기도 없이 저리 서로 이별을 할 수 있는 것이 세상이구나, 삶이구나 라는 생각.

 

신문이나 언론에 난 것 처럼 일본 사람들은 아주 침착했었는가 보더라.

주변의 사람들이 전하는 신문에 나지 않은 이야기

- 가까운 지인들로부터 직접 전해 들은 일본 현지의 이야기. 전화나 이메일 같은...- 에서도

일본 사람들의 질서의식과 침착함에 대한 이야기는 여전했다.

그런데 하나 특이했던 이야기는

그날, 지진이 나고 난 날 저녁, 일본 도쿄의 술집에는 사람들이 그리 많았다는 이야기다.

'이래나 저래나 죽을 목숨, 에라이 술이나 퍼마시자.' 이런 거였을까?

한국적 사고를 가지고 있는 나로서는 처음 떠올린 생각이 당연 이런 거였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전달하는 사람이 상황을 정확하게 옮겨주는 것인지는 확인할 길은 없으나

그에 의하면

평소에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던 일본 사람들이

그날 지진과 쓰나미 사태를 겪고 나서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서둘러 만나고

그들에게 자신들의 감정을 겉으로 표현했다는 것이었다.   

만나자고... 만나서 이야기 하자고...

어쩌면 이런 표현이 아니었는지도 잘 모르겠다.

사람은 모두들 자신이 원하는 대로만 듣는다던데

어쩌면 내가 일본인들의 상황을 그렇게 듣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자신이 알고 지내던 사람과 연락이라도 하면서 하루하루 착하게 살아가는 것이

지금 현재 우리들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라는 것을 일깨워주는 순간이기도 했다.

 

그래서 일주일만에 다시 마음을 다 잡았다.

보름전의 나의 현재. 친구들과 함께 여행을 갔던 그 현재.

나의 주변 사람들, 그리고 그들과의 즐거웠던 시간을 그냥 있는대로 대하자고...

 

 

<중국에도 먹을 것이 천지더라>

역시 우리의 식탁에는 술이 있었다.

대한민국 남성들, 그리고 그들과 함께 하는 부인들의 자리에 술이 빠질 수는 없었다.

주메뉴가 나오기도 전에 회전 테이블을 차지한 건 공자의 후손이 만들었다(?)는 공부가주와 칭따오 맥주.

 

아니... 우리는 칭따오 맥주를 시켰다구요. 순생(純生) 맥주가 아니라...

손님 ! 이게 바로 칭따오 맥주거든요.

아니, 청도(靑島) 맥주라는 글자가 없잖아요.

'아니 이 중국*들이 우릴 속일라고 그라나?'

중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본능적인 반응이다.

그런데 맥주병을 자세히 보고 있던 아들 한 놈이 불쑥 말한다 .

아뇨, 여기 칭따오라고 써놓았는데요...

...

 

나중에 알고보니 순생맥주는 칭따오 맥주사의 프리미엄 상품이다.

가격도 그냥 칭따오 맥주보다 두배 정도 비싸고 향도 잘 살아있는 아시아 최고의 맥주로 칭송받고 있단다.

ㅋㅋㅋ

미안하다, 중국아.

 

상하이에 처음 도착한 날 저녁에 찾은 레스토랑이다.

와이탄길 뒷편의 어디쯤...

'상하이 그랜드마더 레스토랑'이다.

 

비행기에서 기내식으로 먹은 저녁도 있고 해서

별로 배가 안 고프고 그다지 뭔가를 먹고 싶은 마음이 없다는 생각에서  고른 평범한 식당이다.

평범하지만 '가격대비 만족도'가 높다는 정보하에 선택한.

 

 

그렇다고 중국음식을 우리가 잘 알기를 하겠는가? 또 중국말을 유창하게 잘 하겄는가?

손짓과 발짓이 난무하는 가운데

2년동안 중국어 회화를 공부했다는 부인 한명의 중국어가 빛을 발한다.

동사무소에서 진행하는 공짜 프로그램을 그저 꾸준하게 다녔을 뿐이라는 겸손이 무색할 만큼

그는 발군의 실력을 발휘했다.

으흐흐... 사람들이 많으니 각자의 역할로 자신을 빛내기 시작한다.

 

동파육을 꼭 닮은 돼지고기찜.

 

양송이 버섯에 무슨 야채가 가득했던 야채 스프 같았던...

 

땅콩과 닭고기 볶음?

 

이것도 무슨 돼지고기 볶음 같은거였는데...

 

사실 내내 이랬다.

회전테이블에 음식이 올라오면 사진을 찍을 잠깐은 커녕

각자 젓가락을 갖다댈 사이도 없이 음식은 옆자리로 팽팽 돌아가고 있었다.

제법 여러가지의 음식들은 먹었는데

감질나게 하나씩 등장하는 중국 본토의 음식들 앞에서

'한개도 먹을 것이 없이 그저 느끼하기만 하다'던 지레 짐작은 어느새  달아나고 있었다.

중국에 가면 믿을 것이라고는 마치 코카콜라밖에 없을 것 처럼 떠들어대던 몇몇의 불신도

어느새 묻혀버리고 회전판이 돌아가기 전에 각자의 젓가락을 음식접시에 명중시키는데 열중하고 있었다.

 

배가 그득하게 이것 저것 뭔가를 가득 먹었는데

사진이라고는 그래서 이것 밖에 없다.

 

단지 그 순간, 불타는 (?) 우리의 눈빛만 남아 있을 뿐이다.

 

그날 우리의 웃음소리만 남아있을 뿐이다.

지진이 나고 쓰나미가 나면 한달음에 전화하고 만날 오랜 벗들의 해맑은 웃음소리만...

 

 

<잠깐 일일투어의 기억>

항주를 가기 위해 신청한 일일 투어에서 나온 점심 식사.

항주를 가면 반드시 먹는다는 일인당 동파육 한 점씩과 거지닭(? 이름도 뭐 이리 흉칙한지), 그리고 몇몇가지의 음식들...

이 사진에는 나와있지 않지만 서호에서 유명한 서호초어까지...

한국 단체 관광객만이 손님으로 있는 서호 근처 어딘가의 식당이었다.

 

역시 음식은 골라먹는 재미가 있는건가?

색깔도 그럴듯 하고 보기도 그럴듯 한데 맛은 그냥 그랬다는...

좀 재미가 없었다는...

차라리 저녁식사로 선택했던 중국 삼겹살이 훨씬 더 맛있었다는...

 

 

<그래도 여전히 중국엔 먹을것이 천지더라>

좀 더 시간이 있었더라면(아니 배가 조금 덜 불렀더라면...) 주전부리를 더 많이 사먹어 봤을텐데...

약간은 불결해 보이기도 했지만

단체여행이 아닌 자유여행에서 누릴 수 있는

'여기저기 힐끗힐끗'의 자유를 누릴 수 있었을텐데...

숙소에서 예원까지 가는 길의 튀김등 각종 주전부리들... 그리고 시장의 과일들....

기대를 완전히 뒤집어버린 예원상가의 남상만두... 으~~~ 그 느끼함~~~

 

시장의 어물전을 가득 채우고 있는 저 놈들을 오늘 먹어볼꺼나???

과연 오늘 점심은 뭘 먹을거나? 또 저녁은???

ㅋㅋ

사실 저녁에는 게, 새우, 랍스터, 소라,  고동...해산물 파티를 해보자고 단단히 벼뤘는데

한국보다 훨~~씬 더 비싼 가격에, 그건 제쳐두고라도 중국*들이 과연 우리가 고른 살아있는 게 새우를 제대로 줄건지

새삼 피어오르는 의심과 비위생이라는 장벽을 넘지 못하긴 했다.

ㅋㅋ

 

점심?

이름도 모르겠다.

동방명주를 보러 건너간 푸동 지구의 어느 번듯한 건물에 진짜 아주 깔삼한 식당이었다. 

길거리를 가는 현지인이 추천해 준 식당이었다.

한마디의 영어도 통하지 않는 식당,  손님이 바글바글한 점심시간이라

중국말도 제대로 못하는 우리들에게는 별로 관심도 없더라는...

우리 모두는 각자가 잘 먹어보겠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점심을 먹고 있는 현지인들의 이 테이블 저 테이블을 기웃거리느라 정작 우리 자리는 온통 비어버렸다는 사실.

뻐꾸기만 외롭다.

 

한번 먹어볼라고... 아니 한번 먹여 볼라고...

동네 중국어 선생님이 적어줬다는 메뉴판을 들고

주문에 온 신경을 다 쏟고 있는 두 아줌마.

한 명은 중국어라도 잘 한다고 쳐, 나머지 한 아줌만 뭐 하고 있는감???

 

그리고 하여튼 여러개 나왔는데...

오늘도 테이블위의 유리판이 팽팽 돌아가는 통에 사진찍을 겨를이 없었다.

음식 접시에 자신의 숟가락과 젓가락을 명중시키기도 전에 돌아가버리는 빛의 속도때문에

우리 몸의 중심은 늘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어야 했다는...ㅋㅋ

 

사진이라도 한 장 찍을라치면 어느새 판이 휭 도는 바람에

있는 사진조차도 초점 못맞춘 이런 것 밖에 없더라는 것이다.

ㅋㅋ

 

그래도 이리 선명한 사진도 있구나.

이건 제법 뒤에 나온 음식이었거든.

이 때쯤 유리판의 회전 속도는 심하게 줄어있었거든...

 

모르겠다.

이름도 모르는 것들을 제법 많이 먹었건만

우리에게는 알싸한 중국 고추의 매운 맛과 특유의 중국향기만 남아있을 뿐.

 

그리고 다음날까지 계속 되었던  저녁 식사의 추억.

"나는 만두를 먹어보지도 못했다. 나는 만두 밑에 깔린 당근쪼가리 밖에 못먹었다, 누가 도대체 만두를 다 먹은 것이야"에서 부터

"마치 기름국 같았던 고기 콩나물 냉채는 누가 시킨거냐"

"시원한 쌀국수 국물은 왜 그것밖에 안 시켰냐???" 등등...

완전 초등학생 수준의 갑론을박만 남아있을 뿐이다.

...

다른 어느 곳에서도 그런 땡깡을 못부릴 점잖은  어른 친구들의 시끌벅적한 추억만 남아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