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지금은 여행중 /5월 실크로드

체념을 배우는 시간 - 5월 중국 실크로드 1

프리 김앤리 2011. 5. 24. 05:00

 

중국으로의 여행은 체념을 배우는 길이었습니다.

'체념'이라는 것은 희망을 버리고 아주 단념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중국이라는 곳에서는 빨리 갈 것이라는 것에 대한 희망을 버리는 일부터 시작해야 했습니다.

400Km의 거리를  8시간 걸려도 이곳은 중국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했습니다.

 

조용한 여행, 고요한 여행에 대한 기대도 접어야 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 어디서든 왁자지껄 떠드는 사람들을 견뎌내야 했습니다.

운전을 하면서도 핸드폰으로 끊임없이 떠드는 기사 아저씨, 그 놈의 크락션 소리.

서인도의 암리차르가 떠올랐습니다.

사람들이 찻길 옆으로 얌전하게 걸어가고 있어도

버스 기사는 끊임없이 크락션을 빵빵 울려댑니다.

도로의 주인은 걸어가는 사람이 아니라 귀하디 귀한 차라는 것을 가르쳐줘야 한다는 듯이 귀청이 떨어져나가도록

섬뜩섬뜩 놀래도록 빵빵거렸습니다.

지평선 끝까지 아무것도 없는 메마른 황무지를 달리면서

동서양의 문명을 이어줬던 실크로드를 떠올리는 상념의 여행은 포기해야 했습니다.

그냥 잠을 청하는 것이 나았습니다.

이렇게 지겨운 길, 시끄러운 사람들과 나의 뇌를 온통 흔들어대는 크락션 소리를 애써 뭉개며 그냥 자버리는 게 더 나아보였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쉬운 것은 아니었습니다.

한번도 물을 만난 적이 없는 듯한 꾀죄죄한 버스 커텐이 내 얼굴에 자꾸 와 닿습니다.

한쪽 옆으로 밀어보지만 제대로 닫히지 않는 창문 틈을 뚫고 들어오는 사막의 바람이

자꾸만 내 얼굴쪽으로 커텐을 들이밉니다.

 

나는 여기서 세번째의 체념을 배워야 했습니다.

깨끗함에 체념입니다.

먼지, 뿌연 길, 모래 바람, 먼지...이건 그래도 있는 그대로의 자연이었으니 참을 만 한 거였습니다.

그러나 더러운 버스, 버스 안에도 밖에도 아무렇게나 버려져 있는 쓰레기들,

그리고 앞에 앉은 아저씨의 떡진 머리... 자꾸만 내 얼굴을 핧아대는 끔찍한 커텐...

엉덩이가 다 까일듯 비포장도로를 덜컹덜컹 달리던 버스가 잠시 섰습니다.

볼 일을 보랍니다.

우루루 내린 사람들. 남자들은 그냥 등만 돌리고 이곳 저곳에서 아무렇지도 않은 듯 볼일을 봅니다.

여자들은 뒤로 돌아갑니다.  

화장실인듯한 사각벽돌집(?)이 보입니다.

그러나 역시... 문도 없는 화장실입니다.

대충 만들어놓은 옆쪽 칸막이만 있을 뿐, 앞은 완전히 트였습니다.

위로도 트였고, 아래로는 차마 눈을 뜨고 볼수 없는 것들이 그대로 다 드러나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나 봅니다.

앞에 사람이 서 있어도 전혀 개의치 않고 바지를 내리고 맨 엉덩이를 드러내보입니다.

바로 앞에는 그나마 볼일을 보라고 뚫어놓은 그 구멍을 무시하고 아무렇게나 퍼질러놓은 배설물이 말라가고 있고

휴지들은 나 뒹굽니다.

역한 냄새가 코를 찌릅니다.

볼일 보고 있는 사람들을 떡하니 쳐다보고 있기가 민망하여 뒤로 물러서 다른 곳을 바라보며 순서를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이건 또 무슨 일입니까?

그 사이를 새치기해서 들어가는 사람들을 또 어떻게 이해해야 한단 말입니까?

 

그래서 또 체념했습니다.

중국이라는 곳에서 공공질서에 대한 개념을 버려야 했습니다.

아무데서나 피우는 담배.

버스안에서 피우는 담배는 물론 그 좁은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담배를 피우는 사람을 참아내야 했습니다.

 

여행(Travel)이라는 단어의 어원이 고행(Traveal)이라고 했던가요.

사막 아래에 묻혀있는 천년이 넘는 역사를 기대하고 떠나온 실크로드의 여정에서

나는 감동의 역사를 만나기 이전에  체념을 배워야 했던 여행이었습니다.

체념이라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에 희망을 버리고 아주 단념한다는 뜻 이외에도

'도리를 깨닫는 마음'도 있다고 합니다.

빨리는 아니더라도 제 속도대로 달려줄 것이라는 것에 대한 기대도 버리고

조용한 사색에 대한 희망도 접고

마음 한 구석에서나마 바라고 있던 깨끗함이나 질서에 대한 미련까지

다 비우고 텅빈 가슴으로 나서야

여행의 길에서 새로운 것을 담아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 준 것이라면...

이번 실크로드 여행길도 제게는 역시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