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지금은 여행중 /5월 실크로드

동서양의 길목, 둔황. 오월 실크로드 11

프리 김앤리 2011. 6. 21. 07:00

중국 학자들은 둔황을 '인후'에 비유한다.

마치 입에서 식도와 기도로 통하는 목구멍과 같다는 뜻이다.

화서회랑을 거쳐 몰려드는 동방 문물이 이 곳을 지나면 몇갈래의 길로 갈라져서 시원스레 빠져나가며,

반대로 그 길들을 거쳐 밀려오는 서역 문물은 이 곳을 어렵사리 지나서야 동방에 전해지기에 그렇게 부른다고 한다.

우리말로 비유하면 병목이다.

이런 호칭 말고도 둔황은 동서 문명의 '보물고'니 '미술관'이니

화융(한족과 서역인)이 뒤섞여 사는 도시니 ' 사막의 대화랑'이니 하는 등 여러가지 상징적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그만큼 둔황은 지정학적으로나 문명교류사적으로 돋보이는 고장이다.

                                                                            -정수일 저, 「실크로드 문명기행」 에서

 

하미에서 7시간 30분씩이나 버스를 타고 둔황에 도착했다.

이번 우리 실크로드 여행의 종착지다.

우리 여행에서는 종착지이지만 중국 역사에서 둔황은 실크로드의 입구다.

중개무역의 요지로 많은 사람들이 오가며 물자를 교류하던 경제적으로 대단히 풍요로운 곳이었다.

둔황이라는 이름 자체가 '크게 번성하다'란다.

 

이름 처럼 둔황은 아주 잘 정비되어 있다.

잘 살고 있다는 느낌이 도시 곳곳에 배어있다.

도심 한가운데 있는 '비파를 켜는 처녀상'은 둔황의 상징이다.

 

차가 다니지 않는 관광거리도 단정하고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다.

지금까지와의 중국과는 사뭇 다른다.

너무 깨꼼해서 어색하기도 하지만 마음은 편하다.

 

더러움과 북적거림, 혼돈과 기다림, 무정보와 무질서...

뻔히 알고 온 중국이지만 약간은 짜증이 났었는데

여행자들이 쉽게 다닐 수 있도록 잘 정리되어 있는 크지 않은 도시, 둔황이 마음에 든다.

 

사막을 가로지르는 낙타 그림도 보이고 미소띈 불상도 보인다.

과연 모래가 우는 명사산의 고장이자 역사를 자랑하는 불교미술의 고장, 둔황에 온 것을 실감한다.

 

불심도 없으면서 시어머니와 친정엄마를 위해 이 고장 오래된 나무로 만들었다는 염주 두개를 샀다.

신라의 혜초스님도 당나라의 현장법사도 불심이 깊은 고승들이 머물렀던 곳에서 사온 염주라고 하면

양쪽 어머님이 모두 기뻐하실꺼라 상상을 해본다.

그저 남에게 해꼬지 하지 않고 하루하루를 착하고 소박하게 살아가는 것이 사람사는 도리라는

두 어른의 인생철학에 참 맞는 선물이라고 스스로 대견해한다.

 

우리 친정 엄마는 자기가 자식들을 잘못키웠다(?)고 한번씩 말씀하신다.

다른 집 딸들은 불교를 믿으며 노는 날이면 엄마를 모시고 절에도 다니고 하는데

팔십이 다되도록  평생을 절에 가서 불공 들이며 자식들을 키워놓았는데

어느 한 년도 불교를 믿는 딸이 없다고.

어릴 때 부터 종교의 자유를 철저히 시행해온 집안의 분위기에 따라

큰 언니는 무교(자기 시어머니 따라 한번씩 원불교 교당을 가는 것 보면 원불교 인 것 같기도하고,

한달에 두번 봉사활동을 하러 가는 단체를 보면 천주교인 것 같기도 하고.)

둘째 언니는 가족 모두가 독실한  천주교 신자,

여동생은 가족 모두 독실한 기독교 신자,

남동생은 현재까지는 아무런 종교가 없는 것 같다.

물론 나도 완전히 무신론자이고(여행자의 예의상 절에 가면 절하고, 성당에 가면 기도하고 촛불을 밝힌다.).

 

이미 독실하고 철저한 딸내미들은 진작에 포기했고

며느리는 자기 마음대로 이래라 저래라 하기 부담스럽고

엄마는 집안의 딸들중에 불교로 끌어들일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딸로 나를 꼽는다.  

그래서인지 한번씩 절에 가서 불교 서적이나 불경 테이프 같은 걸 사와서 내게만 선물한다.

딸들은 출가하면 다 시댁의 종교에 따른다고 믿는 우리 엄마의 계산으로는

시어머니까지 절에 다니고 있는 내가 가장 유리한 포섭대상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우리나라를 여행하면서는 일부러 점심 공양시간 맞춰서 절에 가서 절밥을 얻어먹고 오기도 하고

언젠가 한 해 사월 초파일에는 절에서 밥을 얻어먹고는 공양간이 너무 바쁜 것 같아

같이 간 남편과 함께 산더미 같은 설겆이를 해주고 왔다는 내 말에 반색까지 하면서 기뻐했으니 말이다.

이 염주를 받으시면 엄마의 바램에 심증을 굳히는 일까지 진행될런지는 모를 일이다.

 

마음에 쏙 드는 둔황 시내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다 广场 을 발견했다.

吃(취)가 먹는다는 뜻이니 명물 음식광장이라는 뜻이렸다.

 

과연 식당들이 줄지어 늘어서있다.

대부분이 만두, 국수, 밥 같은 걸 팔고 있지만 똑같은  걸 파는 집은 한 집도 없다.

국수나 만두의 모양이니 양념이니 다들 조금씩은 다르다.

우리는 한글이 적혀있는 전통 조선냉면 집을 선택했다.

니글니글한 중국 음식만 먹고 있어서 속이 불편했는데 마침 잘 됐다.

 

냉면 두 그릇 주문이요~~~

김치에 오이, 시원한 육수까지...

딱 우리입맛이다.

샹차이가 들어있어 독특한 맛이 있기는했지만.

냉면이라기 보다는 우리나라 밀면 맛이기는 했지만...

 

고작 9위엔이란다.

1500원도 안되는 돈이다.

앗싸~~

옆 테이블을 보니까 우리나라 떡볶이 같은 것도 있고, 돌솥 비빔밥 같은 것도 있다.

내일은 저걸 먹어야지~~~

조선족의 후손들인가 보다.

그래도 한국말은 못한다.

 

(우리는 다음날도 그 집에 가서 돌솥 비빔밥을 시켜먹었다.

 우리가 가져간 고추장을 듬뿍 넣어 싹싹 비벼서.

 이건 10위엔. 1600원이다.)

 

둔황의 첫날밤이 저물어 간다.

여행자 거리엔 불이 들어오고

 

거리의 가로수엔 흘러 내리는 불빛의 등도 달아 놓았다.

 

둔황의 밤거리 가로수에 불빛이 흐르고 있다.

내일은 모래가 운다는 명사산, 사막의 대화랑이라는 막고굴에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