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지금은 여행중 /5월 실크로드

낙타가 울고 있는 명사산 오월 실크로드 13

프리 김앤리 2011. 6. 23. 07:00

 

드디어 명사산이다.

실크로드 여행의 마지막 여정, 명사산으로 들어선다.

 

음영이 확실한 모래산.

빛이 부서져 내리는 면과 빛이 닿지 않는 면을 정확하게 갈라놓은 모래산의 아름다운 곡선.

 

바람이 분다. 모래가 운다.

 

명사산(鳴沙山)

바람이 강하게 불면 모래가 운다하여 붙인 이름이다.

지금도 사막의 바람에 모래가 울고 있다.

 

흩날리는 모래 속에 사람들이 있다.

빨강 노랑 파랑의 깃발이 흔들린다.

 

단지 한 점이 되어 저 높은 모래산을 오르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 사막이다.

 

비스듬한 사선을 구부정하게 오르려 애쓰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다.

 

경사진 모래밭을 내려오는 신나는 썰매도 있는  곳이다.

 

그리고 그 모래 사이로 파란 나무들이 자라는 곳이다.

나무 곁에 서성이는 사람들이 있어 외롭지 않은 사막이다.

 

한구비를 더 걸어가는 거짓말 같은 장면이 나온다.

사막 속에 무언가가 있다.

 

절이다.

한웅큼 애써 움켜쥐어도 손가락 사이로 다 빠져 나가버리는

바스러지는 모래들이 만든 모래산 그 한가운데 거짓말 처럼 절이 있다.

 

지붕도 모래빛, 담벼락도 흙빛.

명사산의 한 가운데 절이 있다.

 

그것만이 아니다.

물도 있다.

초승달 모양의 호수가 있다.

월야천(月牙泉)이다.

세상에서 가장 건조한 땅에서 영원히 마르지 않는 신비의 오아시스다.  

 

월아천의 뒷 산을 오른다.

한 발 오르면 미끄러지고 또 한 발 오르면 다시 미끄러지고

발목까지 정강이까지 자꾸 모래속으로 빠져든다.

그래도 꺼이꺼이 오른다.

두손 두발 다 이용해 엉금엉금 기어오른다.

 

사막의 한가운데 마르지 않는 천이 있어 모래산을 꺼이꺼이 오른다.

 

모래가 있고 모래를 울리는 바람이 있고

절이 있고 절을 살리는 물이 있고 나무가 있어

마침내 꼭대기까지 오른다.

마침내 빛의 음영이 갈라지는 모래산의 사선에 섰다.

 

여기는 사막.

또 하나의 주인공이 있다.

낙타.

 

낙타가 있어 사람들은 사막으로 여행을 떠난다.

 

낙타와 함께 여행을 떠난다.

 

그들이 있어 사막이 더 아름다운 건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낙타를 타지 않았다.

 

낙타의 두 혹 사이에 사뿐이 올라앉아 손을 치켜들며 사람들은 즐거워했지만

 

우리는 낙타의 뒷모습을 보았다.

털가죽이 다 벗겨진 그들의 힘든 뒷 모습을 보았다.

 

껍데기가 다 벗겨져도 인간들을 태우고 사막의 모랫길을 힘들게 걸어가고 있는 낙타의 행렬.

 

그들이 있어 사막이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그들의 구부러진 다리와 느릿느릿한 걸음걸이, 너덜너덜 벗겨진 그들의 털가죽 때문에 사막이 슬펐다.

 

대학교 동창인 내 친구가 그랬다.

평범한 세상 사람들 모두는 낙타처럼 살아가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고 그랬다.

낙타는 제 등에 지고 있는 짐이 무겁고 힘들어 얼굴이 쭈글쭈글해졌는지 모른다고.

세상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삶이 지고가는 무거운 짐(아이, 가정, 부모, 일...)을

무거운 줄도 모르고 고통스러운 줄도 모르고

그것이 무거워 어느새 얼굴이 찌그러져가도 그 짐을 내려놓을 줄도 모르고

기꺼이 제 등에 모두다 지고 그냥 하루하루를 낙타처럼 살아간다고.

사막의 모래바람이 불어와도 그 큰 눈을 껌벅껌벅 거리면서 모래 바람을 헤치고 낙타 처럼 살아간다고. 

 

세상 사람들 모두가 어쩌면 낙타처럼 살고 있는지 모른다고 그랬다.

 

너덜너덜  온 몸의 껍데기가 다 벗겨지도록 인간들에게 봉사하고 있는 사막의 낙타들.

제 등에 지고 있는 짐을 무거운 줄도 모르고 얼굴이 찌그러지는 줄도 모르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

 

우리는 그들을 올라탈 용기가 없었다.

 

큰 눈을 껌벅거리면서 세상에서 가장 온순한 얼굴을 하고 있는 그들에게 휴식을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인간을 위해 그토록 오래 봉사를 했으면 그만 쉬게 해 주는 것이 인간의 도리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척박한 사막에서 지금까지 함께 살아온 낙타 한마리 한마리에 대한 의리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모로코의 사막에서는 이 정도가 될 때 까지 낙타를 부려먹지는 않았었는데...

이집트의 사막에서도 낙타에게 이 정도로 미안하지는 않았었는데...

 

명사산의 반대편 사막을 오르는데 낙타를 타지 않은 그룹은 우리와 저기 저 사선을 걷고 있는 프랑스 여행자 둘 뿐이었다.

모래가 울고 있는 명사산이 아니라 낙타가 울고 있는 명사산이었다.

 

낙타야, 미안해!

 

사막을 걷습니다.

우리 두 발로 걷습니다.

 

발이 푹푹 빠지고 걷는 걸음이 힘들어도

모래 사선 위로 스스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이제 우리의 실크로드 여행이 끝나갑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시 시간을 만들어 또 다른  어느 곳을 여행할 것입니다.

뚜벅 뚜벅 걸어서 우리의 여행을 만들어 갈 것입니다.